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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Ⅲ 노벨상에 근접한 한국인 과학자들

첫 수상자 언제 나올까?

단백질구조해명을 통해 암유전자를 정복하려는 김성호박사(버클리대)와 유행성출혈열의 전모를 밝힌 이호왕교수(고대)가 현재로서는 노벨상에 가장 가까이 가 있다.

과학자에게 최고의 영예가 되는 노벨상에 우리 과학자들은 얼마나 접근해 있을까.

2년전 서울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세계4위'의 놀라운 성적과 수많은 금메달을 따냈던 감격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노벨상은 올림픽 금메달보다 훨씬 힘들다. 상 자체는 개인에게 수여되지만 노벨상 수상사가 나올만한 학문적 토대와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뒷받침돼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노벨상의 6개 수상대상 가운데 과학분야는 물리학 화학 의학·생리학 등 3개 부문. 모두 기초과학의 영역에 속하고 우리나라가 매우 취약한 분야들이다. 의학이 일부 응용과학적인 성격이 짙지만 세계적인 학문수준과 현저한 격차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기자가 만나본 과학자들은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서 한결같이 "당분간은 가능성이 없는 얘기"라고 입을 모았다. 국내외를 통틀어 노벨상 후보자로 거론해 볼 수 있는 한국인 과학자는 손꼽을 정도이며 이들조차 현재의 업적보다 앞으로의 가능성을 봐서, 또는 '점수를 후하게 쳐서' 거명 정도 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한국을 방문했던 얀에릭 린드스텐 노벨의학·생리학상위원회 사무총장도 "노벨상은 지적탐구의 사회적 분위기가 매우 중요하며 한국은 지금부터 노력한다면 40~50년후쯤 수상자가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렸던 「노벨상 수상자 12인 심포지움 」


허약한 기초과학 토대

이렇게 비관적으로 보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기초과학의 토대가 허약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경제성장을 이루는데만 급급해 과학분야에서도 응용연구에는 어느 정도 투자가 이뤄졌지만 기초과학은 홀대를 받아왔다. 지난해 과기처가 '기초과학 육성'을 중점과제로 삼고 여러가지 정책을 발표했지만 기초과학 실력은 하루아침에 쌓이는 것이 아니다. 원로 화학자 이태규박사(한국과학기술원 명예교수)는 "기초과학 만큼은 서구보다 훨씬 뒤떨어졌다는 일본조차도 1930년대부터 기초과학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이때 뿌린 씨가 열매를 맺어 오늘날 일본 과학기술이 세계 첨단을 걷게 됐다. 미국이나 유럽의 기업들이 민간연구소 차원에서 기초과학연구에 힘을 쏟고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내는 사실을 눈여겨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학기술원 김재관교수(물리)는 "노벨상은 독창적인 발견을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데 이는 서구의 자유분방한 사회분위기 및 교육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처럼 대학입시를 치르기 위해 과목마다 모두 좋은 점수를 얻어야 하는 풍토속에서는 천재가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키울 수 없다"고 말한다.

과학저널리스트 현원복씨는 "동양인 수상자들을 보면 비록 국적은 아시아인이지만 그 학문적 계보는 모두 미국 유럽쪽에 속한다. 곧 노벨상을 탄 스승 밑에서 연구를 하는 것이 노벨상을 탈 수 있는 첩경이다. 따라서 해외에 있는 한국인 과학자들이 국내 학자들보다 상대적으로 노벨상에 근접해 있다"고 지적한다.

비운의 물리학자, 이휘소

물리분야에서 한때 한국인 첫 노벨상감으로 지목됐던 사람은 지난 77년 미국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휘소(미국명 벤자민 리)박사. 그는 당시 42세의 나이로 페르미연구소 이론물리학부장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약력(弱力)과 전자기력의 통일장이론을 연구하던 미국인 와인버그와 파키스탄인 살람이 79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사실을 볼 때 이휘소박사는 당시 한국인으로 가장 노벨상에 가까이 있었던 인물이라는 평이다.

미국에는 '유학 제1세대'에 속하는 한국인 물리학자들이 많이 있다. 컬럼비아대 이원용교수(59·입자물리학 실험)를 필두로 강경식 (54·브라운대·입자물리학 이론) 김정욱(56·존스홉킨스대·원자핵의 약작용연구)씨 등이 그곳 학계에 많이 알려져 있다.

