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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기증과 관련된 이야기는 주로 미담이다. 사고로 뇌사에 빠진 사람이 뇌사기증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 생명을 주고 떠났다거나, 유명 연예인이 사후 장기기증을 약속했다는 등의 이야기다. 분명 너무나 숭고한 일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다. 바로 건강한 몸을 열어 장기를 내어 준 ‘생존 장기기증자’다. 이들의 건강에 문제는 없는지, 윤리적 쟁점은 없는지 살펴봤다.
 

“살아있는 사람에서 장기를 떼어 환자에게 주는 것을 ‘생존 기증자 이식(Living Donor Transplantation)’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용어가 일본을 거쳐 들어오면서 ‘생체이식’이라고 번역됐어요. 실제 삶을 꾸려가는, 살아있는 주체인 생존 기증자를 감춰버리는 결과를 낳았죠.”

하대청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이 말했다. 과학사회학자인 그는 몇 년 전부터 국내 장기기증의 윤리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던 사람들이 오직 수혜자를 위해 큰 수술을 감내하는데, 정작 기증자는 수술 이후 삶의 질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생존자 기증이 압도적으로 많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KONOS)에 따르면, 2013년 한국에서 이뤄진 생존자 신장·간이식은 100만 명당 각각 20.48명, 16.06명을 기록했다. 미국(18.03명/0.79명)이나 스페인(8.1명/0.49명)과 비교해 훨씬 많다. 특히 생존자의 간이식은 전세계 수술건수 중 4분의 1이 한국에서 이뤄진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근본적으로는 뇌사자의 장기기증이 주요 선진국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13년 한국의 뇌사기증률은 100만 명당 8.44명으로 스페인(35.12명), 미국(25.99명), 이탈리아(22.23명), 영국(20.77명) 등에 비해 크게 낮았다. 남은 가족이 뇌사를 잘 인정하지 않고, 사후 신체 훼손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위급한 환자순으로 수혜를 받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위급한 환자들은 수 년씩 대기해야만 한다. 사실상 이식을 받을 길이 요원하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이 맞물리면서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가족, 친족 사이의 기증이 많이 이뤄진다. 2013년 국내 생존자 장기기증을 공여자와 수혜자 사이의 관계로 분류해 보면 부모, 배우자, 형제자매 등 8촌 이내 혈족이 1767건으로 전체(1835건)의 96.3%에 달했다. 3.7%만이 혈연관계가 아닌 타인의 기증(순수기증, 교환이식, 타인지정)이었다.


가족 사이의 기증… 완전히 자발적일까

“한국에는 가족에 대한 책임과 도의를 우선시하는 유교적 풍토가 사회 전반에 깔려 있어요. 그렇다 보니 자녀가 부모에게 장기를 기증하는 것을 당연하고 정당하게 간주하는 경향이 있죠. 기증 동의 절차가 완전히 자율적으로 이뤄진다고 믿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생존 장기기증은 후유증 등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된다는 전제 하에, 동의능력이 있다고 검증된 사람이 완전히 자율적으로 동의해야만 정당성을 얻는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하 장기이식법)’ 제11조는 16세 미만이거나 의약품에 중독된 사람, 또는 정신질환자·지적장애인으로부터 장기를 적출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동의 절차를 돕는 사회복지사는 기증자의 의도가 순수한지, 자발적으로 동의가 이뤄지는지 등을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 의뢰로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이 조사한 ‘장기등기증자 차별·불이익 현황 및 개선방안(2012)’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는 생존 기증자의 동의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기증 전 정신적 평가 과정이 없고, 생존 장기 기증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독립된 기증자 권익보호자(Independent Donor Advocate)’ 제도도 전무하다. 무엇보다 96명의 기증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9명(9.4%)이 “장기기증 결정 과정에서 압력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하 연구원은 “기증 예정자가 기증을 거부했을 때 외국은 이를 의학적 소견으로 바꿔 환자에게 전달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그대로 통보한다”며 “엄청난 비난을 각오하지 않는 이상, 한국에서 가족 사이의 기증을 거부하긴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가족 내 서열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이 기증을 하게 된다는 2차 문제가 생긴다. 하 연구원은 “결혼 적령기를 넘긴 미취업 여성이나 중년 여성이 자주 기증을 권유받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결정 과정에서 압력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한 9명 중 7명이 여성이었다. 남자 59명과 여자 3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였다.


