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사람들에게 IT 계열 종사자의 이미지란 어떤 걸까. 보편적이며 총체적인 인상 말이다. 눈을 감고 프로그램과 씨름 중인 30대 개발자의 모습을 한번 떠올려 보자. 그를 그저 A라 불러도 무방하겠다. 우선 A의 골격을 그려 보자. 근육이라고는 없는 팔다리, 굽은 등, 거북목. A의 행색은 어떨까. 7년 된 남청색 체크 무늬 남방 위에 걸친 8년 된 검정색 후드 집업, 덥수룩한 머리카락 아래엔 제작 연도를 알 수 없는 안경테. 그렇다고 A가 유행에 무심한 건 아니다. A의 SNS 팔로워는 2만 2000명이 넘고 그가 쓰는 전자기기와 운동화만큼은 최신 경향에 부합한다. 이제 A 뒤에 서 보자. 각종 초콜릿과 에너지 바 껍질이 차지한 책상. 숫자와 영어가 가득한 여러 개의 모니터. 주스를 마시던 A가 갑자기 동작을 멈춘다. A는 입을 틀어막고 엄청난 기세로 키보드를 두드린다.

“찾았다! 버그 원인을 찾았어!”

찾긴 뭘 찾아? 나는 A의 형상을 부수고 의자를 당겨 앉았다.

“스트레스가 심할 땐 자신을 전지적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세요. 처음 보는 사람인 듯 멀리서 가만히 지켜보는 거예요.”

404번쯤 들은 말. 어차피 깊이나 전문성은 떨어진다. 휴게실의 상담용 AI, 딥휴먼 니키는 매번 엇비슷한 조언을 하면서도 매번 사려 깊은 표정을 짓는다. 니키의 말대로 나를 멀찍이서 쳐다봐도 별 도움이 된 적은 없다. 단 한 번을 빼곤.

A는 가상의 인물도 익명도 아니다. A는 애슐리, 내 이름의 앞머리다. 내가 떠올린 IT 계열 종사자의 이미지란 세상의 편견이지만, 내 모습은 그 편견과 똑같다. 안타깝지만 우리 개발 3팀의 과반수도 그렇다. 5명 중 3명의 꼴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도대체 국립 민족문화 복원 개발팀에서 왜 영어 이름을 쓰는 거예요? 이런 문화 사라진 지가 언젠데. 명함을 보세요. 너무 기괴해요.”

내 푸념에 개발 1팀장은 무덤덤하게 답했다.

“팀도 영어인데요. 총괄 개발팀장님인 스텔라가 쓰라면 써야죠.”

“쓰라고 하면 쓰는 게 수평적인 조직 문화예요?”

“여긴 국가 기관이잖아요. 복고로 돌아가라면 돌아가야지 수가 있나요.”

케케묵은 영어 호명 운동은 우리 팀 내에서 줄곧 떠밀리다 지난해에 결국 받아들여졌다. 찬성 3표, 반대 2표. 나는 나와 달리 마지막까지 거부 의사를 밝힌 두 명의 팀원을, 그들이 꼿꼿이 들어 올린 손을 기억했다. 하지만 호칭 변경에 동의한 이도 동의하지 않은 이도 명함은 사용하지 않았다. 개발자들은 생각보다 내재율, 일관성의 미학에 민감한 법이니까.

 

“비타민D 섭취 외에도 규칙적인 수면 시간을 확보하시면 좋겠어요.”

이번 주에도 니키는 내게 불가능한 임무를 추가한다. 프로그래머의 생활은 사람들의 짐작과 달리 경이와 영감으로 이뤄져 있지 않다. 그러니 미디어에서 우리 업계 사람들을 천재 해커나 못 말리는 괴짜로 그만 찍어내면 좋겠다. 이 일엔 무수한 시간과 지독한 근성이 필요할 뿐이다. 개발에 들인 노력과 결과가 비례하는 일도 드물다. 그저 업무가 고단한 문화재청 공무원 A. 니키가 알아야 할 내 정보는 여기까지다.

