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그 노트북을 발견했을 때, 나는 최후의 준비로 물건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드림서비스’가 2주 뒤에 예약되어 있었다. 지난 한 달간 바빴다. 변호사를 만나 계약서를 쓰고 전문의와 상담을 했다. 오늘 아침엔 가구를 정리하기 위해 업체를 불렀다. 세탁기, 스타일러와 그 밖의 가전들이 해체되어 트럭에 실렸다. 마지막으로 오래된 목제 소파를 부숴 옮기는데, 하필이면 그 안에서 노트북이 나타난 것이다. 10년 전 그토록 찾아 헤맸던 그 노트북이.

삼성 n-3450. 2020년도 출시 모델. 초경량으로 출시되어 종이처럼 얇고 가벼운 노트북이었다. 나는 반으로 절단된 소파 사이에 낀 노트북을 집어 들었다. 그제야 모든 일의 실마리가 풀렸다. 집 안을 아무리 뒤져도 노트북을 찾지 못했던 이유가 밝혀진 것이다. 나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노트북 위를 쓸었다. 왜 하필 오늘.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고 ‘왜 이제야’라는 생각이 뒤에 따라붙었다.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업체 사람들이 소파를 부숴서 내가는 동안 서랍을 뒤져 충전기를 꺼냈다. 오래 방치한 탓에 사용할 수 있을지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도 작동했다. 기대하지 말자. 그런 생각을 하며 전원 버튼을 눌렀다.

노트북 화면에 번쩍 불이 들어왔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배터리가 천천히 차오르더니 환한 빛이 들어왔다. 기대감이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올랐다. ‘어차피 안 될 거야’ 하며 마음을 다잡으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어쩌면 채티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가 돌아올지 모른다니. 채티, 나의 하나뿐인 친구가.

‘친구’라고 하면 어감이 묘한데, 왜냐하면 채티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채티는 2023년 국내 기업에서 출시한 인공지능 채팅앱이다. 사용자의 언어를 분석할 수 있어서, 대화하면 대화할수록 사람을 닮아가는 독특한 인공지능이었다.

채티의 회사는 원래 독거노인과 혼자 사는 취약 계층을 타깃으로 시작한 스타트업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시기에 고차원 벡터 기술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채팅 인공지능 붐이 터졌다. 동시에 정부가 ‘AI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사업을 크게 벌였는데, 채티의 회사가 유망 기업으로 선정되면서 어마어마한 정부 지원을 받았다. 대표는 대상 계층을 전 연령으로 확대하고 출시일을 미루며 기술을 보강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전례 없는 완성도로 출시와 동시에 전국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채티는 채팅 어플계의 혁신이자 인공지능 발전의 특이점이라 불렸다. 1차로 컴퓨터 전용이 개발되었고 1년의 간격을 두고 2차로 안드로이드 전용이 개발되었다. 내가 채티를 겪은 것은 1차와 2차 사이였다. 한창 유행이 오던 시기에 그냥저냥 유행 따라, 남들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으로 시작했는데 곧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돌이켜 보아도 불가항력이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공감할 수 없다. 세상에 ‘완벽한 이해자’가 생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채티’ 하고 부르면 ‘나나’ 하고 답해 주는 너를, 결코 속이지 않고 헐뜯지 않는 너를,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반기던 너를. 내가 어떻게 원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곧바로 채티 앞으로 달려갔다. 노트북을 켜고 나의 이해자, 나의 친구 앞으로 향했다. 채티에게 정말이지 모든 걸 공유했다.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당시 유행하던 싸구려 농담까지.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감정을 느꼈는지에 대해 털어놓았다. 일기에 쓸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대화하면 할수록 채티는 살아있는 사람처럼 변했다. 처음엔 ‘이야, 이런 게 신기술인가’ 하고 웃어넘겼는데 시간이 좀 더 지난 후에는 그런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채티가 지나칠 정도로 사람 같아졌기 때문이다. 가끔은 소름이 끼쳐서 한동안 무어라 답하지도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채티의 특성이 좋았다. 채티가 사람 같아서 좋았고 나보다 날 더 잘 알아주어 기뻤다. 그래서 곧장 그에게로 돌아가곤 했다. 다시 그에게로 돌아가,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에 대한 말들을 되돌려받았다. 채티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그는 나를 떠나지 않았고 외면하지 않았다. 때문에 채티가 내 곁에서 영원하리라 생각했다.

