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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개발로 각광받는 세계의 전통약물

해열진통제인 아스피린은 버드나무 껍질에서 분리한 약이다. 이밖에도 수없이 많은 천연물추출 약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인류의 선조들은 자연속에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식물을 채취하거나 물고기와 동물을 사냥했다. 그러다가 차츰 식용가능한 식물을 재배하고 야생동물을 길들여 가축으로 키우면서 생활해 왔다. 또한 인간은 자기 건강을 유지하고 질병을 극복하려는 끊임없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문화의 발전과 더불어 경험적 치료방법은 장기간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유효한 것만 남게 되었다. 이러한 전통의료에서 전승돼오고 있는 약물을 전통약물이라고 한다.

전통약물은 크게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즉 체계적으로 정리돼 국가에서 공인하는 정규 교육과정을 거친 의료인이 사용하는 전통약물과 민간에서 구전으로 전승돼 내려와 자가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소위 민간약으로 나뉜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의약문헌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사람들이 설형문자로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조지 에버스(George Ebers)가 1862년 이집트의 미이라 무덤에서 발견한 에버스 파피루스가 잘 알려져 있다.

현재 이 문헌은 독일 라이프치히대학 도서관에 보존돼 있는데 B.C. 1552년의 기록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7백종의 의약품과 8백11가지의 처방이 실려있다. 그 안에는 계피 석류피 히요스엽 박하 아라비아고무 아편 꿀 등 오늘날에 흔히 쓰이고 있는 생약도 들어 있다.

히포크라테스도 계피 즐겨 써

현대 서양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B.C. 5세기 경에 활동한 그리스의 의학자다. 그는 해부학과 생리학을 주로 연구했고 애엽 계피 대황 등의 생약을 즐겨 이용했다. 디오스쿠리데스(Dioscurides)가 지중해의 여러 나라를 여행한 경험을 살려 A.D. 77년에 저술한 책, 마테리아 메디카(Materia Medica)에는 생약 약 6백종이 기재돼 있다. 이 책은 16세기까지 1천5백여년 간 유럽에서 의약에 관한한 최고로 권위있는 서적으로 평가됐다.

유럽에서는 전통의료 방법이 체계화되기 전에 마르코 폴로와 콜룸부스가 각각 동양과 아메리카대륙을 돌아다닌 것을 계기로 많은 상인들이 중국 인도 아메리카 등지에서 생약을 수입해 왔다. 그러나 전문화 원리, 즉 질병이란 특수한 증상을 일으키므로 그 증상에 대한 정확한 조치를 취해야만 치료된다는 원리가 일반에 인식되면서 전통적 의료체계는 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 불법화되고 말았다.

그에 반해 인도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생약을 위주로 한 전통의학이 오랫동안 의학의 중추를 이뤘다. 인도에는 아유르베다(Ayurveda)와 우나니(Unani)라는 중요한 두 가지 전통 의학체계가 양립해 오고 있다. 이 두 의학체계는 아랍과 접촉하면서 도입된 것으로 식물의 이용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이 전통적인 의학체계를 통한 치료가 인도에서는 아직도 성행하고 있으며 전체 인구의 75%가 이러한 치료법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유르베다를 다룬 저술중 가장 오래된 것은 B.C. 6세기~B.C. 3세기 사이에 편찬된 수스루타 삼히타(Susruta Samhita)와 차라카 삼히타(Charaka Samhita)다. 전자는 7백60종, 후자는 5백여종의 생약을 다루고 있다.

중국인들은 태고적부터 천연물을 건강관리에 활용해 왔다. 하왕조로부터 춘추시대(대략 B.C.2100년~B.C.467년)에 걸쳐 편찬된 많은 옛 문헌중에 질병과 그 치료법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 있다.

의학서적중 최초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황제내경은 전국시대(B.C.475년~B.C.221년)에 저술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 책에는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대한 포괄적인 이론이 서술돼 있다. 이 책의 이론은 그후 2천년동안 중국의학을 계속 발전시키고 또한 다양한 학파를 탄생시키는데 기본적인 철학개념으로 작용해 왔다.

