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선 요가 최면 등을 수행하면 알파파가 증가하고 근육이 이완된다.
뇌파가 뇌세포들의 활동을 측정하는 도구로 알려진 이래 우리 몸의 편안한 상태와 긴장상태 혹은 보통상태에서 뇌세포들의 활동이 어떻게 다를 것인가 하는 의문에 대한 연구가 있어 왔다.
인간은 태초부터 불안을 느끼면서 긴장상태로 살았다고 볼 수 있다. 먹이를 얻기 위해서, 보다 많은 재물을 얻기 위해서, 사랑을 얻기 위해서 인간은 수십만년간 쉬지 않고 투쟁해 왔다. 인간의 욕망이 실패와 좌절에 부딪힐 때 불안을 느끼게 되고 자연히 어떻게 하면 불안한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큰 관심사의 하나였다.
단조로운 말을 반복해서 외우면…
종교는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가장 오래된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다. 우상을 숭배하고 신을 믿으면서 인간은 기도를 하게 되는데 기도를 하는 중에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서 발견하고 그 방법을 계승해 왔다. 이집트에서 티벳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에 걸쳐서, 일정한 음률을 가진 단조로운 말들을 반복하며 외우게 되면 보다 더 깊은 무아지경의 편안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우리 인간들은 경험을 통해서 발견하였다.
이 상태가 바로 현대에 와서 변화된 의식의 상태(altered state of consciousness), 무아지경(trance)의 상태, 명상상태(meditative state) 혹은 최면상태(hypnotic state)라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이완상태(relaxed state)이다.
불안은 우리 몸의 긴장을 의미한다. 반대로 이완은 편안함을 의미한다. 불안이 자연 발생적으로 저절로 생기는 데 반하여 이완은 불행하게도 우리가 의도적으로 노력을 해야만 생긴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벤슨(Benson)박사가 이완반응(relaxation response)이라고 통합한 이러한 상태들은 그 상태에 들어가는 방법들에는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상태는 거의 비슷하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최종적인 상태가 결국 같은 것이라면 그 유도법들이 다른 것은 뇌파의 측정과 같은 신체생리의 변화를 측정함에 있어서 중요한 변수가 되지 못한다.
만달라 앞에서
이완반응 상태에 도달하는 방법들은 다양하다.
아주 오래 전에는 샤만(shaman, 원시종교 의 주술사)들에 의해서 행해지던 의식을 통해서도 인간은 이완상태를 맛봐 왔다. 샤만이나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하던 사람들은 고대 시베리아 북아메리카 아프리카 및 세계 어디에서나 존재했다. 고대인들은 샤만의 단조롭고 리드미컬한 목소리와 북소리 및 악기소리에 가만히 주의를 기울이는 동안에 변화된 의식상태인 무아지경에 도달하였다. 현대의 종교에서 행해지는 승려 혹은 목사의 설교와 찬송가 불경들도 거의 비슷한 심리학적인 의미를 갖는다. 사회에서 공개적으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대의 무당들도 사실 심리학적인 내용과 의미에서는 이와 다를 바가 없다.
명상(meditation) 또한 스스로 이완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이다. 최근에는 초월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이라는 새로운 기법도 소개되고 있다. 명상은 전세계 어디에나 있었지만 가장 대표적인 곳은 티벳(Tibet)이다. 그들은 예로부터 만달라(Mandala)라는 그림을 그려놓은 천을 벽에 걸어놓고 그 앞에서 명상을 하곤 했다. 또한 그 그림들에는 티벳인들 나름대로의 인생관 우주관 등이 담겨 있었다. 그림을 보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며, 그림의 구도가 원 사각형 등으로 되어 있어 정신을 집중시키기에 알맞도록 고안되어 있다.
