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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얼마나 극한 환경을 견딜 수 있을까?

칠레광부의 기적이 가능했던 이유

칠레 산호세 지역 광산에 매립돼 있던 33명의 광부 전원이 지하 700m 공간에서 무사히 살아나와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이들은 사고 17일 만에 생존자를 찾기 위해 지상에서 내려보낸 탐침봉 끝에 ‘살아 있다’는 쪽지를 매달아 올려 보냈다. 그 후 광부들은 구조작업이 진행되는 52일을 더 참고 견딘 끝에 10월 12일 모두 건강하게 지상으로 돌아왔다. 어둡고 습한 땅속에서 69일을 견뎌낸 것이다.



칠레 광부들 이외에도 극한환경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적지 않다. 올해 초 지진으로 2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아이티에선 건물 잔해에서 12일 동안 매몰되어 있던 30대 남성이 구조됐다. 다리에 골절상을 입고 물조차 마시지 못해 심각한 탈수 상태에 있었으나 결국 살아남았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매몰현장에서 세 사람의 생존자가 발견됐는데, 각각 11일, 13일, 17일 만에 살아 나와 화제가 됐다. 이런 인간의 적응력은 어떻게 발휘되는 걸까.



 
 



한 끼만 굶어도 뱃속에선 음식을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배고파 죽을 것 같다’는 말이 저절로 튀어 나온다. 기온이 3~4℃ 아래로만 내려가도 쌀쌀함을 견디기 어렵다. ‘추워 죽겠다’고 투덜거려 보지만 이정도로 인간은 쉽게 죽지 않는다. 우리 몸은 외부 변화에 대응해 신경계, 호르몬계 등을 총동원해 생존을 위한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항상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체온과 혈당을 지켜라



항상성지표 중에서 특히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 체온과 혈당(피 속에 든 포도당)이다. 피 100mL에는 보통80~100mg의 혈당이 들어 있다. 식사를 하면 혈당이 올라가는데, 높아진 혈당은 이자(췌장)를 자극해 인슐린을 분비한다. 인슐린은 근육이나 간세포에서 당을 흡수하도록 명령해 혈당을 낮춘다. 반대로 혈당이 너무 떨어지면 이자에서 분비되는 글루카곤이나 부신수질에서 분비되는 에피네프린이 혈당을 높인다.



체온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체온은 37℃ 정도지만 0.5℃ 이상 변화가 생기면 간뇌에 있는 체온조절중추가 여러 가지 일을 해 체온을 정상으로 조절한다. 체온이 높으면 피부모세혈관을 확장시켜서 열을 내보내고, 반대라면 피부모세혈관을 수축시켜 체온을 보호한다. 호르몬 자극을 통해 부족한 열을 생산하기도 한다.



사람의 몸은 이렇게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스스로 항상성을 유지한다. 그래서 날씨가 조금 추워진다거나, 하루 이틀 굶는 정도의 변화에는 큰 문제없이 계속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역치라고 하는 일정한 선을 넘어서는 자극, 또는 조절이 불가능한 변화가 발생하면 인간은 계속 생존할 수 없다. 


 





사람이 음식을 먹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시간은 체지방 양에 따라 차이가 있다. 어른이라면 몇 주~몇 달까지 견딜 수 있다. 살이 많이 찐 사람이 조금 더 유리할 수 있다. 보통은 자기 체중이 50% 정도 감소할 때까지 살 수 있다.



사람은 혈당이 부족하면 간이나 근육에 저장해 둔 글리코겐을 꺼내 혈당을 높인다. 그것도 부족하면 간은 체지방을 분해해서 포도당을 만들고, 마지막에는 근육이나 뼈에 든 단백질까지 포도당으로 바꿔 사용한다. 이런 과정을 포도당신합성(gluconeogenesis)이라고 부른다.



