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에게 있어서 불은 신이 내려준 선물이었다. 불이 있기에 사람들은 자연의 위협을 극복하고 문명을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불로 쌓은 문명은 자연을 위협했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지구의 기후까지 바꿔놨다. 그리고 그 결과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 지구를 불태우고 있다. 그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
3월 4일 오전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에서, 저녁에는 강원 강릉과 동해에서 시작된 산불은 걷잡을 수 없이 불타오르며 숲과 도시를 삼켰다. 강한 바람과 건조한 날씨 탓에 불길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강릉, 동해 산불은 3월 8일, 울진, 삼척 산불은 3월 14일이 돼서야 진화됐다. 이번 산불은 각각 4000ha, 2만 1000ha가량의 대지를 불태웠다. 서울 면적의 40%를 넘는다. 울진, 삼척 산불은 국내에서 발생한 사례 중 역대 두 번째로 넓은 면적에 피해를 준 산불로 기록됐다. 같은 시기 대구와 울산, 부산에서도 각각 산불이 발생했다. 이렇듯 올해 3월엔 전국 곳곳이 불길에 휩싸였다.
기후변화가 산불을 매섭게 한다
산불은 비단 최근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최근의 산불은 빈도와 규모 면에서 이전보다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산불로 인한 피해는 크게 늘고 있다. 2019년 호주에서 발생해 2020년까지 약 1000만 ha의 숲을 태운 산불과 지난해 시베리아에서 약 1600만 ha의 숲을 태운 산불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문가들은 갈수록 위험해지는 불길의 원인을 기후변화에서 찾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지구의 기후시스템이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한편에서는 홍수가, 다른 편에서는 가뭄이 드는 등 기상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이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바로 대형 산불이라는 것이다.
산불이 발생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 우선 불이 붙는 계기와 불이 유지될 수 있는 연료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높은 기온이다. 기후변화는 세 가지 조건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자연적인 산불의 발화 원인 중 하나는 번개다. 2020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수백 건의 산불이 동시에 일어났다. 이 시기에 캘리포니아주 전역에서 1만 번 이상 내려친 번개가 원인이었다.
미국 퍼듀대 연구팀은 대기 중 온실가스의 농도와 번개의 빈도 사이의 연관성에 주목했다. 기후모델을 활용해 분석한 결과 대기의 온실가스 농도가 2배 증가할 경우 번개가 치는 일수가 2배가량 증가했다. 지역과 시기에 따라서는 최대 3배 늘거나 전혀 번개가 치지 않던 지역에서도 번개가 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doi 10.1073/pnas.0705494104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도 산불에 영향을 준다. 숲을 이루던 풍성한 풀과 나무가 마르며 장작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상자료개방포털에 따르면 지난 2월 강릉, 동해, 삼척, 울진의 평균 강수량은 약 6.3㎜, 10년 전인 2012년 같은 달 51.8㎜의 강수량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12.2%에 불과한 수치다.
가뭄도 큰 문제지만, 한 시기에 집중되는 높은 강수량도 산불과 연관이 있다. 2020년 한국이 전국 평균 연 강수량은 1591.2㎜다. 63.6%가 여름철에 내렸을 정도로 한 시기에 강수량이 집중된다.
윤진호 GIST(광주과학기술원) 지구·환경공학부 교수는 “산불은 해당 지역의 식생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며 “짧은 여름 장마철 쉽게 자랄 수 있는 초본이 가뭄으로 말랐을 때 특히 산불에 취약하다”라고 말했다.
