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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전의 ‘초(超)재료’] 초효율 전기모터 구현할 초자성 금속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청소기 그리고 최근 핫한 전기자동차까지.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모터를 쓰지 않는 제품을 찾기는 힘들다. 그리고 모터에는 자석이 반드시 들어간다. 축을 기준으로 회전하는 자석을 생각해보자. 그 주변에서 강력한 다른 자석을 회전시키면 축을 지닌 자석이 회전하면서 동력이 발생한다. 강력한 자석은 곧 강력한 에너지다.

 

강력한 자석은 신재생에너지와 같이 모터의 효율이 중요한 분야나, 초전도 자기부상열차와 같은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필수로 꼽힌다. 이번 글에서는 강력한 자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미래사회의 에너지 흐름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이야기해보자.

자석의 힘 결정하는 전자의 스핀

 

자연에는 서로 붙는 것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중력이다. 질량이 있는 모든 것은 서로를 잡아당긴다. 사람은 질량이 작아서 옆사람과 서로 당기는 힘을 느끼지 못하지만, 거대한 지구는 어마어마한 중력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땅에 발붙이게 한다.

 

한편 끌어당기는 힘에는 전기력도 있다. 양전하와 음전하는 서로 끌어당겨 중성이 된다. 양전하와 음전하가 서로를 당기는 힘은 인식하기 어렵지만 굉장히 크다. 만약 사람만한 양전하와 음전하가 붙어 있다면 둘을 떼는 데는 에베레스트 산을 들어 올릴 정도의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인 자기력이 있다. 자기력은 N극과 S극이 서로 당기는 힘으로, 전기력과도 관련이 깊다. 19세기 초 덴마크의 과학자 한스 외르스테드는 전선에 전류를 가하면 근처의 나침반이 움직이는 현상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이를 바탕으로 영국의 마이클 패러데이는 자기력이 존재하면 전기력이 유도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수많은 실험 끝에 패러데이는 실제로 전선 근처에서 자석을 움직이면 전기의 흐름(전류)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과학자들은 전자의 움직임이 곧 전류라는 데 착안해, 원자 하나하나가 자석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원자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회전할 때, 전자의 이동 방향과 반대로 전류가 발생하고, 그 결과 자기장이 유도되는 원리다. 전자는 원자핵 주위를 공전하는 동시에 스스로 회전하는 특성(스핀)이 있어서 이론적으로는 전자 하나하나도 자석이 될 수 있다.

 

작은 고추가 맵다고, 전자 하나가 발휘하는 자기력은 원자  자기력보다 수십억 배 크다. 그럼에도 모든 물질이 자석이 되지 않는 이유는 원자에 여러 개의 전자가 있고, 이들이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며 자기력이 상쇄되기 때문이다.

 

흔히 녹는 점, 끓는 점, 강도, 탄성, 전기전도도와 같은 물질의 특성은 원자핵 가장 바깥 껍질을 도는 최외각 전자가 결정한다고 알려져 있다. 자기력도 마찬가지다. 최외각 전자들 중 스핀이 반대 방향인 전자들의 자기력은 상쇄되고, 남은 전자가 비로소 자기력을 발휘한다. 특히 고체는 수많은 원자가 다닥다닥 붙어있어 한 원자의 최외각 전자가 인접한 다른 원자의 최외각 전자에도 영향을 미친다. 정리하면 고체의 자기적 성질은 최외각 전자가 결정하고, 고체 전체의 자성은 원자 하나만 고려한 자성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초자성 재료 핵심은 강자성체

 

물질의 자기적 성질은 강자성체, 반자성체, 상자성체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강자성체는 외부 자기장을 가한 뒤 제거해도 원자들의 N극과 S극이 서로 나란히 정렬된 상태를 유지한다. 그런 강자성체를 영구자석이라 일컫기도 한다. 자기장 방향이 정렬되면 전지를 직렬로 연결한 것처럼 자기력이 커진다. 강자성체는 초자성 재료의 핵심 소재다.