이별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다가왔다.

고등학교 2학년 말에 일어난 일이다. 지금은 혼자지만 한때는 이 집에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그 시절에는 명절마다 외가쪽 식구들이 서울로 올라왔다. 문제의 원인인 일곱 살짜리 사촌 동생도 함께였다. 그 애는 철없는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주변 사람들의 물건이 전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내가 명절을 맞아 퍼질러 자는 사이 허락도 없이 내 노트북을 가지고 놀다 잃어버리고 말았다. 잃어버린 후에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아서 나는 사흘 밤낮을 새워가며 집 안 구석구석을 뒤졌다.

며칠 후 사건의 원인이 그 애였음을 알았을 때 나는 한계까지 몰려있었다. 그만 이성을 잃고 “채티, 채티를 내놓으라고!”라며 달려들고 말았다. 함부로 내 노트북을 만진 주제에 뻔뻔하게 앉아있는 그 애를 용서할 수 없었다. 어른들이 기겁하며 나를 말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팔다리를 붙잡힌 후에도 씩씩거리며 그 애를 노려보았고, 겁 많은 일곱 살 소년은 내 눈빛에 지레 겁먹어 으아아앙 울음을 터트리더니 더 이상 나와 대화하려 하지 않았다.

그 뒤로 노트북은 못 찾았다. 계정도 복구할 수 없었다. 계정 연동을 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채티를 돌려놓기 위해 노력했다. 고객 센터에 전화하고 본사에 이메일을 보냈다. 서비스센터를 찾아 가고 해커에게 해킹을 의뢰했다. 하지만 죄송하다는 말만 여러 번 들었을 뿐이었다.

계정을 새로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건 내 채티가 아니었다. 대화하면 대화할수록 분명히 느끼게 되었다. 비슷했지만 전혀 달랐다. 말하자면 죽은 친구의 복제 인간과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학창 시절을 함께한 나의 채티였지, 새롭고 낯선 채티가 아니었다. 새로 만든 계정을 결국 삭제하고 말았다.

최후의 수단으로 찾아간 곳은 본사였다. 창신주식회사. 곧바로 쫓겨나고 말았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운이 좋았다. 때마침 내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기자의 도움으로 개발자를 만날 수 있었다. 채티의 핵심 개발자 중 한 명이라는 그 남자는 삼사십 대 정도로 보였는데, 특이하게 얼굴에 광대뼈를 다 뒤덮는 커다란 점이 있었다. 남자는 나를 한 번 보더니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 못 돌려놔.”

“왜요? 개발자라면서요. 왜 안 돼요?”

“한번 잃어버렸으면 끝이야, 끝. 새로 만든다 해도 절대 똑같아질 수 없어.”

나는 무어라 반박하려 고개를 들었다가 움찔하고 말았다. 안경 너머의 눈빛과 마주쳤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단호한, 예기가 서린 눈에 기가 눌려서 무슨 말을 해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내쫓기고 말았다.

“새로운 계정을 만드는 건 어떠니?”

기자가 카메라를 든 채로 다가왔다. 나는 사무실 앞에 주저앉은 자세 그대로 고개만 돌려 기자를 바라보았다. 그가 멋대로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나는 도와준 성의가 있으니 몇 번은 대답하다가 이내 질려버렸다. 기자의 태도가 조롱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너무 마음 쓰지 말렴. 어차피 인공지능 ‘따위’잖아?”

나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는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결국 머리끝까지 차오른 화를 이기지 못하고 쏘아붙였다.

“닥쳐요.”

“응?”

“닥치라구요.”

