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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 논문에 이름 올린 나는…고양이로소이다

연구 결과는 논문으로 꽃을 피운다. 한 편의 정갈한 논문 안에는 과학자들이 수년간 공들여 예쁘게 편집한 결과가 녹아있다. 다만 그 시간 동안 그들이 겪는 수많은 시도와 실패는 알 수 없다. 사실은 실패가 훨씬 많은데 말이다. 그간 학계에서 과학자들이 하나의 논문을 완성하기까지 겪은 흥미로운 사건·사고를 과학동아 코너, 과학뉴스로 재구성해 봤다.


물리학 논문 저자는 7살이고, 
고양이입니다

 

 

1975년 국제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PRL)’에 두 명의 공동저자가 헬륨 결정 내 원자 교환 효과를 분석해 논문을 발표했다. 저자 한 명인 잭 헤더링턴은 당시 미국 미시건대 물리학과 교수였는데, 문제는 또 다른 저자였다. 그는 고양이였다.


실상은 이렇다. 헤더링턴 교수는 단독으로 논문을 작성해 제출했는데, 학술지 측에서 그가 1인칭 복수형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혼자 쓴 논문인데 왜 ‘we’ ‘us’와 같은 표현을 사용했냐는 것이다. 학술지는 두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❶ 단수형으로 논문 전체를 수정할 것
❷ 공동저자를 찾을 것


타자기로 작성한 논문을 수정하려면 전체적으로 다시 작업해야 했다. 그때 문득 본인이 키우는 고양이 ‘체스터’가 떠올랐다. 그는 논문 전체를 수정하는 대신 고양이의 이름 체스터 앞에 고양이 학명(Felis domesticus)의 약자를 붙이고, 윌러드라는 성을 더해 ‘FDC 윌러드’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만들어냈다(윌러드는 실제 고양이의 아빠 이름이었다). 그 결과 무사히 논문을 게재할 수 있었다. 헤더링턴 교수의 묘(猫)안이 통한 셈이다.


헤더링턴 교수만 알고 있던 이 사실은 1978년 프랑스 그르노블에서 열린 학회에서 윌러드 박사(?)를 초청하던 과정에서 세상에 공개됐다. 헤더링턴 교수가 학회 측에 보낸 논문에 체스터의 발자국도 찍혀 있었던 것이다. 이후 1980년 9월에는 FDC 윌러드가 단독으로 저술한(저술했다고 주장하는) 에세이가 프랑스 과학 잡지 ‘라 르쉐르슈(La Recherche)’에 실리기도 했다.


한 과학자의 기행이 낳은 해프닝이지만, 과학과 고양이가 제법 어울린다며 진지하게 이 사연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고양이 행동학자인 미켈 델가도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 연구원은 SF 전문 사이트인 ‘기즈모도’와의 인터뷰에서 “고양이는 원래 실험을 좋아하는 동물”이라며 “이유 없이 물건을 떨어뜨리는 행동을 하며 주변과의 상호작용을 확인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흑곰 겨울잠 연구하다 
눈 마주친 순간 포착

 

로키 산맥이 아름다운 캐나다를 여행할 때 꼭 챙겨야 하는 필수품이 있다. 곰 퇴치 스프레이다. 한국인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캐나다나 미국에서는 등산이나 캠핑을 하다 회색곰, 흑곰 등을 마주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웨슬리 라슨 미국 브리검영대 전 연구원은 오지 캠핑장에서 인간과 곰의 충돌을 줄이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2016년 2월 그는 미국 유타주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에 사는 수컷 흑곰의 무전기 배터리를 교체하는 임무를 받았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좌표를 따라 협곡으로 향했다. 영하 65℃에 달할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위치추적기 신호가 약하게 감지되는 것을 확인한 라슨은 흑곰이 겨울잠을 자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암 동굴을 찾았다. 안에서는 야생동물이 뿜는 사향 냄새가 났다.
간신히 사람 한 명이 들어갈 만큼 입구가 작았지만, 라슨은 주저 없이 들어가 진정제가 담긴 주사기를 곰에게 명중시켰다. 1년 반 전 그들이 위치추적기를 달아 방생했던 곰의 무게는 이제 150kg를 넘길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시간이 지나 라슨은 잠든 곰을 확인하러 동굴로 향했다. 그리고, 커다란 눈과 마주쳤다. 곰은 깨어 있었다. 동행했던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 코레이 아놀드는 이 순간을 포착했다.


곰은 뒷걸음질하는 라슨 연구팀을 쫓아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라슨은 한 번 더 진정제를 투여하며 배낭과 막대기로 동굴 입구를 다급히 막았다. 소용없었다. 곰은 거친 걸음으로 장애물을 뚫고 동굴을 빠져나와 눈 덮인 비탈로 유유히 내려갔다. 그리고 소나무 아래에서 잠들었다.


