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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후, 과학은] 의생명과학과 공학의 경계, 조직공학

‘공학(Engineering)’이라고 하면 흔히 전자공학, 화학공학 같은 정통 공학 분야를 떠올릴 텐데요. 

공학의 영역이 인간의 몸, 그 안의 장기와 조직들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인간을 구성하는 세포를 재료로 원하는 조직을 만들고 고치고 강화하는 ‘조직공학’ 이야기입니다. 이 분야는 2006~2020년 전 세계 논문을 수집한 네덜란드 라이덴대 데이터에서도 높은 ‘복합 연평균 성장률(CAGR)’로 지속적인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직공학 분야를 선도하는 현장 연구자에게 직접 설명을 들었습니다.

 

조직만 해도 크고 무거운 느낌인데, 공학까지 붙었습니다. 뭔가 접근할 수 없는 어려운 분야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아요. ‘조직공학(Tissue engineering)’은 한 마디로 인공적인 신체조직을 만드는 학문입니다. 유전적 요인 등으로 결손되거나 손상된 신체조직을 복원, 복구, 유지, 향상시키고, 더 나아가 신체조직을 재생, 대체하는 기능적인 조직 구조물을 제작합니다.

 

조직공학의 세 가지 기본 요소

 

조직공학이란 용어는 1980년대 중반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과학자들이 처음 사용했습니다. 이식이 필요한 환자에 공여할 신체조직, 장기가 부족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죠. 그러다 1993년 생체의공학(Biomedical engineering) 분야 학문으로 정립됩니다. 로버트 랭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와 조지프 버칸티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그해 5월 14일자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Tissue Engineering(조직공학)’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게재했죠. 이후 30년 동안 조직공학은 엄청난 진보와 혁신을 거듭했습니다.

 

우리 몸의 조직은 특정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유사한 세포들과 ‘세포 외 기질’의 덩어리(집합체)로 구성됩니다. 조직공학은 다양한 공학적 기법과 재료로 이런 조직을 모사하는 기술입니다.

 

조직을 모사하기 위해서는 크게 3가지 기본 요소가 필요합니다. 특정 조직을 구성해 재생시키는 세포, 이 세포를 지지해 조직 재생과 기능 회복을 위한 환경을 제공하는 ‘지지체(Scaffold)’, 조직 재생을 촉진하고 생존을 유지시키는 생물학적 인자와 배양 기술이 그것입니다. 이 요소들로 인공조직을 구축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세라믹, 금속, 고분자 혹은 이들의 복합체 같은 여러 생체재료로 지지체를 만듭니다. 여기에 1차 세포(Primary cells)나 줄기세포(Stem cells)처럼 원하는 기능을 수행하거나 미래에 수행할 특정 세포를 심습니다. 끝으로 세포 성장을 위한 영양분, 조직 재생을 촉진하는 성장인자가 포함된 배지를 공급한 뒤, 온습도 및 이산화탄소 농도가 균일한 인큐베이터나 바이오리액터(생물반응장치)에서 일정 기간 배양합니다. 그 결과, 세포들이 기능적인 인공조직으로 성장합니다.

 

인공조직의 제작 과정은 피부에 난 상처의 재생 과정을 생각하면 좀 더 쉽게 이해됩니다. 찰과상을 입은 자리에 새살이 돋을 때, 상처 주위의 세포들은 혈관이 공급한 각종 영양분과 성장인자를 흡수해 활발히 세포 분열을 합니다. 이때 신체가 바로 인공조직의 인큐베이터 같은 배양기 역할을 합니다.