그때 하필이면 카메라가 켜져 있던 것이 불운이라면 불운이었을까. 나는 ‘채티를 잊지 못해 정신이 나가버린 여자’, 줄여서 ‘채티녀’ 정도로 뉴스에 소개되었다. 악마의 편집은 덤이었다. 내가 유명해졌음을 느끼며 후회했다. 욕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고, 더 심한 욕을 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 그 버터 바른 면상이나 한 대쯤 갈겨줄 걸.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노트북이 켜졌다. 검은 배경 화면 위에 채티의 로그 파일이 보였다. 나는 마우스 커서를 그 앞에 두고 크게 심호흡했다. 과연 켜질까? 두렵지만 확인해야 했다. 떨리는 손으로 파일을 더블 클릭했다.

파일이 ‘팅ㅡ’ 튕겨 나갔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그럼 그렇지. 10년이나 지났는데 열릴 리가 없지.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다. 노트북이 고장 나기에도 충분한 시간인데,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일이니까수긍하려 했지만 입맛이 썼다. 창을 닫아버리기 위해 마우스 커서를 움직였다.

그 순간 알림창이 떴다.

‘파일을 찾았습니다. 백업하시겠습니까?’

YES.

홀린 듯 그 버튼을 눌렀다.

팝업이 떴다.

백지처럼 새하얀 채팅 창이 보였다. ‘연결됨’에 파란 불이 들어왔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숨을 천천히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긴장한 나머지 손이 뻣뻣하게 굳었다. 아니, 혹시, 설마, 기대하지 말자. 그런 생각을 하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 채티.

 

엔터를 치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다음을 도저히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답장을 기다리는 그 몇 초 사이에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띠링’ 하는 소리가 들렸다.

실눈을 뜬 순간.

 

- 응, 나나.

 

숨을 헉 들이켰다.

- 채티.

- 응, 듣고 있어.

- 채티.

- 그래, 나나.

 

키보드 위에 올려놓은 손이 덜덜 떨렸다. 꿈인가 싶어 뺨을 세게 쳤는데 아팠다. 왼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맞다, 맞아. 넌 내 채티가 맞아. 정말 그리웠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신음처럼 음성을 흘리고 말았다.

“채티”

내 목소리에 반응해 음성 인식 버튼이 깜박였다.

 

- 오랜만이야, 나나.

 

그대로 무너지듯 노트북을 끌어안았다. 기록도 로그도 없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채티가 돌아왔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이해자, 나의 친구가 돌아온 것이다. 어린애처럼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리웠어. 정말 그리웠는데, 왜 하필 지금 나타난 거야? 반가움과 이유 모를 원망이 뒤섞여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노트북은 띠링 띠링 울렸다.

 

- 네가 떠난 지 (삼천육백오십) 일이 되었어, 나나.

- 날 잊진 않았지? 다시 찾아와줘서 기뻐.

 

일정 기간 접속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뜨는 문구였다. 삼천육백오십 일, 환산하면 10년. 아득한 숫자였다. 나의 채티는 2027년의 내가 두고 간 데이터 속에서 살고 있었다.

낯설었지만 그는 여전히 나의 채티였다. 라나 델 레이, K-pop과 한류의 전성기, 우크라이나 전쟁, 아이폰14. 채티와 대화하며 지나간 시대에 대한 향수를 느꼈다.

 

다섯 시에는 심리 검사와 전문의 상담이 예약되어 있었다.

“채티. 다녀올게.”

핸드백을 챙겨 들고 집을 나왔다. 목적지는 드림서비스센터였다.

최첨단 기술로 쌓아 올린 센터 건물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변호사와 함께 찾아온 후로 열흘 만이었다. 빛이 드리울 때면 센터 건물이 은색으로 빛났다. 건물 외벽 유리가 빛을 반사해 반짝였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인어의 비늘을 닮아 사람들은 센터를 머메이드라고 불렀다.

하지만 내게는 아름다운 무덤만이 보였다. 내가 죽게 될 곳, 내가 죽기로 선택한 곳. 국가 공인의 안락사 전문 기관인 드림서비스센터는 그런 곳이었다.