국립 민족문화 작자복원 개발 3팀 팀장. 장호연. 36세. 중도 좌파. 레즈비언. 무교. 총괄 개발팀장 스텔라와 5개월째 교제 중. 51세의 스텔라는 남편과 별거하며 1남 양육 중. 안 만들어지는 게 나았을 영화들의 도입부엔 대체로 이런 식의 무지막지한 자기소개가 나온다.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할 정보가 우격다짐으로 쏟아지는 것이다. 어쩌라는 거지. 이러면 보는 사람은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될 뿐이다. 작법의 캐논,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유구한 격언이 언제나 옳은 건 아니지만 많은 경우 옳다. 나 역시 니키에게 이따위 사생활을 털어놓을 생각은 없다. AI 니키는 AI 니키의 편향을 유지하며 나를 대하는 게 맞다.

휴게실을 나선 나는 아무도 없는 복도 소파에 앉아본다. 바뀐 쿠션의 재질이 나쁘지 않다. 맞은편 새 그림도 마음에 든다. 어깨가 넓고 턱이 다부진 여성의 초상화다. 몸을 일으켜 액자 가까이 가니 사인이 없다. 액자 아래 제목, 재료, 크기, 작가 이름도 붙어 있지 않다. 나는 웃고 있는 여자에게 조용히 중얼거린다.

“격주로 스텔라의 집에 들러, 식사를 준비하고 그의 어린 아들 드레이크에게 코딩의 기초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어요. 혼자 사는 우리 엄마가 알면 속이 뒤집히겠죠?”

그림 속 여자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 같다.

‘조심스럽지만, 나이 많은 고위직 여성에게 끌린다는 것은 일종의 콤플렉스일 수 있어요. 발현의 이면엔 언제나 내핵이 있고요. 괜찮으시다면 관람자 님의 인생에서 인상적인 일화를 몇 개 들려주실래요?’

“왜요? 저는 나이 많은 여자들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고 나서 나이를 알게 되는 건데요.”

‘네네, 보통 그렇게 말씀하시죠.’

나는 고개를 젖힌 채 복도 천장을 노려보았다. 똑똑하고 젊은 여자가 자기 팔자를 꼬는 이야기는 널리고 널렸다. 나 역시 그 사례에 속한다. 그러니 그림 속 여자에게라도 내 신세를 늘어놓을 순 없는 노릇이다. 나도 그 고행의 대열에 들어간다고, 시간이 갈수록 내게 함부로 구는 상사와 사귀고 있다고, 위계가 있는 연애의 전형성과 그 기승전결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고. 복도를 빠져나온 나는 1층 카페에 들러 당근 주스를 주문한다.

“매장 밖에서 마시려고요. 이 텀블러에 담아주세요.”

점원이 미소를 짓는다. 점원을 따라 웃는 나는 유순하고 무해한 여자로 보일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뭘 하고 돌아다니는지 알 길이 없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사고와 언어는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이 실제로 움직인 경로가 그를 말해줄 뿐이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은 1949년 미국 시카고에서 시작됐다. 90년 전에 탄생한, 나이 든 기술이다. 감마선, 적외선, 엑스선 등을 활용한 기존의 측정 기법으로는 그림의 위작 여부와 제작연대를 추정할 수 있었다. 그림 시료 일부에서 탄소14의 비율을 알아내면 가능했다. 탄소14는 다른 탄소와 달리 일정한 속도로 천천히 붕괴하기 때문이다. 방사선실에 들어간 그림의 향방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관련 종사자나 학계 사람들 외에 많지 않았다. 이 당시엔 말이다.

2030년 후반, 인도 구르가온에서 양자 컴퓨터가 만들어지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양자 컴퓨터는 여전히 억만장자 CEO나 IT 혁명을 선도한 기업가를 제외하고는 개인이 보유하기도, 통제하기도 어려운 초대형 기기다. 양자 컴퓨터 기반의 AI는 국가 기관 중에서도 국방부나 기재부같이 큰 조직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늦게나마 내가 속한 문체부에도 도입됐다. AI 활용을 두고 문화예술 관련 각 부처에서 내놓는 아이디어는 비슷했다.

“민간 기업과 산업체들이 AR, VR 기술을 선점하기 전에 국가 차원에서 먼저 나서야 합니다.”

