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주르! 벨기에에서 온 환경을 사랑하는 줄리안이에요.”
유쾌한 방송인 줄리안 퀸타르트의 인사에는 항상 환경이라는 단어가 함께한다. ‘비정상회담’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등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방송인, DJ 등으로 활약하며 18년째 한국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최근 그가 가장 몰두하고 있는 일은 환경보호다. 비건 요리를 만들고,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를 실천하는 등 환경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는 그를 3월 24일 서울 연남동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Q 환경보호를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나.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거창하지는 않다. 내가 직접 실천하지 않으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다고 생각해 하나씩 도전하는 중이다. 예를 들어 라디오 패널로 참여하는 날이면 집(용산)에서 상암까지 자전거를 타고 간다.
또 플로깅에도 관심이 많다. 플로깅은 줍는다(plock up)에 달리기(jogging)라는 단어가 더해진 말인데, 나는 달리기보다는 느긋하게 하는 것을 좋아해 ‘쓰줍(쓰레기 줍기)’ 정도로 표현하는 게 적당할 것 같다. 요새 플로깅이라고 하면 마치 집게도 장만해야 하고, 단체로 모여 거창하게 진행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도 처음에는 ‘오늘 여기 있는 쓰레기를 다 줍겠다’며 호기롭게 도전했다. 물론 불가능했다. 지금은 지나가다가 눈에 띄는 쓰레기가 있으면 줍는 정도로 실천한다.
Q 직접 ‘쓰줍’을 해 보니 어떤가.
인천 을왕리 해수욕장에서 쓰레기를 주운 적이 있다. 처음에는 바다가 너무 깨끗해 보여 쓰레기가 없을까 걱정했지만, 오산이었다. 곳곳에 숨겨진 쓰레기가 정말 많았다. 특히 검정색 파편이 계속 보였다. 불꽃놀이 파편이었다. 정말 허리를 펼 새도 없이 쓰레기를 주운 날이었다. 불꽃놀이가 환경을 파괴한다고 인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직접 쓰레기를 주우면서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된다는 사실을 체득했다.
한편 내가 버리는 쓰레기가 어떻게 되는지도 알게 됐다. 쓰레기를 줍다 보면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 소주병이 나오면 ‘여기서 한 잔 했구나’, 고장 난 우산이 있다면 ‘비를 맞고 뛰어갔겠구나’ 생각한다. 아직 따지 않은 와인병을 주운 날도 있다. ‘누구를 기다리다 그냥 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물건이었다.
특히 최근에는 어린이들과 함께 플로깅을 한 적이 있는데,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즐거워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쓰레기를 더러워하기보다는 “이렇게 큰 걸 주웠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어린이들에게 “환경을 지켜야 해” “쓰레기를 버리면 안 돼” 하고 추상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환경보호 메시지를 훨씬 효과적으로 전달됐다고 생각했다.
Q 환경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
벨기에에서 친환경 식료품, 생활용품을 파는 가게를 운영하셨던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환경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는 유럽에도 친환경 열풍이 불기 전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환경을 지켜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패션쇼를 보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산처럼 쌓인 쓰레기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방금까지 감탄하면서 봤던 패션쇼의 폐기물이었다. 나 혼자 텀블러 하나 들고 다닌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몸으로 실천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다. 이때부터는 기후변화에 대해 작은 역할이라도 할 수 있다면 적극 참여하고 있다.
Q 환경을 위해 비건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들었다.
넷플릭스에서 비건 운동선수들의 이야기를 다룬 ‘더 게임 체인저스’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남자들은 채소만 먹어서는 힘이 안 난다는 생각에 채식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운동할 때마다 트레이너들에게 ‘고기를 먹어야 근육이 생긴다’는 잔소리를 듣고 살았다. 그런데 비건을 실천하면서도 역도나 보디빌딩 등 힘을 겨루는 대회에서 기록을 세울 수 있다니 놀라웠다.
편견이 깨지자 채식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축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도 이때 알게 됐다. 아마존 숲을 살려야 한다는 얘기는 어렸을 때부터 지겹도록 들었다. 그런데 아마존 숲의 80% 이상이 공장식 축산업을 위해 훼손된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숲을 태운 뒤 소를 키우는 방목지로 쓰거나 소의 사료작물을 재배한다는 것이다. 내가 한국에서 먹는 소고기도 아마존 숲 파괴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도 충분히 튼튼해질 수 있다면 채식을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당장 고기를 안 먹는 게 힘들어 우유와 계란을 먼저 끊어봤다. 고기부터 끊는 보통의 채식주의 단계와는 반대로 한 셈이다. 채식의 가장 적극적인 단계인 비건이 된 지는 1년가량 됐다.
