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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노벨상] 웃기려고 한 연구 아닙니다 3화. 성공에 더 필요한 건 운일까 재능일까

이그노벨상 수상 목록을 읽다 보면  ‘이렇게 중요한 연구가 왜 노벨상이 아니라 이그노벨상을 받았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연구를 만난다.

2022년 경제학상을 받은 ‘성공하려면 운이 중요할까, 재능이 중요할까?’를 밝힌 연구가 그렇다. 알고보니 이 연구를 수행한 과학자는 2010년에도 다른 연구로 이그노벨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바로 똑똑한 직원이 승진하면 무능해지는 이유를 밝혀내서!

 

 

 

세상이 일 못하는 사람 천지인 이유

 

혹시 일을 못하는 사람 때문에 답답해본 적 있는가? 시키지 않은 배달음식이 왔다거나, 카페에 갔는데 30분째 음료가 나오지 않는다거나 하는 상황 말이다.

 

캐나다의 교육학자였던 로렌스 J. 피터도 이렇게 고통받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일 못하는 사람이 도처에 널린 이유를 탐구하다가 1969년 ‘피터의 법칙’이란 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피터는 회사의 직원들이 업무 성과에 따라 높은 자리로 승진한다고 가정했다. 문제는 더 높은 자리에서 맡은 업무는 그 전에 해온 일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승진한 사람은 예전보다 일을 못하고, 그 아래 직급에는 일을 못하는 사람들이 남아있게 된다.

 

결국 사람들은 업무 능력의 한계만큼, 즉 일을 가장 못하는 지점까지 승진하게 되고 회사는 위든 아래든 일을 못하는 사람들로 꽉꽉 채워진다. 이것이 피터의 법칙으로, 정량적으로 검증된 과학계의 법칙이라기보다는 경험적 진실과 냉소적 유머를 섞은 머피의 법칙에 더 가까운 편이었다. 누군가 피터의 법칙을 계량적으로 검증하려 시도하기 전까지는. 

 

이론물리학자인 알레산드로 플루치노 이탈리아 카타니아대 물리천문학과 교수가 바로 그런 시도를 한 연구자 중 한 명이었다.

 

“2009년 우연히 ‘피터의 법칙’을 읽고, 이 법칙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인지 알아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른 물리학자와 사회학자 동료와 함께 피터의 법칙을 검증할 수 있는 수학 모형을 만들기 시작했죠.”

 

그는 피터의 법칙을 증명하기 위해 컴퓨터로 간단한 회사 조직 모형을 만들어 승진을 시뮬레이션했다. 은퇴로 빈 자리가 생기면 그 밑에 있는 사람들 중 가장 일을 잘하는 한 명이 승진해서 빈 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다음으로 연구팀은 피터 교수의 가정처럼, 다음 단계의 작업이 이전 단계의 작업과 다르도록 설정했다. 그러자 회사 전체의 효율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뮬레이션에서 정말로 피터의 법칙이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승진시켜야 회사가 잘 굴러갈까? 여러 상황을 실험한 결과, 승진 대상을 무작위로 뽑았을 때 회사의 효율성이 좋아졌다. 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나 승진 시켰을 때 회사의 효율성이 올라간다니? 상식을 뒤엎는 이 연구 결과에 이그노벨상 위원회는 2010년 이그노벨상 경영학상을 수여했다.

 

 

 

물리학자가 성공의 비밀을 찾는 방법

 

이론물리학자가 경영학 연구에 참여했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플루치노 교수는 이론물리학에서도 ‘복잡계(complex system)’를 연구하는 학자다. 복잡계는 수많은 구성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새로운 현상을 만드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수많은 사람이 투자에 참가하는 주식 시장이 한 예다. 투자자 한 명 한 명의 행동을 예측하기는 쉽지만, 이들이 모여 상호작용하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 복잡계의 특징이다. 그러니 멀쩡하던 주식이 이유 없이 폭등하거나 폭락하는 것처럼 보인다.