김재관교수는 "이들이 미국 물리학계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있지만 노벨상감으로 뽑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이들 유학1세대에 기대를 걸기보다 30, 40대 젊은 학자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최근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한다.

유럽에서는 프랑스 원자력청 산하 샤클레연구소 수석연구부장을 맡고있는 노만규박사(54)를 들 수 있다. 그는 중간자들이 핵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2백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최근 관심을 쏟고있는 분야는 중성자별의 내부구조에 관한 연구.

국내에서는 김진의교수(44·서울대)를 가능성있는 인물로 꼽는 사람이 많다. 서울공대 화공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 로체스터대학에서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땄다. 김교수는 '눈에 보이지않는 액션(입자)'이라는 입자물리학의 가설을 발표, 한국과학상을 받기도 했다.

암유전자 규명한 김성호

화학분야에서는 단연 미국 버클리대 김성호교수(52)가 돋보인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피츠버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73년 t-RNA의 구조를 세계 최초로 밝혀 일찍이 재질을 인정받았다. 이를 발판으로 그는 최근 암발생의 단서를 제공하는 Ras 단백질의 실체를 밝혀내 로렌스상과 일본 왕실 암재단상을 받기도 했다.

유럽쪽에서는 김재일교수(54·뮌헨공대)와 하태규박사(56·스위스 취리히공대 )가 각각 플루토늄연구와 양자화학이론븐야에서 널리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과학기술원 전무식교수(58)와 심상천교수(53·광화학반응)가 해외잡지에 부지런히 논문을 내고있다. 특히 전교수는 물(水)구조에 관한 독특한 이론체계를 가지고 1백30여편의 논문을 발표, 이 분야 권위자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화학분야에서 국내 최초의 이학박사인 이태규박사(88)에 대한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제는 그가 노벨상에서 멀리 떨어져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지만, 50년대 미국 유타대학에서 활약한 시절 아이링교수와 공동으로 발표한 '리-아이링이론'은 당시 노벨상감으로도 충분한 업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점성화학과 반응속도론에 대한 기여로 65년 노벨상 추천위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탄바이러스의 이호왕

의학·생리학분야에서는 이호왕교수(61·고대 미생물학과)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유행성출혈열의 원인인 한탄바이러스 서울바이러스를 발견하고 그 치료제와 백신까지 개발, 이 병에 관한 한 완벽한 해결사가 됐다. 단지 유행성출혈열이 한국 중국 소련 등에서만 많이 발생하는 질병으로 서구에는 그다지 흔치않다는 점이 그가 노벨상 대열에 끼는데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외에 해외학자로는 조동협(59·미 코넬대·분자신경생물학) 이서구(47·미 국립보건원·신호전달체계) 윤지원(51·캐나다 캘거리대·당뇨병백신개발)박사 등이 있고 국내에는 핏속의 합토글로블린 연구로 유명한 심봉섭교수(64·가톨릭의대) 등이 있으나 노벨상감으로 거론하기에는 미진한 감이 있다.

중앙대 의대 양용태교수는 "다른 분야보다 의학·생리학에서 더욱 노벨상감을 꼽기가 어려운 것은 머리좋은 학생들이 대부분 힘든 기초의학보다 손쉽게 돈벌수 있는 임상분야로 빠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 기초의학을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연구에 대한 지원도 거의 없으므로 황무지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박사취득 후 10년이 고비

물리학에서 노벨상을 따느냐 못따느냐는 20대에 결판난다고 한다. 이론이 중심인 물리학에서는 20대, 늦어도 30대 초반의 왕성한 창의력이 노벨상에 도전하는데 가장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실험쪽이 많은 화학 의학·생리학 쪽은 대개 30, 40대 업적으로 수상 후보자로 추천된다. 그만큼 과학자에게 20, 30대는 중요한 시기다.

김재관교수는 "최근 20대박사가 많이 배출되지만, 그들이 가장 정력적으로 연구할 시기인 박사취득후 10년까지를 그들은 기업프로젝트나 강의 그리고 학생 지도로 소모해 버린다. 그렇지 않으면 안정된 직장을 못구해 방황하게 된다. 이 때문에 박사학위를 받을 당시 외국학생들에 비해 손색이 없던 국내 과학자들이 그후 제자리걸음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해외에서 활약하던 과학자들이 국내에 들어오면 학문보다 행정에 몰두하는 과학계의 풍토가 문제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전무식교수는 "국제관계의 변화와 국력신장으로 이제 한국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우선 해외에 많은 논문들을 발표해야 하고 국내에도 노벨상 추천위원이 하루빨리 나오게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한다.

