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에서부터 물독 뚝배기 항아리에 이르기까지 옹기는 우리네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돼 이용돼 왔다. 좋은 재료에 전통기법을 써서 빚어진 옹기는 선조들의 경험에서 우러난 과학 지혜를 전해주고 있다.
예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맑은 물이라도 정화시켜가면서 마시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식생활 면에서도 세계 어느 민족에 비교되지 않는 발효식품을 개발해냈다. 세계에 자랑할 수 었는 이상적인 발효식품을 우리 민족이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말할 나위 없이 발효에 적절한 시설인 옹기가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옹기는 신석기 시대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발전해온 세계에서 찾아보기 드문 발효식기다. 장독대에 가지런히 진열된 커다란 독을 비롯, 항아리와 단지에 이르기까지 저장과 발효기구로 쓰여졌다.
또 한약을 달이는 약탕관, 된장찌게를 맛좋게 끓여주는 뚝배기, 관혼상제에 빠져서는 안될 약주 주조용기, 맛 좋은 김치 깍두기 짠지와 동치미 그릇, 정화기능을 갖고 있는 물독 등이 모두 생활옹기다.
가가호호 활용돼온 '숨쉬는 그릇'
일반적으로 '숨쉬는 그릇'이라 불렸던 옹기는 현대에 들어와 더욱 그 과학적 진가를 인정받고 있다. 비과학자로서 옹기점에서 종사하는 옹기장이가 생산한 옹기에 과학적인 요인이 풍부히 숨쉬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옹기는 적어도 1천2백-1천3백℃라는 높은 온도에서 구워지므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우리나라의 청자기가 구워지는 1천2백50℃보다 어떤 경우는 더 높은 온도에서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
옹기가 필터 작용을 하며 내용물을 정화시켜 신선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옹기벽 속에서 8백℃ 이상에서만 나타나는 루사이트(leucite)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국립중앙과학관 학술총서 '옹기' 편에 따르면 옹기를 굽는 과정에서 고령토(${Al}_{2}$${O}_{3}$·${SiO}_{2}$·${2H}_{2}$O)가 루사이트(${K}_{2}$O·${Al}_{2}$${O}_{3}$· ${4SiO}_{2}$)화된다는 점이 편광현미경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루사이트 현상은 옹기 기벽내에 함유돼 있던 결정수가 높은 온도로 가열됨에 따라 빠져나가면서 기공이 생성되는 것이다.
옹기벽 자체가 스펀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옹기 밖 공기와 옹기 내부 공기가 순환작용을 함에 따라 옹기는 그릇내 노폐물을 그릇 밖으로 노출할 때 필터 역할과 동시에 물을 오래도록 보존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해 생명력이 있는 물을 생성하는 정수기 역할을 옹기가 한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이 고온에 구워진 옹기는 현대 과학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물 공해에 시달리는 현대병에 한 방책으로 제시될 수 있다. 정수시설로 예부터 널리 이용돼 온 용기로는 고려시대 중국인 서긍(徐兢)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수록된 자료 중 수옹도기(水甕陶器)의 시설과 규모 소개가 있다.
정수시설인 동시에 발효 및 저장시설로 널리 쓰였던 옹기는 지역에 따라 모양새를 달리하고 있다. 이또한 우리 선조들이 자연과학을 충분히 이해하여 옹기를 발효 및 저장용기로 잘 이용했음을 보여준다.
한국 중부 이북의 옹기의 아구리(口徑)는 넓은 반면 배부분이 부르지 않고 키가 높은 모습인 것이 특징이다. 호남지역의 옹기는 아구리가 좁고 어깨가 매우 많이 퍼져 있는 반면 밑이 아구리의 직경과 흡사하다.
영남지역 옹기는 아구리가 좁은 반면 어깨로부터 배까지 점차적으로 팽창돼 수박동이 모습을 취한 것이 한 특징이다. 이상과 같이 남한의 세 지역을 구분하듯 옹기의 모양새가 지형지세 및 환경과 기후조건에 따라 형성되고 있는 점이 특징으로 보인다. 즉 중부지역은 일조량과 기온이 높지 못하여 장을 담글 때 자외선을 중분히 쪼이기 위해 아구리를 벌렸으며 영호남지역은 중부지역에 비해 기온이 높고 일조량이 많아 아구리가 넓으면 수분증발이 많아진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아구리를 좁게 하고 대신 어깨를 넓게 함으로써 복사열을 보다 많이 받아들여 내용물이 자체 순환교류 작용을 하면서 좁은 아구리를 통해 자외선을 충분히 받도록 고안된 것으로 믿어진다.
