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상업용 컴퓨터가 개발된 1940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늘날의 전자기기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손 안의 컴퓨터’로 불리는 스마트폰은 2007년 처음 등장한 뒤 일상의 모든 정보를 연결하는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또 다른 변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올해 2월 공개한 접히는 스마트폰 ‘갤럭시 폴드’처럼 최근 전자기기의 대세는 구부러지고 늘어나는 ‘스트레처블(stretchable)’입니다. 이번 호에 소개할 논문은 스트레처블 전자기기를 위한 전자회로용 소자의 구조를 처음으로 규명한 내용입니다.
스트레처블 특성은 어떻게 생기나요?
스트레처블이라는 단어에서 어떤 재료가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아마 고무를 떠올린 분들이 많을 겁니다. 고무는 아주 잘 늘어나고 또 원상태로도 쉽게 복원되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우리가 사용해온 전자기기는 이런 특성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습니다. 오히려 딱딱하고 구부러지지도 않았죠.
이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이 기존의 전자기기를 이루는 재료인 반도체와 금속에 고무가 가진 탄성을 띠는 재료를 혼합해 스트레처블 전자회로용 신소재를 개발하고자 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만든 신소재를 쓰면 성능이 크게 떨어져 스마트폰 같은 고사양 전자기기를 제작하기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돌파구가 된 것이 2006년 12월 존 로저스 당시 미국 일리노이대 재료과학및공학과 교수팀이 국제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발표한 논문입니다. 로저스 교수팀은 이 논문에서 기존 전자기기에 쓰던 갈륨비소화합물의 물리적 구조를 변경해 성능 저하 없이 스트레처블 특성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스프링을 한번 볼까요. 스프링은 잘 구부러지지 않는 단단한 재료인 철로 만들지만, 구조 덕분에 탄력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구팀은 전자소자를 이루는 금속물질을 아주 얇은 수십~수백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수준으로 자른 뒤 허리띠의 매듭과 같은 3차원 버클 구조로 만들었습니다. 정확하게는 전자기기용 기본 소자인 갈륨비소화합물을 얇게 잘라 이를 3차원 버클 구조를 만들고, 이를 이용해 트랜지스터를 개발했습니다.
연구팀이 개발한 트랜지스터는 원래 크기의 50%까지 늘어났다가 다시 회복되는 특성을 보였습니다. 기존 전자소자에 쓰던 재료를 그대로 사용한 덕분에 정보 처리 성능도 뛰어났습니다. 버클 구조로 제작하면 재료의 특성에 관계없이 스트레처블 특성을 갖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한 것입니다.
로저스 교수팀은 이후에도 2차원 말굽 모양 전극 구조도 개발했습니다. 3차원 버클 구조가 신축성은 좋지만 회로 구성이 다소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면, 2차원 말굽 모양은 전자소자를 이어붙이기가 용이했습니다.
현재 이런 말굽 구조는 트랜지스터, 커패시터, 안테나, 발광다이오드(LED) 등 다양한 전자소자를 연결하는 배선전극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 움직이는 사람의 신체에 부착해 심전도, 체온 등을 측정하는 유연한 패치센서를 만드는 데도 적용됩니다. 결국 로저스 교수가 이끈 스트레처블 전자기기의 핵심은 재료가 아닌 ‘구조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처블 기술의 핵심은 뭔가요?
최근에는 그물 구조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미래 전자기기가 정말로 유연하려면, 배터리를 포함해 다양한 부품이 모두 휘어져야 합니다. 여기에 투명해야 한다는 요구도 만족해야 합니다. 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에 들어가는 전자회로용 소자가 빛이 지나가는 경로를 막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과거 일반 디스플레이용 전자회로에 들어가는 투명전극 소자의 재료로는 인듐주석산화물(ITO)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ITO는 투과도가 90%를 넘어 투명했고, 전기를 전달하는 전도도 역시 좋았습니다.
그런데 점차 스트레처블 기기의 개발과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면서 ITO를 대체할 새로운 소재가 필요했습니다. ITO가 전혀 스트레처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연구팀은 그물 구조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물 구조는 구멍이 매우 많습니다. 때문에 빈 구멍으로 빛이 투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늘어나는 특성도 가질 수 있습니다. 촘촘한 그물 형태로 엮은 실을 양쪽에서 잡아당기면 끊어지지 않고 잘 늘어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필자가 속한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연구팀은 전도도가 큰 재료인 은(Ag)으로 이런 그물 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먼저 은 입자를 금속주사기에 넣고 양쪽 극에 수천kV(킬로볼트)의 전압을 걸어줍니다. 그러면 금속주사기와 접지전극 사이에 강한 전기장이 형성되는데, 이 전기장의 방향을 따라 주사기 노즐 끝에서 접지전극을 향해 은 입자를 쏘면 아주 얇은 실이 만들어집니다. 지름 1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 길이 수m에 이르는 ‘은나노섬유’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은나노섬유로 그물 구조를 만들면 기존의 ITO 이상으로 전도도가 뛰어날 뿐 아니라 투명하고 스트레처블한 전극을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투과도는 90% 이상이고, 길이를 70%까지 늘이거나 줄여도 저항의 변화가 거의 없습니다. 미래 전자기기용 소자로 그물 구조와 함께 재료로는 은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입니다.
스트레처블 투명 전극은 어디에 쓰이나요?
우리 연구실은 지난해 은나노섬유 기반의 스트레처블 투명 전극으로 구부러지는 지문 센서를 개발했습니다. doi:10.1038/s41467-018-04906-1 아주 작은 정전식 센서들을 나열해 지문과 접촉하는 부분의 신호를 읽어내는 원리입니다.
이렇게 개발한 지문 센서는 접히거나 늘어나는 전자기기 전반에 두루 쓰일 수 있습니다. 지문, 압력, 체온을 동시에 감지하는 만큼 기존에 지문만 인식하던 지문 센서에 비해 보안성도 뛰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처블 전자기기 개발은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배터리를 포함해 다양한 기기에 필요한 핵심 부품을 늘리거나 줄이고, 구부리기 위해 많은 연구자가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아직 ‘정답’이 뭔지 모르는 부분이 많지만, 앞으로 개발될 스트레처블 전자기기들이 우리 삶을 얼마나 변화시킬지 기대가 됩니다.
글. 안현석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웨어러블융합전자연구실 박사후연구원이다. 전기방사 공정을 이용한 신축성 투명전극 개발을 통해 웨어러블, 스트레처블 전자기기를 개발하고 있다.
Byeongwan@wearablelab.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