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악성 종양이 생기면 이를 제거하기 위한 외과 수술을 받는다. 큰 수술일수록 절개해야 하는 부분은 넓어진다. 그만큼 수술 이후 회복하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래서 의학계는 절개 부위를 최소화해 건강한 조직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최소침습수술’을 지향한다. 몸속에서 의료용 로봇을 움직여 최소침습수술의 ‘끝판왕’을 꿈꾸는 연구자들을 만났다.
지난 9월 21일 DGIST E5동에서 MBR Lab(Multiscale Biomedical Robotics Lab멀티스케일 의료 로보틱스 연구실)을 운영하는 박석호 DGIST 로봇및기계전자공학과 교수를 만났다. 사진 촬영을 위해 둘러본 실험실에는 굵은 코일과 전선이 가득 연결된 장비들이 즐비했다. 연신 감탄하는 기자에게 박 교수는 말했다. “신기하죠? 하지만 보시는 큰 로봇이 전부가 아닙니다. 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크기의 아주 작은 로봇도 있죠. 연구실 이름인 ‘멀티스케일’인 이유입니다.”
외부 자기장으로 몸속 로봇을 움직이다
MBR Lab은 몸속에 들어간 로봇을 움직이고 약물을 전달할 수 있도록 외부 자기장으로 로봇을 조종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대표적으로 EMA(Electromagnetic Actuation) 시스템을 이용하는 연구가 있다. EMA 시스템은 전자석을 이용해 침습 없이 몸속 로봇을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EMA 시스템 내 코일에 전류를 흘려 유도한 자기장으로 자석을 탑재한 의료용 로봇을 움직이는 원리다. 자기장을 제어해 로봇을 몸속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박 교수는 “몸속에서 의료용 로봇을 움직이기 위해 로봇에 모터나 와이어를 달아보기도 하고, 아예 기어가는 로봇을 설계해 보기도 했다”며, “여러 번의 실험 끝에 자기장과 자석을 이용한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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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R Lab은 외부 자기장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의료용 로봇 기술을 이용해 장내 미생물 채취용 캡슐, 약물 전달이 가능한 마이크로 로봇 등을 개발해 왔다. 특히 암 치료를 위해 혈관을 따라 움직이는 의료용 마이크로 로봇을 개발하기도 했다. 외과적 수술을 통해 종양을 제거하거나 혈관에 약물을 주사하는 현재 치료법으로는 주변 정상 세포에도 약물이 영향을 미치는 등의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의료용 마이크로 로봇에 암 치료 약물을 탑재하고, 암세포가 위치한 부위에 자기장을 집중시키면 약물이 암세포에만 집중될 수 있다.
MBR Lab에서 개발한 의료용 로봇을 움직이게 하는 원천은 로봇에 실린 산화철 가루인 자성나노입자(MNP)다. 덕분에 외부 자기장으로 움직일 수 있지만, 자성나노입자가 몸속에 남을 경우 독성을 띨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연구팀은 몸속에서 자성나노입자를 다시 회수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약물을 전달하는 의료용 로봇은 생적합성생분해성 젤라틴으로 이뤄졌다. 이 젤라틴은 근적외선을 쬐면 몸속에서 녹아 사라지며 약물과 자성나노입자를 방출한다. 이때 자성나노입자가 흩어져 있는 곳에 얇은 의료용 관인 카테터를 넣고 자성나노입자가 카테터 쪽으로 이동하게 자기장을 걸어주면, 자성나노입자가 카테터를 타고 다시 몸 밖으로 빠져나오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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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자, 기술자, 의사함께하는 연구의 매력
의료용 로봇 연구의 최종 목표는 상용화다. 의료용 기술이 환자에게 닿기 위해선 상용화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지금까지 자기장 구동 캡슐 내시경과 무릎 연골용 줄기세포 운반 기술을 공동 연구개발해 기업에 기술 이전했다”고 설명했다.
기존의 캡슐 내시경은 소화기관의 연동운동으로 움직인다. 반면 자기장 구동 캡슐 내시경은 자기장 구동을 통해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 보다 정밀한 진단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MBR Lab에서는 자기장 구동 캡슐 내시경을 발전시켜 장내 미생물 채취용 캡슐도 개발하고 있다.
무릎 연골용 줄기세포 운반 기술은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로봇으로 줄기세포를 원하는 무릎 연골 부위에 정확히 운반함으로써 줄기세포가 잘 정착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이 밖에도 MBR Lab은 현재 다양한 치료세포와 약물을 소화기관 내에서 운반하고 전달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박 교수는 앞으로도 의료 로봇 기술 개발과 기술이전 및 상용화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 로봇 기술이 상용화되려면 기술을 개발한 이후에도 임상 시험을 거치고 안전 기준을 확립하는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럼에도 너무 재밌고 보람찬 일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의료용 로봇 개발은 연구자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의사에게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연구가 시작되기 때문이죠. 환자와 의사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 그리고 여러 분야의 사람을 만나 함께 발전시켜 가는 연구라는 점이 가장 보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