따라서 티벳인들은 그림들 앞에서 명상수련을 쌓는 동안에 자동적으로 변화된 의식의 상태인 무아지경에 돌입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명상과 관련해서 여러가지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전해져오고 있다. 추운 겨울날에 옷을 벗고 있어도 추운 것을 모른다거나, 얼음판 위에서 명상을 하면 얼음이 녹아 내린다거나 하는 등의 이야기들이다. 이 이야기들은 최근 하버드대학 연구팀에 의해서 사실임이 밝혀졌다. 연구팀은 인체의 산소소비량 혈압 체온 뇌파중 알파파의 빈도 등을 티벳의 유명한 고승들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정밀하게 조사해 보았다. 그들이 명상을 하고 있는 히말라야에 가서 직접 측정한 결과, 시작하기 전과 명상을 하고 난 후의 인체의 생리 변화가 현저하게 목격됐다. 산소소비량은 감소하였으며, 혈압은 떨어지고, 체온은 올라갔으며 뇌파중 알파파의 빈도는 증가하였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명상상태가 수면상태와 다르다는 것 이외에는 별로 아는 것이 없다. 명상상태에서 알파파가 증가하는 의미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승려들의 뇌파를 쟀더니
선(zen)은 이완상태를 만들어내는 방법의 하나이며 뇌파에도 그 영향이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6년 일본의 히라이(Hirai)는 선 명상(zen meditation, zazen)을 하는 승려 48명을 대상으로 선 명상이 뇌파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였다. 그는 선 명상 수련기간이 5년 이하인 20명의 승려들을 제1군, 5년에서 20년 사이인 승려들 12명을 제2군, 20년 이상 수련한 승려 16명을 제3군 그리고 전혀 선 명상의 경험이 없는 연구원 22명을 제4군으로 나눠 뇌파의 모양을 측정하였다. 그 결과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발견하였다. 20년 이상 선 명상을 하였던 승려들의 경우, 명상을 시작하고 나서 50초 이내에 40~50㎶, 11~12회/초의 알파파들이 뇌의 모든 부분에 걸쳐서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눈을 뜬 뒤에도 수분동안 지속되었다. 8분간 명상한 후에는 파장의 크기가 60~70㎶로 증가하였으며 명상을 끝낸 뒤에도 2분 정도 지속되었다. 그러나 명상수련을 하지 않았던 제4군에서는 뇌파의 변화가 전혀 없었다. 선 명상의 수련기간이 길수록 뇌파의 변화가 많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명상수련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최면을 유도하였을 때에는 명상수련자들에서 나타난, 시간적인 차이가 나는 뇌파의 변화양상은 없었다.
한편 최면(hypnosis)은 의학을 이용해 신체의 이완상태를 유도하는 방법이다. 최면상태란 정신이 고도로 집중되어 맑고 깨끗한 이완상태이며 주변의 모든 것을 잊고 자기의 세계로 집중되어 있는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서양의학에서 심리적인 이유로도 병이 생길 수 있으며 아울러 심리요법으로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된 것은 바로 이 최면현상을 통해서였다.
최면이 뇌파에 미치는 영향들을 우선 살펴 보자. 1968년에 나울리스(Nowlis)는 뇌피에 알파파가 존재하는 정도는 최면감수성(최면에 얼마나 잘 걸리는가 하는 정도)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최면감수성에 따라 분류한 그룹들 간에 알파파의 빈도에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따라서 그 는 최면을 유도하느냐 안하느냐에 상관없이 최면감수성이 높은 사람이 알파파를 많이 소지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1969년 런던(London)의 연구에서도 확인되었다.
또 모건(Morgan)은 1971년과 1974년에 걸쳐서 최면감수성이 높은 사람들은 최면감수성이 낮은 사람들에 비해 알파파의 변화가 많으며 특히 왼쪽 대뇌반구에서 더 많은 알파파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선 명상 최면을 하면 뇌파의 변화가 유발된다는 사실은 명상상태 혹은 최면상태가 단순한 심리적인 변화만 초래한 상태가 아니라 뇌에 전기적인 변화까지 일으키며, 그 변화는 타고난 체질이나 수련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멀게는 수천년전 가깝게는 수백, 수십년 전의 의사들은 현대의 이론과 과학적인 생각들에 비추어 보면 말도 안되는 엉뚱한 이론들을 가지고서도 나름대로 많은 병을 고쳐 왔다. 또한 어떤 면에서 보면 최신 의료장비를 갖춘 현대의 의사들보다도 더 높은 신뢰를 얻어왔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까.
