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작가는 본인이 겪은 대학원 일기를 그렸지만 많은 부분이 각색됐습니다. 이에 작가는 ‘요다 작가’로, 웹툰 속 등장인물은 ‘병아리 요다’로 표기했습니다.)
PPT를 만드느라 실험할 시간이 부족하다! 제안서를 쓰느라 논문 읽을 시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을 갖춰 학위를 받아라! 대학원 ‘찐’ 생활을 A부터 Z까지 가감없이 묘사해 전국 연구노동자들의 심금을 울린 웹툰 ‘대학원 탈출일지’가 최근 인기리에 완결됐다. 작가 요다를 11월 23일 화상 인터뷰했다.
대학원 탈출일지는 공대를 졸업한 후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 학위를 딴 작가가 본인의 대학원 재학 시절 이야기를 각색해 그린 웹툰이다. 네이버에서 매주 화요일 연재된 웹툰은 같은 요일에 공개되는 33개의 작품 중 인기 순위 4위에 오를 정도로 큰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2022년 2월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21개월 만인 2023년 11월 27일 본편 연재가 끝났다.
대학원 탈출일지의 주인공은 작가 본인이 투영된 캐릭터, ‘병아리 요다’다. 병아리 요다의 전공은 치킨공학, 관심있는 연구 주제는 튀김기다. 이 얼토당토 않는 학문의 이름은 작가가 본인의 신상을 숨기기 위해 지은 것이다. 작가는 “아무리 웹툰 내용이 각색된 것이라고 해도, 만약 지도교수께서 알게 됐을 때 당시 연구실에 남아있던 선배들이 피해를 입을 것 같아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작품은 대학 4학년 병아리 요다가 어떤 ‘선택’을 하면서 시작된다. 그 선택은 대학원 진학의 길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무한한 시간과 노가다 끝에 프레젠테이션 자료 제작의 마스터로 거듭나야 함은 물론, 정부나 기업에서 제시하는 연구과제를 얻기 위해, 연구비를 제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증빙 서류를 수십수백 장 써내야 한다. 갑자기 고장난 연구실 실험 장비도 무사히 고쳐야하고, 지도교수 강의 보조도 해야한다. 대학원 수업을 듣고, 수업 과제를 하고, 시험을 쳐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공부와 연구의 결정적인 차이점
크고 작은 산을 건너야 하는 대학원에서 하이라이트는 ‘연구’다. 연구는 공부와 다르다. 작가는 “공부는 정답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이라면, 연구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정답은 나 말고 다른 이들이 제시한 것이다. 연구자는 기존 정답 말고 다른 답도 가능하다는 것을 밝혀내는 사람이다. 연구와 공부가 완전히 별개의 것은 아니다. 연구는 공부없이 이뤄질 수 없다. 모든 연구는 앞서 누군가가 제시한 답에서부터 출발하고, 새로운 답을 제시하는 과정 또한 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연구의 시작은 무엇을 연구할지 정하는 것, 곧 주제 잡기다. 대학원 탈출일지(40~42화)에서 주제 잡기는 ‘보물찾기’로 설명된다. 여러 지식들을 토대로 참신한 아이디어를 통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주제를 찾으면 된다는 것이다.
실험 정복편(106~108화)은 연구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바로 “왜?”라고 묻는 가상의 몬스터, ‘왜몬’과의 싸움이다. 주제를 설정하는 연구의 시작부터 연구를 증명하는 마지막 과정까지 왜몬과 싸우다보면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거나, 기존 지식을 정정하는 등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공부하며 차근차근 쌓아 둔 지식이 왜몬과의 싸움에서 길라잡이가 돼준다. 그것이 연구다.
“웹툰 보고 대학원에 가기로 정했다”
대학원 탈출일지는 유독 고학력자 독자들이 많았다. 석박사학위를 딴 이들은 본인의 대학원 생활을 돌이켜 볼 수 있고, 학위 과정 중에 있는 이들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러다보니 정정 댓글이 꽤 많이 올라왔다”며 웃었다. 대학원 생활을 2년간 했지만 모르는 부분도 많다보니 작품 연재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자문을 구했는데, 그럼에도 각색 결과 사실과 다른 내용이 생기면 그 부분을 바로 잡아주는 이들이 많더라고 했다.
“대학원이 기쁘거나 즐거울 순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작가는 “대학원은 고통스러운 곳이다” 잘라 말했다. 대학원은 일정 수준의 연구자가 되기 위해 수련 및 단련을 하러 가는 곳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다면 그건 수련이나 단련이 아니”라고 말하는 작가는 “아무리 연구 환경이 좋더라도 힘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비 고학력 독자들은 그의 작품을 보고 결심을 한다. “작품을 보고 대학원 진학을 마음 먹었다”는 댓글이 눈에 띈다. 작품을 통해 연구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됐지만 그것을 감내하겠다 마음 먹은 새싹 연구자들이다. “웹툰을 그리면서 회사를 그만둬, 이제는 치킨공학이란 학문에서 완전히 멀어졌지만 후회는 없어요. 대학원 탈출일지로 누군가의 길라잡이가 됐다는 게 기쁩니다. 과학동아 독자분들이라면 대학원이 미래가 될 수 있겠죠. 그 생활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그리려 노력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