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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발사돼 지구를 등지고 멀어져만 갔던 태양계 탐사선 보이저 1호가 1990년 2월 14일, 지구에서 60억 km 떨어진 명왕성 궤도에서 몸을 틀었습니다. 태양계를 벗어나기 전 마지막으로 태양계 행성들의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서였죠. 관측장비가 손상될 거란 우려도 있었지만, 보이저 1호는 극적으로 60장의 사진을 촬영하는 데 성공합니다. ‘가족 사진’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 사진들 속에는 태양과 해왕성, 천왕성, 토성, 목성, 금성과 함께 티끌처럼 작은 지구의 모습이 포착돼 있습니다. 대기의 흰 구름 빛을 머금은 연한 파란색 점이었죠. 촬영을 주도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사진의 화소(픽셀) 하나 크기도 안 되는 작은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불렀습니다. 1969년 미국 록밴드 벨벳언더그라운드가 발표한 곡 ‘창백한 푸른 눈’을 연상시키는 이름이죠.


광대한 우주에 외롭게 떠 있는 지구는 참 보잘것없습니다. 격렬한 싸움, 질투, 사랑, 증오, 협력, 경쟁, 그리움 등 우리가 죽자 살자 매달리는 가치들이 그 안에 담겼건만, 우주에서는 작고 외롭고 평화로워 보이는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합니다. 삶도 죽음도 만남도 헤어짐도 밖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과학동아와 생활용품 기업 쿤달은 이 작은 점에서 영감을 얻은 향기를 개발했습니다. SF에서 볼 법한 설정을 떠올렸습니다. ‘먼 훗날,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행성에서 지구를 추억한다면 무엇이 떠오를까?’ 후각은 기억과 관련이 깊은 감각이죠. 많은 과거가 냄새와 향의 도움으로 기억의 깊은 강을 건넙니다. 만약 우주에서 지구를 추억할 매개체가 있다면, 그건 지구의 향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쿤달의 조향사들은 이 콘셉트에 맞춰 레몬과 오렌지, 재스민, 나무, 머스크 등 향료를 배합해 푸른 바다, 식물의 생명력, 신선한 대지의 냄새가 담긴 싱그러우면서도 따뜻한 느낌의 향을 창조해냈습니다. 32년 전 보이저 1호가 찍은 창백한 푸른 점은, 이렇게 해서 향기로 재탄생했습니다.


조혜인 기자와 이영애 기자는 ‘창백한 푸른 점’ 향기 개발기를 세심히 기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향의 역사와 과학, 의학을 전문가와 짚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향을 만나고 있지만, 향의 정체나 향을 느끼는 원리는 잘 모릅니다. 이번 특집이 그런 궁금증을 풀어줄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번 호를 마무리하며, 저만의 창백한 푸른 점을 생각해 봅니다. 오랜 시간 갈 길을 가다 문득 방향을 틀었을 때, 그곳에 추억의 대상이 보인다면 얼마나 안심되고 행복할까요. 점 하나로 멀어져 있겠지만, 그곳에 있을 반가운 이름들을 불러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때의 냄새나 소리, 함께 한 이들의 눈빛이 어른거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과학동아가 그런 창백한 푸른 점이 되면 좋겠습니다. 

2022년 3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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