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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곤충의 시대 - 공룡 피는 무슨 맛이었을까?



쪽~, 쪽~, 쪽~. 캬~.

어이쿠, 죄송합니다. 식사 중이라 그만 먹는 데 정신을 팔고 있었네요. 잠시만요. 입 좀 닦고…. 안녕하십니까. 정식으로 제 소개를 올리겠습니다. 저는 벼룩입니다. 벌써 얼굴부터 찡그리는 분이 계시네요. 제 본모습을 더 아신다면 아예 기겁하시겠어요. 후후.

저는 요즘 보시는 벼룩과 다릅니다. 중생대에 살았던 벼룩이거든요. 요즘 벼룩은 크기가 2~4mm 정도라지요? 저는 무려 2cm나 된답니다. 웬만한 어른 엄지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크기지요. 그런 벼룩이 피부에 달라붙어서 피를 빨아먹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하하하. 끔찍하지요?

저는 최근 중국에서 화석으로 발견됐습니다. 약 1억 6500만 년 전인 쥐라기 중기 지층과 약 1억2500만 년 전인 백악기 초기 지층에서 모두 9점의 화석이 나왔지요. 저희 같은 벼룩 화석은 매우 희귀해서 가치가 높답니다. 지금까지 벼룩 화석은 주로 신생대에서 발견됐어요. 호주의 백악기 후기 지층에서 벼룩 화석이 발견된 적이 있지만, 하나뿐이라 논란이 많았습니다. 이번에 발견된 저희 덕분에 벼룩의 출현이 중생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됐습니다. 벼룩의 초기 진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네이처’ 3월 8일자에 논문이 실리기도 했지요.
 
[네이처에 실린 중생대 벼룩 화석 (아래 사진). 아래는 화석을 바탕으로 스케치한 모습이다. 현대의 벼룩(왼쪽 사진)과 크기와 모양을 비교해 볼 수 있다.]

공룡 피 빤 거대 벼룩

일단 제 모습을 자세히 설명해 드리죠. 몸통은 수직 방향으로 납작하게 눌려 있는 편으로, 큰 배에 비해 머리와 가슴이 작습니다. 배는 단단한 각질로 덮여 있습니다. 이를 경피라고 하는데, 수컷보다는 암컷이 경피가 적습니다. 논문을 쓴 저자들은 더 많은 액체를 흡수할 수 있게 적응한 결과로 보고 있습니다.

발톱은 길고 약간 구부러져 있으며 발목에서 거의 수직으로 꺾여 있습니다. 그래서 깊숙한 V자 모양을 이루고 있지요. 털이나 깃털에 꼬이지 않도록 진화한 결과랍니다. 또한, 다리는 길고, 날개는 없으며, 더듬이는 짧고 아담해요. 요즘 벼룩과 비교할 때 가장 눈에 띄는 건 덩치겠지요. 무려 10배 정도 크니까요. 암컷은 1.4~2cm이며, 수컷은 0.8~1.5cm입니다. 암컷이 수컷보다 큰 건 요즘 벼룩도 마찬가지라고 들었습니다.

아무튼, 크기 외에도 요즘 벼룩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벼룩 하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다들 ‘점프’를 떠올리더라고요. 벼룩 하면 높이 뛰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몇 mm밖에 안 되는 몸으로 수십 cm를 뛴다고 하니 자기 몸길이의 100배 이상을 훌쩍 뛰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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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거대 잠자리의 날개 화석과 현대 잠자리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자. 곤충의 날개는 몸에 비해 탄력이 좋아 몸보다 화석화되기 쉽다. (우) 이처럼 커다란 하루살이가 해질녘 하늘을 날아다닌다면 어떤 느낌일까. 고생대 석탄기에 살았던 하루살이의 상상도.]