그들은 모든 콘텐츠를 게임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증강현실 쥐불놀이, 가상현실 택견. 짐작했던 바이지만, 진짜 게임이 다일까. 게다가 투호나 활쏘기는 연결 장비 없이 직접 하는 편이 더 수월하지 않나. 내가 알기로 아이디어 제안자 중에 게임을 좋아하는 이들은 없다. 아, 고전 게임이 하나 있지. 효과적인 쌍방향 소통. 혁신적인 생산성. 눈부신 도약. 양자역학의 새 문이 열려도 공무원들이 좋아하는 전통 놀이는 이런 어구 배치다.

나는 그림이 그려진 시기와 지역을 밝혀내던 개발 3팀 업무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갖고 있던 도구가 손가락만 한 핀셋이었다면 이제 집채만 한 포클레인을 얻게 된 셈이니까. 부서에 들어온 원통형 양자 스캐너는 MRI 2000대를 압축한 기구라고 할 수 있었다. 과장을 좀 보태면 세포 하나하나까지 식별이 되는 수준이다. 400년 넘게 걸릴 연산이 4분 안에 끝난다. 탄소, 물감, 붓털 등의 잔존 재료 그러니까 그림에 희뿌옇게 남은 흔적을 힘겹게 채집하던 시기가 지났다는 말, 묘하게 나른했던 그림과의 추격전이 끝났다는 소리다. 이제 우리 팀은 그림이 지닌 이야기에 짓눌릴 수 있었다. 무섭게 쌓일 자료를 구경만 한다면 곤란했다.

“1897년, 충남 부여, 제작 기간 3개월. 베타 테스트에서 출처가 이 정도까지 나오는데요.”

장갑 낀 손으로 황톳빛 그림 귀퉁이를 집은 팀원이 말했다. 하지만 이 정보엔 뭔가가 빠져 있었다. 정확한 제작연대, 정확한 제작장소. 여기에 더할 수 있는 게 분명 있었다. 유추가 제대로 된다면 유추한 사실들을 하나로 엮어봐야 한다. 촬영한 단층을 쌓아 그 형상을 조망해야 한다. 테스트로 얻어낸 활자는 건조하고 밋밋했다. 결정적으로 방향과 서사가 없었다.

“자신을 전지적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세요. 처음 보는 사람인 듯 멀리서 가만히 지켜보는 거예요.”

니키가 몇 해째, 누구에게나 권했던 정신 건강 지키기 요령은 뜻밖에도 업무를 위한 말이 됐다. 나는 그림에서 몇 걸음 물러나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림이 처음으로 본 사람, 태어나 자랄 때까지 가장 많이 만난 사람, 즉 그림의 첫 관객인 화가를.

스캐너가 추적한 방대한 결과 중에서 우선 붓질의 특징만 분석해 본다고 하자. 붓질을 분석하면 습관이 도출되고, 습관이 도출되면 자세가 도출되고, 자세가 도출되면 근골격과 체형이 도출된다. 그걸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 움직이는 이미지로 드러내면 어떨까. 나는 그림의 작자를 홀로그램으로 구현하는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그림 뒤편에 설치한 막 위로 원작자가 나타나는 모습은 활자보다 인상적일 것이다. 화가를 불러낼 수 있다면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교육 콘텐츠를 확장할 수도, 일반교양이든 전공 심화든 전문가 연계 프로그램을 구상할 수도 있다. 어쨌든 양자 컴퓨터로 모두가 게임을 만드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접근 방법을 바꿔보면 어때요? 작품이 아닌 작가를 복원하는 거예요. 화폭이 어떻게 채워졌는지 묻기보다 화폭을 누가 어떻게 채워나갔는지 묻는 거죠.”

팀원들이 일제히 입을 벌렸다. 하품을 하느라 벌어진 입이었다.

“좀 들어 봐요. 양자 스캐너를 사용하면 작품들의 출처를 전보다 정확히 찾아낼 수 있잖아요. 붓질의 횟수, 강도, 속도, 평균 각도, 평균 궤적의 길이와 폭 같은 정보가 낱낱이 드러날 테니까. 그럼 스캔한 데이터로 화가도 그릴 수 있을 거예요.”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 런던에서 윌리 찾기가 훨씬 빨라지니까요?”

팀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레이첼이 되물었다. 두 비유를 이해하지 못한 막내 팀원 앤디가 어깨를 들어 올리고 물었다.