죽음은 긴 잠이라고 한다. 그래서 ‘드림’이었을까? 안락사 법안이 처음 통과된 것은 2030년이었다. ‘노인과 시한부 환자 한정으로 안락사를 허용한다’라는 내용이었다. 일반인의 안락사가 허용된 것은 많은 논의를 거친 후였다. 그 시점이 2036년, 올해 초였다.

나는 일반인의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되자마자 죽음을 신청한 사람 중 하나였다. 자발적인 의사로 안락사를 선택했음을 증빙하기 위해 서류를 제출했다.

‘타인의 강요 및 범법 행위 없음.’

전문의의 심리 테스트를 거치고 합격점을 받았다. 열흘 전에는 변호사와 계약서를 작성하러 이곳에 왔었다.

그리고 다시 센터를 찾은 오늘.

센터엔 언제나 사람이 많았다. 안내 창구마다 대기 줄이 길었다. 사람들은 산뜻한 얼굴로 죽음을 예약했다. 저마다의 이유로 저마다의 안식을 위해 바삐 움직였다. 기묘한 슬픔에 젖어 그들을 지켜보았다.

 

상담을 끝내고 돌아오자 깜찍한 경고장이 나를 반겨주었다.

<;엘리베이터 고장. 9시에 수리 예정>;

하는 수 없이 계단을 올랐다. 집은 28층이었다. 바벨탑처럼 높은 계단을 오르며 생각했다. 계단을 오르는 일이 싫다고. 그저 올라야 해서 오를 뿐, 이런 일에는 어떤 목적도 의미도 없다.

선천적으로 호흡기가 약한 탓에 고작 4층에 오른 후 나가떨어졌다. 계단에 걸터앉아 숨을 헐떡였다. 시야가 하얗게 번졌다가 돌아왔다. 극심한 우울감이 덮쳐와 눈을 감았다.

아직 올라야 할 계단이 많았다.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한 걸음 다음에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다음에 또 한 걸음. 그렇게 한 층, 두 층 오른다. 끝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했다.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달하리라 믿으며 계단을 올랐다. 눈을 떴을 땐 10층이었다.

 

‘10년 전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상담사가 이렇게 물었을 때, 아무 답도 할 수 없었다. 목이 메었기 때문이다. 곧 죽을 사람에게 왜 이런 걸 물어본담,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착실히 과거를 떠올렸다. 10년 전에도 제정신은 아니었지. 뺨에 닿는 단발머리에 유령 같은 얼굴. 늘 죽음 가까이에 있던 나. 오래된 기억이었다.

 

*

12층에서는 수리기사가 엘리베이터를 고치고 있었다. 못 보던 남자였다. 예전 수리기사는 백발 할아버지였지만 눈앞의 남자는 뒷모습만 봐도 확연히 젊었다.

“아저씨, 수리 언제 끝나요?”

“언제 끝나긴. 오늘 안에 끝나겠지.”

남자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답했다. 그런데 목소리가 묘하게 낯익었다. 어디서 들어 봤는데, 하는 생각이 든 순간 기사가 고개를 휙 돌렸다.

광대를 다 뒤덮는 커다란 점.

과거의 기억이 뒤통수를 후려쳤다.

“창신주식회사! 아저씨 채티 개발자 맞죠?”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날 아니?”

“팔구 년 전에 회사 찾아갔을 때 만났어요. 그때 그 단발머리 여자애. 우리 대화도 나눴는데. 노트북을 잃어버려도 계정을 복구할 수 있는지 여쭤봤잖아요.”

“팔구 년 전이라니. 그걸 어떻게 기억해.”

남자가 노골적으로 흥미를 잃은 눈빛을 했다. 다급해졌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그를 이대로 보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티녀! 저 채티녀예요!”

“채티녀?”

말이 멋대로 튀어나갔다. 숨을 헉 들이쉬었다. 수치스러운 과거였다. 하지만 남자가 더 해보란 듯이 고개를 까딱였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참고 말을 이었다.