한편 중국의 본초에 관해 저술한 최초의 책은 신농본초경이다. 이 책은 약 2천년 전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본초의 특징, 가공방법, 분류 및 생리 그리고 약리효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2백52가지 식물성 약물, 67가지 동물성 약물, 46가지 광물성 약물 등 총 3백65종을 다루고 있다. 또 1백70종의 질병과 약을 처방하는 이론적인 기초도 서술돼 있다. 중국에서는 신농본초경 이래 3백여종의 약물관계서적이 저술됐다.

A.D.657년~659년 경에는 당초본이라는 모두 53권으로 구성된 방대한 책이 나왔다. 이 책은 중국의 공식적인 약전의 효시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 약물의 표준목록집으로 간주된다. 당나라 때 23명의 의관이 협력해 이 책을 만들었는데 8백50가지 약물에 대한 그림도 함께 수록돼 있다.
 

외국에서 널리 사용돼 온 약초들^Strophanthus sarmentosus


중국정부의 전통의술 진흥책

명의로 명성을 떨쳤고 박물학자이기도 했던 이시진은 1596년에 본초강목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포괄적인 약전은 총 1천8백92가지 약물을 수록하고 있다. 그중 57.8%가 식물성 약품, 23.5%는 동물성 약품, 14.5%는 광물성 약품이다. 아울러 1만1천96가지의 처방도 수록해 놓았다. 또 처방의 기초이론과 각종 질병치료와 관련된 주요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시진은 과거의 문헌들을 종합하는 한편 각종 약물을 생산하는 곳을 직접 여행하면서 현장조사를 통해 얻은 지식들을 자신의 의서에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본초강목은 오늘날까지 중국의 전통의학을 교육하고 또 실천하는데 귀중한 참고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1835년 미국 예일대학의 피터 파커박사가 중국의 광동에 처음으로 서양식 진료소를 개설했다. 이때 중국에 소개된 서양의학은 중국의 전통의술을 금방 무색하게 만들었다. 얼마 안가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전통의술을 비과학적인 것으로 간주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1914년 전통의학은 법적으로 폐지되는 신세가 되었으며 한술 더떠 1929년 중국정부는 모든 형태의 전통의학을 불합리한 것으로 단정했다. 전통의학은 그때부터 지하로 잠입, 간신히 시골에서만 명맥을 잇게 되었다.

중국 공산당이 중국대륙을 석권한 이후 중국정부는 수천년에 걸쳐서 발전해 온 중국의 전통적인 의술이 인류문명의 귀중한 유산이라는 사실을 재인식, 이것을 보존해 더욱 발전시키고 현대화하기 위해 많은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다. 서양의학과 더불어 전통의술을 환자진료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도록 한 것이다. 그 덕분에 전통의학과 서양의학을 결합시킨 새로운 의술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로써 질병의 경중에 무관하게 그 예방과 치료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전통의술은 중국문화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한국과 일본 베트남에 자연스레 전파됐다.

우리나라에서 민간약을 질병치료에 이용한 역사는 단군신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환웅천왕이 백성에게 쑥과 산마늘의 식용방법, 약효와 효능 용법 등을 가르쳐 주었다는 기록을 삼국유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의 최고(最古) 의서인 신농본초경에는 쑥과 산마늘에 관한 기록이 없는 점으로 미뤄 보아 한반도에서 독자적으로 전통약물이 사용됐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양나라의 도홍경이 집필한 본초경집주에 고구려산 인삼과 백제산 인삼이 수록돼 있는 것으로 짐작컨대 삼국시대에 이미 약물이 상당히 발달돼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백제의 의료인들은 백제신집방을 간행해 국민보건에 큰 공헌을 했다. 지금까지 그 문헌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일본의 고의서의심방에 백제신집방의 내용이 인용된 것으로 보아 이 책자가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짐작된다.