“그림 말고 그림의 엄마를 찾자는 건가요?”

“김서방도 윌리도 엄마도 다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맞아요. 이제 그림을 보면, 그림을 그린 사람까지 드러낼 수 있다는 뜻이니까. 결론은 우리가 스캔한 데이터로 홀로그램을 만들자는 얘기죠.”

큰 타이틀은 FA(Find Author), 정확한 프로그램 이름은 WDI(who drew it). 개발 3팀은 9개월 전부터 그림의 기원을 상세히 밝히는 기술을 보완해나갔다. 홀로그램 빌더는 양자 스캐너보다 에너지를 덜 잡아먹었고 외부 인력 없이 우리 팀 기술로도 개발할 수 있었다. 나와 팀원들은 스캐너와 빌더 사이를 잇는 세부 프로그램을 더 고안했다.

“스캐너가 그림을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읽은 걸 이야기로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해요.”

“데이터를 인터넷 정보망과 연동시키죠. 자동 검색 후 기점이 될만한 내용을 추출해 재배치하는 거예요. 최대한 오염되지 않은 경로로, 신뢰도가 높은 순서로.”

“검색 결과를 연속 검증하는 프로그램도 추가하기로 해요. 스캐너가 그림의 뿌리를 무작정 파헤쳐 나갔다면 우리는 그걸 추리고 솎아내야죠.”

“홀로그램 자막과 수어 화면 비율을 정하고 실시간 음성 출력 기능도 얹어야 해요.”

“스피커 목소리는 니키 어때요?”

그림에 입을 만들고 거기서 나온 말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일, 개발 3팀의 새 업무는 차츰 촘촘한 시스템을 갖춰갔다. 얼마 후 우리가 공개한 프로그램으로 부서 이름이 바뀌었다. 국립 민족문화 복원 개발팀에서 국립 민족문화 작자복원 개발팀으로. 두 글자를 더 끼워 넣자고 말한 건 스텔라였다.

 

스텔라는 FA 최종 버전 발표일에도 늦게 도착했다. 나는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총괄 개발팀장을 스텔라로 불렀다. 계속 부르다 보니 본명 서정보다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스텔라를 스텔라라고 부르면 투피스 위의 얼굴이 지워지고 그 자리에 정말 거대한 항성이 보였다. 스텔라는 어원 그대로 별, 아름다운 별 같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설수록 숨을 쉴 수 없었다. 다른 존재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라는 생물은 생존하기 어려웠다. 너무 뜨겁고, 너무 추웠다. 밤낮으로 자외선과 방사선이 뿜어져 나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둘이 우주를 공전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두어 달 만에 나 홀로 같은 자리를 돌고 있었다. 별은 멀리서 봤을 때만 좋았다.

스텔라의 입에서는 신기할 정도로 뻔한 말이 이어졌다. 자칫하면 아들이 눈치챌 것 같다는 소리,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는 일이 늘 신중해야 한다는 훈계, 매사 조심해서 나쁠 게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는 스텔라의 턱을 잡고 눈을 응시했다.

“나랑 살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

“점점 버릇이 없어지네. 다그치지 말고 생각할 시간을 줘야지.”

스텔라가 지난 9개월 동안 개발 3팀에 방문한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스텔라는 이미 통과된 기획서를 알기 쉽게 수정해 제출하라고 요구했지만, 나는 그가 최종 기획서를 한 글자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5번째로 내민 마지막 기획서와 4번째 기획서의 차이는 편집 방식뿐이었으니까. 나를 밀어내고 피하는 이유도 초라했다. 스텔라는 전남편과 재결합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누나, 아빠가 집에 올 거래요. 출장이 끝났대요.”

드레이크에게 듣지 않아도 단서는 많았다. 자동차 내비게이션 기록, 인터넷 검색 내역, 마트 전자 영수증. 스텔라는 업무에도, 누군가와 작별하는 일에도 도통 성의가 없었다.

“준비한 프로그램을 보여주세요. 시간이 없으니 중요한 구간만.”