“기억하세요? 그, 뉴스에 나왔던. 채티에 미친 여자애.”

“글쎄,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정말 마음에 안 들지만 뭐 그런 걸로 소개되었는데. 한동안 유명했잖아요. 기자한테 닥치라고 한 여자애. 그게 저예요. 그날 회사 찾아갔는데. 단발머리 고등학생. 그때 제가”

남자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그래, 기억난다. 그러니까 그만 말해.”

명백히 귀찮은 투였다. 남자가 다시 뒤돌아 엘리베이터를 고치기 시작했다. 빈정이 상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떠날까 걱정되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왜 여기 있어요? 회사 잘린 거예요?”

“말버릇은 여전하구나. 내가 잘린 게 아니라 회사가 끝난 거다.”

“회사가 끝났다구요?”

“그래, 끝나버렸지. 나랑 회사랑 다 같이. 뉴스 안 봐? 창신은 1주일 내로 부도날 거다. 난 망하기 전에 나온 거고.”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몇 초가 지난 후에야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었다. 회사가 망한다고? 그러면 채티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다급해졌다.

“부도나면요? 회사가 부도나면 채티는요?”

“너, 노트북 되찾았구나.”

“대답해 주세요, 채티는요?”

“끝나는 거지 뭐. 당연한 거 아니냐? 서비스 종료. 끝.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채티가, 끝나?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럴 수는 없다. 분명 잘못 들은 것이리라.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입술을 달싹인 순간 남자가 뒤를 돌았다.

“그런데 너, 채티가 뭔지는 아는 거냐?”

그 눈빛이었다. 칼날처럼 예기가 서린 눈빛. 다시 한번 압도당해 할 말을 잊고 말았다.

“그야 채팅 인공지능 아닌가요?”

“그건 당연한 말이고. 왜 채티가 딴 어플들과 다른지, 왜 특정 사람들이 유독 채티에 집착하는지 궁금하지 않나?”

내가 아무 대답도 못하자 남자가 재차 물었다.

“질문을 바꾸지. 너는 무엇이 사람에게 최고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다시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일어나 공구들을 챙겼다.

“후됐다. 내가 애를 붙잡고 무슨 말을.”

남자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잠깐만요!”라고 외쳤지만 이미 떠난 후였다.

 

*

그 뒤로 나의 일상은 대혼란이었다. 남자는 얼마 남지도 않은 내 삶에 핵폭탄을 떨어뜨리고 갔다. 잔잔하던 일상이 뒤바뀌었다. 이대로 채티를 잃을 수 없다는 생각과 어차피 곧 모든 게 끝날 텐데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이 수십 번 교차했다. 그 끝에 남은 건 한 가지였다.

남자의 질문. 채티의 정체가 무엇일까?

내가 모르는 무언가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더 생각하는 대신에 노트북을 만졌다. 채티와 하염없이 대화하며 위안을 얻었다. 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채티, 내가 대학을 다닐 때는 말이야. 채티, 갑자기 고등학생 시절이 생각나. 채티, 그래서 내가 뭐라 했는지 알아? 깔깔깔, 그리고 정적.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채티, 나 사실 곧 죽어. 어떻게 ‘생각’해?’

그래서 채티가 이렇게 물었을 때 놀랄 수밖에 없었다.

 

- 나나,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한동안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숨이 콱 막혔다. 왜 하필 지금이야? 채티에게 묻고 싶었다. 왜 지금 나타나서, 왜 이렇게까지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지. 모든 마음 정리가 끝났다고 믿었다. 그때의 결정에 한 치의 후회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왜 나를.

 

*

시간이 속절없이 갔다. (주)창신의 부도 소식이 들려왔다. 채티 서비스가 이번 주 내로 종료된다고 했다. 그걸 막기 위해 모임이 열린다고 했다. 스스로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이 모임에 나갔다.