면역계통의 이해로부터
인간의 대부분의 질병이 마음 혹은 정신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은 동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으나 서양의학에서는 면역계통(immune system)이 발견되고 나서부터다. 이때부터 정신상태가 육체에 미치는 영향들이 구체적으로 부각되었다. 면역기능이라는 것은 국가로 말하자면 경찰과 군대에 비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그 나라의 국력 즉 군사력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체는 면역계통이 건재할 때는 웬만한 세균의 침입, 암세포들의 번식 및 정신적 스트레스들을 이겨나가게 되지만 이 면역계통이 약해져 우리 몸의 방어력이 떨어지면 사소한 세균이나 단 한개의 암세포 혹은 남들이 보기에는 그리 크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쉽게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면역계통은 마음 혹은 정신에 의해서 좌우된다. 일반적으로 마음과 정신의 근원은 뇌안에 존재한다고 간주된다. 따라서 뇌의 상태는 마음 혹은 정신의 상태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뇌의 상태를 보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그 중에서도 뇌파는 가장 오래 전부터 필수적인 도구로 활용돼 왔다. 때문에 이 뇌파 기계를 이용해서 뇌의 상태를 알아보고자 하는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뇌파의 여러 종류의 파형 중에서 알파파는 아직 그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완된 상태의 뇌에서는 알파파의 빈도가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완된 상태에서는 불안이 저절로 없어지고 면역력이 증가하여 우리 몸이 전반적으로 튼튼해지고 강해지기 때문에 뇌파에서 알파파의 빈도를 측정하는 것은 간접적으로 우리 몸의 상태를 알 수 있는 하나의 지표로 간주되고 있다.
최면감수성이 각자 달라
질병의 치료에는 크게 두가지의 접근법이 있다. 하나는 그 원인을 찾아 구체적으로 제거하는 방법이다. 또하나 더욱 중요한 것은 전반적인 우리 몸의 상태를 좋게 만들어서 저항력을 키우는 것이다. 이완뇌파는 바로 이런 상황을 알 수 있는 지표가 된다.
이완뇌파를 만드는 방법으로는 명상 요가 선 최면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때 우리 몸은 여러가지 변화를 일으킨다(표).
그런데 이같은 변화들이 누구에게서나 똑같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잘 일어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20세기 중반까지는 누구나 수련을 오래하거나 여러 번 반복하면 똑같은 이완상태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였고 의사들 또한 그렇게 믿어왔다. 그런데 1960년대부터 왜 어떤 사람들에게는 변화들이 빨리 일어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잘 일어나지 않는가 하는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하버드 스탠퍼드 및 콜럼비아대학의 정신과와 심리학과에서 주로 이루어진 이 연구들을 흔히 '최면감수성'(hypnotic susceptibility 혹은 hypnotizability)연구라고 한다. 그 결과 최면감수성에는 크게 두가지 측면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얼마나 최면에 잘 걸리느냐는 타고난다는 설이다. 이는 개인마다 몰입할 수 있는 능력이 정해져 있으며 아무리 노력을 해도 타고난 정도 이상으로는 발휘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하나는 환경적 심리적 영향이다. 아무리 몰입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체질이라 하더라도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최면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몰입할 수 있는 능력의 정도는 '안구회전 신호'(eye-roll sign)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는 머리는 똑바로 정면을 쳐다보는 상태에서 눈동자만 머리꼭대기를 쳐다보듯이 위를 보면서 눈꺼풀만을 살짝 감을 때 눈의 검은자 부위의 아래로 흰자부위가 얼마나 많이 보이느냐로 판명된다. 이 안구회전신호를 우리는 최면감수성-얼마나 몰입할 수 있는가하는 정도-의 생물학적 지표(biological marker)로 삼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완상태의 뇌파를 만드는 방법에는 종교 의식 명상 선 요가 및 최면이 있으며 이러한 방법들을 시도했을 때 이완상태에 들어가는 정도는 사람마다 선천적으로 정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