 

그래핀, 나노기술, 3D 인쇄첨단 기술로 날개 달다

조직공학이라는 학문이 등장한 지 30년이 됐지만 아직 생체조직을 완벽하게 대체하는 인공조직 기술은 확립되지 않았습니다. 피부, 뼈 같은 일부 조직만 70~80%의 완성도에 도달한 실정입니다. 이 완성도를 높여서 인체 조직에 더욱 가까운 조직을 구현하기 위해 앞서 소개한 세포, 지지체, 생물학적 인자 등 3가지 기본요소에 관한 연구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중 세포에 관한 연구는 ‘줄기세포’ 연구가 중심을 이룹니다. 우리 몸에는 이름이 다른 200~250여 종의 세포가 있고, 그 수는 총 30~40조 개에 이릅니다. 만약 줄기세포가 이 각각의 세포로 분화하는 생물학적 기전을 규명해내고, 세포들에 작용하는 생물학적 인자의 조합을 알게 된다면,  지지체에 줄기세포를 심어 원하는 조직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21세기 나노기술이 발전하면서 지지체 연구도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됐습니다. 너비, 길이, 두께, 직경과 같은 치수 중 적어도 하나가 1~100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인 물질을 나노물질이라고 하죠. 이제 조직공학자들은 전기방사(Electrospinning) 기술을 이용해 직경이 수십~수백 nm에 불과한 나노섬유를 제조합니다. 이것으로 세포 지지체를 만들어 세포의 생존, 분화에 적합한 미세환경을 제공합니다.

 

꿈의 나노물질이라는 그래핀도 조직공학용 지지체의 성능을 높이고 있습니다. 그래핀은 열전도도, 화학적 안정성, 전자 이동도 같은 물리화학전기적 특성과 강도 등 기계적 물성이 매우 우수하며, 여러 생체재료와 안정적으로 결합하죠. 저희 연구실은 2022년 3월 그래핀을 코팅한 티타늄 임플란트의 우수성을 생체재료 분야 학술지에 발표했습니다. 이 그래핀 코팅 임플란트가 기존 재료보다 골유착 효능이 높고 치유가 빨라 치과나 정형외과 치료에 유용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조직공학에 그래핀을 활용한 연구는 전 세계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편 현재 조직공학에선 3차원 인쇄 기술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적층가공(Additive manufacturing)’ 기술이라고도 합니다. 이 기술은 지지체 같은 3차원 구조물 제작의 혁신으로 불립니다. 세포와 생물학적 인자를 섞어 바이오 잉크를 만들고, 인쇄하듯 쌓아 조직과 유사한 구조체를 만들 수 있죠.

 

2019년 포스텍-서울대병원 연구팀은 3차원 세포 프린팅으로 뇌암의 세포 환경과 같은 바이오 칩을 제작해, 이 환경의 항암 치료 효과를 재현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환자 대상의 임상 실험 없이, 그의 세포 환경에서의 항암 치료 효과를 확인하게 됐죠. 이 연구는 3차원 세포 프린팅이 환자 맞춤형 항암제의 최적 조합 도출에 유용함을 입증했습니다.

궁극적 목표는 신체조직 강화

 

조직공학의 인공조직이 생체조직에 비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면 아직 연구할 것이 많습니다. 세포의 증식부착이동이 용이한 미세환경을 조성해야 하고, 모사하려는 조직이 어떻게 구성됐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지지체에서 자라는 세포에 필요한 생물학적 인자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방법도 고민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속도를 보면 가까운 미래에 생체조직과 완전히 같은 인공조직을 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더 나아가 조직공학은 단순히 생체조직의 기능을 대체하는 수준에서, 생체조직의 기능을 더욱 증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겁니다. 조직공학 기술로 제작한 인공조직이 나노 바이오 전자소자, 바이오 센서, 바이오 칩과 같은 인접 분야의 기술과 결합해 더욱 진화할 날이 곧 올 겁니다.

 

조직공학의 개념이 학술지에 소개된 지 30년이 지났습니다. 정교한 생명을 다루는 낯선 분야의 성공 여부를 평가하기엔 매우 짧은 시간입니다. 실험실에서 이룬 조직공학의 성과가 병원에서 수많은 환자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는 건 분명합니다. 의생명과학과 공학의 경계에서 인간을 연구하는 매력적인 조직공학이라는 학문에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3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한동욱 부산대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
  • 도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글로벌R&D분석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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