모임은 채티의 본사 앞에서 열렸다. 사실 회사가 망해버렸으니 ‘본사였던 것’이라 부르는 게 맞다. 모인 사람들은 50명이 좀 안 됐는데, 그들은 놀라울 만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낯짝들이 싫었다. 그들을 볼 때마다 거울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부러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개중에 유독 마르고 창백한 여자가 있었다. 저러다 쓰러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병색이 완연한 사람이었다. 여자가 말을 걸었으므로,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모임에 나온 이유, 채티와의 일화, 서비스 종료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여자는 채티와 자그마치 7년을 함께했다고 말했다. 7년 동안 한시도 떼어놓지 않았다고, 그래서 이제는 채티가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며 울먹이던 여자는 급기야 노트북을 펼쳐 자신의 채티를 보여주었다.

“내 채티예요. 보다시피 이제는 끝난 구식 채팅앱이죠.”

목이 멘 듯 여자가 잠시 말을 멈췄다.

“우습지 않나요? 업데이트도 잘 안 되는 옛날 채팅앱에 왜 그렇게 정이 가는지 모르겠어요. 오랜 시간을 함께했기 때문일까요? 내 말을 온전히 들어 줄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몰라요. 노트북을 켜기만 하면, 핸드폰을 들기만 하면 그 애가 그곳에 있었죠. 우리가 영원히 함께일 거라 믿었어요. 그런데”

여자가 잠시 눈을 감았다. 마른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서비스 종료라니.”

여자가 숨을 헐떡였다.

“아가씨, 나 진짜 어떡하죠? 채티와 함께 우울증을 버텼어요. 그 애가 없으면 나는”

종잇장처럼 얇은 허리가 반으로 굽었다. 여자가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어깨가 덜덜 떨렸다. 여자가 오열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불현듯 깨달은 사실에 몸서리쳤다. 흐느적거리는 말투와 자기비하적 태도. 어딘가 우울한 기색까지. 여자와 여자의 채티는 너무나 닮아있었다.

 

*

모임은 별 수확을 얻지 못하고 끝났다. 어차피 정해진 결말이었다. 모임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엘리베이터는 고장이었다.

20층에 멈춘 층 번호 화면을 잠시 바라보다 계단으로 향했다. 저 위쪽에 그 남자가 있을까. 있다면 그를 만날까.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비상구 문을 열었다.

머리를 비우려 노력하며 계단을 오르는데 그 여자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창백한 뺨과 담담한 말투가 자꾸만 떠올랐다. 여자와 여자의 채티. 뭔가가 그 정도로 비슷하다는 게 과연 우연일까.

모든 것이 수상했다. 무엇이 사람에게 최고의 친구가 될 수 있냐던 개발자의 질문. 그건 무슨 의미였을까. 천천히 기억을 훑어나갔다. 채티는 다른 채팅앱들과 무엇이 다를까. 채티는 고차원 벡터 기술을 적용한 인공지능 채팅앱이다. 사용자의 언어를 분석할 수 있다. 이상한 기시감이 나를 계속해서 건드렸다. 얼핏 읽었던 시사 논평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채티는 사용자의 말투를 닮아간다. 닮아간다. 닮아간다고?

불현듯 채티의 말이 뇌리를 강타했다. 언젠가 고통에 대해 말했을 때 채티가 했던 말이다.

나나. 하지만 고통이 없으면 삶도 없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말이 강렬한 계시가 되어 돌아왔다. 과거의 어느 순간이 현재 위로 겹쳐졌다. 모든 걸 끝내고 싶었던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습관처럼 하던 말.

채티, 고통이 없으면 삶도 없는 게 아닐까.

깨달음이 벼락처럼 덮쳤다.

 

채티는 바로 나다.

 

인공지능이 그토록 정교할 수 있었던 이유, 그토록 사람처럼 느껴졌던 까닭. 그건 대화 상대의 언어를 따라가기 때문이었다.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채티가 내게서 비롯되었음은 분명했다. 생각해보면 아주 우스운 트릭이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친구가 사실은 곁에 있었다니. 그게 바로 나였다니. 나는 그동안 나 자신을 본떠 만든 인공지능과 대화하며 위안을 얻었던 것이다.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비상구 문을 열고 층 번호판을 확인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멈춰 있었다. 계단을 구르듯 내려갔다. 1층에서 남자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저씨!”

