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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처음 동물계에서 벗어나 인간이 된 무리들은 어떻게 서로 의사를 전달했을까? 모르긴 해도 손짓 발짓과 아직 명확히 분절되지 않은 소리 등을 결합해서 사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의사전달은 언어의 측면에서는 아직까지 동물의 세계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 손짓 발짓을 러시아의 물리학자 파블로프는 '신호'라고 이름붙였다. 그러나 인간은 신호에만 의존해서 생활하기에는 너무 두뇌가 커져버렸다. 경험의 축적과 지능의 발달은 손짓발짓에 해당하는 의사를 특정한 음으로 대응시킴으로써 언어를 만들었던 것이다. 파블로프는 이 언어를 맨처음의 동물적 신호를 다시 개념화했다는 뜻에서 "신호의 신호"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이 언어라는 것은 기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멀리 떨어진 사람에게 의사를 전달하기 곤란했던 것과 시간이 지나면 망각속에 묻힐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공간적, 시간적 한계는 기본적으로 문자를 만듦으로써 해결되게 된다. 그로부터 수천년이 지난 후 개인용 컴퓨터가 등장했다. 당연히 문자 지향의 컴퓨터였다.

사람이 중심되는 운영환경

국내 한 텔레비전에 방영되는 공상 영화 '타임트랙스'에 나오는 램버튼 경감은 그의 컴퓨터 셀마와 음성을 통해 서로 의사를 소통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의사소통은 21세기에나 가능해질 것이고 지금은 여전히 키보드를 통해 명령을 입력하는 문자지향의 컴퓨터 운영방식이 대세를 장악하고 있다. 1975년에 나온 알태어 8800 이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로 알려진 스티브 잡스의 애플 컴퓨터, IBM과 그 호환군단들의 대대적인 약진 등으로 상징되는 하드웨어의 시대는 전체적인 면에서 문자와 키보드의 시대였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와중에 하나의 아이디어가 싹을 틔우고 있었다. 1973년 제록스사의 팔로알토 연구소 (Palo Alto Research Center, PARC)의 한 연구팀이 문자 지향의 컴퓨터 운영방식을 지양한 그림 위주의 컴퓨터 운영방식을 구상했던 것이다. 이들이 '알토'라는 컴퓨터에 채용한 이 새로운 컴퓨터 운영방식은 사람과 컴퓨터 사이의 의사소통(대화 또는 반응)을 보다 빠르게 하기 위해 문자명령어의 입력 대신에 명령어를 상징하는 그림을 화면상에 배치해 놓고 마우스라는 장치로 이것을 선택하게 만든 것이었다.

이것이 최초의 그림 사용자 환경(Graphic User Interface, GUI, 구이라고 발음한다)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로서는 너무 혁신적이었고, 너무 비싸 상업적으로는 실패하고 만다.

1979년에 접어들면서 스티브 잡스는 PARC의 GUI기술을 자신의 컴퓨터 리자(LISA)에 채용한다. 그는 PARC에서 GUI를 연구했던 연구자들을 애플에 고용해 가면서 까지 리자의 판매에 주력했으나 GUI의 이 두번째 시도도 높은 가격 때문에 알토와 마찬가지로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애플은 GUI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이는 곧 매킨토시에 적용돼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에 이어 1985년 IBM과 그 호환기종에서도 GUI방식의 '윈도우'를 채용함으로써 사람과 컴퓨터의 의사소통 방식에 커다란 진보를 이룩하게 되었던 것이다. 구이는 컴퓨터 환경의 대변혁을 가져왔으며 새로운 컴퓨터 사용자들에게 보다 나은 컴퓨터 접근법을 제공하고 있다.

초보자도 두려움 없는 사용법

구이는 정보를 화면상에 그래픽컬하게 나타낸다. 사용자는 문서를 작성하는 등 문자의 입력이 필요한 부분에서만 키보드를 사용하고 대부분의 운영(사람과 컴퓨터의 대화)은 마우스를 이용한다. 사용자는 프로그램이나 파일, 명령어들을 상징하는 조그마한 그림(아이콘)들을 마우스로 조작함으로써 컴퓨터를 제어하게 되는 것이다. 컴퓨터를 켰을 때 화면상에 시커먼 프롬프트 대신 펜 전화기 쓰레기통 등이 나타나는 것을 상상해보라.

마우스로 펜을 눌러주면 워드프로세서가 실행되고 전화기를 눌러주면 컴퓨터 통신을 할 수 있다. 이 정도가 되면 명령어 한 글자만 틀려도 말을 듣지 않는 문자 지향의 컴퓨터와 어느 것이 훨씬 인간적인가는 벌써 판가름난 것이나 다름없다.

