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태풍 오면 왜 영동지방에 폭우 내릴까

태백산맥 급경사가 결정적 원인

 

엎친 데 덮친 격. 2002년 9월 루사가 쓸고 간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대동리에 수돗물마저 끊어졌다. 한 수재민이 개천에서 식기와 가재도구를 씻고 있다. 수재민들의 심정도 뒤에 보이는 집처럼 무너져 내렸을 게다.


송다, 메기, 매미, 루사. 최근 한반도 주변을 강타한 태풍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영동지방에 호우를 뿌렸다는 점이다.

지난 30년 동안 한반도를 통과한 11개 태풍의 강우량을 조사한 결과 일반적으로 중서부나 중앙 내륙에 비해 중동부 해안, 즉 영동지방의 강우량이 많았다. 왜 하필 영동지방이 호우의 희생양이 됐을까.

최근 필자의 연구팀은 컴퓨터 모의실험으로 지난 2002년 기록적인 강수량을 과시한 태풍 ‘루사’를 상세히 분석해 강릉에 폭우가 내린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영동지방을 강타한 다른 태풍도 이와 유사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부터 루사를 집중 해부해보자.

호우 원인 알아내는 방법

태풍은 적도 부근 해상에서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이다. 강풍과 호우를 동반하고 이동하면서 아열대나 중위도 지방에 재해를 일으킨다. 북태평양에서 연평균 30여개의 태풍이 발생하며 이 중 2-3개가 여름부터 초가을에 한반도 주변 지역을 통과한다.

2002년 한반도를 강타한 루사는 8월 31일 오후 3시경 전남 고흥에 상륙할 당시 최소중심기압이 9백60hPa(헥토파스칼), 최대풍속이 초속 38m나 되는 강력한 태풍이었다. 바람의 세기에 따른 현상을 나타내는 보퍼트 계급에 따르면 풍속이 초속 24-27m만 돼도 나무가 뿌리째 뽑힌다.

상륙 후 루사는 약 21시간 동안 전라 충청 강원 지방을 지나면서 강풍과 호우를 기록했다. 특히 8월 31일에는 강릉 8백70.5mm, 대관령 7백12.5mm 등 영동지방에 폭우를 뿌렸다. 강릉의 연평균 강수량이 1천4백1.9mm이니 1년에 내릴 비의 62%가 하루만에 퍼부은 셈이다. 이로 인해 자그마치 2백46명의 인명과 5조4백여억원에 이르는 재산 피해가 났다.

기상학에서는 태풍 같은 기상현상의 원인을 분석할 때 수치모형과 컴퓨터로 그 현상을 재현하는 모의실험을 한다. 수치모형이란 온도 바람 기압 수분 구름 비와 같은 대기의 상태나 운동을 나타내는 기상변수들의 시간적, 공간적 변화를 방정식으로 만들어 컴퓨터 언어로 바꾼 것이다.

먼저 분석할 영역을 바둑판처럼 여러개의 격자로 나눈다. 각 격자별로 기상변수, 즉 관측값을 입력해 수치모형을 만든다. 지역마다 관측값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수치모형들을 컴퓨터로 계산해 통합하면 지난 기상현상을 재현할 수 있다.

필자의 연구실에서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루사가 상륙할 때까지의 상황을 재현했다. 그 결과 태백산맥이라는 지형적 특성과 주변의 대기상태가 태풍과 함께 작용해 폭우를 만들어낸 것으로 나타났다. 모의실험으로 재현한 루사의 경로를 따라가보자.

씨구름과 먹임구름의 상호작용
 

태풍 '루사'가 강릉에 폭우 뿌린 경로


루사 상륙 18시간 전인 2002년 8월 30일 오후 9시경. 영동지방에는 태백산맥의 동쪽 사면으로 북태평양 고기압 가장자리에서 부는 북동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이 북동풍은 수분을 많이 포함한 찬 공기였다.

그런데 루사 상륙 전 동해 북부 상층에는 제트류라는 강한 바람대가 형성돼 있었다. 제트류가 시작되는 부분의 남쪽에서는 바람이 불어나간다. 이처럼 특정 지역에서 공기가 퍼져나가는 상태를 발산, 반대로 공기가 모여드는 상태를 수렴이라고 한다.

상층에 발산이 생기면 지상에는 상대적으로 수렴이 일어난다. 제트류 시작 부분 바로 아래 지상이 강릉이니 이곳에는 자연스럽게 수렴이 생겼다. 결국 제트류 때문에 이미 수렴이 일어나고 있던 강릉지방에 북동풍이 불어와 수렴이 더욱 증가한 것이다.

비가 내리려면 구름이 있어야 한다. 구름은 공기가 상승하면서 만들어진다. 온도가 높을수록 공기가 수증기를 함유할 수 있는 용량이 커진다. 따라서 공기가 상승하면 기온이 낮아지므로 수증기를 함유할 수 있는 용량이 줄어든다. 어느 고도에 이르면 공기의 함유 용량을 초과한 수증기가 응결해 물방울이 생긴다. 물을 잔뜩 머금은 걸레를 짜면 물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바로 구름이다.

태풍 상륙 6시간 전인 8월 31일 오전 9시. 제트류와 북동풍에 의해 수렴된 습한 공기가 태백산맥을 만나 산등성이를 타고 상승하고 있었다. 습한 공기가 이동하다가 산맥을 만나면 산맥을 타고 상승하다가 구름을 만드는데, 이를 지형성 구름이라고 한다. 여기서 내리는 비가 지형성 강우다. 모의실험에서 태백산맥 동쪽 강릉지방 상층에는 강한 상승기류와 함께 비를 잔뜩 머금은 지형성 구름이 깊게 발달했다.