고대 김정흠교수(물리)는 "노벨상은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초과학을 중시하는 학문적 풍토속에 결과물로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30%이상을 차지한 유태인의 교육제도를 본받아 기초부터 착실히 닦아가는 것"이외에는 '노벨상의 왕도(王道)'가 없다고 말한다.

90년 노벨상 과학분야 수상자-프리드먼·켄들·테일러(물리) 코리(화학) 머리·토머스(의학·생리학)

올해의 노벨물리상은 선형가속기 실험을 통해 쿼크(quark)의 존재를 입증한 미국인 과학자 제롬 프리드먼(60)과 헨리 켄들(63) 그리고 캐나다의 리처드 테일러(60) 세 사람에게 돌아갔다.


물리학상 수상자 제롬 프리드먼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가 밝힌 이들의 수상이유는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와 중성자에 내부구조가 존재한다는 분명한 증거를 밝혀냄으로써 물질의 기본구조를 해명하는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는 것. 소립자연구는 69년 겔만이 '쿼크에 대한 가설'로 수상한 이후 노벨물리학상의 단골 메뉴가 됐다.

시카고출신의 프리드먼과 보스턴 태생의 켄들은 현재 MIT교수로 재직중이며 테일러는 스탠퍼드대 교수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60년대와 70년대초 스탠퍼드대학 선형가속기센터에서 팀을 이뤄 양성자속의 정(正)구조를 발견함으로써 쿼크모델의 이론적 틀을 마련했다.

화학상 수상자는 하버드대학의 엘리어스 제임스 코리교수(62). 그는 유기물 합성이론과 방법론을 개발한 공로로 노벨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코리교수는 60년대부터 실험실에서 유기물합성을 통해 실생활에 유용한 물질들을 잇따라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유기물합성의 이론적 체계를 세우기 위해 '역합성'(逆合成)에 의한 화합물분석방법을 정립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노벨화학상 엘리어스 제임스 코리교수
 

이러한 연구를 통해 그는 고분자 화합물, 인조섬유, 도료와 안료, 살충제, 의약품 등 1백여종의 유기화합물을 개발했으며, 그중 혈관수축 및 지혈제인 프로스타글라딘은 대표적인 화합물로 손꼽힌다. 특히 코리교수는 김성각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등 국내에 10여명의 제자들이 있고 지난 9월 한국과학재단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 세차례 특별강연을 가지기도 했다.

올해의 노벨 의학·생리학상은 미국인 죠제프 E. 머리박사(71)와 도널 토머스박사(70)가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

밀퍼드태생인 머리박사는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보스턴 브리검 여성병원에 근무하고 있다. 토머스박사는 시애틀출신으로 역시 하버드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프제드 허친슨암연구센터에 재직중이다.

머리박사는 인류 최초로 신장이식에 성공했고 토머스박사는 골수이식을 통해 백혈병 치유율을 크게 높인 것이 수상이유가 됐다.

머리박사는 지난 54년 최초로 신장이식수술에 성공했고, 60년대에는 면역억제제를 활용해 신장이식에 따른 거부반응을 최소화했다. 그와 함께 신장이식분야를 개척했던 데이비드 흄박사는 비행기사고로 사망해 아깝게 노벨상을 놓쳤다.
 

노벨 의학 ·생리학상을 수상한 죠제프E. 머리박사
 

토머스박사는 60년대초부터 골수 이식수술을 연구해 백혈병과 재생불량성 빈혈 등 면역체계의 질병에 대한 치료법을 확립했다. 노벨 의학·생리학상이 기초의학이 아닌 임상분야에서 나온 것도 오랜만의 일이다.

올해의 노벨상은 미국이 휩쓸었다. 수상자 가운데 5명이 미국인이고 캐나다 출신 테일러도 스탠퍼드대학 교수로 있다. 또 단위기관으로 역대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하버드대학이 올해에도 3명의 수상자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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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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