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찾아오는 과학동아 마감. 고뇌 끝에 써내려 가는 원고. 이때 카페인 가득한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은 카타르시스를 주며 일에 동력을 부여합니다. 마감을 끝내고 돌아온 늦은 밤, 야식으로 시킨 달콤한 떡볶이와 기름진 치킨은 또 어떻게요? 마치 이 나라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과 같죠. 부담 없는 가격으로 얻는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었습니다! 아아, 그런데 기자가 사랑하는 음식이 더 이상 소소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따른 작황 부진, 밥상 가격까지 뒤흔들어
인플레이션은 화폐가치가 하락해 물건의 가격이 상승하는 경제 상태입니다(과학동아 2월호 참고). ‘애그플레이션’은 농업(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의 합성어죠. 곡물가격이 상승해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지난해부터 세계식량가격지수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기후변화. 최근 세계적인 곡물 생산·수출 지역에서 이상기후로 인한 작황 부진이 매우 심각합니다. 대표적으로 남미 페루 부근 동태평양에서는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현저히 낮아지는 라니냐 현상이 잦아졌습니다. 이로 인해 남미 일부 지역은 극심한 가뭄과 이례적 한파를 겪으며 작황에 적신호가 켜졌죠.
이 중 브라질은 세계 원두 생산량의 3분의 1가량을 담당합니다. 그런데 가뭄, 폭우 등의 이상기후가 반복되면서 2021년 브라질 커피 생산량은 전년 대비 22.6%가 감소했습니다. 이런 작황 문제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 등으로 국제 원두 가격도 지난해보다 두 배가량 상승했습니다.
문제는 원두 등 곡물 가격이 여전히 오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한국은 곡물수입 세계 7위국으로, 쌀을 제외한 곡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합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곡물 수급안정 사업·정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단 21%입니다. 주요 곡물인 밀, 옥수수, 콩의 자급률은 각각 0.5%, 0.7%, 6.6%입니다. 곡물 가격이 오르면 식용유, 옥수수유 등의 가격도 덩달아 오르죠.
밀 자급률 0.5% 한국, 단기 타격은 없으나….
밀의 상황이 가장 좋지 않습니다. 기후변화와 더불어 전쟁에 직격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밀 생산량은 중국, 인도, 러시아 순입니다. 전쟁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7위)는 밀 수출이 막혔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 밀 생산량 2위 국가인 인도의 밀 생산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구온난화로 121년 만의 폭염이 발생한 것이죠. 밀 수확이 힘들어졌고, 인도 정부는 5월 13일 돌연 밀 수출을 금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한국은 밀의 99.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주로 미국에서 밀 수입을 하지만, 미국 남서부 지역도 22년 넘게 가뭄이 이어지며 흉작이 들었습니다. 한국도 안심할 수 없는 것이죠.
다행히 한국 정부는 이번 인도 밀 수출 중단이 당장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다만 인도의 밀 수출 중단 정책이 장기화되면 국제 밀 수급 가격에 미칠 영향을 차치할 순 없다고 덧붙였죠. 자칫 밀떡, 빵, 라면과 같은 맛있는 식품들의 가격이 몽땅 오를 수 있다는 겁니다.
기자는 만성위염을 앓고 있는데요, 밀가루와 커피를 끊으라는 의사의 지시를 10년 넘게 외면해 왔습니다. 맛있으니까요. 도저히 이 둘을 끊을 수 없어 대신 병원을 끊었는데, 이제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게 될 것 같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