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암을 진단하고 노화를 연구하는 AI 연구자 | 이수인 미국 워싱턴대 교수
환자를 진단하는 것은 물론, 왜 그런 진단을 했는지 설명하는 의료 인공지능(AI)을 만드는 과학자가 있다. 전산생물학 전문가이자 설명가능AI(XAI) 연구의 선구자, 이수인 미국 워싱턴대 컴퓨터 과학·공학부 석좌교수다. 세계 연구자들과 협업하는 그의 바쁜 일상을 살폈다.
07:00 이른 아침 화상회의
AI 전문가, 안과 전문의들과 만나다
2026년 5월 12일 오전 7시, 미국 시애틀. 이른 아침부터 이수인 워싱턴대 컴퓨터 과학공학부 석좌교수의 노트북 화면은 PPT 발표 자료로 가득 차 있다. 2주에 한 번씩 열리는 이 회의에는 미국과 유럽의 안과 연구진, 그리고 이 교수 연구팀이 함께 참여한다. 망막과 시신경이 있는 눈 내부 이미지 등의 의료 데이터를 인공지능(AI)이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에 관해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 교수가 AI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99년의 일이다. “당시 AI 연구는 규칙 기반 접근이 대부분이었어요. (현재 AI를 선도하는) 인공신경망이 ‘연산량만 많은 비주류’로 취급받던 시절이었죠.” AI와 생물학을 접목하게 된 건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다. “당시 스탠포드에서 사람 유전자 2만여 개의 발현을 한꺼번에 측정하는 ‘마이크로어레이’ 기술을 개발해 생물학에서 빅데이터 시대가 열리는 것을 봤어요. 그때부터 AI와 생물학 데이터를 결합하는 전산생물학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09:00 AM 연구 보고서 작성
암 진단을 직접 설명하는 AI를 만들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제출해야 하는 연구 결과 보고서 마감일이다. 연구 주제는 의료 데이터를 해석하는 AI의 ‘블랙박스’를 열어 보는 것이다. AI가 환자의 조직 사진을 입력받고 “암으로 판단된다”는 예측값을 낼 때, 인류는 아직까지 왜 AI가 그런 판단을 했는지 모른다. “저는 ‘AI가 병변의 경계 모양을 중요하게 봤다’ 혹은 ‘조직 색 변화가 AI 판단에 가장 큰 영향을 줬다’는 식으로 어떤 특징이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고자 합니다.”
설명가능 인공지능(XAI·Explainable AI)이 이 교수의 주 연구 분야다. XAI는 AI가 어떤 근거로 특정 결론을 내렸는지 그 과정과 이유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기술이다. 복잡한 AI는 너무 많은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해 중간 과정을 정확히 알 수 없다. 즉 XAI는 AI의 블랙박스를 들여다보는 연구다.
2016년 진행한 초기 의료 AI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의사들이 “아무리 AI의 예측이 맞다 해도, 결과만 가지고는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며 “왜 AI가 그런 예측을 했는지를 알아야 믿을 수 있다”고 말했던 경험이 지금의 연구 방향을 만들었다.
XAI 연구는 이 교수를 오늘날 전 세계가 주목하는 AI 연구자로 만들었다. 그는 2017년, AI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입력 데이터 각각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기여도 점수로 계산하는 ‘SHAP’ 방법론에 대해 발표했다. 중요한 건 단순한 시각화가 아니라, 이를 게임이론 기반으로 공정하게 계산했다는 점이다. SHAP 방법론은 현재 의료·금융·추천 시스템 등 거의 모든 AI 분야에서 표준처럼 쓰인다. 원논문 인용 횟수는 이미 9만 회를 넘어섰다.