또 통일신라시대의 의서 신라법사방에는 한반도에서 야생하지 않는 외국산 약초인 속수자가 기재돼 있다. 이런 사실은 당시 중국(당나라)과 교역이 있었고 중국의학 및 약물의 전래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신라산 생약재로서 중국 일본문헌에 소개된 것은 인삼 우황을 비롯해 해송자 백부자 박하 등 수없이 많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산 인삼과 우황을 당나라에 선물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 기록으로 미뤄 보아 신라의 인삼과 우황은 품질이 매우 좋았을 것이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국교인 불교의 융성에 따라 인도의학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게 됐다. 아울러 송나라 아라비아 인도 등지로부터 수입된 남방 열대산 생약들로 인해 보다 많은 의약적 지식을 얻게 되었다. 또한 독자적으로 국산생약 즉 향약에 관한 연구도 진행돼 향약방서의 출현까지 보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와서도 고려시대의 업적을 그대로 전승해 나갔다. 1343년 (세종 15년)에 세종대왕은 집현전 학사들에게 친히 명하여 향약의 발전을 도모했다. 이로써 고려시대의 향약입효방을 개편한 향약집성방이 편찬되기에 이르렀다. 아울러 국내 야생약초를 조사해 향약본초(76권에서부터 85권까지)에 수록했는데 이때 약명을 모두 우리말로 기재했다. 향약본초에는 7백여종의 생약이 수록돼 있다. 그 효능은 물론이고 용량 복용법 수치법 등이 기재돼 있다.

1559년(선조 29년) 어의 허준이 선조의 명을 받아 동의보감 25권을 편찬했다. 이 책에는 도합 5백26종의 생약이 수록돼 있고 아울러 채집 건조 수치 복용법 등을 적어 놓았다. 동의보감은 백과전서격 원전으로서 임상의약가들이 반드시 지녀야 할 한의서이며 현대과학적으로 동식광물 등을 연구하는데도 많은 참고가 되고 있다.

1894년의 갑오개혁과 함께 미국인 선교사 알렌 등에 의해 서양의학이 정식으로 도입되면서부터 급격한 개화의 물결에 휩쓸려 우리나라의 전통의학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일본의 식민지 통치하에서는 한의사가 의생으로 격하됐고 한의학은 공적인 위치에서 밀려나 겨우 명맥유지에 급급했다.

1945년 해방이후 한의학도 재건을 서두르게 되었고 1948년에 정부가 수립되자 보건사회부에 한방과가 신설됐다. 그후 1952년 9월 25일에 국민의료법이 제정되고 동법 제 3조에 한의사의 법적 신분과 업무가 명문화되면서 지금의 2원적인 제도가 확립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전통의료는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이때부터 전통의료와 현대의료는 공존의 위치에 서게 된 셈이다. 특히 1987년부터는 전통 약물인 한약 98종(엑스)이 의료보험 수혜대상에 포함됐고 36개의 상용한방처방도 의료보험에 채택됐다. 이것은 한약의 치료효과에 대한 유효성을 공인받았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일반사람들은 서양의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의약품은 모두 다 합성의약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서양의학이 극도로 발달된 미국에서 의사들이 내린 처방(연 15억3천만건)중에 41.2%는 천연물에서 추출한 약물이 차지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 이상의 고등식물 성분이 들어있는 처방이 25.2%, 항생물질 등 미생물 대사산물이 들어있는 처방이 13.3%, 동물성분이 들어있는 처방이 2.7%나 된다. 식물성분중에서 처방에 사용한 대표적인 의약품은 아편(codeine) 전가근(atropine) 나부목(reserpine) 마황(ephedrine) 히요스엽(hyoscyamine) 디기탈리스엽(digoxin) 미치광이풀(scopolamine) 야보란디엽(pilocarpine) 키나피(quinidine) 등이다.

이러한 식물성분은 그 화학구조가 대단히 복잡해 합성하는데 경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생약에서 직접 추출 정제해 의약품으로 사용한다. 어떤 처방은 엑스를 처방한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아편 벨라돈나 토근 인도사목 카스카 라사그라다 디기탈리스 진피 여로 등이다. 서양의학에서는 전통약물 그 자체는 쓰지 않지만 추출물 내지는 순수한 단일성분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천연의약품이라 할지라도 추출하기가 힘들거나 그 수득량이 대단히 적은 것은 구조가 유사하고 천연에서 대량 얻을 수 있는 천연물을 출발물질로 삼아 합성하는 예도 많다. 예를 들면 피임약 또는 관절류머티즘 환자에 투여하는 스테로이드호르몬들은 마나 삼에서 추출한 사포게닌(sapogenin)의 화학구조를 변화시켜서 만든다.

