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와 면역시스템 간의 백병전에서는 생김새가 승부의 관건이 된다. 특히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단백질의 생김새가 중요하다. 바이러스를 잡아먹는 면역시스템의 첨병, 즉 항체에게는 그 단백질의 생김새가 공격목표이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바이러스를 죽이거나, 약독화(弱毒化)시켜 만든 백신을 맞음으로써 몸안에 특정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형성시키고 있다. 그중 완전히 사멸시킨 바이러스로 만든 백신은 방사선 혹은 화학약품처리를 할 때 바이러스의 표면이 변하게 된다. 따라서 표면단백질의 생김새가 일정하지 않게 되므로 의도한대로 백신을 '설계'하기가 어렵다. 반면 약독화시킨 바이러스로 만든 백신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문제가 따른다.
전세계적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사빈(Sabin) 소아마비 백신의 경우에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그 백신에는 실제로 소아마비를 일으킬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2백50만분의 1의 확률로 들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소아마비를 예방하려고 맞는 백신때문에 반대로 소아마비에 걸리는 사람도 적지 않게 생기고 있다.
이같을 위험을 피하게 하는 무슨 묘책이 없을까. 다행히도 미국 UCLA의 병리학자 코소브스키박사팀이 최근 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아냈다. 그들은 백신제조에 쓰이는 약독 바이러스를 보다 안전한 세라믹입자로 대체시켰다. 물론 이 입자에는 바이러스와 표면단백질이 코팅돼 있다.
코소브스키는 현재 자신이 개발한 결정체, 즉 바이러스 단백질을 부착한 세라믹입자가 정말 체내에서 항체를 형성시키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동물실험을 실시하고 있다.
이렇게 안전하고 활성이 없는 세라믹입자들은 앞으로 약물수송에도 이용될 수 있다. 약물의 분자모양을 지정된 특정 세포의 수용체에 잘 맞도록 재단할 수만 있다면 이 일은 그리 힘들이지 않고 성취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