11:30 AM 48명의 학생에게 XAI 강의
AI에게 ‘개념’이란 뭘까? 치열한 논쟁
오전 11시 30분, 그는 강의실로 들어선다. 이 교수는 2026년 봄학기,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XAI 수업을 하고 있다. 이 교수는 “45명 이상은 못 받는다고 했는데, 수강을 원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 48명으로 타협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날 강의 주제는 XAI에서의 개념 기반 설명 방법이었다. 개념이란 사람이 물체를 인식하는 핵심으로, 까마귀를 다른 새와 구분하게 만드는 요소인 털의 색, 부리의 모양, 날개의 형태 등이다다. 개념 기반 설명은 인공신경망 속 어디에 이런 개념이 숨어 있는지를 추적하는 작업이다.
“워싱턴대는 수업 시간이 80분인데 보통 40분은 제가 강의를 하고, 나머지 40분은 학생들의 토론으로 구성해요.” 수업에서 학생들은 설명 가능한 AI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는지 논쟁한다. 이 교수의 강의는 AI를 연구하는 동시에, AI를 둘러싼 질문을 함께 고민하는 연구 문화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01:00 PM 의학과 AI를 잇는 ‘ABC’ 세미나
노화를 제어하는 유전자를 찾아서
“제 연구를 ‘ABC’라는 세 글자로 설명요. A는 AI, B는 생물학(biology), C는 임상 적용(Clinical translation)이죠.” 화요일 오후 1시에는 ABC 중 B인 전산생물학 연구자들의 세미나가 진행된다. 이 교수 연구실 소속 연구원의 3분의 1이 전산생물학 연구를 하고 있다. 최근 프로젝트는 노화를 유도하는 핵심 유전자를 찾는 연구다. 이 교수는 “현재 네이처 논문 심사도 진행 중”이라고 귀띔했다.
“AI 성능이 빠르게 향상되는 오늘, AI와 생물학 연구가 실제 의료 현장에까지 연결되는 것까지가 중요한 축이예요.” 이 교수는 A, B, C라는 각각의 축이 동시에 커지길 바라고 있다. AI를 이용해 생물학 데이터를 분석하고, 또 설명 가능한 AI 방법론을 찾는다면 결국엔 AI가 질병을 예측하는 수준을 넘어 실제 치료 방향까지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06:00 PM 한국 전문의들과 화상회의
편향을 줄이기 위해 세계와 협업하다
저녁 6시, 이 교수는 다시 모니터 앞에 앉는다. 한국 피부과 전문의들과 함께 피부 병변 이미지를 분석해 피부암 여부를 판별하는 AI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협업하는 사람들 중 시차가 있는 사람이 정말 많아요. 전문가라면 어디 있는지는 상관이 없죠.” 이 교수는 전문적인 판단은 해당 분야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국 연구진과의 협업에는 나아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피부 질환을 진단하는 AI는 피부색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의료 데이터로는 동양인 피부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려워요. 한국의 의료 데이터가 AI 편향 문제를 줄이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이 교수는 AI가 더 똑똑해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인간이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 교수는 지금도 의료 AI를 넘어서, AI의 생각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XAI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AI가 만든 산업 패러다임, 응용·시스템 연구자 | 김말희 ETRI 책임연구원
인공지능(AI)부터 보안 시스템, 공장 에너지 관리 시스템, 제조 데이터 플랫폼 연구까지. 김말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환경ICT연구실 책임 연구원은 국가와 산업계에 필요한 기반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6월 1일, 김 연구원의 하루는 어땠을까.
07:30 AM 출근과 오전 산책
운동장을 한 바퀴 돌며 생각을 비우다
7시 30분, 누군가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을 아침. 김말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환경ICT연구실 책임연구원이 출근을 완료한 시간이다. “자리에서 메일을 확인하고 급한 건부터 처리하죠.” 김 연구원은 전산학과를 졸업해 데이터베이스로 석사 학위를 받고, ETRI 재직 중 센서 네트워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 연구원은 이후 모자를 들고 연구소 운동장을 한 바퀴 돈다. “푸른 나무, 활짝 핀 꽃들, 새소리와 풀 냄새, 아침 햇살을 음미하는 산책은 복잡한 머리를 비우고 창의적인 생각을 깨우는 소중한 시간이에요.” 김 연구원은 “주도적으로 시간을 통제하며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점이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가진 최고의 매력”이라 말한다.