그렇다면 저는 얼마나 뛸 수 있을지 궁금하시죠? 2cm짜리 벼룩이 눈앞까지 펄쩍 뛰어오른다고 생각하면…, 흐흐. 그런데 안타깝게도(?) 저는 점프를 하지 못한답니다. 다리는 길지만, 뒷다리가 점프에 적합하지 않아요. 요즘 벼룩과 달리 저는 얌전하게 기어 다녔답니다. 아무래도 그 이후에 뛸 수 있게 진화한 모양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입이에요. 가장자리가 톱니처럼 생긴 긴 대롱이 제 입입니다. 이 입을 큰 동물의 가죽에 콱 박아 넣고 피를 쭉쭉…. 아유, 생각만 해도 맛나네요. 아, 죄송합니다. 잠시 먹을 것 생각을 하다가 옆길로 새고 말았네요. 화석을 보면 아시겠지만, 이 큰 입은 바깥쪽에 돌출돼 있어서 아주 잘 보인답니다.

저희와 요즘 벼룩은 입의 구조가 조금 다릅니다. 겉으로 보면 저희 입이 훨씬 큽니다. 덩치가 훨씬 크니까 당연하겠지만, 덩치를 빼고 봐도 저희 입이 더 커 보입니다. 하지만 요즘 벼룩은 입을 가슴 길이 정도로 더 늘릴 수 있어요. 게다가 요즘 벼룩의 몸이 더 아담해서 몸길이에 비례한 입의 크기는 비슷합니다.

이 무시무시한 입으로 저희는 동물의 피를 빨아먹고 살았습니다. 다리가 털이나 깃털이 있는 표면을 다니기에 적당했기 때문에 가죽으로 덮인 동물에 기생하지는 않았습니다. 털 있는 동물이라면 포유류가 있지만, 중생대의 포유류는 주로 작은 동물이었어요. 이 덩치로 작은 포유류의 피를 빨기에는, 뭐랄까, 체면이 서지 않는달까요? 저희를 발견한 과학자들은 저희가 깃털 달린 공룡의 피를 빨아먹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톱날 같은 입으로 공룡 가죽을 뚫었다는거예요. 하지만 꼭 공룡만이 아니라 초기 포유류를 비롯한 다양한 척추동물에 기생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어요.




[야이켈롭테루스 레나이아이를 복원한 모습(왼쪽)과 원래 화석의 모습. 흔히 바다전갈이라고 부르지만 전갈과는 큰 상관이 없다.]

지구 탄생 이래 최대의 잠자리

저만 이렇게 커다란 곤충이었던 건 아닙니다. 아마 지금쯤 여러분 모두 고생대에 살았던 거대 잠자리를 떠올리고 계시겠죠? 맞습니다. 약 3억 년 전인 고생대 석탄기에 살았던 메가 네우라 모니(Meganeura monyi )는 날개를 활짝 편 폭이 68cm에 달합니다. 요즘 잠자리의 날개폭이 10cm 정도니 7배 정도 큰 셈입니다. 그 옆에 있으면 저도 요즘 벼룩처럼 보이려나요. 1880년에 화석으로 발견된 메가네우라 모니는 거의 60년 동안 가장 큰 곤충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런데 1939년 이 기록이 깨졌습니다. 더 큰 곤충 화석이 발견된 것이죠. 메가네우롭시스 페르미아나(Meganeuropsis permiana)로 메가네우라 모니와 같은 메가네우리대(Meganeuridae) 과에 속한 종입니다. 이 거대 잠자리는 날개를 편 폭이 무려 70cm가 넘습니다. 몸통 길이는 약 43cm이고요.

1년 뒤에는 또 다른 거대 잠자리 종이 발견됐습니다. 같은 과에 속한 메가네우롭시스 아메리카나(Meganeuropsis americana)입니다. 이 둘이 같은 종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날개 편 폭이 69cm로 최대는 아니지만, 날개가 온전한 상태의 화석으로 발견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앞선 두 종은 날개의 일부만 화석으로 남아 전체 크기를 추정해야 했거든요. 온전한 날개 화석으로는 메가네우롭시스 아메리카나가 가장 큽니다. 이들 거대 잠자리는 육식을 했습니다. 다른 곤충은 물론 덩치에 걸맞게 작은 양서류까지도 잡아먹었다고 하는군요.
거대 잠자리는 많이 아시니 다른 곤충의 예를 들어 볼까 합니다. 바로 하루살이입니다. 성충이 된 뒤 고작 하루 이틀만 산다는 보잘것없는 하루살이가 과거에는 거대한 곤충이었다는 게 믿어지시나요?

