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독식했던 IBM호환기종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 AMD TI 등 호환칩 업체들이 등장, 인텔의 10년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 이에 대항해 486 강화정책을 써온 인텔은 올해초 586칩인 펜티엄을 내놓을 예정이어서 조용하던 이 시장에도 한바탕 성능경쟁이 몰아칠 전망이다.
'고성능, 저가격'. 얼핏보면 서로 상반된 것을 나타내는 이 표현은 최근 2, 3년간 세계 PC시장의 흐름을 주도해온 법칙이 되었다. PC는 끊임없이 고성능화되고 있으며 가격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PC의 고성능화를 뒷받침한 것은 두뇌 역할을 맡고 있는 마이크로프로세서(microprocessor, 흔히 CPU라고도 한다) 기술의 혁신적인 발전이다.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술의 진보로 이제 PC는 예전의 중대형 컴퓨터에 걸맞는 처리능력을 자랑하는 고성능 시스템으로 변신했다.
불과 몇년전만 해도 PC는 본체와 모니터 키보드 프린터 등 꼭 필요한 주변기기를 모두 합쳐 자동차값에 맞먹는 고가의 제품이었으나 이제는 그보다 훨씬 더 성능이 좋은 PC를 싼 가격에 살 수 있게 됐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기술 혁신으로 부품 가격이 인하된 이유도 있겠지만 최근 2, 3년전부터 치열하게 전개됐던 PC업체간 가격경쟁에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91년 미국 PC시장에서는 델컴퓨터 AST리서치 등 IBM 호환기기 업체들을 중심으로 가격인하경쟁이 시작됐다. 이들 후발업체들은 선두주자를 따라잡기 위한 전략으로 저가정책을 전개했다. 이들은 저가형 PC 신제품을 발표하면서 일반인들을 새로운 PC 사용자층으로 끌어 들였다. 새로운 시장개척에 성공한 것이다.
'가격'을 무기로 내세우는 이들 업체들의 맹추격으로 IBM 컴팩 등 고가의 '프리미엄 정책'으로 자존심을 중시하던 선두주자들은 지난 91년 최악의 경영적자를 내는 위기상황을 맞기까지 했다.
91년에 이어 역시 저가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졌던 지난해는 위기에 몰린 대형업체들이 앞장서 잇따라 저가형 PC를 발표, 역공세를 펼쳤다. IBM과 컴팩이 드디어 거추장스러운 '하이힐'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나선 것이었다.
컴팩은 지난해 6월 1천달러 이하의 '프로리니어'(Prolinear) PC를 발표하면서 92년 가격인하 경쟁의 선봉에 섰고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어 91년의 어려움을 딛고 재기에 성공했다. 컴팩에 이어 PC사업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던 IBM도 지난해 10월부터 저가형 PC '밸류포인트'(Value Point)로 늦은 추격전에 나서 어느 정도 성과를 얻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IBM 컴팩 등 대형 PC업체들에 의해 주도됐던 지난해의 가격인하 경쟁은 독불장군으로 홀로 고가정책을 고수하던 애플컴퓨터를 마침내 굴복시켰으며 초창기 가격경쟁을 주도했던 호환기기업체인 델컴퓨터 등도 뒤질세라 더 낮은 가격의 제품을 발표, 그야말로 혼전에 혼전을 거듭했다. 한마디로 가격경쟁에 참여하지 않는 업체가 없었고 1천달러 이하의 새로운 제품군이 형성됐다.
호환칩 업체의 등장
세계 PC시장에서 지난해의 가격경쟁이 어느 해보다 치열했던 것은 대형업체들이 참여, 인하폭이 예년보다 컸다는 점도 있겠지만 미국 PC시장을 중심으로 시작됐던 가격경쟁이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곳곳으로 번졌다는 점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컴팩과 IBM은 유럽에서도 가격인하정책을 써 로컬 업체들과 경쟁을 벌였고 일본 한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같은 양상을 보였다.
지난해 PC시장은 386기종에서 486기종으로의 기술전환이 급속히 전개됐던 한해로 기억될 것이다. 이는 윈도우즈(Windows) 등 고성능 소프트웨어가 컴퓨팅 환경을 주도해 나가면서 사용자들의 요구가 고성능 시스템을 선호하는 경향으로 바뀌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한가지 중요한 요인은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의 판도 변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PC용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을 주도하는 인텔의 '486 강화 전략'이 한몫을 담당했던 것이다. 인텔은 지난해 6월 기존 80486 마이크로프로세서 보다 성능이 한층 강화된 80486-DX2 제품을 발표해 486 중심의 시장정책을 펴왔다.
불과 몇년전만 해도 PC용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인텔은 지난해 미국 어드밴스드 마이크로 디바이시스(AMD)사가 80386 호환칩인 AM386을 발표,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서 호환칩 시대를 열자 어쩔수없이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이라는 떡을 호환업체들과 나누어 먹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인텔은 한편으로는 호환업체들을 잇따라 특허침해로 제소하는 등 법적인 투쟁을 벌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기술의 신제품 발표로 기술면에서 차별화전략을 펴 호환업체들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인텔은 AMD가 386 호환칩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 날로 성장하자 이보다 한단계 발전한 성능의 486 시장 강화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지난해는 이처럼 '저가격과 고성능'의 법칙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전개돼왔다. 그렇다면 올해는 세계 PC시장이 어떠한 양상을 띨 것인가.