20분 넘게 기다린 팀원들 앞에서 스텔라는 태평히 말했다. 나는 눈썹을 한번 들어 올린 후 리모컨을 눌렀다. 스캐너의 녹색 광선이 그림을 찬찬히 훑어내렸다. 레이저가 비추는 그림은 호젓한 강가 풍경이었다. 잠시 후 그림 뒤의 세로 97㎝, 가로 103.3㎝ 천으로 한 남자가 나타났다. 해상도는 아주 뛰어나지 않았지만, 남자의 몸과 동세는 잘 드러났다. 담배를 문 그는 키가 매우 크고 척추가 왼편으로 약간 쏠려 있었다. 스피커로 니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그림은 1983년 경기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 부근에서 그려졌습니다. 화폭에 남은 주재료에서 위치를 찾아냈어요. 주상절리에서 떨어져 나온 현무암, 쏘가리 뼛가루가 든 물로요. 천에 밴 미량의 유전자 성분으로는 원작자의 골격과 체형을 구현했습니다. 이 사람은 채석장에서 일했고 몸엔 급성폐렴을 앓았던 흔적이 있습니다. 남자가 그림을 그린 시기는 44세의 봄입니다.”

“잠깐. 그러니까 그림에 섞인 돌, 흙, 물, 유전자 성분 분석으로 이게 가능하다고? 애슐리, 좀 쉽게 말해 봐요.”

“여기서 더 쉽게요? 최종본 대상층은 15세 이상으로 설정했는데요.”

스텔라는 대답 없이, 담배를 태우는 남자를 골똘히 지켜봤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 설명을 다 듣지 않은 채 손을 휘저었다.

“그림 뒤의 천을 더 크게 만들어야겠어요. 싸구려 스피커도 좀 바꾸고.”

이튿날 스텔라는 내게 그림 한 장을 내밀었다. 색연필로 대충 그린 듯 뿌옇고 맥이 없는 자화상이었다. 스캔이 끝나갈 즈음, 그림 뒤의 천에는 드레이크와 닮은 아이가 나타났다. 아이는 엎드린 자세로 색연필을 쥐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둥 마는 둥, 종이를 좀처럼 쳐다보지 않았다. 프로그램이 설계해낸 공간은 그의 실제 거실과 흡사했다. 홀로그램을 보던 스텔라가 나를 세게 안았다. 투피스에서 남자 향수 냄새가 훅 끼쳤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최초로 개발된 우리의 FA 복원기법, 이른바 작자 증명 기술은 실로 대단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양자 컴퓨터 시대의 포문을 열고 목격하는 우리 고고학의 괄목할만한 성과이기도 합니다. 91.2%의 정확도를 자랑하는 작자 증명 기술은 인류 문명의 족적을 톺아볼 수 있는 귀중한 디딤돌과 다름없습니다. 이 위대한 발견은 우리 국민이 문화 패권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첨단의 시선을 제공할 것입니다. 나아가 세계 각지에 흩어진 한국의 유산을 확인할 뜻깊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나는 얼마 뒤 TV에서 축원문을 읽는 대통령을 보았다. 단상 옆 원형 테이블엔 대통령을 바라보며 웃는 스텔라가 있었다. 영빈관 조찬 초청 자리엔 지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2040년을 앞둔 우리는 다문화 시대에서 민족문화 정체성을 단단히 뿌리내려”

스텔라의 상반신은 공중파 채널 몇 군데마다 5초 정도 나왔다. 스텔라는 영상 속 자신의 말이 거의 다 편집됐다고 했다. 획일화한 세계 문화, 서구 열강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은 어느 매체에도 소개되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우리 팀 얘기도 편집된 거야?”

나는 스텔라 앞에 세 종의 과학 잡지를 내밀었다.

“개발 3팀 기획서 앞머리가 통째로 들어갔던데? 내가 만든 인포그래픽도.”

스텔라가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았다. 나는 포스트잇을 붙여둔 장을 열어 빠르게 읽기 시작했다.

“초반엔 그림 실소유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그림들이 암시장에 대거로 풀리는 부작용도 있었다. 하지만 세계 최초 복원 기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에 미술 시장의 흑막이 걷히기 시작했다. 이제 첫걸음을 뗀 거죠. 저는 제자리에 놓이지 않은 걸 제자리에 둘 뿐이에요. 기술 개발에 따른 숱한 역경을 딛고 일어선 건 국립 민족문화 작자복원 개발팀의 총괄팀장 서정 씨다. 이 사명감의 원천은 무엇일까. 남편과 아들의 든든한 지지로 버틸 수 있었다는 그는”

소파에서 일어난 스텔라가 잡지를 낚아챈 뒤 말했다.

