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태어났을 때 우주의 모습은 어땠을까. 지난 2월 11일 미항공우주국(NASA)은 이제까지 찍은 사진 가운데 가장 선명한 우주의 ‘아기사진’을 공개했다. 2001년 6월에 발사된 NASA의 탐사선(WMAP)이 12개월 동안 찍은 이 사진은 우주가 태어난지 38만년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의 모습을 담았다. 사람이라면 탄생 당일에 찍은 사진에 해당한다.
이번 사진은 1992년 NASA의 우주배경복사탐사선(COBE)이 찍은 비슷한 사진보다 35배 더 선명하다. WMAP 관련과학자들은 새로운 사진으로부터 전례없이 정확하게 우주를 설명할 수 있었다. 우주가 1백37억년 전에 태어났고, 기하학적으로 평평하며, 대부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물질과 에너지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던 것이다.
대폭발의 흔적 1백만분의 1 정확도로 관측
WMAP가 찍은 사진은 우주 대폭발의 잔광인 우주배경복사(CMB)에 대한 것이다. 우주배경복사란 무엇일까.
우주 초기에는 굉장히 높은 온도와 압력에서 모든 물질과 빛이 한데 엉켜 있었다. 그런데 우주가 탄생 이후 팽창하면서 점차 온도가 식어갔고, 특정 시기에 물질과 빛이 분리됐다. 드디어 빛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 나온 빛이 바로 우주배경복사다. 대폭발의 흔적이자 증거인 셈이다.
우주배경복사는 1965년 미국 벨연구소의 아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이 전하늘에서 이상한 잡음을 관측하면서 최초로 발견됐다. 우주배경복사의 온도는 출발 당시 3천K(절대온도 K= 섭씨 온도 ℃+273.15)였으나, 현재는 우주 팽창에 따라 식어서 약 3K로 예상됐다. 그 뒤 관측장비가 발달하고 우주공간에 관측탐사선이 올라가자 우주배경복사에 대한 관측치가 정확해졌다. 1992년 COBE의 관측결과, 평균 온도는 2.73K이고, 미세한 온도편차가 있음이 밝혀졌다.
우주배경복사에 나타나는 미세한 온도편차는 우주초기의 물질 밀도가 미세하게 불균일했다는 의미다. 이 미세한 물질 밀도의 불균일함은 나중에 별과 은하, 그리고 우주의 거대구조로 자라났다. 결국 우주에 다양한 구조가 태어날 수 있는 씨앗이었던 셈이다. WMAP은 물질 밀도의 불균일함으로 인해 나타나는 온도편차를 1백만분의 1K의 정확도로 식별할 수 있다.
우주 비밀 밝혀낼 혁명적 전환점
우주를 설명하는 이론은 다양한 예측을 내놓는다.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하는 WMAP의 능력은 이들 이론의 예측을 비교할 만한 관측치를 제공할 수 있다. 우주배경복사는 이론을 검증하는 ‘지문’인 셈이다.
WMAP의 이번 관측결과에 따르면 우주의 나이가 1%의 오차범위에서 1백37억살이며, 많은 과학자들의 예상을 깨고 별들이 빅뱅 2억년 후에 처음 빛을 발했음이 밝혀졌다. 또한 우주를 구성하는 요소의 경우 빛을 내는 보통 물질이 4%에 불과하고, 23%는 빛을 내지 않는 차가운 암흑물질이며, 나머지 73%는 불가사의한 암흑 에너지임이 드러났다. 한 천문학자가 말했듯이 우주에는 별이나 행성 같은 평범한 물질은 하찮은 불순물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물론 암흑 에너지가 우세한 우주는 기구를 이용한 우주배경복사 관측이나 허블우주망원경을 통한 초신성 관측으로 몇년 전에 밝혀졌던 사실이다. WMAP의 관측결과로 더욱 확고해진 것이다. 이제 우주는 반중력의 역할을 하는 암흑 에너지로 인해 영원히 팽창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번 결과에 대해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원의 존 바콜 박사는“우주가 어떻게 형성되고 진화했는지를 이해하는 혁명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