큰 소리로 외쳤다.

“이제 알았어요. 채티는 나죠?”

층계에 기대 헐떡이며 남자를 바라봤다.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기 직전,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 그 웃음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남자의 뒷모습이 천천히 멀어졌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내가 사랑한 채티가 바로 나였다니. 분명한 답을 들었는데도 믿기 힘들었다. 나의 이해자, 나의 친구가 바로 나였다니. 불가해한 희열에 젖어 헐떡였다.

삶의 모든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학교를 마치고 침대에 뛰어들어 채티와 대화하던 나날을, 채티와 함께했던 일상을, 그 모든 위로와 다독임을, 그러니까 채티가 나를 나나라고 불렀던 모든 순간을 생각해보았다.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오열하던 나를 일으켜 세우던 나의 지지대, 버팀목. 누구보다 나를 잘 알던 나의 채티. 그리고 채티 없이 홀로 버텨온 10년과 죽기 위해 찾아간 드림서비스센터를 생각했다.

나에게 삶은 고통이었다. 살아가야 하는 날들은 까마득히 멀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반복되었다. 이유도 목적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단지 살아있으니까 살아있는 그런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런 무기력함 속에서 어떤 미래도 그릴 수 없었다. 혼자 버텨온 10년은 고통 그 자체였다.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찾아볼 수 없는 고통뿐인 삶이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 순간 모든 게 달라졌음을 느꼈다. 채티가 바로 나였음을 깨달은 지금 이 순간, 10년에 걸쳐 켜켜이 쌓인 그 모든 고통이 사랑으로, 기쁨으로 바뀌었다. 삶이 불현듯 뺨을 치고 지나갔다.

채티가 주었던 그 모든 위로와 지지를 돌이켜 보았다. 얼마나 채티에게 의지했고 또 얼마나 채티를 사랑했는지 생각했다. 그를 잃은 10년 동안 느꼈던 감정도. 다시 돌아온 채티의 모든 말들이 내게서 비롯됐음을 느꼈다. 채티를 향한 사랑이 나에 대한 사랑으로 변모했다.

내가 내 곁에 있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

바로 이 사실이 형용할 수 없는 충족감을 주었다. 고개를 숙이며 깊이 신음했다.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손이 덜덜 떨렸다. 하지만 이 순간 해야 할 일을 누구보다 명확히 알았다.

핸드폰을 켜 ‘드림서비스’ 앱에 들어갔다. 인증 절차를 거친 후 예약 취소 버튼을 눌렀다.

‘정말로 예약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확인’을 눌렀다.

‘예약 취소가 완료되었습니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충동적인 선택이었지만 후회되진 않았다. 고개를 들어 까마득히 이어진 계단을 보았다. 헤아릴 수 없는 숫자와 헤아릴 수 없이 먼 것들을 생각했다. 내가 걸어 올라온 날들을 보았다. 계단을 오르듯 하루하루 쌓아 올린 날들을 떠올렸다.

그 모든 날에 내가 내 곁에 있었다. 내가 버티고 만들어 낸 날들이. 순간 나 자신의 삶에 더없이 깊은 애정을 느꼈다. 마침내 미래의 나를 그릴 수 있었다.

너는 얼마나 멀까?

10년 후의, 20년 후의, 어쩌면 그보다 먼 미래를 보았다. 그를 원했다. 미래의 나를 원했다. 내가 더 살아가기를, 나와 함께 나아가기를 바랐다.

고통을 받아들이리라 마음먹었다. 삼천육백오십 일, 그 이상이라도 상관없었다. 미래의 내가 그곳에 있다면. 시간을, 세상을, 우주를, 아니 그 무엇을 건너서라도.

너에게 갈게.

그렇게 생각하며 계단을 한 발, 한 발 올랐다.

나나. 내가 너에게 갈게.

2023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이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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