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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이 만난 우주인] 우주김치와 태권도를 사랑한 개럿 레이즈먼

“여러분이 고민하고 스트레스 받는 일들이
생각만큼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가끔 문제도 생기고, 계획대로 일이 잘 안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완전히 끝은 아니거든요.”

과학의 달 4월은 내게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2008년 4월 8일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소유스에 실려 우주로 날아갔고, 이틀 후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도착해 나흘간 머물렀기 때문이다. 소유스의 선장인 세르게이 볼코프(Sergey Volkov)와 미국항공우주국(NASA) 출신 페기 윗슨(Peggy Whitson) 등 다양한 우주인과 우주에서 함께 보낸 4월은 11년이 지난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그들 중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가진 개럿 레이즈먼(Garrett Reisman)을 이번 호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내 강연을 한 번이라도 들었던 사람이라면 개럿의 얼굴을 친근하게 느낄 것이다. 심지어 내 남편도 3월 초 개럿과 함께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이 두 번째인데, 자주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에요. 아내가 강연 때마다 보여주는 ‘플라이 미 투 더 문(Fly me to the moon)’ 노래 영상에 계셔서 그런지, 열 번도 더 만난 것 같다니까요.” 
동승한 우주인들과 함께 무중력 상태에서 노래를 하는 영상을 보면 오른쪽 아래에 개럿이 등장한다. 특유의 활짝 웃는 얼굴로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우주인 


NASA 출신인 개럿은 뛰어난 유머 감각과 사교성을 가진 우주인이었다. 덕분에 비행하기 전 러시아에서 훈련하는 동안 자주 만난 것도 아닌데, 우주에서 나흘간 지내면서 급속도로 친해졌다. 
개럿은 내가 국제우주정거장에 도착하자마자 내 손을 이끌고 어디론가 데려갔다. 나를 정거장 한 곳에 세워놓더니 다짜고짜 키를 물었다. “164cm.”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그럼 넌 1인치(2.54cm)가 자란거야”라고 말했다. 다른 미국 우주인들에 비해 키가 작은 편이었던 그는 “내가 이것 때문에 우주인이 된 거잖아”라며 농담도 했다.   
이후 키에 대한 이야기는 내 강연의 단골 에피소드가 됐다. 강연을 할 때마다 우주에 가면 어떤 신체 변화가 나타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개럿 덕분에 정확히 어느 정도의 변화가 일어났는지 말해줄 수 있었다. 비행 전부터 우주에 가면 키가 자란다는 점을 훈련을 통해 배우긴 했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임무에 포함되지 않은 신장 측정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우주인으로 버티게 해준 ‘긍정의 힘’

 
유머와 여유를 잃지 않는 긍정의 힘은 그가 우주인이 될 수 있었던, 그리고 우주인으로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하던 대학원생 시절 공학자도 우주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우주인에 지원했다가 시원하게 탈락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기계공학 분야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뒤, 미국 군수 및 우주산업 회사인 TRW에서 일하면서 1998년 우주인에 재도전했다. 
그는 우주인 선발의 마지막 면접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수십 명의 후보들이 모여 있는데, 아무리 봐도 본인이 그들보다 훨씬 나은 후보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면접관을 웃게 해야겠다는 작전을 짰다. 당시 면접관은 아폴로 16호 선장으로 달을 왕복한 전설적인 우주인 존 영(John Young)이었는데, 그가 이제까지 인터뷰가 어땠는지를 묻자 개럿은 이렇게 답했다. “지난 취직 면접 때보다는 나은 것 같아요. 그래도 이번엔 바지는 제대로 입고 왔거든요.”
면접장은 순간 웃음바다로 변했다. 실제로 그는 TRW에 취직하기 위한 마지막 면접에서 너무 긴장한 탓에 상의는 양복을 입고, 하의는 청바지를 입고 갔었다고 했다. 캘리포니아주의 지역 정서상 면접에서 청바지를 입은 것이 큰 문제가 되진 않았지만 아직도 당혹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며, 그래도 우주인 선발 면접에는 바지를 제대로 입고 가서 얼마나 다행이냐며, 그는 다시 이야기하면서도 꺼이꺼이 웃었다. 
최종 면접이라면 후보들 대부분의 능력이 비슷했을 텐데, 개럿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아폴로 우주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개럿 역시, 어떤 우주인은 다섯 번 이상 도전해서 겨우 선발되고 어떤 우주인은 한 번에 뽑히곤 하는데, 순수한 실력 차이라기보다는 면접관의 주관적인 생각이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에 동의했다. 
재도전 끝에 우주인에 선발됐지만 그의 첫 비행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8년 3월에야 가능했다. 10년이면 다른 우주인들이 평균적으로 걸린 시간보다 긴 편이다. 국제우주정거장 건설이 계획보다 늦어졌고, 2003년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귀환 도중 공중폭발한 사고로 한동안 미국 우주인의 우주 비행이 중단되는 등 외부적인 이유가 컸다. 기다리는 우주인 입장에서는 꽤 길고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개럿은 “10년 동안 많이 배우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며 특유의 긍정의 힘을 보여줬다. 
“첫 비행을 하지도 않았는데, 누군가 ‘우주는 어땠어요?’라고 묻는 거야. 그래서, ‘내 친구가 그러는데, 좋대요!’라고 대답했어. 우주인인데 우주에 안 가봤냐는 질문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말이야. 그런데 우주에 다녀온 뒤에는 이렇게 묻는 거야. ‘달에 가면 어때요?’ 그래서 또 ‘내 친구가 그러는데, 좋대요!’라고 말했어. 재밌는 건, 결국 달에 다녀온 우주인이 ‘달이 참 좋더라’라고 얘기하면 사람들은 ‘그래서 몇 번 갔다 왔는데요?’라고 묻는다는 거야.”