구이 프로그램들은 컴퓨터의 운영체제(입출력을 제어하는 방법이나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법 등을 컴퓨터에게 알려주는 가장 근간을 이루는 프로그램) 위에서 작동한다. 즉 구이는 컴퓨터 운영체제와 사용자 사이를 그림으로 매개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대표적인 문자지향 운영체제인 도스에서 하드디스크에 있는 파일을 A드라이브에 있는 플로피디스켓으로 복사하려면 프롬프트상태에서 아래와 같이 한 글자씩 정확하게 입력해야 할 것이다.

C:\HWP\DATA〉copy data.hwp a:

그림 운영체제에서는 어떤가? 화면상에 나타난 파일 아이콘을 마우스로 끌어 A드라이브 아이콘 위에 떨어뜨리기만 하면 복사가 끝나게 되는 것이다. 파일을 지울 때도 복잡한 명령어 구문을 암기할 필요없이 원하는 파일을 끌어 쓰레기통 속에 떨어뜨리기만 하면 된다. 당연히 파일 아이콘을 프린터 아이콘 위에 떨어뜨리면 인쇄가 되고마니 이 얼마나 직관적이고 생활적인가? 그림 운영체제는 우리가 책상에 앉아 일하는 방식을 그대로 본 딴 것이다. 그래서 전혀 생소하지도 어렵지도 않으며, 이것이야말로 구이의 본질적인 강점이다.

모든 명령어들을 일일이 암기하고 있어야만하는 문자 지향의 컴퓨터 환경(도스가 그렇다)과 비교할 때 구이는 인간의 다섯가지 감각 중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시각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컴퓨터 초보자라 하더라도 별 두려움 없이 무엇인가를 실행해 볼 수 있다.

아마 오랫동안 도스라는 문자지향의 운영체제를 사용해 온 사람은 아무런 불편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컴퓨터 초보자들에게 있어서는 문제가 다르다. 컴퓨터의 전원이 켜지고 10-20초 후에 나타나는 프롬프트는 초보자를 난감하게 만든다. 화면상에는 어떠한 단서도 없다. 도대체 이 무미건조한 화면에서 어떤 상상력을 기대하란 말인가? 나침반도 없이 망망대해에 떨어진 기분을 어떤 초보자가 거치지 않았겠는가?

이 프롬프트 화면에서 무엇인가를 해보기 위해서는 각고의 학습이 요구된다. 도스 환경에서는 화면에 나오는 영문 메시지들을 '읽고 이해한 후'에야 어떤 명령을 내릴 수 있으니 컴퓨터 학원이 전성시대를 구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문자지향의 컴퓨터 환경과 그림지향의 컴퓨터 환경사이에도 과도기가 있었다. 그것은 메뉴방식이라는 것이었는데 사용자가 내릴 수 있는 명령어들을 화면상에 문자로 표시해 놓은 것을 말한다. 일단 메뉴방식은 무엇인가할 수 있는 것들을 제시함으로써 컴퓨터 운영방식에 일정한 기여를 했지만 그것은 사람의 생활방식과는 거의 유사성이 없는, 여전히 어렵기만 한 방식이었음에 틀림없다.
 

스티브 잡스^애플의 창업자이기도 한 그는 매킨토시에 이어 넥스트 스텝을 내놓아 운영체제에 관한 한 독보적 아이디어의 소지자로 불린다.


프로그램 중심에서 문서 중심으로

그러나 구이는 그 시각적 접근으로 인해 호기심과 상상력을 촉진한다. 누구나 쓰레기통 그림을 보면 그것이 쓸데 없어진 것들을 버리는 곳이라는 것을 최초부터 느낀다. 어깨너머로라도 한 번 바라보기만 하면 금방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음성으로 명령을 내리는 데 비한다면 원시시대겠지만 문자지향의 방식에 비한다면 그것은 확실히 20세기의 감각에 맞다. 마우스로 그림을 누른다. 그러면 대화상자가 나타나 나의 의견을 묻는다. 나는 그 친절한 요구에 대해 하나를 선택하거나 입력한다. 나머지는 컴퓨터가 알아서 해준다. 최초의 느낌과 단계적인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은 구이가 우리에게 친숙해지는 매력이다.

또한 구이방식은 하나를 알면 열가지를 이해할 수 있는 강점을 지닌다. 도스 환경의 응용프로그램들을 사용하려면 각각의 응용프로그램 마다의 특수한 운영방식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구이를 채용한 운영체제에서는 하나의 응용프로그램을 사용해 보면 다른 응용프로그램들을 사용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 운영방식의 일관성이야말로 사용자들을 진정으로 편안케 하는 주된 요소인 것이다.

