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이 연구가 내 경력에 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전 궁금했고, 결국 이렇게 상까지 받았어요.”
9월 이그노벨상 의학상을 수상한 올세이 셈 불루트 독일 하이델베르크병원 교수는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연구자들 사이에 터부시되던 주제인 ‘성관계 시 콧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처음으로 실험적으로 밝혀 주목받았다. 36명의 피실험자들을 모아 성관계 이후 콧구멍 내 공기의 흐름을 각자 측정하게 한 결과 공기가 흐르는 속도가 빨라졌고 흐름을 막는 저항력이 감소했음을 확인했다. 효과는 60분가량 지속됐다. 불루트 교수는 “호흡기내과 의사들이 천식환자에게 성관계 이후 코막힘을 치료하는 스프레이를 덜 뿌리도록 지시하는 등 이 연구가 실제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그노벨상은 ‘Ig(있을 법하지 않은 진짜·Improbable Genuine)’와 ‘노벨상’을 합친 말이다. 1991년부터 미국 하버드대 유머과학잡지 ‘별난연구연보’가 선정한 기발한 연구 결과에 수여한다. 올해도 10개의 진실한 궁금증이 시상대에 섰다.
코뿔소 매달기, 바퀴벌레 없애기… 실험으로 문제를 풀다
올해 이그노벨상은 다양한 현실 문제를 풀기 위한 연구에 주목했다. 나미비아에서는 밀렵과 서식지 파괴로 위험에 노출된 코뿔소를 보존하기 위해 사람이 살지 않는 산간지역으로 코뿔소를 옮기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보통은 코뿔소를 트럭으로 이동시키지만, 도로가 없는 지역에서는 헬리콥터를 써야 한다. 문제는 헬기 운송이 코뿔소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미국과 나미비아 공동연구팀은 1000kg가량의 검은 코뿔소(Diceros bicornis) 12마리로 이 문제를 해결해 운송상을 받았다. 10분 동안 거꾸로 매달았을 때와 옆으로 눕혔을 때의 상태를 비교한 결과, 두 자세 공통적으로 저산소증이 나타났지만 거꾸로 매달았을 때 동맥의 산소 압력이 4mmHg 더 컸음을 확인했다. 저산소증일 때는 산소 압력이 높아야 수분, 근육 손실 가능성이 적다. 이를 토대로 연구팀은 옆으로 눕혔을 때보다 거꾸로 매달았을 때 코뿔소가 영향을 덜 받는다고 결론 내렸다. 연구를 이끈 마크 자고 나미비아대 수의학과 연구원은 e메일 인터뷰에서 “코뿔소를 다음 세대도 볼 수 있도록 현 세대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운송 시간이 10분보다 늘어난다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어깨에 미치는 압력은 근육이나 뼈 손상을 일으키진 않는지 앞으로 알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곤충학상은 잠수함에서 바퀴벌레를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방법을 찾은 50년 전 연구에 돌아갔다. 당시 미국 해군은 진드기나 나방 등을 방제하는 살충제 말라티온을 사용했는데 바퀴벌레 제거에는 효과가 별로 없었다. 지금은 퇴역한 미 해군 소령 존 멀래넌은 농약에 주로 사용되던 살충제인 디클로르보스를 사용하는 게 더 효과적임을 증명했다. 남색 미 해군 모자를 쓰고 시상식에 나타난 멀래넌 소령은 “해군은 이 연구를 상당히 반겼다”며 “하지만 아직도 (바퀴벌레 제거에) 이 기술을 사용하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생물학상을 수상한 주자네 슐츠 스웨덴 룬드대 연구원은 보다 일상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 함께 지내는 6마리의 반려 고양이의 ‘야옹’을 이해하면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거란 판단에서였다. 2011년 시작된 그의 연구로 고양이는 주인에게 음식을 원할 때 끝음을 올리고, 반대로 병원에 갈까 우려할 때 음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5개 국가를 돌며 포장지에 붙은 채 버려진 껌을 분석해 각기 다른 종의 세균이 번식한다는 걸 알아낸 스페인 발렌시아대 연구팀은 생태학상을 수상했다.
진화, 보행, 탐욕… 인간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다
이번 이그노벨상에는 특히 인간을 탐구한 연구가 많았다. 평화상을 받은 미국 유타대 연구팀은 턱수염이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퇴화되지 않았다는 가설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턱수염이 있는 얼굴 모형에 물체를 떨어뜨려 털이 많은 경우에는 더 많은 에너지를 흡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인간의 보행을 주제로 한 두 연구는 각각 물리학, 동역학상을 받았다. 네덜란드 아인트호벤공대 응용물리학부 연구팀은 군중 속의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는 이유를 입자의 운동 이론으로 설명해 물리학상을 받았다. 무라카미 히사시 교토공예섬유대 정보및인간공학부 교수팀은 50여 명이 양방향으로 보행하는 횡단보도에서 3명은 스마트폰을 보고 걷게 한 결과, 횡단보도 전체 보행의 속도가 느려짐을 확인해 동역학상을 받았다. 무라카미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흔한 것들이 과학적 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높게 평가해 준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체취를 탐구한 연구는 화학상을 받았다. 인간은 숨과 피부로 여러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을 배출한다. 크리스토퍼 스토너 독일 막스플랑크 화학연구소 연구원팀은 135번의 영화 관람 실험을 통해 선정성과 폭력성이 높아 연령최고등급으로 분류된 영화를 본 경우 관람객이 VOCs 중 하나인 이소프렌을 가장 적게 배출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소프렌을 분석하면 관람객이 본 영화의 등급을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파블로 블라바트스키 몽펠리에경영대 교수팀은 구소련국가의 정치인들의 비만도와 부패와의 관계를 알아봤다. 블라바트스키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부패의 흔한 형태 중 하나가 과도한 음식이 차려져 있는 호화로운 연회에 정부 관리들을 초대하는 것”이라며 “이런 연회에 자주 참여하는 부패한 정치인들은 살이 찔 수밖에 없다고 추측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각 나라의 정치인의 사진을 분석해 비만도를 도출하고 해당 나라의 부패 정도와 비교한 결과 양의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블라바트스키 교수는 “뚱뚱한 정치인이 부패했다는 뜻이 아님에 주의해 달라”며 “논문에 싣진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비만 정치인이 많은 나라는 국민의 비만도는 낮고, 반대로 비만 정치인이 적은 곳은 국민의 비만도가 높은 경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