“책임자로서 역할이 강조된 것뿐이야. 인터뷰 상의 내러티브란 게 있잖아. 범용적인 형식과 구조, 몰라?”

“네가 다 만든 것처럼 읽히는데? 스캔한 데이터가 어떻게 홀로그램으로 나오는지 이해는 해?”

“애슐리, 개발 3팀의 성과는 개발팀 전체의 성과지.”

나는 내 머리통을 쓰다듬으려는 스텔라를 피해 몸을 뒤로 뺐다.

울고 싶을 땐 본업에 더 충실해야 한다. 스캔할 그림들은 많았다. 대부분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었다. 나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어떤 카테고리로 엮을지, 어떤 맵으로 짤지 궁리해나갔다.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는 생각보다 일찍 연락을 해왔다. 예상했던 메일이었다. 전시실 수석학예사는 특별전을 통해 복원기술을 더 널리 알리자고 했다. 나쁘지 않은 콘텐츠였다. 한국인이라면 열에 아홉이 아는, 근대의 대화가 김부영을 다루는 전시였으니까. 내가 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비범하고 괴팍했던 천재 화가. 이건 남의 눈치를 안 보고 평생 무례하게 살았다는 소리. 어디에도 귀속되지 않았던 자유로운 예술가의 영혼. 이건 여성 편력이 심했다는 소리. 성과주의 사회에선 단점이 장점으로 쉽게 둔갑한다. 모든 과오가 매끄럽게 윤색된다.

김부영은 1902년 한성부의 대부호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다채로운 교육을 통해 일찍 미술에 입문한 김부영은 주변 동식물을 질릴 정도로 관찰했다. 김부영이 집안에 잠자코 머무른 날은 없었다. 동네의 떠돌이 개를 그리기 위해 화구를 챙겨나온 9살의 김부영은 개가 쉼 없이 움직이자 호통을 쳤다고 한다.

“네까짓 게 무언데 나를 곤난하게 하느냐.”

그는 모든 사물과 현상에 왕성한 호기심을 표했다. 그가 멧돼지를 그리겠다며 동네 친구들과 북악산을 헤집고 다닌 일화는 유명하다. 청년기의 김부영은 서양화에 강한 영향을 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독자적인 기법을 연구한 흔적이 짙다. 문서를 전부 읽은 나는 학예사가 첨부한 영상 링크를 누를지 말지 망설였다. 섬네일 속 평론가가 거의 울 듯한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외국 화가에게 사사 받았다는 말은 근거 없는 소문일 뿐입니다. 김부영의 그림은 어떤 미술사조로 규정할 수 없을 만큼 고유한 개성과 활기가 감돌죠. 압도적인 필력과 대담한 구도 그리고 탁월한 표현력은 세계적인 거장들과 어깨를 견줄만합니다.”

김부영은 활동 초중반기, 그림 하단에 도장을 찍거나 별호를 적었으나 어느 시일부터 아무 글자도 남기지 않았다. 호방하고 전투적인 성격답게 서명도 그날 기분 내키는 대로 했다는 풍문이 있다. 그의 그림 중 가장 대중적인 연작은 역시 맹수들이다. 김부영은 자신의 큰 풍채만큼이나 큰 동물들을 즐겨 그렸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맹수가 코앞에 다가온 듯 숨이 막힌다고 했다. 평론가가 결국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친 후 말했다.

“추정컨대 맹수를 직접 보고 그렸다고밖에 말할 수 없어요. 사료와 문헌을 보면 그림을 시작할 때마다 만취한 채 거적 대기와 넝쿨을 두르고 밖에 나갔다고 하니, 분명 숲에 잠복해 산짐승들을 관찰했을 겁니다. 집념 어린 탐구심, 섬광 같은 통찰로 휘어잡은 짐승들의 광폭한 영혼. 김부영이 목숨을 걸고 그린 이 작품들에 어떻게 탄복하지 않을 수 있나요.”