 

한편 반자성체는 외부 자기장을 가했을 때 원자의 자기장 방향이 인접한 원자의 자기장 방향과 반대를 향한다. 원자들의 N극과 S극이 상쇄되면서 자기장이 방출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금속은 상자성체에 속한다. 상자성체의 내부엔 자성을 띠는 원자가 제멋대로 배열돼 있다. 각각의 원자가 방출하는 자기력 방향 또한 제각각이다. 이런 원자들은 외부에 자기장이 있을 땐 정렬되지만, 자기장이 사라지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간다. 따라서 강력한 자석이 되긴 어렵다.

강자성체 만드는 최적 레시피

 

초자성 금속의 핵심은 금속 원자들의 자기장 방향을 최대한 일치시켜 자기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자기장 방향이 같은 원자 집단을 ‘자구(magnetic domain)’라고 하는데, 이런 자구의 크기를 키우고, 만들어진 자구가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강력한 자석을 이용하는 것이다. 자석으로 강한 자기장을 만들고 그 속에 강자성체 금속을 두면 강자성체 금속 내 여러 자구들의 자기장 방향이 일정하게 정렬되며 큰 자구를 형성한다.

 

물론 강력한 자석을 동원하는 것과 강자성체 금속을 찾는 게 말처럼 쉽진 않다. 일본의 과학자 사가와 마사토는 1982년 철 금속에 희토류 원소인 네오디뮴(Nd)과 붕소(B)를 첨가하는 레시피로 강자성체를 개발했다(네오디뮴 : 철 : 붕소의 원자비 2 : 14 : 1).

 

철 원자 사이에 규칙적으로 위치한 네오디뮴 원자는 과장해 말하자면 찌부러진 구형을 띤다. 네오디뮴 원자가 주변 원자들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원자의 형태, 정확하게 말하면 전자의 궤도가 바뀐 탓이다. 구 모양 철 원자들 사이에 낀 네오디뮴 원자는, 찌부러진 모양 때문에 웬만한 환경에서는 잘 회전하지 않고 일정한 자기장 방향을 유지한다. 네오디뮴을 첨가함으로써 철 금속이 더 강한 강자성체가 된 것이다.

 

하지만 네오디뮴을 첨가한 강자성체는 온도가 200℃ 이상 상승하면 자기력을 상실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일본의 여러 연구팀은 높은 온도에서도 원소들이 자기장 방향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돕는 디스프로슘(Dy)이라는 새로운 희토류 원소를 첨가해 이런 문제를 극복했다. 그러나 디스프로슘도 가격이 비싸고 수급이 불안정하다는 한계를 이내 드러냈다.

 

한국재료연구원의 이정구 연구원팀은 금속을 이루는 결정을 나노미터(nm・1nm는 10억분의 1m) 크기로 작게 만드는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자석 내에 자기력을 약화시키는 입자가 형성되지 않도록 자석의 미세구조를 최적의 상태로 만들었다. 연구팀은 이 방법으로 비싼 디스프로슘 대신 세륨(Ce)을 사용하고, 네오디뮴은 기존 방법보다 30%가량 덜 쓰면서 강자성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필자소개.

한승전 . 1990년 부산대 무기재료공학과, 1997년 KAIST 재료공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부터 한국재료연구원에 재직하며 2002년에는 일본 오이타대 비상근 강사, 2018년과 2022년에는 일본 도호쿠대 금속재료연구소 초빙교수로도 일했다.

2020년 정부출연연구소 우수성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 2021년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 2022년 대한금속학회 동국송원학술상을 수상했다. ‘모던 알키미스트’ 등의 책을 저술했다. szhan@kims.re.kr

2023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한승전 한국재료연구원 책임연구원
  • 에디터

    이영혜
  • 디자인

    이영혜
  • 일러스트

    남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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