같은 날 오후 6시. 드디어 한반도가 점점 북상하던 루사의 직접영향권에 들어갔다. 태풍은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하기 때문에 영동지방에는 강한 남동풍 또는 동풍이 불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공기가 더 많이 모여 상승하면서 지형성 구름도 더 발달했다. 당시 위성사진을 보면 실제로 북동풍 때문에 동해와 한반도 중동부 상공에 형성돼 있던 구름이 태풍이 동반해온 나선형 구름과 합쳐져서 더 강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른 복병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지형성 구름 위쪽에 태풍 상륙 22시간 전부터 비를 포함한 또다른 구름이 이미 형성돼 있었던 것. 상층 구름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이 빗줄기는 비를 잔뜩 머금고 있던 하층의 지형성 구름을 거치면서 더 강해졌다. 이 때문에 강릉지방에 유독 폭우가 내린 것이다. 이때 상층에서 비를 뿌리는 구름을 ‘씨구름’(seeder), 하층에서 비를 받는 구름을 ‘먹임구름’(feeder)이라고 한다. 이렇게 두 구름의 상호작용으로 비가 내리는 과정을 씨뿌림-먹임 메커니즘이라고 한다.

결국 태백산맥이라는 지형적 특성과 씨뿌림-먹임 메커니즘이 강릉에 폭우를 내린 원인이 된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모의실험에서 태백산맥을 제거하고 루사를 재현해봤다. 그랬더니 영동지방이 아니라 한반도 내륙에 동서로 넓은 강우대가 형성됐고, 지형성 구름도 생기지 않았다.

태백산맥에 동풍 강하면 호우 위험

이번에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이 산맥의 방향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했다. 루사 상륙 전 영동지방에는 북서-남동 방향으로 뻗은 태백산맥에 북동풍이 수직으로 불어오고 있었다. 이에 비해 루사가 동반한 남동풍이나 동풍은 태백산맥에 비스듬한 각도로 불어들어왔다.

연구팀은 루사 상륙 전 태백산맥에 부는 바람을 남동풍과 북동풍의 2가지로 설정해 모의실험으로 비교해봤다. 그 결과 남동풍일 때보다 북동풍일 경우 2배 가까이 더 강한 상승기류가 생겨 지형성 구름이 발달했고 더 많은 비가 내렸다. 비의 양과 비가 내린 지역도 실제 관측과 아주 유사하게 나타났다.

이는 태풍의 강도와 진행 경로에 따라 태백산맥에 대해 수직으로 불어들어가는 북동풍이 형성될 경우 이 효과만으로도 강한 지형성 강우가 생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또 태풍이 루사처럼 한반도를 통과하지 않고 일본 쪽으로 비켜간다 하더라도 태풍으로 인해 동풍계열의 바람이 불면 영동지방에 지형성 강우가 발달할 가능성이 높다.

루사로 인해 발생한 영동지방의 폭우는 태풍 자체뿐만 아니라 지형적 특성과 태풍 상륙 전 이 지역의 기상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2003년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매미’도 영동지방에 많은 비를 뿌렸다. 필자의 연구팀 분석에 따르면 매미가 한반도에 접근할 때 역시 태백산맥으로 동풍이 분 영동지방 뿐만 아니라 남동풍이 분 소백산맥과 지리산에도 강한 수렴대가 형성됐다. 실제로 소백산맥 남쪽의 영주, 예천, 상주 등지에도 다른 지역보다 많은 1백mm 안팎의 비가 내렸다.

올해 발생한 태풍 ‘메기’와 ‘송다’는 자료가 아직 나오지 않아 분석하지 못했지만 이와 같은 원인으로 인해 영동지방에 약하나마 지형성 강우를 발생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좁은 지역 예보에 응용 가능

태풍은 거의 매년 한반도에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힌다. 따라서 태풍과 관련된 호우의 정확한 원인 분석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번 연구는 루사 사례에 대해서만 분석했지만, 이와 비슷한 경로와 강도로 한반도를 지나가는 태풍에 대해서도 영동지방의 호우 가능성을 미리 예보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또한 이번 연구는 군 또는 면 단위 국지적 예보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분석 영역을 좁은 격자로 많이 나눌수록 모의실험에서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기상을 관측하는 곳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좁은 지역에 대한 기상변수를 모두 얻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좁게 나눠봤자 수치모형에 적용할 기상변수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게다가 격자가 많아지면 컴퓨터가 계산할 양도 엄청나게 많아진다.

현재 기상청은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역을 30km의 격자로 나눠 수치예보를 한다. 최근에는 슈퍼컴퓨터 2호기를 도입해 향후 더욱 세밀한 격자 규모의 예보를 계획 중이다.

필자의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격자를 나눌 때 참신한 아이디어를 도입했다. 영동지방 근처는 3km 간격으로 좁게, 그 주위는 9km, 가장 바깥쪽은 27km로 점점 넓게 나눈 것. 카메라로 ‘줌 인’한 상태처럼 말이다. 그래서 영동지방이라는 좁은 지역에서 일어난 폭우의 메커니즘을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다.

국지적 규모의 강수지역과 강수량을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수치모형이 실제 대기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표현하기에 한계가 있는데다 다양한 기상관측자료로부터 최적의 기상변수를 얻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기술 개발에 집중투자하면 앞으로는 면 단위의 정확한 예보까지도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제트류

중위도 편서풍대에서 나타나는 풍속이 매우 빠른 강한 바람. 대류권 상층이나 성층권에서 불며 길이가 수천km, 폭이 수백km, 높이가 수백m에 달한다. 풍속의 변화가 심하고 많은 양의 열과 수증기를 이동시킨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4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박선기 교수
  • 이은희 박사과정

🎓️ 진로 추천

  • 기상학·대기과학
  • 지구과학
  • 환경학·환경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