라슨과 그의 동료는 무사히 위치추적기 목걸이를 교체하고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 이후 진정효과가 끝나기 전에 곰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봄이 오자, 위치추적기가 곰이 일상생활을 재개했다고 알려왔다. 그가 목숨 걸고 분석한 자료는 2019년 5월 국제학술지 ‘인간-야생동물의 상호작용’에 실렸다. 논문 한 편 내기가 이렇게 어렵다. doi: 10.26076/2490-3w55 

 

 

한 방울에 8년, 
세·젤·오래 걸린 연구

 

가장 끈적끈적한 유체인 피치의 점성은 얼마나 될까. 피치는 석탄, 목재 등 유기물질에서 타르를 증류해 얻은 흑색의 탄소질 고형 잔류물로, 도로 위에 깔린 아스팔트 성분 중 하나다. 1927년 토머스 파넬 호주 퀸즐랜드대 교수팀은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피치로 점성 실험을 시작했다. 


파넬 교수는 피치를 가열한 뒤 입구를 막은 유리 깔때기에 붓고 냉각시켰다. 3년간 안정화 작업을 한 뒤 깔때기 아랫부분을 잘라 피치가 아래로 떨어지도록 했다. 첫 번째 방울은 8년이 지난 1938년에서야 관찰됐다. 초기에는 한 방울이 떨어지는데 7년에서 9년이 걸렸다. 파넬 교수는 두 번째 방울까지 관측하고 사망했다.


실험 도구는 한동안 방치됐다가 30년이 지난 1961년, 같은 대학의 존 메인스톤 교수에 의해 발견된다. 메인스톤 교수는 실험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6번째 방울을 기준으로 피치의 점도는 물의 약 2500억 배인 것으로 추산됐다. 7번째 방울이 떨어진 뒤에는 피치가 떨어지는 속도가 줄었다. 연구팀은 에어컨 때문에 평균 기온이 달라진 영향으로 분석했다.


1930년 실험을 시작한 이래 78년간 피치가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없었다. 2000년 메인스톤 교수는 8번째 피치 방울이 떨어지는 순간을 담기 위해 현장을 실시간 중계했지만, 하필이면 피치가 떨어지는 날 카메라가 고장 나 기록하지 못했다. 그는 9번째 방울을 보지 못한 채 2013년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이후 실험은 앤드루 화이트 호주 퀸즐랜드대 교수가 맡았다. 2014년 4월, 9번째 방울이 떨어지는 순간은 전 세계 158개국 3만 명의 시청자들과 함께 했다. 현재 깔때기에 남은 피치가 다 떨어지려면 앞으로 100년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폴링의 삼중나선, 
틀린 연구지만 박제된 사연은?

 

최초로 노벨 과학상과 평화상을 모두 받은 교수가 있다. 라이너스 폴링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 교수는 화학 결합의 성질을 밝혀 현재 화학결합론의 기초를 구축한 공로로 195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전쟁과 핵 무기를 반대하는 운동에 적극 참여해 1962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두 차례 모두 단독 수상이었다.


폴링 교수는 역대급 흑역사를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화학 결합을 기초로 단백질의 분자 구조를 밝힌 것으로 유명하다. 단백질의 기본 구조인 나선형(알파 헬릭스), 판형(베타 시트) 등이 이때 알려졌다. 이후 폴링 교수는 DNA 구조를 규명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단백질 구조를 조사하는 데 사용한 방법으로 DNA를 분석한 결과 ‘삼중나선’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1953년 2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하지만 같은해 4월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에 의해 DNA는 이중나선 구조라는 결과가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되며 폴링 교수의 주장이 틀렸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심지어 이들도 폴링이 개발한 실험법을 이용해 이중나선을 증명했다.


그런데 폴링 교수의 ‘틀린’ 주장이 담긴 PNAS 논문은 철회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다. PNAS는 “(이 논문이) 틀렸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히 모두가 알고 있다”는 이유로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덕분에 과학계에서 ‘잘못된 논문을 철회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질 때면 폴링 교수의 논문은 단골 소재가 됐다.


한편 폴링 교수는 한번 더 논란의 중심에 선 적이 있다. 1970년대 들어 그는 비타민C의 효능을 강력히 주장하기 시작했다. 1976년 PNAS에 비타민C에 항암 효과가 있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암 환자가 비타민C를 다량 섭취하면 수명을 최대 20배 연장할 수 있다는 놀라운 결과였다. 이 때 섭취해야 하는 비타민의 양은 1만 mg로, 보통 먹는 비타민제 함량의 10~20배에 달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임상실험이 과장되거나 엄밀하지 못했다는 게 밝혀지며 논란은 일단락됐다(아무튼 그는 94세로 장수하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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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애 기자
  • 일러스트

    김대호
  • 디자인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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