오래 굶으면 폐렴으로 죽는다



하지만 이렇게 온몸의 체지방이 다 없어질 때까지 견디는 경우는 드물다. 음식을 먹지 못하던 사람이 사망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대부분 폐렴과 같은 감염성 질환이다.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해 몸의 면역체계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폐렴은 못 먹으면 걸린다’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는 과학적으로 신빙성이 있는 셈이다.



노인이나 어린이들은 어른에 비해서 먹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이 훨씬 짧다. 특히 청소년기 이전의 어린이가 위험한데, 약 6주 정도 밖에 살 수 없다. 체구가 작아서 몸에 저장하고 있는 에너지가 적은데다 성장과 발달을 위해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물론 모든 동물은 체구가 작은 쪽이 에너지 효율이 더 나쁜데, 몸무게에 비해 피부면적이 상대적으로 넓어 항상성을 유지하려면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때 비록 적은 음식이지만 조금씩 식사를 계속하는 것은 생존기간을 늘리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칠레 광부들은 생존사실이 알려질 때까지 얼마 안 되는 비상식량으로 연명해 왔는데, 17일 동안 이틀에 한 번씩 식사를 했다. 참치 통조림 두 스푼, 과자 반 조각, 우유 반 컵 씩만 먹었다고 한다. 참치 통조림은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해 장기간 견딜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 과자는 대부분 탄수화물이어서 즉시 에너지원으로 바뀐다. 우유에는 영양소는 물론 무기질과 비타민도 들어 있어 항상성 유지에 도움이 된다. 비상식량으로는 나쁘지 않은 조합이다.



사람은 물을 먹지 못하면 평균 3~4일 밖에 살 수 없다. 칠레 광부들도 물이 없었다면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은 대사와 부산물 처리 등에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에너지가 없을 때보다 훨씬 빨리 우리 몸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구조된 광부들은 매몰된 지하에 샤워를 할 수도 있을 만큼 물이 풍부했다고 전하고 있다. 습도가 높은 지하 환경이었기 때문에 굴착기로 땅을 파면 곧 지하수가 고였다고 한다.
 





또 한 가지 꼭 필요한 것은 소금이다. 만약 음식을 구할 수 없다면 물 이외에 반드시 소금도 따로 먹어야 한다. 사람의 피는 0.9%의 염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세포의 삼투압을 지키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음식도, 물이나 소금도 전혀 먹지 못한 상태에서 가장 오래 생존한 사람은 누굴까. 기네스북에는 오스트리아의 18살 소년 ‘안드레아 마하비츠’가 1979년에 세운 기록이 남아 있다. 경찰서 유치장에 홀로 갇혔다가 경찰들이 그가 수감된 사실을 잊어 버렸기 때문에 18일 동안 굶주리다가 빈사상태로 발견됐다.




 



주변 기온 보다는 체온유지가 관건



칠레 광부들은 지하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추위 보다는 오히려 더위가 문제였다. 지열 때문이다. 광부들이 매립돼 있던 지하 700m의 대피소 공간은 기온이 32~36℃를 오르내릴 만큼 더웠다. 체온을 넘어서는 온도가 아니었던 것은 큰 다행이다. 만일 온도가 40℃를 넘었다면 이들이 살아 돌아오긴 어려웠을 것이다.



사람은 감염성 질환, 심한 운동, 주위의 고열 등에 노출되면 체온이 40℃까지 오르는 경우가 있다. 이 때는 경련, 근육통, 두통, 무력감, 구역, 구토 등의 증상이 발생한다. 이런 증상은 시원한 곳으로 옮겨 쉬게 하고 체온을 떨어뜨리면 대부분 사라진다.



하지만 체온이 41℃를 넘어서면 견디기 어렵다. 피부가 뜨겁고 건조해 땀이 나지 않으며 운동 장애를 보인다. 피부가 아닌 심부체온(몸속체온)이 41.1℃ 이상이 되면 ‘열사병’으로 진단할 수 있다. 매년 여름 미국에서만 250명이 열사병으로 사망한다. 이 때가 되면 인체의 단백질이 열에 의해 파괴되거나 기능이 떨어져 각종 장기 등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44℃ 이상이 되면 대부분 사망한다.



