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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거북의 날갯짓이 이어지도록 "또시 옵서양”

이지 사이언스

“하나, 둘, 셋, 또시 옵서양!”
태양이 내리쬐는 8월 25일 오후, 꼭 다시 만나자는 뜻의 제주 방언이 제주 중문색달해수욕장에 울려 퍼졌다. 배웅을 받는 건 바다거북 여섯 마리. 이 중에는 바다에서 태어났다가 사람 손에 구조됐던 거북도, 아쿠아리움에서 태어나 바다 냄새를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거북도 있었다. 모두 돌아갈 곳이 어딘지 아는 듯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바다로 향했다. 이윽고 큰 파도가 들이쳤다. 바다거북은 희게 부서지는 물거품을 뒤로하고 바닷속으로 훌쩍 날아가 버렸다. 
바다거북이 바다로 떠나는 여정에 2박 3일 동안 동행했다.

 

 

우리 바다엔 원래 바다거북이 살았다. 옛사람들은 바다거북을 용왕의 사신이라 여겼다. 어민들 사이에는 바다거북을 만나면 막걸리라도 뿌려 극진히 대접한 다음 바다로 돌려보내는 풍습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바다거북의 이미지는 사뭇 다르다.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혀 피를 흘리는 모습은 해양 플라스틱 오염의 상징이 됐다. 기후변화 탓에 새로 부화하는 바다거북의 성비가 무너졌다는 보고도 잦다. 바다거북의 성별은 알을 낳은 장소의 온도에 따라 결정된다. 온도가 높아지니 암컷 거북이가 더 많이 태어난 것이다. 서식지와 산란지도 파괴됐다. 한국의 경우, 2007년 제주 중문색달해수욕장에서 바다거북 한 마리가 산란한 이후로 산란을 관찰하지 못한 지 오래다.


바다거북이 다시 우리 땅에 알을 낳을 날을 기약하는 사람들이 있다. 매년 8월 말 경 중문색달해수욕장에는 바다거북 방류를 위해 국립해양생물자원관과 아쿠아플라넷 등에서 온 관계자가 모인다. 2017년부터 올해까지 140마리의 바다거북이 바다로 향했다. 모두 인공증식됐거나 구조된 거북들이다.


올해 바다에 간 거북은 2019년 아쿠아플라넷 여수에서 인공증식으로 태어난 매부리바다거북 세 마리와 야생에서 구조된 푸른바다거북 두 마리, 그리고 붉은바다거북 한 마리까지 총 6마리다. 이 중 어린 매부리바다거북 두 마리가 8월 23일 전남 여수에서 출발해 생애 첫 여행을 떠났다. 


방류 한 달 전, 김일훈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생태보전실 전임연구원은  “23일 여수에서 거북이를 잘 포장(?)해 냉장 탑차에 실은 다음 배편을 통해 제주도로 이동하는 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도착하면 24일 아침인데, 추적장치를 단 다음 하루 동안 적응 기간을 거치고 25일에 방류한다”고 했다. 거북이와 함께 여행할 기회라니, 덥석 동행하겠다고 나섰다.

 

바다거북의 요람에서

 

여행을 떠날 바다거북을 만나러 8월 23일 오후, 전남 여수 아쿠아플라넷 여수로 향했다. 메인 수조 위쪽 공간에 들어서자 짭짤하고 습한 공기가 훅 끼쳤다. 방심하는 사이 수면 가까이 올라온 커다란 가오리가 지느러미를 퍼덕여 물을 튀겼다. 아쿠아리스트들이 바삐 뛰어다니고, 여과기 펌프가 돌아가는 소리가 가득한 아쿠아리움 한편에 바다거북이 있다.


“수생생물을 전시하는 일뿐 아니라, 멸종위기 수생생물을 보호하고 복원하는 일도 아쿠아리움의 역할이에요. 이곳에선 2014년부터 바다거북을 전문적으로 사육하며 바다거북 개체 수 회복을 위한 인공 번식 연구와 해양플라스틱 섭식 연구 등 다양한 국가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아쿠아플라넷 여수의 아쿠아리스트, 조은빛 주임의 안내를 받아 바다거북 사육시설을 한 바퀴 돌았다. 아쿠아플라넷 여수는 해양생물 서식지외보전기관이다. 서식지외보전기관은 한국 연근해의 해양생물 중에서 서식지에서 살아남기 어렵거나 종의 보존 등을 위하여 서식지 외에서 보호할 필요가 있는 종들을 보호하는 곳이다. 아쿠아플라넷 여수에선 현재 바다거북 33마리가 조 주임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성인 남성의 몸통보다도 더 큰 바다거북이 헤엄치는 수조 가까이에 쪼그려 앉았다. 먹이를 들고 있지도 않았는데, 거북이 적극적으로 다가와 고개를 쳐들었다. 조 주임은 “유독 사람을 더 당기는 성격인 녀석”이라며 “종마다 성향이 조금씩 달라서, 푸른바다거북은 강아지 같고, 매부리바다거북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보면 도망가는 편”이라고 했다.