 

e메일 인터뷰에서 플루치노 교수는 “보행자의 행동에서 눈사태에 이르기까지 다뤄온 연구 주제는 다양하지만, 복잡계라는 측면에서 모두 동일한 수학적 방법으로 연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이 만든 사회와 경제 시장도 마찬가지로 복잡계처럼 작동한다. 그래서 실제 현상에서 몇몇 중요한 변수만 추출해 만든 컴퓨터 모델로 숨겨진 원리를 찾는다.

 

피터의 법칙을 검증한 후로 더 많은 사회와 경제 관련 연구를 하면서, 플루치노 교수는 삶이 고정관념과 다르게 작동한다는 점을 계속 밝혀냈다. 그중의 하나가 2022년 이그노벨상 경제학상을 받은 성공에 관한 연구다. 성공하려면 재능이 중요할까, 운이 중요할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플루치노 교수와 동료들은 ‘재능 vs. 행운 모델’을 만들었다. 이 컴퓨터 모델에서 사람들은 각각 같은 양의 초기 자금과 서로 다른 재능을 가지고 출발한다. 시뮬레이션이 시작되면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행운이나 불운이 찾아온다. 만약 행운이 찾아오면 가지고 있는 돈이 재능에 비례하는 확률로 두 배 불어난다. 불운을 맞으면 재능이 어떻든 간에 돈이 반으로 깎여버린다.

 

결과는 어땠을까? 컴퓨터 속에서 몇 년의 시간이 지나자 많은 사람들이 매우 가난해졌고, 소수의 사람들이 처음보다 수천에서 수백만 배 많은 돈을 벌었다. 중요한 점은, 소수의 부유자들이 평균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연속으로 행운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플루치노 교수의 컴퓨터 속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운이 재능보다 중요했다.

 

성공하고 싶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는 일을 잘하는 사람들이 승진을 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이 성공을 거머쥐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플루치노 교수의 복잡계 모델링 연구는 사회가 ‘능력주의’라는 이상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잠을 줄여가며 노력하고 재능을 갈고 닦아 성공했다고 자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운만 좋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재능 vs. 행운’ 연구는 더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의 생각이 바뀔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는 실패한 사람들을 관대하게 대우해야 합니다. 그들은 재능있지만 불운한 사람이거나, 아직까지 기회를 가지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죠.” 

 

그렇다면 우리가 성공하고 싶다면 어떻게 살면 좋을까? 플루치노 교수는 과학동아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려주었다.

 

“제 제안은 행운을 많이 만나기 위해서 가능한 많은 기회에 도전해봐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성공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비록 두 연구가 이그노벨상을 받긴 했지만, 플루치노 교수는 두 연구가 “절대적으로 진지한 의도에서 진행되었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두 연구는 이그노벨상 위원회의 관심을 끌기 전부터 뉴욕 타임즈,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등 유수의 과학 매체에 소개되었다. 물론 이그노벨상 수상이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이그노벨상은 평소에는 알리기 힘든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일반인들에게 소개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저희 연구도 수상을 통해서 전 세계에 알려질 수 있었어요.”

 

이그노벨상은 아마도 재능과 성공에 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 이 연구의 의외성을 상찬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닐까. 연구자의 의도가 웃음이 아니었더라도, 플루치노 교수의 연구는 이그노벨상의 설립 의도처럼 결국은 우리가 굳게 믿던 고정관념까지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플루치노 교수의 연구가 이렇게 중요하다면 이그노벨상이 아니라 더 대단한 상을 받아도 되는 것 아닐까? 그 답은 어쩌면 플루치노 교수의 연구 자체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재능은 있었지만, 운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용어 설명

머피의 법칙  

1949년 미국의 에드워드 머피가 주장한 법칙으로 “잘못될 수 있는 일은 결국 잘못되기 마련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놀랍지 않게도 머피의 법칙에 관한 연구도 이그노벨상(1996년 물리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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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이창욱 기자 기자
  • 디자인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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