Q 한국에서 비건이라니, 쉽지 않을 것 같다.
외식할 때가 특히 힘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고깃집을 가지 않나. 당시에는 대안으로 갈 비건 식당도 마땅치 않았다. 최근에는 맛있는 비건 식당이 많아졌다. 이제는 ‘이 정도면 굳이 고기를 먹을 이유가 없다’ 싶을 정도다. 지금은 외식도 모두 비건 식당을 찾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와 함께 최소 한 끼는 채식을 해 보자고 권유하고 있다. 비건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고기 대신 채식을 먹는 일은 어렵지 않지 않나. 일주일에 한 번만 채식을 해도 일 년이면 52일을 덜 먹는 셈이다. 이는 물 13만 L를 아끼고, 이산화탄소 2268kg을 덜 배출하는 효과가 있다. 엄청난 영향이다.
비건 식당에 간다고 샐러드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비건 치킨, 비건 햄버거 등 다양한 제품이 있다. 특히 양념 비건 치킨 같은 경우는 진짜 치킨과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똑같다.
개인적으로는 설날에 비건 떡국을 만들어 먹어본 적이 있다. 캐슈넛으로 사골 육수를 재현했다. 6명의 친구들에게 맛을 보게 했는데 모두 레시피를 물어볼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고기 없이도 충분히 깊은 맛을 낼 수 있다.
Q 환경보호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이유는?
기후위기까지 남은 시간을 보여주는 ‘기후시계’는 이제 7년 100여 일이 남았다. 지구 기온이 산업혁명 이전보다 1.5℃ 상승할 때까지 7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내가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으로 대중에 이름을 처음 알린 게 8년 전 일이다. 생각보다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소리다.
얼마 전 조카가 생기면서 내가 조카 세대에게 어떤 미래를 남길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다. 모든 기후위기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내가 가진 목소리를 조금이나마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후위기를 극복하려면 정책이나 기업 차원에서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국 이를 변화시키는 것은 대중의 목소리다. 최근 많은 기업들이 ESG 경영을 내세우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20~30대 소비자들이 친환경 제품에 돈을 더 지불한다는 사실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목소리를 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Q 환경보호에 있어 벨기에와 한국의 차이점은?
환경에 대한 관심은 아직 유럽 사람들이 더 크다. 지금 벨기에는 대선을 앞두고 있는데 정치색을 불문하고 모든 후보가 환경에 대한 정책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친누나가 벨기에에서 기업 인사팀에 근무하는데 ‘친환경을 어필하지 않으면 인재를 뽑기 힘들다’고 하소연하더라. 국가와 기업 가릴 것 없이 환경보호는 필수인 시대가 됐다. 일상적으로도 대형마트에서 생필품을 무게로 달아 판매하는 등의 제로웨이스트 방식이 정착됐다.
한국은 그에 비하면 친환경을 시작하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간 내가 봤던 한국은 한 번 관심을 가지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나라다. 몇 년 전만 해도 ESG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는데, 이제는 많은 기업들이 실천하고 있다. 전 세계로 퍼진 K팝처럼 ‘K환경’ ‘K그린’이 퍼져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Q 과학동아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환경을 지키는 일을 ‘어려운 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플로깅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그럴 때마다 “지금 당장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워보세요. 당신은 플로깅을 시작한 겁니다”라고 답한다.
유럽에는 ‘모든 것을 할 수 없다고 아무것도 안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속담이 있다. 완벽하게 해내는 것보다 시도하는 자체가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것이라도 괜찮다. 세탁기 온도를 40℃에서 30℃로 낮춘다든지, 고체 치약을 써 보는 것도 모두 환경을 지키는 일이다. 하나씩 도전하다 보면 어느새 환경 지킴이가 돼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환경운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점을 전하고 싶다. 수영을 좋아하면 바닷속에 들어가 쓰레기를 주울 수도 있고, 손재주가 좋다면 환경 관련 제품을 만들 수도 있다. 심지어 쓰레기더미 앞에서 춤을 추며 쓰레기 산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관심사를 접목해 즐겁게 환경보호를 실천할 수 있는 길을 찾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