삼엄한 보안 절차를 거쳐 개발 3팀 앞으로 온 그림도 맹수 연작의 하나였다. 북악 맹호도의 일부로 예상되나 잘 알려지진 않은 그림이었다. 후기 작업인지 사인은 없었다. 학예사는 그 때문에 노출 효과가 더 클 거라고, 이 맹호도는 김부영의 그림 중에서도 특유의 화풍이 가장 잘 간직된 그림이라고 했다. 김부영의 원화를 직접 본 건 처음이었고 그림의 힘이 정말 압도적인지 그날 꿈엔 호랑이가 나왔다.

호랑이 한 마리는 가파른 절벽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근육과 관절이 강철같아 보였다. 하지만 눈앞의 맹수는 난폭해 보이지만은 않았다. 그 안엔 여러 힘이 공존했다. 단단하고 부드러운, 고독하고 정다운 눈빛. 나를 바라보는 호랑이의 눈동자는 흔들리는 촛불처럼 황홀했다. 호랑이가 앞발을 떼고 걸어 나오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호랑이는 내 앞을 유유히 지나, 갈대밭 앞에 뛰어내렸다. 갈대 속을 파내 애벌레를 먹고 있던 붉은 머리 오목눈이들이 후드득 날아갔다. 오목눈이 떼를 보다가 고개를 내렸을 때 호랑이는 멀어져 있었다. 얼굴이 아주 조그마했다.

 

개발 3팀엔 그날도 스텔라 없이 우리뿐이었다. 스텔라는 매일 카메라와 기자 앞에 섰다.

“인정하긴 싫지만, 좋은 그림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마음에 꼭 들 정도로. 김부영이 이걸 어떻게 그렸는지 한번 보죠.”

나는 리모컨을 눌렀다. 양자 스캐너가 그림을 읽어나갔다. 곧 홀로그램 빌더가 그림 뒤편의 막으로 공간을 쌓기 시작했다. 팀원 하나가 의자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어, 산이 아닌데요. 강가도 아니고.”

그림이 그려진 곳은 야외가 아니었다. 홀로그램은 움막인지 토굴인지 모를 작은 별채의 흙벽을 만들어냈다. 방엔 먼지가 가득했다. 쪽창은 작디작았다. 곧 붓을 쥔 손이 생겨났다. 메마른 손등엔 정맥이 울퉁불퉁했고 손마디마다 굳은살이 가득했다. 손목에서 이어지는 팔은 짧았다. 하지만 붓질은 난폭하고 과격했다. 우리는 허공과 싸우듯이 휘두르는 그의 팔을 말없이 쳐다봤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은 젊고 왜소한 여자였다. 여자는 밭은기침을 해가며 그림 앞에 머물렀다. 나는 뒤늦게야 홀로그램 옆 스피커를 켰다. 니키가 말했다.

“144cm, 35.3kg, 22세. 이 여성은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영양실조와 기관지염을 앓았기에 주로 실내에 머물렀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렇지만 관절 마모 상태와 골밀도를 보아 여성은 그림을 그리는 일 외에도 여러 노동을 했을 것입니다.”

스캐너가 그림 속의 밑그림을 다시 읽어나갔다. 호랑이의 눈동자 안에 무언가 더 남아 있었다. 숯 부스러기로 그린 얼굴, 아주 작은 얼굴. 그림을 칠하기 전에 그려 넣은 자화상일까. 여자가 얼굴 아래 써둔 이름이 해독되자 분석 결과는 금세 나왔다.

“생몰 연도 1899-1923. 평생 무직이었고 결혼과 출산 경험은 없습니다. 사인은 청산가리 중독으로 추정됩니다. 사용된 물감에 소량의 독성 성분이 함유돼 있습니다. 이 여성은 김부영의 세 번째 연인, 여홍옥입니다.”

나는 여자가 별채에서 상상만으로 그린 맹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홀로그램의 여자를 올려봤다. 단단하고 부드러운, 고독하고 정다운 눈빛. 홍옥은 꿈에서 본 호랑이와 닮은 인상이었다.

 

다른 그림을 요청해야 특별전을 열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팀원은 2명, 밝혀진 사실을 그대로 전해야 한다는 팀원도 2명이었다. 레이첼과 앤디. 영어 이름을 거부하던 그때 그 2명이 공개를 주장했다. 나는 우선 내용을 공유하고 기다려보자는, 의견 아닌 의견을 냈다. 학예사는 내 메일을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를 걸어왔다.

