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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우의 실험실에서 온 생명체] 인공생명체 배아 착상을 모방하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만들어진 포유류 수정란은 연속적인 난할(수정란의 분할)을 통해 여러 개의 세포로 나뉘어 ‘배반포(blastocyst)’를 만듭니다. 배반포는 태아가 될 부분인 배아줄기세포와 태반이 될 영양막줄기세포로 이뤄져 있습니다. 성숙된 배반포가 엄마 자궁에 착상한 뒤 배아로서 잘 자랄 수 있도록 엄마는 자궁 내벽을 변화시켜 배아를 감싸 보호하고 영양 공급을 도와줄 ‘탈락막(decidua)’을 만들어냅니다. 배아는 세포의 운명이 완전히 결정되지 않은 초기 수정란 상태로, 배아가 조직과 기관을 갖추기 시작하면 우리는 배아를 태아라고 바꿔 부릅니다. 배아의 자궁 착상과 탈락막 생성 여부는 태아의 삶과 죽음이라는 운명을 결정짓습니다.

 

배아 발달을 모방하기 힘든 이유

 

자궁에 착상한 배아가 어떻게 발달하는지, 탈락막이 어떻게 생성되고 유지되는지를 연구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단 배아가 굉장히 작고 자궁에 파묻혀 있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동물 실험을 할 때 모체를 희생시키지 않고는 모체 내의 배아에 접근하기 어려워 윤리적인 문제도 뒤따릅니다. 무엇보다 임신한 모체를 희생해 얻을 수 있는 배아의 숫자가 많지 않다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가장 많이 쓰는 실험 모델인 쥐의 경우, 임신 한 번에 대략 6마리에서 10마리의 태아를 얻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과학자들은 배아줄기세포를 체외에서 배양하며 실험대에서 배아의 착상과 발달을 모방합니다. 배아줄기세포는 이론적으로 불멸이며 동시에 동물의 모든 신체로 분화할 수 있기 때문에 태아의 발달 과정을 잘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죠. 실제로 체외배양 혹은 시험관 연구를 통해 인간은 배아줄기세포가 자라날 화학적, 물리적 환경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엄격히 제어할 수 있었습니다. 비용, 생명윤리, 연구 수량 등의 문제까지 동시에 극복해냈습니다.

 

하지만 배아 체외배양 실험 역시 큰 약점이 있었는데요. 바로 우리가 연구하고자 하는 복잡한 생명체, 즉 ‘유기체(organism)’의 세포 조건을 완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계절, 음식,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데요. 만약 고도로 문명화한 외계인이 우리를 화성으로 강제 이주시킨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구에서 생활하던 것과 똑같이 생존하고 생활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인간임은 변하지 않지만 큰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며 우리의 행동과 사고는 지구에서의 그것과는 엄청나게 달라질 겁니다.

 

배아줄기세포도 마찬가지입니다. 체외배양 환경에서도 스스로 복제 가능하고 모든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의 기본적인 특성은 유지될 수 있지만(사실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배양 환경 변화에 의해 세포 유형이 크게 바뀔 수 있습니다. 실험대에서 생체 내 배아 발달을 정확히 모방하기는 어렵다는 뜻이죠. 실제로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2차원 평면에서 배양하며 특정 신호전달물질을 주입하면 다양한 세포유형으로 분화하게 되는데요. 이들은 인간 배아가 가진 세포유형을 갖고 있지만 형태적으로 전혀 배아로 보이지 않을 뿐더러 배아처럼 행동하지도, 기능하지도 않습니다.

 

배아가 되려면 “대화가 필요해”

수정란이 정상적인 개체로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핵심과정은 세포 간 혹은 조직 간 상호작용입니다. 어떤 야구팀에 투수만 있거나 외야수만 있다면 어떨까요? 설령 팀의 모든 인원이 투수를 하고 싶어 하더라도, 그들의 재능과 성장 가능성을 판단하고 대화와 논의를 거쳐 일부는 포수로 일부는 내야수로 키워내야만 정상적으로 팀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줄기세포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똑같은 가능성을 지닌 줄기세포라도, 서로가 각자 자리한 위치에서 자신의 기능을 하도록 일종의 대화를 하며 각자 운명을 찾아갑니다. 모든 세포가 뇌가 되고 싶다 고집부렸다면 폐와 심장, 손발과 얼굴이 없는 우리는 태어나서 숨 한번 쉬어보지도, 빛을 느끼지도 못하고 바로 생을 마감했겠죠. 하지만 우리는 세포 간 적절한 상호작용 덕분에 케이크의 단맛을 느끼고 월드컵 16강 진출의 흥분도 느낄 수 있는 완전한 생명체가 됐습니다.

 

줄기세포를 2차원 평면에서 배양하는 기존 모델은 줄기세포끼리 이런 상호작용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엠브리오이드 바디(embryoid body)’라는 3차원 배아 체외배양 모델입니다. 엠브리오이드 바디는 2차원 엠브리오이드에 비해 세포 간 상호작용이 용이하고 구현할 수 있는 부분이 많죠. 하지만 실제 배아와는 여전히 거리가 있습니다.

블라스토이드, 배아 착상을 모방하다

 

포유류의 초기 배아를 완벽히 모방하기 위한 것 중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뭘까요. ‘배아 연구’라는 틀에 갇혀서 잊었던 세포, 오직 포유류만이 가지고 있으면서 배아 생존에 필수인 세포, 바로 1월호에서 설명했던 영양막줄기세포입니다.

 

배아 발생은 착상 후부터가 아니라 수정된 순간부터 진행됩니다. 때문에 세포 간 대화가 배아줄기세포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배아줄기세포와 영양막줄기세포 사이에서도 필요합니다. 실제로 수정란에서 처음 만들어지는 세포 운명은 배아줄기세포와 영양막줄기세포의 상호작용이 결정합니다.

 

그렇다면, 영양막줄기세포를 어떻게 이용해야 완벽한 초기 인공 배아를 만들 수 있을까요. 해답의 실마리는 ‘블라스토이드(blastoid)’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블라스토이드라는 이름은 배반포를 뜻하는 ‘블라스토시스트(blastocyst)’와 ‘~와 닮은’ 이라는 뜻을 가진 ‘오이드(-oid)’의 합성어입니다. 배아줄기세포와 영양막줄기세포를 일정 비율로 섞고 화학적 자극을 가하면 블라스토이드가 만들어지죠.

 

블라스토이드는 배아의 착상을 연구하는 가장 효율적인 모델입니다. 내부에는 배아줄기세포 덩어리가 있고 그 주변은 한 층의 영양막줄기세포가 둘러싼 모양새인데요. 내부의 빈 공간은 아무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이 빈 공간으로 인해 줄기세포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좀 더 정확히는 배아줄기세포와 인접한 영양막줄기세포는 태반 생성을 유도하고, 빈 공간 때문에 배아줄기세포로부터 멀리 떨어진 영양막줄기세포는 자궁 착상을 돕습니다.

 

2018년 블라스토이드라는 개념이 처음 세상에 나온 지 5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블라스토이드는 수많은 개량을 거치며 조금씩 실제 배아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2021년부터는 쥐뿐만 아니라 인간의 블라스토이드를 만들어 초기 배아의 착상과 분화 연구도 활발하게 하고 있죠.

 

하지만 배아가 자궁에 착상한 이후, 태아에서 조직과 기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모방하기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우리에겐 등산을 도와줄 도구나 케이블카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가스트룰로이드(gastruloid)’라는 모델이 탄생하게 됩니다. 가스트룰로이드 이야기는 3월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2023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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