지구온난화로 높아진 평균기온도 산불을 키우는 원인이다. 지난 1월 6일 국립산림과학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산불 기상지수의 요소 중 기온이 산불 발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온이 1.5℃ 높아지면 산불 기상지수는 8.6%, 2℃ 높아지면 13.5%가 증가한다. 산불 기상지수는 기온이나 습도, 풍속 등을 이용해 산불이 일어날 가능성을 수치화한 지표다. 이외에도 바람과 지형, 토지 이용 방법 등 다양한 요소들이 산불의 빈도와 규모를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교수는 “산불은 복합적인 요소가 원인이 되는 현상이지만, 전체적인 사례에서 기온과 산불위험도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며 “산불위험지수 등 지표를 계산할 때 기온의 가중치가 가장 높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국내 산불의 경우 산비탈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강한 바람이 발생한 것도 산불 진화를 더욱 어렵게 만든 요인 중 하나다. 윤 교수는 “산불이 그간 4월에 주로 발생했지만, 최근에는 그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다”며 “단순히 기온뿐만 아니라 기후변화로 인한 복합적인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불의 공범은 사람들이다
현재까지 연구자들은 기후변화가 산불이 발생할 가능성을 높이는 기후를 만들고 있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실제로 기후변화가 산불을 직접 증가시킨다는 연구도 현재 진행되고 있다. 반면 일부에서는 기후변화가 산불의 증가와 관련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최근 아프리카와 남미, 호주 대륙에서는 산불 발생 건수가 늘지 않았거나 오히려 감소했다.
2020년 5월 중국 환경생태과학연구소를 비롯한 국제공동연구팀은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산불을 분석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6년까지 아프리카의 산불 피해 면적은 초반에는 증가했지만, 이후 감소했다. 연구팀은 그 이유로 강수량의 감소에 주목했다. 아프리카 초원이 경작지가 되면서 가뭄에 취약한 작물이 주를 이루는 생태계로 변했다. 여기에 가뭄이 들면 장작의 역할을 하는 식생이 자라지 못해 산불의 위험성이 낮아졌다는 주장이다. doi: 10.1111/gcb.15190
물론 대다수 기후학자와 산림학자들은 기후변화가 산불의 위험을 높이는 주요한 원인이라 주장한다. 지난해 12월 마리아 주브코바 미국 메릴랜드대 지리과학과 연구원은 ‘글로벌 생물학 변화’의 편집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일부 지역에서 경작지 면적에 대해 잘못된 통계 수치를 제시해 기후변화가 산불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했다”라고 말했다. doi: 10.1111/gcb.16021
연구자들이 경고하는 기후변화와 산불의 관계는 ‘위험도’에 있다. 기후변화가 대형 산불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보다는 산불이 일어나고, 커질 수 있는 위험을 높인다는 것이다. 물론 기후변화가 산불을 더 자주, 크게 일으킨다는 수치적인 연구는 쌓여가는 상황이다. 하지만 워낙 복합적인 요인이 산불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이를 정량적으로 증명해내기란 쉽지 않다. 윤 교수는 “실제 산불의 빈도와 강도는 자연보다는 인위적으로 결정되는 측면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국내에서 최근 발생한 대형 산불이 시작된 원인은 사람에게서 비롯됐다. 2019년 고성, 속초 산불은 전기시설의 관리부실에서 시작됐고, 지난 3월 발생한 울진, 삼척 산불은 담뱃불에 의한 실화가 원인으로 예상된다. 심지어 강릉, 동해 산불은 인위적인 방화 때문에 발생했다. 1990년대 이후 국내 주요 대형 산불로 범위를 넓혀도 자연적으로 시작된 경우는 없다.
산불이 기후변화를 가속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유럽연합(EU) 산하의 코페르니쿠스 대기 관측 서비스(CAMS)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산불로 발생한 이산화탄소가 17억 6000만 t(톤)에 달한다. 현재까지 한국에서 1년간 발생한 이산화탄소의 최대치인 7억 2000만 t의 2배를 훌쩍 넘는 수치다.
간접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산불이 지나간 숲에서는 당장 풀과 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화마를 버텨낸 나무도 3년 이내에는 고사할 위험이 크다. 이처럼 산불은 탄소를 흡수하던 숲을 오히려 탄소를 배출하는 공간으로 바꿔놓는다.
지난 3월은 이런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번 산불은 방화나 담배꽁초 같은 인위적인 요인에서 시작됐지만, 역대 최악으로 이름을 남긴 이유는 기후변화의 역할도 분명했다. 그리고 그 피해 또한 자연과 사람들이 감내해야 한다. 윤 교수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과 산불을 막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중요한 순간”이라며 “그것이 다시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