그러므로 영호남지역의 그릇모양이 중부지역 옹기보다 좋다 해도 이것으로 중부지역에서 장을 담근다면 영호남 지역에서의 장맛과 같을 수 없고 장의 신선도도 낮을 것이다.
신석기 시대 이래 활용
옹기가 저장 및 발효용기로 쓰였다는 문헌자료는 삼국시대의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지위지동이전(三國志魏志東夷傳)고구려조에 의할 것 같으면 '집집마다 작은 창고를 갖추고 있는데 이름을 부경(浮京)이라 부르고 있다. 고구려 사람들은 매우 청결하여 잘 저장된 발효식품을 만들어 먹기를 즐긴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같은 시설은 한국에서는 경상북도 봉화 지역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고구려의 남진정책으로 영주까지 고구려의 세력이 미쳤을 때의 유산인 듯하다. 또한 백제 2대 다루왕(多婁王)조에 따르면 '가을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에게 술 빚는 것을 금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신라에 있어서는 31대 신무왕조(神武王條)에 왕이 왕비를 맞이하는데 신부집에 보내는 명세에 쌀 술 기름 꿀 간장 포 젓갈 등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삼국통일 이전부터 저장구와 발효용기인 옹기를 사용했음을 엿볼수 있다.
고려시대 기록으로는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에 수옹도기의 규모가 높이 6자, 너비4자5치, 용량은 3섬2대가 든다고 하였다. 이같이 고려시대에 특별히 식수 저장 시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옹기에 대한 자료가 비교적 많이 소개되고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경상도 초계군과 진주목 등 세군데에 황옹(黄甕)을 굽는 가마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초기에 항아리와 단지 같은 규모가 적은 것들을 많이 만든 것 같다.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 공전(工典) 외공장(外工匠)조에 충청도 임주(林州)에 황옹장(黄甕匠) 한 사람이 있으며 공전(工典) 경공장(京工匠)조 본조 봉상시(奉尙侍) 등 14개 기관에 옹장이 1백4명에 각각 2명씩 뒷일꾼을 배치했다는 자료가 있다. 이같은 인원구성은 현재의 옹기점도 유사하다.
옹기는 임진왜란 이후 더욱 발전이 거듭되고 있었음을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옹기는 일상생활에서 가장 요긴하게 쓰이는 큰 질그릇이라고 쓰임새에 대해 밝히고 있다.
옹기가 우리 민족에게 널리 쓰였던 만큼 옹기생산소인 옹기점이 적어도 1개군에 하나씩은 있던 시절도 있었다. 가마시설로는 통가마인 뺄불통가마를 비롯하여 칸가마가 있다. 또한 세계 유일의 조대불통가마가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동성리에 있는데, 이는 이한수(李漢洙)씨가 경영하는 (ㄱ)자 가마다.
옹기제작 방식은 대체로 4종류가 있다. 타래쌓기 또아리쌓기 쓰리쌓기 채바퀴타래쌓기 등이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채바퀴타래쌓기는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한 기법으로 한국 유일이라 하겠다. 또 옹기 만드는 기구인 도개와 수레를 가지고 최대 키가 1백50㎝-1백70㎝에 이르는 큰 옹기를 단숨에 완성시킬 수 있는 기술자가 우리에게 있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색깔 광택 좋지만 몸에 해로운 광명단 옹기
이상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아득한 옛날부터 옹기를 발효용기이자 정화수 용기로 개발하여 이용했다. 그 유품이 바로 소박하고 보잘 것 없는 옹기인 것이다.
그러나 근래 들어 옹기는 서구의 화학공업 문화와 만나면서 위기를 맞고 있는 느낌이다. 양심없는 악덕 산업자에 의해 질이 낮고 건강에 해로운 공해옹기가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1960년대 이후 공해 중금속물질인 광명단(光明丹)이 재래식 약토잿물 대신 급격히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옹기에 유해성을 안겨주는 유연유(有鉛釉)인 광명단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자.
옹기의 바탕흙인 질의 일반적인 화학조성은 ${SiO}_{2}$(68-70%), ${Al}_{2}$${O}_{3}$(22-24%), CaO + 알칼리산화물(6-8%)로 이루어져 있다. 광물 조성은 카울링 광물 53-55%, 석염40-42%, 장석 및 운모광물 3-5%이다.