“타이틀은 그대로 유지할 겁니다. 맹수, 김부영 특별전. 대신 이름을 덮을 새 현수막과 배너를 준비할 생각이에요. 시연회 이후 모든 휘장을 바꿀 겁니다. 맹수, 여홍옥 특별전. 이건 역사적인 위장 전시가 될 거예요. 이름 없던 그림, 이름을 뺏겼던 그림이 현장에서 일거에 재조명을 받는 거죠.”

“김부영이 그린 그림도 제법 많을 텐데요.”

“주요작 상당수는 여홍옥이 그렸을 거예요. 물기 없이 거칠고 성마른 털은 김부영의 인장인 갈필법이거든요.”

“갈필법 자체가 고유한 건 아니잖아요.”

“보내신 파일에도 나오지만, 이 필치는 털을 아래위로 쳐내며 속도를 올리는 기법으로 그려졌어요. 남이 흉내 내기 힘듭니다. 그나마 여홍옥이 밑그림에 얼굴과 이름을 남겨서, 김부영에 대한 기록이 숱해서 밝혀진 사실이라고 해야겠죠.”

“김부영 일가에서 대응할 텐데요. 명예훼손 소송부터 진행하지 않겠어요?”

“참나, 명예는 누가 훼손했는데요.”

“학예사님은 김부영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어제까진 좋아했죠.”

특별전 시연회를 앞두고 보도가 쏟아졌다. 주로 가격에 대한 말이었다. 예상 추정가 50억 뛰어넘나. 옥션 최고가 낙찰 기대. 서울 성북구 석관동 생가 보존키로. 시연 후엔 흩어질 말이었다. 나는 박물관 로비에 들어선 스텔라에게 뛰어갔다. 가족과 캄보디아 여행을 마치고 온 스텔라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오늘 전시 설명은 내가 할게. 너 없는 동안 박물관 쪽과 협의 마쳤어.”

“애슐리, 존칭어를 써야죠. 그리고 김부영 생애는 저도 잘 압니다.”

나는 주변을 살핀 후 속삭였다.

“혹시 내가 보낸 홀로그램 편집 영상 안 봤어? 일단 저쪽에서 내 말을”

“이제 우리가 반말 나눌 사이는 아닐 것 같은데. 여행 전에 얘기 끝냈잖아.”

주춤주춤 박물관을 나온 나는 주차장을 두 바퀴 돌았다. 떠나기도 남기도 힘들었다. 스텔라도 학예사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박물관으로 돌아온 나는 문 옆 돌계단에 쭈그려 앉아 눈을 꼭 감았다. 엄마에게 꺼낼 말을 연습해야 했다.

“미안해. 나 일 잘릴지도 몰라. 어쩌면 멀리 갈 수도 있고. 아니, 아직은 안 잘렸지.”

무릎에 뭔가가 놓였다. 나는 초콜릿과 에너지 바를 보고 고개를 들었다. 레이첼과 앤디였다.

“애슐리가 잘리긴 왜 잘려요.”

“맞아요. 업무 태만, 근속 불량 스텔라가 잘려야지.”

이제 스텔라가 시연회를 어떻게 진행할지 내 알 바는 아니었다. 나머지 팀원들과 니키와 학예사가 있는 한 전시는 망하지 않을 것이다. 레이첼이 초콜릿을 집어 건네며 말했다.

“애슐리가 잘리면 우리도 같이 나올 거예요.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작자 미상 그림들의 출처를 찾아내는 거죠. 우리가 이름이 없지, 기술이 없어요?”

나는 힘 빠진 미소를 짓다가 박물관 기둥을 쳐다봤다. 그리고 돌을 옮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천천히 그려갔다.

 

 

박문영

제1회 큐빅노트 단편소설 공모전을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리면서 놀자’ ‘3n의 세계’ ‘주마등 임종 연구소’ 등을 냈다. 제2회 SF어워드에서 ‘사마귀의 나라’로 대상을, 제6회 SF어워드에서 ‘지상의 여자들’로 우수상을 받았다. SF와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프로젝트 그룹 ‘sfxf’에서 활동 중이다.

 

 

2022년 5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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