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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동키즈] “과정을 즐기는 것이 학자의 삶이죠”

내가 과학자가 되고 싶은 이유는 간단했다. 중학생 시절, 나는 내가 특별히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친구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친구는 무용이나 바이올린 연주 같은 예체능 쪽에 관심이 있었지만 나는 과학동아에 푹 빠져있었고, 교과서에서 보지 못했던 무한한 상상이 가능한 과학의 세계가 정말 흥미로웠다. 과학동아를 읽으면서 과학자가 되어 전 세계를 누비는 상상을 하면 마음이 설렜다.

 

‘나’에 대한 질문이 세포까지 이어지다

 

그 시절 나는 생명이라는 존재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스스로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던 사춘기 시절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과학고 입학을 준비하며 읽었던 과학동아 기사는 당시 내게 깊은 인상을 줬다. 기사는 어떻게 생명체가 세포로부터 진화해서 인간 같은 개체가 됐는지, 우주에 과연 생명체가 존재할지를 다룬 시리즈였던 걸로 기억한다. 비슷한 시기에 에르빈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도 만났다. 물리학자인 슈뢰딩거의 관점에서 바라본 생명이란 존재는 세포와 생명과의 연관성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더 자극했고, 그 미스터리를 파헤치고 싶게 만들었다.

 

그러나 과학고 진학은 현실을 바라보게끔 했다. 어느 수업시간 한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교실에는 과학고에 어울리지 않는 학생이 두 명 있다.” 내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수업 후 선생님께 찾아가 여쭤봤다. 그런데 나를 염두에 두신 말씀이 맞았다. 선생님은 내가 다른 동기들보다 글을 잘 쓰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라고 하셨지만, 글을 좋아하므로 과학고에 적합하지 않다는 말씀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대신 이 일을 계기로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더 생각해 봤다. 그리고 내 문과적인 성향이 장점이 되도록, 대학 1학년부터 학부생 신분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는 수업시간에 배우는 지식 그 이상의 지식, 창의성과 열정, 끈기를 요구했다. 열정에는 다행히 운도 따랐다. 학부 연구와 석사 과정 연구는 박사 진학까지 결심할 수 있게 도와줬다.

 

학부와 석사 시절 형광현미경으로 고분자와 단백질의 움직임이 어떻게 미세환경에 영향을 받는지 관찰했고, 그 물리 화학적 현상이 생명체가 유기적으로 분자 운동을 하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에 깊은 흥미를 느꼈다. 특히 석사 과정일 때 발표된 한 논문인, 액체-액체 상분리세포막이 없는 세포 소기관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한 논문에 충격을 받았다. 세포의 한 부분은 물과 기름의 상평형 같은 단순한 화학 현상과 연관된다는 발견이 무척 세련되게 느껴졌다. 당시 한국에선 주목받기 전이었지만 꼭 이 분야를 공부하고 싶었다. 석사 과정을 지도해주시던 화학과 김준수 교수님과 주변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무겁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미국 유학을 결정했다.

 

NASA와 함께한 박사과정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 첫발을 디뎠을 때 낯설고 후끈했던 여름 공기를 잊을 수 없다. 이 학교 화학과는 연성 물질 연구로 저명한 학교 중 하나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를 공부할 생각에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첫 학기를 맞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크리스 키팅 교수님을 만났다. 교수님은 내 서툰 영어에 개의치 않고 내 가능성에 주목해주셨다.

 

그의 연구실에서는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함께하는 굉장히 흥미로운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세포막이 없는 세포 소기관을 실험적으로 모델링하는 과제였다. 간단한 화학적 모델 시스템으로 어떻게 리보핵산(RNA)이 이 모델에 잘 축적되는지, 이와 관련해 무엇이 생명체의 핵심 물리 화학인지 찾고 있었다. NASA가 연구비 지원을 삭감해 학과 조교 생활까지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2년 반가량 주말이나 저녁 시간을 쪼개 연구에 매진했다. 이 간절한 끈기 덕인지 2017년 우주생물학 분야의 젊은 연구자에게 NASA에서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상(Astrobiology Early Career Travel Award)을 받았다. 그렇게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에서 한 달 동안 방문 과학자로 지내며 실험을 배웠다.

 

이를 기반으로 2019년에 ‘NASA FINESST’ 장학금에도 합격했다. 미국에서 영어로 연구 제안서를 쓰기가 쉽진 않았지만 주변 교수님, 공동 연구자 분들, 연구실 동료들의 소중한 도움으로, 그 해 유일한 생물리화학자로서 이 장학금을 받았다. 교수님, 연구실 동료들과 참석한 학회장에서 장학금 합격 소식을 듣고 모두의 축하를 받던 짜릿함이 지금도 생생하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궁금해하기

물론 좋았던 시간들 사이에 극복하기 힘든 일들도 있었다. 언어 장벽은 물론이고, 적극적인 인재들을 양성해내는 교육방식의 차이 때문에 한국에선 성격이 활발한 편에 속한 나조차도 소심해질 때가 있었다. 연구실 동료들의 도움과 다양한 봉사 활동, 클럽 활동으로 영어를 쓸 기회를 늘려간 덕분에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고 점차 익숙해질 수 있었다.

 

연구 진행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찾아왔다. 연구를 처음 시작할 때는 교수님이 연구 주제를 주지만, 이후에는 주제를 스스로 생각해 직접 실험을 설계해야 했다. 하지만 2년 가까이 이 연구가 잘 진행되지 않았다. 고맙게도 당시 연구실 선배가 자신의 실험을 도우면서 모델 시스템을 배워보라고 제안했다.

 

선배의 화학적 시스템을 기반으로 연구 주제를 찾던 중에 세포핵의 다상(두 개 이상의 상)의 세포막 없는 세포 소기관에 대해 읽었고, 이 시스템을 모델링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간단한 아미노산 화합물로 액상의 유기물 덩어리인 ‘코아스르베이트(coacervate)’를 만들고, 이것이 RNA가 축적됨에 따라 단일 가닥의 RNA와 상보적 RNA의 결합 상태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이 논문이 2022년 네이처 자매지에 게재돼 여러 학회와 다양한 분야에서 감사한 관심을 받고 있다. doi: 10.1038/s41557-022-00980-7

 

과정을 함께 즐길 미래의 동료를 기다리며

 

연구는 수업시간에 배웠던 학문들과는 달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불확실함의 연속인 것 같다. 그 불확실한 99%의 과정 속에서 의미 있는 1%의 결과를 찾았을 때의 짜릿함 때문에 연구를 계속하는 것이리라. 2022년 박사과정을 졸업한 후, 1%의 희망을 담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박사 후 연구를 이어가게 됐다. 내 학부, 석사, 박사 연구는 모두 세포를 기반으로 한 화학적 모델 시스템 및 이론이었기에, 살아있는 세포를 직접 공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화학과 제이 그로브스 교수님과 함께 면역세포 중 하나인 T세포의 세포막 없는 세포 소기관이 면역세포 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공부하고 있다. 바이러스를 만들고 세포를 키워나가는 것까지, 분자생물학의 여러 실험 테크닉을 열심히 배우는 중이다.

 

나는 여전히 불확실성 속에 있지만, 그러기에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생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아마 우리가 사는 이 21세기 내에는 답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닿을 수 없는 그 질문을 던지고 고찰하며 증명해내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 학자의 몫이자 삶인 듯하다. 과학자를 꿈꾸고 있을 많은 학생에게 조심스럽게 내 경험을 공유하며, 미래의 과학자가 될 그 끈기와 용기를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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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최세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박사후연구원
  • 에디터

    라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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