 

기증자가 겪을 후유증도 문제

기증자가 겪는 후유증도 문제다. 2011년 발표된 ‘생체부분 간이식(LDLT) 기증자의 경험’이라는 한양대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정선주)에는 간기증자 10명의 목소리가 생생히 기록돼 있다. 수술 직후 예상보다 훨씬 심한 통증을 겪었거나 소화장애, 복통, 피로, 식욕감퇴, 배변장애 등 후유증으로 병원을 방문하거나 심한 경우 직장을 그만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고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의학적으로는’ 신장, 간, 골수 등은 일부를 떼어내더라도 건강에 큰 영향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증언자 대부분은 의사로부터 수술 후 14일이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실제로 수술 후 기증자들의 간수치(간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지 알 수 있는 수치)는 대개 정상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왜 고통을 느끼는 기증자가 있는 걸까.

관련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에 현재로선 추정만 가능하다. 미국의 의사인 아툴 가완디는 저서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에서 “의학은 불완전한 과학이며, 부단히 변화하는 지식, 불확실한 정보,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인간들의 모험이며, 목숨을 건 줄타기”라고 밝혔다. 그의 관점으로 봤을 때, 간의 복잡한 기능 중 우리가 아직 모르는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후유증이 생기는 것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친족 사이의 이식이 많은 한국 특성상 후유증을 입밖에 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자칫 가족 간 불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국은 외국에 비해 생존 기증자의 건강 관리나 후유증에 대한 추적 관찰 제도가 미흡하다. 기증자에게 합병증이 생겼을 때 치료와 보상이 필수지만 현행법에는 관련 규정이 없다.

결국 기증자는 어떤 후유증을 겪을지, 그에 대한 치료는 적절히 받을 수 있는지 등 꼭 알아야 할 정보를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기증을 동의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국의 생존 기증자 수는 매년 최대치를 경신해 2015년에는 1929명을 기록했다. 과연 30~40년 뒤 이들의 건강은 어떤 상태일까.


‘어린 사람 장기를 나이 든 사람에게’ 도 문제

한국의 이 같은 특수 상황이 정점으로 치닫는 사례는 바로 미성년자의 장기 기증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뤄지는 생존자 간 이식 중 약 8%는 만 18세 미만 미성년자의 기증이다(2010~2013년).

현재 장기이식법에는 미성년자 기증을 친족 사이의 이식으로만 한정하고 있고, 16세 이상 미성년자의 장기와, 16세 미만 미성년자의 골수(골수이식은 장기이식보다 후유증이 훨씬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를 적출하려는 경우에는 본인과 그 부모의 동의를 함께 받도록 하고 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독일 등 대부분의 선진국의 이식법은 미성년자의 기증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주호노 경희대 법대 교수는 2012년 발표한 논문 ‘생자기증에 관한 규정과 쟁점’에서 “진의에 기한 승낙은  미성년자도 가능하므로 미성년자에게도 장기기증능력을 인정하는 장기이식법의 입법태도는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며 “그러나 독일의 이식법이 미성년자를 보호하기 위해 미성년자의 기증을 처음부터 금지하고 있는 취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 연구원은 “이 같은 문제들에 대해 우리 의료계와 정부가 책임 있게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명윤리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보통 외국 사례를 참조하잖아요. 그런데 생존자 이식, 특히 생존자의 간이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이뤄져요. 결국 우리가 나서서 주체적으로 연구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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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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