인텔의 승부수 펜티엄
올해의 추세를 한마디로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어쨌거나 계속해서 PC시장을 이끌어왔던 '저가격 고성능의 법칙'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올해 PC시장에서는 '저가격'보다는 '고성능'이라는 측면에 더욱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 2, 3년동안 지속적으로 업체간 저가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돼 더 이상 가격을 낮출 여지가 남아있지 않다는 분석이 대두되고 있다. 오히려 PC업체들은 마진율이 너무 적어 고전하고 있으며 자본력에서 뒤지는 소규모 업체들은 PC 판매부진과 마진폭 감소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올해 들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난해 PC업체들의 마진폭이 너무 감소돼 소형 PC업체들의 경영난이 가중될 것이며 도산하는 기업도 생겨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올해 각 PC업체들은 이미 바닥권을 형성하고 있는 PC가격을 바탕으로 보다 성능이 월등한 PC 제품으로 승부수를 띠우게 될 것이다. 또 한가지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올해초 제품 발표를 앞두고 있는 인텔의 차세대 마이크로프로세서 '펜티엄'의 출현이다.
인텔은 현재 고성능 PC의 두뇌 역할을 맡고 있는 80486 칩보다 한차원 넘어선 80586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중이며 93년초부터 본격 출하될 이 제품의 공식명칭을 펜티엄으로 결정했다고 지난해 10월 발표했다. 인텔이 586 칩의 명칭을 이제까지와 달리 펜티엄으로 정한 것은 386 486 등의 숫자는 모방을 하기가 쉽다는 점을 들어 경쟁업체들이 모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텔이 경쟁업체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기술력을 과시한다는 전략 아래 야심작으로 개발하고 있는 펜티엄은 처리능력이 1백 MIPS(1MIPS는 1초에 1백만 명령어 실행)로 기존 486 라인의 최고 성능 제품인 66㎒ 486DX2의 2배 수준이다. 또한 펜티엄은 탑재되는 트랜지스터수만도 3백만개에 달하며 32비트의 명령어 체계를 갖지만 내부 데이터 경로는 64비트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PC와 워크스테이션의 경계도 무너져
세계적인 PC업체들에서는 이미 인텔로부터 시제품을 제공받아 제품 개발을 진행중이며 인텔의 펜티엄 발표와 함께 PC업체들은 이를 탑재한 PC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한다. 고성능 마이크로프로세서 펜티엄을 내장한 PC는 처리능력면에서 PC보다 한단계 위인 워크스테이션에 맞먹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펜티엄 PC의 출현은 곧 PC와 워크스테이션 영역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올해 PC시장 변화를 점치는데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동향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은 마이크로프로세서와 PC시장과의 함수관계 때문이다. PC의 두뇌역할을 맡는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과 PC시장의 변화추세는 톱니바퀴처럼 서로에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이들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는 것은 향후 PC시장 전망에 재미있는 단서를 제공해준다.
앞서 말했듯이 인텔은 불과 2, 3년전만 해도 PC시장에서는 난공불락의 요새를 지키고 있었다. 지난 10여년간의 PC역사에서 IBM PC가 수많은 호환기기 군단을 이끌며 세계 PC시장의 표준으로 자리잡게 되자 IBM PC에 내장되는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 역시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91년 AMD에 의해 호환칩 시장이 열리면서 인텔은 지난 한해동안 386은 AMD에 내주고 고성능 486 시장에서도 사이릭스사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 등에 추격당하는 입장이 됐다. TI는 삼성전자 현대전자 등 우리 반도체업체들로부터 막대한 로열티를 챙겨가는 기업으로 잘 알려져있다. 인텔은 결국 기술력으로 고성능 PC시장을 선도해가는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발빠른 성장 예고되는 네트워크분야
가격 보다는 성능에 초점을 맞춰 제품개발 전략을 세우는 각 업체들은 무엇보다 사용자들의 요구가 무엇인가를 파악하는데 눈과 귀를 모으고 있다. 고도의 하이테크 제품인 PC를 만드는 업체들은 '만들기만 하면 팔리는' 전성기를 지나 치열한 가격경쟁시대를 거치면서 '가격경쟁과 마진율 감소'라는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으로 유저들의 요구를 반영한 제품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PC 제품의 특징으로는 우선 확장성이 보장되는 제품 설계가 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이 점점 빨라져 눈깜짝할 사이에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오늘의 신기술이 내일이면 이미 낡은 것으로 바뀌어 버리는 특징 때문에 각 업체들은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교체만으로 성능을 향상(up-grade)시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유저들의 불안감을 해소시켜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PC업체들은 제품의 질적 향상을 위해 제품의 신뢰도나 안정성, 사용상의 편리함 등에 그 어느때보다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며 이는 사용자들의 제품 선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제품을 준비하는 PC업체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중요한 요소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통신망(network) 측면이다. 컴퓨팅 환경 자체가 데스크톱 PC들을 하나의 통신망으로 연결시키는 경향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각 PC업체들은 사용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제품개발시에 '네트워크 기능의 확대'라는 측면을 간과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세계적인 PC 전문가들은 사용자 측면에서 PC를 하나의 통신망으로 묶으려는 요구가 점점 더 강력하게 대두될 것이며 이에 따라 네트워크 분야는 PC시장에서 가장 발빠른 성장이 기대되는 유망분야라고 점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