석탄기에 살았던 보조플레비아 프로코피(Bojophlebia prokopi)는 요즘 하루살이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양날개를 편 폭이 42cm 정도입니다. 2010년에는 체코 프라하카렐대와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 연구팀이 체코 보헤미아 지방에서 보헤미아투푸스 엘레간스(Bohemiatupus elegans)라는 종을 발견했습니다. 이 친구는 더 커서 날개폭이 52cm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하루살이 중에서 가장 큽니다. 하루밖에 못 사는 하루살이라 해서 불쌍해 보였는데, 이 덩치를 보면 그런 생각이 쑥 들어갈 것 같습니다.

고생대 석탄기와 페름기에 살았던 옛바퀴목(Palaeodictyoptera)에 속한 곤충도 날개폭이 55cm로 큰 크기를 자랑했습니다. 이들은 부리 같은 입으로 식물의 즙을 빨아 먹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저처럼 큰 동물의 피를 빨아 먹었을지도 모르지요. 화석만 가지고 고대 곤충의 생활상을 알기란 몹시 어렵답니다.

짙은 산소는 거대 곤충의 요람

눈치 빠른 분들은 지금까지 예로 든 거대 곤충이 모두 고생대에 살았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계실 겁니다. 아, 물론 중생대에 살았던 저는 빼고요. 이렇듯 고생대, 특히 말기에 거대 곤충이 많이 살았습니다. 사실 고생대에는 곤충이 아닌 절지동물이나 양서류 중에도 거대한 동물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고생대 실루리아기에서 페름기에 걸쳐 살았던 야이켈롭테루스 레나니아이(Jaekelopterus rhenaniae)는 길이가 2.5m로 사람보다 훨씬 큽니다. 흔히 바다전갈이라고 부르지만, 전갈보다는 오히려 바닷가재에 가까워 보입니다.

고생대에는 왜 거대 곤충이 많았을까요? 아, 그런데 고생대의 곤충이 모두 이렇게 거대했을 거라고 오해하지는 마세요. 고생대에도 곤충은 대부분 몇 cm 정도로 작았습니다. 아주 일부 곤충만 그렇게 컸던 것이지요.


보통 동물의 몸이 커지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몸집이 커지면 천적에게 잡아먹히는 일이 줄어들기 때문에 생존 가능성이 더 높아집니다. 먹이 경쟁에서도 유리해지지요. 혹은 추운 곳에 사는 동물은 몸 크기에 대한 표면적의 비율을 줄이기 위해 몸이 커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우리 같은 거대 곤충이 있을 수 있었던 이유로 산소를 꼽습니다. 고생대 말기에 대기 중의 산소 농도가 높아서 곤충이 몸집을 키울 수 있었다는 겁니다. 일단 곤충이 어떻게 호흡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곤충은 기공이라는 구멍을 통해 숨을 쉬는데, 배를 부풀렸다 수축했다 반복하면서 산소를 몸속으로 흡수합니다. 이런 호흡 방법은 몸집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몸집이 크면 산소를 더 깊숙한 곳까지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몸집이 클수록 호흡이 비효율적이 됩니다. 이때 산소 농도가 짙으면 산소를 몸속 깊숙한 곳까지 받아들이기 더 쉬워지겠지요. 마침 거대 곤충이 살았던 고생대 말기는 식물이 육지에 상륙하면서 산소 농도가 짙어지던 시기였습니다. 석탄기에서 페름기 말기에는 대기의 농도도 짙었고, 산소의 비율도 35% 정도로 높았습니다. 페름기의 끝 무렵에는 산소 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해 쥐라기 중기까지 낮았습니다. 쥐라기 중기 이후 백악기까지는 다시 산소 농도가 지금보다 높았고요. 거대 곤충이 살았던 시기와 산소 농도가 짙었던 시기를 비교하면 둘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고생대 이후 사라졌던 거대 하루살이도 백악기에 다시 나타났지요. 중생대 중기에서 백악기 초기 지층에서 발견된 저 역시 산소 농도가 짙었던 시기에 살았습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연결고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페름기 말기의 대멸종 사건입니다. 지구에 살았던 생물의 95%가 멸종된 엄청난 사건이었지요. 과학자들은 멸종 원인으로 화산폭발이나 운석 충돌 같은 다양한 가설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거대 곤충은 이런 재앙에서 살아남았다고 해도 대기의 낮은 산소 농도를 견디지 못하고 멸종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산소 농도가 지금보다 낮았던 시기도 있었다고 하니 거대 곤충이 덩치를 유지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뉴질랜드에서 사는 자이언트 웨타는 지구에서 가장 무거운 곤충의 하나다. 그러나 현재 멸종 위기로 서식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덩치 큰 현대 곤충은 대부분 풍뎅이류에 속한다. 타이탄풍뎅이(➊)와 골리앗풍뎅이(➋), 헤라클레스풍뎅이(➌) 의 모습.]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나방인 아틀라스나방(왼쪽)과 티사니아 아그리피나(오른쪽).]