김 연구원은 2000년 입사 이후 ETRI에서 정보통신 기술을 산업계에 적용할 방법을 두루 연구했다. “출연연은 과제 기반으로 운영되다 보니 다양한 분야에서 제가 관심 있는 연구를 선택해 왔어요.” 과제 수주는 연구 주제를 정하는 것을 넘어 연구자의 일과 조직 운영을 떠받치는 핵심이라, 출연연 연구자에게 과제 기획과 수주는 연구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오전 업무는 신규 과제 제안 발표를 앞두고 발표 자료를 수정하는 일이다. 현재 김 연구원은 제조 현장에서 나오는 산업 데이터를 한곳에 모아 활용할 수 있도록 데이터 스페이스를 구축하는 연구 과제를 기획하고 있다. “데이터 스페이스란 필요한 데이터를 모아 활용할 수 있게 만든 데이터 플랫폼이에요.” 기업 입장에서 산업 데이터는 민감한 자료이기 때문에 쉽게 공유하기 어렵다. 따라서 기업들이 데이터를 더 협력적으로 내놓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각 기업이 투자 대비 수익을 얻을 수 있는 AI 모델을 개발해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날 김 연구원은 “생성 AI를 활용해 경쟁 컨소시엄과의 경쟁에서 어떻게 우리 컨소시엄을 부각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리를 점검했다”고 말했다.
01:00 PM 동료와 함께 점심 식사
AI 뒤에 숨은 인간 노동을 생각하다
함께 점심을 먹은 동료 연구원이 과거 ‘데이터 라벨링’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AI가 데이터를 학습할 수 있도록 이름표를 붙이는 작업이다. “문득 몇 년 전에 읽었던 책이 떠올랐어요. 메리 그레이의 저서 ‘고스트 워크(유령 노동)’이었죠.” 고스트 워크는 AI 시스템이 완벽히 자동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임금과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인 인간 노동자들이 그 빈틈을 메우고 있다는 사회적 문제를 다룬 책이다. “동료에게 이 책을 소개하며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들은 기술이 사회에 어떻게 녹아들고, 또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술과 사회를 살피는 인문학적 관심이 커진 것은 약 10년 전의 일이다. ETRI 내 도서관이 리모델링을 거쳐 재개관했는데, 이후 도서관에 자주 방문하며 책과 가까워졌다. 당시에 AI 연구를 하고 있었던 것도 계기가 됐다. “AI 연구를 하면 할수록, ‘사회가 이 기술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란 질문이 커졌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고, 책을 더 많이 찾아 읽게 됐죠.”
02:30 PM ‘제로터치’ 논문 작성
사람이 필요 없는 제조공정 검증하다
오후 2시부터 2시 30분까지, 김 연구원은 다시 운동장으로 향한다. 산책을 하며 오후 연구를 위한 집중력을 충전하기 위해서다. 오후 업무는 논문 작성. 김 연구원은 “제조공정에서 ‘제로터치’를 위한 분석 기술을 검증하는 프레임워크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로터치란 사람의 개입(터치)없이 중앙관리시스템으로 기기를 자동 세팅하고 관리하는 기술이다. 공장에서 기술을 적용하기 전, 오픈 데이터를 활용해 모델이 원하는 성능을 내는지를 살펴야 한다. 특히 모델은 클라우드에서 학습하고, 엣지(현장 가까이에 있는 컴퓨팅 장치)에서 추론하는데, 모델이 배포되고 성능 정보가 다시 클라우드 학습으로 이어지는지 검증하는 게 핵심이다.
“오후 4시 30분에 퇴근하는데 퇴근하고는 최대한 일과 멀어지려고 해요.” 김 연구원은 연구자의 삶에서도 ‘일’이 자신의 본질이 아니라고 말했다. “퇴근 후에도 산책을 해요. 산책을 하면서 시각, 청각, 후각 등 감각에 집중하면 정서 안정에 큰 도움이 되거든요.”
김 연구원에게 하루 3번의 산책은 연구와 스스로를 분리하는 방법이자,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25여년 간 이어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방법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