맵고 짠 한국 우주식품 사랑해 


“이 김치, 내가 너보다 먼저 먹어 봐도 될까?” 
“물론이지!”
개럿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처음으로 임무를 수행한 유대인 우주인이자, 처음으로 한국 우주식품을 먹은 우주인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흔히 한국 우주식품을 우주에서 가장 먼저 먹은 사람은 한국 우주인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와 나는 답을 그렇게 평범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개럿은 농담처럼 내가 한국 우주식량을 먹으려고 할 때마다 그만 먹고 좀 남겨두라고 했다. “너는 곧 지상으로 내려가면 온 세상의 김치를 모두 먹을 수 있지만, 우린 여기 몇 달 더 있어야 한다고!”라면서 말이다. 한국 음식이 맛있어서 들었던 타박이라 기분은 좋았다. 
최근에 그를 다시 만나 “그때 먹었던 한국 우주식품 생각나? 괜찮았어?”라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번에도 역시였다. “정말 좋았지! 너도 알잖아. 우주에서는 체액 이동으로 입맛도 없고 맛도 잘 느낄 수 없는데, 러시아나 미국 우주식에 비해 강한 맛의 한국 우주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스페이스X에서 민간 우주산업에 도전


2010년 두 번째 우주비행을 마치고, 2011년 개럿은 NASA 우주인에서 은퇴했다. 그리고 이후 7년간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에서 수석공학자로 일하며 유인 우주탐사 시 우주인의 안전과 임무를 확인하는 일을 맡았다. 
그는 2010년 두 번째 우주비행을 마칠 때쯤, 머지않아 우주왕복선이 은퇴하고 상업 우주분야의 붐이 시작될 것을 알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직접 스페이스X의 부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정부기관에서 오랫동안 일하던 사람이 일반 기업에서 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만류했다고 했다. 
그러나 개럿은 힘들지만 도전하는 마음으로 스페이스X로 이직했다. 2012년 민간 우주기업으로는 최초로 국제우주정거장에 우주선을 쏘아 보내고, 2015년과 2016년 로켓 1단의 부스터를 전 세계에서 최초로 지상과 해상 바지선에 착륙시키고, 2017년 1단 부스터를 최초로 재사용해 발사와 착륙을 성공시키는 등 스페이스X의 굵직한 우주 활동의 거의 모든 현장에 개럿이 있었다. 
그런 그가 최근에는 스페이스X를 떠나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교편을 잡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민간 우주기업들이 속속 생겨나고 자원이 몰리고 있어 앞으로 상업 우주 분야가 유망하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그에 맞는 인력을 키우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라 유인 우주비행 분야를 가르치는 교수직을 택했다.
그는 “유인 우주비행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마침 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하게 됐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의 말에서는 좀 더 큰 계획과 열정이 보였다. 그는 “과거에 비해 유인 우주비행 분야의 인력이 일할 곳이 많아졌지만, 유인 우주비행을 공부할 수 있는 교육과정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다”며 “학생들이 졸업한 뒤 곧바로 유인 우주비행 분야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둘째 딸이 태어났는데, 스페이스X에서 일할 때에는 너무 바빠서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없어,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좀 더 갖고 싶은 것도 학교로 가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첫째인 여덟 살짜리 아들 버스터는 요즘 열심히 태권도를 배우는 중이다. 개럿은 가끔 아들이 새로운 색깔의 띠를 얻기 위해 테스트를 받을 때 사진을 찍어 보내주기도 한다. 언젠가는 유단자인 나에게 도전할 날을 기대하라는 농담과 함께. 최근 개럿의 집에 초대돼 버스터를 만난 김에 태권도는 재밌느냐고 물었더니, 이제 파란 띠라며 자랑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여덟 살 꼬마였다. 
10대의 나를 만나면 가장 하고픈 말
“버스터가 만약 우주인이 되고 싶다고 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문득 궁금해졌다. 버스터는 실제로 개럿에게 가끔 우주인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하지만 개럿은 “아버지가 기계공학자였는데, 한 번도 그 분야로 관심을 가져보라고 등 떠밀지 않았다”며 “버스터에게도 무언가를 먼저 권하거나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들이 좋아하고 행복해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응원하고 싶다”며 “요즘 아이들은 기대치가 너무 높은 탓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우울해 하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학교에서 만난 한 학생을 예로 들었다. 어느 날 그 학생의 표정이 침울하고 근심에 차 있어서 “뭐가 그렇게 걱정이니?”라고 물었더니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없을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라고 대답을 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나 역시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본인의 생각이 바뀌면 세상이 다르게 보일 것이라는 점에 우리는 동의했다. 
“혹시 네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10대의 개럿을 만난다면 무슨 얘길 하고 싶을 것 같아?”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다. 역시 그 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음…. 넌 곧 타임머신을 타게 될 것이라고 말해줄까? (웃음) 농담이고, 모든 건 다 잘 될 테니까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할 것 같아. 계획한대로 일이 잘 안 돼도 그것이 완전히 끝은 아니라고 말이야. 10대의 개럿은 그 말을 절대로 못 알아듣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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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이소연 로프트 오비탈(Loft Orbital) 전략기획 및 국제협력 담당
  • 에디터

    이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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