거대 곤충은 살아 있다

멸종 얘기를 하니 분위기가 침울해졌군요. 화제를 돌려야겠습니다. 그렇다면 요즘에는 예전처럼 큰 곤충이 없을까요?

알고 보면 지금도 꽤 큰 곤충이 있어서 가끔씩 사람을 놀라게 합니다. 최근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됐던 곤충인 웨타를 기억하시나요? 웨타는 뉴질랜드에 사는 날개 없는 곤충으로 곱등이와 모습이 비슷합니다. 그중에서도 리틀 배리어 섬에서만 사는 한 자이언트 웨타는 더듬이와 다리를 뺀 몸길이가 10cm에 육박합니다. 이들은 가장 무거운 곤충이기도 합니다. 기록상 가장 무거웠던 웨타는 70g이 넘었습니다. 참새보다 훨씬 더 무거우니 새들도 곤충이라고 함부로 얕보지 못할 겁니다.

보통 큰 곤충은 풍뎅이류에 많습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풍뎅이는 골리앗풍뎅이와 타이탄풍뎅이입니다. 골리앗풍뎅이는 10cm 이상 자라며, 애벌레 때는 무게가 100g을 넘기도 합니다. 타이탄풍뎅이는 16cm까지도 자랍니다. 길이만 따지면 헤라클레스풍뎅이라고 하는 친구가 17cm 넘게 자라기도 하므로 세계에서 가장 큰 풍뎅이입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풍뎅이는 아주 큰 뿔까지 포함한 길이니 반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길이로 치면 더 긴 곤충도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에서 발견된 포바에티쿠스 차니(Phobaeticus chani)라는 대벌레는 다리를 뺀 몸길이가 35cm로 세상에서 가장 긴 곤충입니다. 마지막으로 날아다니는 곤충 중에서 큰 친구들을 소개하겠습니다. 남아메리카에 사는 티사니아 아그리피나(Thysania agrippina)라는 나방과 동남아시아에 사는 아틀라스 나방입니다. 티사니아 아그리피나는 날개를 폈을 때의 폭이 31cm 정도이고, 아틀라스 나방은 폭이 25cm 정도입니다. 하지만 날개의 면적은 아틀라스 나방이 더 넓으니 둘이 비겼다고 쳐 두지요. 그나저나 이렇게 큰 나방이 밤에 얼굴을 향해 날아온다면 오줌이 찔끔 샐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새로 발견된 제 소개를 한다는 게 그만 덩치 큰 다른 곤충까지 소개하는 자리가 돼 버렸군요. 과거의 거대 곤충을 못 보게 됐다는 게 참 아쉽습니다. 거대 곤충들이 활보하는 세상은 참 멋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렇지 않다고요? 2cm짜리 벼룩을 눈앞에서 보고 싶지는 않다고요? 그, 그렇게 섭섭한 말씀을…. 아쉽지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도 수십cm짜리 잠자리에게 먹히고 싶진 않으니까요. 하지만 모르는 일입니다. 언젠가 지구에 다시 산소가 풍족해지면 지금 여러분 주위에 있는 곤충들이 다시 거대해질지도 모르는 일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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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과학동아 정보

  • 고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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