사육시설 한 구석, 조용하고 어두운 수조에는 암컷 푸른바다거북 한 마리와 수컷 푸른바다거북 두 마리가 번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알을 낳을 모래톱과 CCTV, 그리고 인공부화기까지 갖춘 국내 유일한 바다거북의 요람이다.


“호르몬 검사와 초음파를 통해 번식기를 앞두고 있다고 판단된 암컷이에요. 번식이 임박했을 땐 출근하자마자 거북이가 간밤에 알을 낳지는 않았는지 확인해요. 알을 낳은 흔적이 보이면 허겁지겁 모래톱으로 뛰어가 알을 파내야 하죠. 빨리 인공부화기에 넣어 부화율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알이 부화하기까지는 약 60일이 걸린다. 인공부화기에 들어간 알은 습도 90%, 온도 29℃의 환경에서 부화를 기다린다. 이번에 방류한 매부리바다거북 형제도 이 과정을 거쳐 태어난 귀한 녀석들이다.

 

바다거북과 배를 타는 법

 

바다거북과 함께 오전 1시 20분 배를 타기 위해선 서둘러 여행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오후 10시, 조 주임이 매부리바다거북 형제를 수조에서 꺼내 젖은 수건을 깔아둔 커다란 대야에 담았다. 잘 쉬고 있다가 한밤중에 봉변을 당한 바다거북은 잠시 버둥거리다가 이내 조용히 숨을 죽였다.


아쿠아리움 뒤편에는 냉장 탑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다거북이 건강히 이동할 수 있도록 냉장 탑차 속은 25℃ 안팎의 온도를 유지한다. 그래도 보내는 마음이 마냥 편하진 않다. 아쿠아리스트들의 손길이 바빴다. 물을 뿌리는가 하면, 바다거북이 들어있는 대야 위치를 이리저리 조정해보기도 하는 모습이 아이의 첫 등교를 앞둔 부모 같다. 오후 11시를 넘겨서야 냉장 탑차는 아쿠아플라넷 여수를 떠나 여수항으로 향했다.


“혹시 아직 안 주무실까요? 저희 이따가 4시에 한번 확인하러 갑니다.”


배가 출발하기 전, 조 주임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바다거북은 냉장 탑차에 얌전히 탑승한 채 동승했다. 난생처음 고향을 떠나온 것도 스트레스일 터다, 한 번에 차와 배를 동시에 타는 바다거북의 상태가 걱정되는 건 당연했다.


새벽 4시, 한밤중이라 캄캄한 밖은 어디가 바다인지 하늘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 매부리바다거북 형제는 그새 등딱지가 조금 말라 있었다. 조 주임은 연신 물을 뿌리며 “숨은 잘 쉬는지, 너무 기운 없어 하진 않는지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돌보는 사람과 살피는 사람

 

아침 7시 45분, 제주 땅을 밟았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빨리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아쿠아플라넷 제주로 바다거북 형제를 옮겼다. 오전 9시경, 냉장 탑차를 뒤따라 간 아쿠아플라넷 제주에는 이미 울산, 부산 등지에서 온 바다거북이 커다란 고무통 속에 담겨있었다. 해양동물 전문구조·치료기관에서 구조·치료된 바다거북 세 마리와 기자와 동행한 매부리바다거북의 형제다. 구조·치료된 바다거북 중에서도 푸른바다거북과 붉은바다거북이 특히나 크다. 지켜보던 조 주임은 “이 정도면 40살은 된 성체”라며 “몸무게는 80kg 정도로 보인다”고 했다.


이제 김 전임연구원을 비롯한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의 연구원들이 바빠질 차례다. 이들의 역할은 방류된 바다거북이 바다에서 잘 지내는지, 어디로 이동하는지 살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방류 전 바다거북의 등딱지에 인공위성 추적장치를 부착하고, 지느러미엔 외부인식표를 부착해야 한다. 유전정보를 기록하기 위한 채혈도 필수다. 80kg에 육박하는 바다거북의 지느러미에 외부인식표를 달기 위해 성인 여럿이 달려들었다. 