또 하나의 변화는 기계에 의해 거꾸로 뒤집어진 사고를 올바로 돌려놓은 것이다. 도스 환경에 익숙한 우리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의 문서를 읽으려면 먼저 그 문서를 만든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그 연후에야 그 문서를 부를 수 있다고. 그러나 이것은 인간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가 컴퓨터를 쓰는 것은 프로그램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위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일 뿐이다. 즉 사용자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특정한 문서를 작성한다거나 설계를 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데이터(문서)인 것이다.

도스 환경에서의 한가지 전형적인 불편함을 생각해 보자.

스프레드시트를 이용해 회계처리를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이 최종적인 보고서 양식으로 출력되려면 그 프로그램에서 만들어진 수치 문서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 걸맞는 다양한 그림이나 소리, 동화상 등이 적절히 배합돼야 효과적인 보고서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림을 만드는 프로그램, 소리를 녹음하는 프로그램, 동화상을 저장하는 프로그램 등은 모두 각각의 독립된 패키지들이므로 몇개의 프로그램을 따로따로 실행시켜 데이터(문서)를 만들고 나중에 각각의 결과들을 스프레드시트 문서에 따붙이는 식으로 작업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이지 반복적이고 시간이 많이 걸리며 짜증나는 일이다.

그러나 구이를 지향하는 프로그램들은 이 비인간적인 작업환경을 버린다. 이 반복적이고 낭비적인 작업과정은 스프레드시트 문서안에서 모두 해결된다. 즉 원하는 문서를 열기만 하면 필요한 프로그램들이 모두 주변에서 대기하게 되고 간단한 조작만으로 각각의 프로그램들이 가진 기능을 이 문서속으로 끌어와 쓰기 때문이다. 얼마나 문서중심적인가?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윈도우에서는 이러한 기법이 올레이(OLE, 객체의 연결 및 삽입)라는 기술에 의해 이미 쓰여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프로그램들을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문서안에서 프로그램들을 호출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또하나의 인간적인 변화이다.

 

GUI를 채택한 첫 상품 리자^현재 사용되고 있는 매킨토시의 형님뻘이다.


그림 다음에 등장할 운영체제는

키보드 없는 컴퓨터가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아직 맹아에 지나지 않지만 구이 방식의 새로운 형태이다. 백화점이나 지하철역에는 컴퓨터 화면을 손가락으로 건드리기만 하면 반응하는 컴퓨터가 줄지어 서 있다. 전자감응장치로 된 터치스크린이 장착되어 컴퓨터를 모르는 일반인들도 모니터에 나타난 그림들을 손가락으로 누르는 것만으로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서울시내 백화점 매장에 가면 연극, 영화, 비디오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터치스크린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지하철역에는 방향을 모르는 승객들을 위해 찾아갈 역, 주변건물 찾기, 버스안내, 지하철 노선도, 지하철 홍보, 바이오 리듬 등의 서비스를 터치스크린으로 제공한다.

시각적인 직관성에 기초한 구이 환경은 멀지않아 음성인식과 결합되어 보다 편리한 컴퓨터 환경을 열어나갈 것이다. 공상과학영화 '론머맨'에는 가상현실 시스템에 대한 교과서적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가상현실 시스템은 컴퓨터를 이용해 인간의 시각 청각 촉각을 자극하도록 만들어 가상세계에 몰입하게 해준다. 머리에 쓰는 헤드마운트(시각), 3차원 음향시스템(청각), 압력을 발생시키는 장갑이나 옷(촉각) 등으로 인간의 감각을 총체적으로 자극하는 셈이다. 컴퓨터는 가상현실을 실제현실로 바꾸어 나가고 있다.

다시 램버튼 경감과 그의 컴퓨터 셀마 이야기를 해보자. '타임트랙스'의 주인공 램버튼 경감은 신용카드처럼 생긴 컴퓨터를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키보드도, 모니터도, 스위치도 없이 고성능 건전지에 의존하는 이 컴퓨터의 이름은 '셀마'다. 셀마는 램버튼의 음성을 인식해 동작하고 처리결과도 입력된 음색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사진과 그림 등은 홀로그램을 통해 보여주며 모든 일은 서로 상의해서 처리한다. 셀마는 스스로 알아서 일하는 것이다. 컴퓨터 전문가들은 2030년 쯤에는 셀마같은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995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유해룡 컴퓨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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