이상과 같은 조성물은 1천2백℃-1천3백℃에서 소결하여 내화도 약 SK30(1천6백70℃) 이 되는 소지를 얻는다고 연세대 화학과 이기수 교수는 보고하고 있다(1991년).
재래식 약토잿물은 유기물 속에서 흙이 산화된 것에 잿물 30%가량을 섞은 것이다. 옹기 표면에 재래식 약토잿물을 입힌 옹기는 대략 1천℃-1천3백℃에 구어냈다. 약토잿물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식염유(食鹽釉)를 쓰는 경우도 있다. 약토갯물이 녹을 때 식염을 뿌려주면 온도가 올라가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반면 산화납이 주성분인 광명단(${Pb}_{3}$${O}_{3}$)은 훨씬 낮은 온도인 6백50℃-8백50℃에서 구워진다. 색상과 광택이 뛰어나게 좋은 광명단은 8백50℃가 넘으면 그 색감이 타 없어져 효과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광명단 약토잿물은 광명단 약 40-50%, 약토 약 50%, 재 약 10%를 배합하여 만든다. 사용된 유약의 숙성온도는 약1천50℃다. 그러나 광명단의 주성분은 사산화납(${Pb}_{3}$${O}_{4}$)으로 이는 5백50℃에서 분해되며, 제1산 화납(PbO)으로 되는 융점은 8백80℃가 된다.
즉 5백50℃-8백80℃ 사이에 광명단의 발색이 가장 좋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바닥흙이 가장 잘 익는 온도는 1천2백-1천3백℃이다. 결국 바닥흙이 설익은 상태에서 광명단이 녹는 것이다. 그렇다면 옹기의 견고성이란 점에서 광명단 옹기의 결함이 짐작된다.
뿐만 아니라 광명단 유약은 우리 발효식품이 주로 산성이기 때문에 자연히 산에 용해돼 음식물 속으로 침투되게 된다. 침투된 유약은 인체의 동맥에 중금속 형태로 유입돼 동맥경화증이나 고혈압을 유발한다는 과학자들의 학술논문이 많이 나와 있다.
국민건강과 보건에 해를 주는 옹기가 전국 옹기점을 메우고 있는 실정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독성이 없는 재래식 약토잿물을 입힌 우리 전통옹기 사용을 권장해야 한다. 전국 어디를 막론하고 옹기를 갖추지 않은 가정이 없다. 전국민이 애용하고 있는 옹기가 국민 보건위생에 해를 끼친다고 하면 마땅히 전국민들이 광명단 옹기 생산을 막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옹기점에서 사용되는 유약(釉藥)은 납유(鉛釉)인 광명단이다. 근년에는 무광택 광명단을 사용하여 소비자들의 눈을 속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사라져가는 재래식 옹기가마와 잿물기법
현재 전국에 산재해 있는 옹기점의 대부분은 개량식 옹기가마를 사용한다. 재래식 전통옹기가마를 사용하는 옹기점은 오직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동성리의 성촌옹기점뿐이다. 여기서는 약토잿물도 전통적인 기법을 따르고 있다.
그동안 줄곧 재래식 통가마를 사용하던 전라남도 보성군 미력면 도계리 옹기점은 지난 해부터 개량식 철판기름가마를 사용하기 시작하는 동시에 화도(火度)도 낮게 굽고 있다. 이렇게 구으면 그릇모양은 좋을지 몰라도 화도가 낮으므로 그릇의 질도 불량하다고 보는 편이 좋다고 생각된다.
본래 보성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옹기점이니만큼 자부심을 갖고 모범된 전통옹기를 생산하려 노력함이 마땅하다. 그렇지 않다면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다.
옹기가마에 철판가마인 기름가마가 출현한 것은 1992년부터다. 터널가마는 1980년대 후반 인천지방을 중심으로 점차 개량돼 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옹기 성형에 있어서는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옹기점 대부분이 석고틀 옹기를 만들기 때문에 생산량은 많으나 옹기의 질이 낮아 파손되는 경향이 많다.
질 좋고 무공해인 정수용 옹기를 개발하고 양질의 발효용 옹기를 장려하기 위해서는 전통옹기 생산에 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건강한 국민과 국가를 기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