물론 추워도 문제다. 주변의 기온보다는 사람의 체온이 몇 ℃까지 떨어졌는지가 관건이다. 보통 체온이 35℃ 이하로 내려간 경우를 ‘저체온 상태’라고 부른다.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온몸에 있는 털이 곤두선다. 열 손실을 줄이고 몸의 에너지를 태워 체온을 유지하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심부체온이 33℃ 정도에 이르면 어떻게 될까. 기억과 판단력을 상실하기 시작하고 곧 혼수상태에 빠지게 된다. 저체온 증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이는 장기가 두뇌이기 때문이다.



30℃ 이하에서 몸을 떠는 반응이 사라진다. 이때부터는 언제든지 심장이 멈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추워서 죽는’ 경우는 대부분 심장의 기능 이상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체온이 27℃ 이하에서는 혼수상태로 빠지고, 26℃ 이하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살아 있기 어렵다.



이런 저체온증이 꼭 험난한 오지나 사고현장에서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한여름에도 물에 빠지거나, 보온에 신경쓰지 못하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저체온에 빠지면 세포의 대사 과정이 저하되고 몸 안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메커니즘이 하나씩 정지하게 된다. 한 가지 더. 추위를 피하기 위해 술을 먹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알코올은 몸이 떨리는 것을 막고 피부의 혈관을 확장시킨다. 일시적으로 저체온증 증상이 사라지는 것 같지만 결국 체온조절을 방해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위험하다.








 









기압, 적응이 문제



칠레 광부들이 갇혀있던 곳은 지하 700m 정도로 기압은 크게 높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압변화는 분명히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다. 높은 분압의 산소는 중추신경계, 허파, 망막 손상 등을 일으킨다.



보통사람은 이런 높은 기압보다는 등산을 할 때 고산지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낮은 기압’의 위험성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적응기간 없이 갑자기 높이 올라가면 두통, 어지러움, 불면, 구역, 구토, 식욕 상실, 피곤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이런 증상은 2400m 정도 고도부터 생기기 시작하는데, 2500m 이상으로 올라서면 호흡곤란, 마른기침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심하면 허파에 부종이 생긴다. 3500m 이상 높이에 갑자기 올라가면 뇌부종, 운동실조, 성격변화, 졸림, 정신착란, 발작, 환각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사람이 갑자기 기압이 낮은 곳에 가면 일단 ‘빠른 순응’ 과정을 거친다. 먼저 우리 몸의 산소 감지계를 조절해 숨을 빨리 쉬게(과호흡) 만든다. 적혈구의 숫자도 늘어나서 산소 공급을 원활하게 한다. 산소가 부족할 것에 대비해 뇌와 심장으로 가는 혈류량은 증가하고 근육으로 가는 혈류량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이 단계를 지나면 ‘느린 순응’을 거친다. 낮은 기압에 몸이 완전히 적응해 건강을 되찾는 단계다. 8000m 가량의 높은 고도에 사람이 완전히 적응하려면 6~10주가 걸린다. 다만 사람이 적응할 수 있는 높이는 8000m 정도까지다.



인간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 한계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더 낮아지기도, 더 높아지기도 한다. 칠레 산호세 광산의 광부들은 부족한 식량, 습하고 더운 온도, 높은 기압 등의 극한 상황을 견뎌내며 무사히 돌아왔다.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산소, 물, 비상식량, 대피용 갱도 등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수적인 요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둡고, 습하고, 더운 폐쇄 공간에 단 며칠동안 갇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람의 몸은 항상성을 잃을 수 있다. 그들의 기적 같은 생환의 비밀은 살고자 하는 의지, 동료애, 연대의식 같은 얼핏 비과학적으로 보일 수 있는 요인들이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1

2010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민정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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