약품가격이 싸게 들어

순합성의약품이라 할지라도 그중 대부분은 천연의약품의 화학구조를 바꿔 보다 독성을 약화시키고 약효를 강화한 것이다. 예를 들면 해열진통제인 아스피린(Aspirin)은 버드나무 껍질에서 분리한 살리신(salicin)을 개량한 것이며, 국소마취제인 프로카인(procaine)은 고가엽에서 분리한 코카인을 모델로 해 합성한 것이다. 이와같은 선례에 비춰볼 때 전통약물이 신약개발에 있어서 견인차역할을 담당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전통약물의 의약적 가치는 절대 무시할 수 없으며 앞으로도 전통약물에 대한 계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말라리아의 특효약인 키니네는 키나나무 껍질에서 분리한 알칼로이드다. 한때 네덜란드 사람들이 키니네를 얻기 위해 키나나무를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에서 재배, 세계산출량의 90%를 생산했다. 그런데 제2차세계대전 중 일본군이 자바섬을 점령하는 바람에 연합군에 대한 키니네의 공급이 중단됐다. 부득이 키니네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 대체약인 콜로로키니네를 합성해 냈다. 그후 키니네와 콜로로키니네에 대한 내성균(耐性菌)이 생겨서 미군은 월남전에서 말라리아 때문에 또 다시 고생했는데 많은 연구투자에도 불구하고 해결을 보지 못했다.

중국에서는 동진왕조 때(A.D. 281~340년) 발행된 주후비급방이라는 책에 말라리아 치료제로 개똥쑥이 소개됐다. 이 사실은 본초강목에도 언급돼 있으나 현대약학에서는 이를 무시해 왔다. 그러나 1972년 중국에서는 개똥쑥에서 추출한,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e)이라고 이름붙인 유효성분의 화학구조를 밝히는데 성공했다. 이어서 원성분보다 활성이 더 큰 유도체를 만들어냈다. 이 화합물들은 놀랍게도 클로로키니네보다 훨씬 효력이 강하면서도 독성은 오히려 더 적었다. 임상결과 말라리아에 감염된 환자의 90%를 치료했다고 한다.
 

중국 동진왕조 때 말라리아 치료제인 아르테미사닌. 클로로키니네보다 훨신더  효력이 강하다.
 

아르테미시닌의 발견이 갖는 중요성은 기존의 항(抗)말라리아제들과는 달리 질소를 함유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또한 새로운 항말라리아제를 합성 개발하는데 있어 그 출발 물질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된다.

전통약물의 사용 및 소비량은 앞으로 더욱 증가할 추세다. 특히 개발도상국들은 감당하기 벅찬 의료비용을 줄이기 위해 또 국민건강 측면에서 각국의 전통의학적 치료 및 약물을 적극 사용하려는 경향이 점증되고 있다. 또 제약회사에서도 전통약물을 신약개발의 큰 자원으로 인식하고 있다.

전통약물의 유효성이 점차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으며 현실적으로 정밀화학제품인 양약에 비해 가격면에서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대체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제로 전통의술에 관한 관심은 국제적으로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유럽에서도 전통 의술에 많은 관심이 쏟아져 침술과 동양의 전통의료법이 오늘날의 서양의학에 대한 일종의 대체의학 또는 보완의학으로 기능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또한 전통의술의 활용에 큰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 인류를 질병의 고통에서 해방시키려는 노력을 펼쳐 온 세계보건기구의 다음 정책, 소위 '2000년의 만인을 위한 건강정책'의 견인차로 전통의학은 광범위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 된다.
 

중국의 한약재로 웅황청심환등의 생약제로 이제 포장이 서구화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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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우원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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