“바다거북은 숨을 쉬기 위해 자주 수면으로 올라옵니다. 인공위성 추적장치에는 수압 센서가 있습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인공위성에 신호를 보내죠. 인공위성이 수집한 자료를 분석하면 바다거북이 어디에 있는지 추적할 수 있습니다.”


추적장치의 배터리는 대부분 1년이 지나면 수명을 다한다. 1년간 모은 바다거북의 위치 데이터는 연구자의 손에서 빛을 발한다. 김 전임연구원은 “위성신호는 방류된 바다거북이 잘 적응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가장 적합한 방류 시기와 장소를 찾기 위한 기초 자료가 된다”고 했다. 이어 “연구결과를 종합해보면, 그간 방류한 바다거북은 상당히 잘 적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8월 말 방류된 바다거북은 제주에서 바다에 적응하다가 겨울이 되면 더 따뜻한 바다로 이동한다. 번식기에 일본 가고시마 등지에서 오랜 기간 머물며 신호를 보내는 바다거북도 있다. 바다거북의 집단산란장소로 잘 알려진 지역이다. 김 전임연구원은 “같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신호를 보낸 이유는 아마 알을 낳았기 때문일 것”이라며 “방류한 바다거북이 야생 개체 수 회복에 잘 기여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안 좋은 소식은 주로 외부인식표를 통해 전해져온다. 한국에서 방류된 모든 바다거북에는 연구책임자인 김 전임연구원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있다. 방류된 바다거북이 다시 연구자를 만날 땐 죽은 상태인 경우가 많다. 해외 연구자들이 죽은 바다거북에 부착된 외부인식표를 보고 이 거북을 어디에서 발견했는지, 발견 당시 얼마나 컸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등 간단한 정보를 전해온다. 


국내에서 부상을 당한 상태로 발견된 바다거북은 해양동물 전문구조·치료기관으로 보내 치료한다. 예후가 좋으면 방류할 수 있다. 이날 아쿠아플라넷 제주의 안쪽 수조에는 목이 다친 채로 발견됐던 붉은바다거북이 한 마리 있었다. 함께 방류할 예정이었으나, 상처에 염증이 심해져 취소됐다.


매부리바다거북 형제에게도 인공위성 추적장치와 외부인식표가 부착됐다. 이들은 어떤 소식을 전해올까. 점심시간, 잠시 한산해진 사이 조 주임이 혼자 매부리바다거북이 들어있는 고무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주도 또시 꼭 옵서양

 

방류 당일인 25일 오후 2시. 중문색달해수욕장 날씨는 맑았다. 바다거북이 여섯 마리나 고무통에 들어있는 흔치 않은 광경에 인파가 모여들었다. 잠시 뒤, 바다거북이 모래사장 위에 발을 내디뎠다. 사람이 워낙 많아 움직이긴 하려나 걱정하던 것도 잠시, 바다거북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바다로 곧장 나아갔다. 파도와 함께 멀어진 매부리바다거북 형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릿해질 때까지 눈으로 좇았다.


바다는 넓다. 매년 바다거북을 방류한다고 해도, 전체 바다거북 개체 수에 얼마나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까. 기자의 우문에 최완현 국립해양생물자원관장이 현답을 내놓았다.


“바다거북은 멸종위기종이며, 생태계가 얼마나 건강한지 알려줄 수 있는 지표종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영물로 여겨온 상징적인 생물이기도 하죠. 바다거북 방류 행사는 사람들에게 바다거북, 더 나아가 바다거북이 사는 바다를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할 좋은 계기가 될 겁니다.”


8월 25일 오후, 올해도 바다거북이 저마다 등딱지에 무거운 기대와 희망을 메고서 제주 바다로 나아갔다. 이날 방류된 바다거북들은 11월경까지 제주 인근 해역에 머물다가 날이 추워지면 일본 등지로 남하할 것으로 보인다. 인공위성 추적장치를 부착한 네 마리 모두 건강히 활동하며 신호를 보내고 있다. 


방류가 끝난 뒤, 조 주임에게 전날 혼자 매부리바다거북을 한참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다. 조 주임은  “그동안 먹여주고 돌봐주던 시간들이 생각나 보고 있었다”고 답하며 잠시 바다를 바라봤다. 이어  “앞으로 뭘 먹고 지낼지, 뭘 하고 지낼지 궁금하다”면서 “결혼도 안 했는데, 매년 이렇게 자식 보내는 느낌을 경험한다”며 웃었다. 


“언젠가 제 아이에게 엄마가 키운 바다거북이 돌아왔다고 할 날이 온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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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병철 기여수, 제주=김소연 기자
  • 디자인

    이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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