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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조작으로 빨리 늙는 쥐 생산

생물의 노화시계 발견

옛날부터 장수의 상징으로 쳤던 십장생 중 거북이는 약 1백80년을 산다고 한다. 그러나 사슴은 약 20년, 두루미는 40-50년을 살뿐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최근 세계 보건기구가 집계한 인간의 평균수명은 66세이고, 최장수한 기록은 1백21세였다. 그렇다면 생물의 수명이 이처럼 다른 것은 왜일까.


우리나라 생명공학의 미래를 이끌 분자유전학 실험실의 멤버들. 가운데 의자에 앉은 사람이 이한웅 교수.


현대의 분자생물학에서 내세운 가설은 생물이 원래 유전자 속에 자신의 수명시계를 갖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염색체의 양 끝 부분에 붙어있는 텔로미어라는 짧은 단백질 사슬이다. 텔로미어는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조금씩 닳아 줄어들다가 어느 길이 이하로 줄어들면 세포는 분열을 멈추고 노화가 시작된다.

그렇다면 암세포는 왜 늙지 않고 끝없이 분열할까. 학자들은 암세포가 늙지 않는 것은 세포분열로 줄어든 텔로미어를 다시 늘여주는 텔로머라제라는 효소 때문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보통의 성장한 세포에서는 이 효소가 생산되지 않고 일정기간 세포가 분열하면서 텔로미어가 줄어들면 노화가 진행된다. 그런데 암세포에서는 이 효소가 계속 분비돼 세포를 늙지 않게 유지시키는 것이다.

빨리 늙는 쥐

분자생물학자들은 유전자 안에 텔로머라제 효소를 생산하는 특정 유전자가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일 텔로머라제를 생산을 관장하는 유전자를 찾아내 이것이 노화의 핵심고리라는 것을 증명한다면 우리는 생명체의 수명 시계를 갖게 되는 셈이다.

성균관대학교 생명과학연구소 포유류 분자유전학 실험실의 이한웅 교수는 이 생명의 시계를 누구보다 확실하게 찾은 사람이다. 이 교수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텔로머라제를 생산하는 유전자만 없고 다른 기능은 모두 정상인 생쥐를 만들었다. 그 결과 생쥐는 불과 17개월만에 절반 이상 늙어 죽었다. 그들의 피부는 노화로 쭈글쭈글해졌고, 털은 다 빠져 흉한 몰골이 돼버렸다. 생쥐들은 몸무게가 줄고, 몸에 상처가 나도 잘 아물지 않으며, 암 발병이 많아지는 등 전형적인 노화증상을 보였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실험에 사용된 30여 마리의 쥐 중에서 생식에 성공한 쥐는 한 마리도 없었다는 것이다. 쥐의 평균수명은 약 2년이지만 텔로머라제 생산유전자가 없는 쥐는 수명이 3분의 1이나 줄어버렸다.

분자생물학계는 이 확실하고도 충격적인 결과에 흥분했다. 이 교수의 논문은 분자생물학계에서 가장 저명한 학술지로 평가되는 '셀' (Cell)에 실리면서 일약 세계적인 학자로 성가를 높였다. 그리고 지난 여름 복제양 돌리의 조로문제가 관심이 된 적이 있었다. 돌리의 텔로미어 길이가 현저하게 짧아서 1년생 돌리가 세포핵을 물려받은 어미인 6년생 양과 같이 늙어있을 수 있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당시 돌리의 노화를 논의했던 학자들이 근거한 것은 바로 생쥐를 대상으로 한 이 교수의 결정적인 실험이었다.


현미경을 통해 배양된 세포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세포에서 핵을 빼내는 미세 바늘.


우리가 세계 정상

결국 이한웅 교수의 성공에서 결정적인 요인은 특정 유전자를 없앤 쥐를 생산해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특정한 유전자가 없는 동물을 관찰하는 일은 그 유전자의 기능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방법인 것이다. 때문에 다른 유전자는 모두 정상이고 목표로 한 유전자만 없앤 모델 동물을 갖는 것은 모든 분자생물학자의 꿈이다. 이 교수의 성공이 알려지자 많은 학자들이 자신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특정 유전자를 없앤 모델 동물을 만들어 달라고 이 교수에게 의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는 극미세한 유전자를 효소를 사용해 자르고 늘이는 조작을 반복하면서 거의 1년 이상을 매달려야 한다. 그리고 이런 실험을 성공으로 이끄는 노하우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사람만이 보유하고 있다. 이 교수와 함께 하는 실험실의 연구원들이 그를 믿고 따르면서 늘 자신감을 내보이는 것도 자연스런 일인 것 같다. 유전공학의 최첨단에 선 사람들의 자부심이 아닐까.

이 교수와 실험실의 연구원들은 이제 다른 유전자를 없앤 모델 동물을 만드는 일에 매달릴 계획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과학분야에서 선진국에 비해 뒤져 있는 우리나라가 가장 먼저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분야는 바로 생명과학분야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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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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