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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흑연 다이아몬드에 이은 제3의 화합물 ${C}_{60}$

상온핵융합 고온초전도체와 함께 20세기 후반의 최대 과학이슈로 떠오른 풀러렌을 해부한다.

탄소(carbon)라는 단어는 석탄을 뜻하는 라틴어인 carbo에서 유래한다. 탄소는 질량수가 6인 원자로서 전자 6개, 양성자 6개로 구성돼 있다. 자연계에는 ${C}^{12}$와 ${C}^{13}$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전자와 양성자의 수는 같으나 각각 6개와 7개의 중성자를 갖는다는 점이 다르다. 탄소원자는 최외각에 4개의 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원자들과 또는 같은 탄소원자들끼리 다양한 결합을 할 수 있다. 실제로 지구상에는 탄소원자가 수소 질소 산소 등과 결합하거나 탄소와 탄소가 서로 결합해 이뤄지는 수백만가지의 다양한 유기화합물이 존재한다. 이들 유기화합물은 섬유 식품 석유제품 의약품 등 우리의 일상생활과 생명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이다. 탄소원자가 없는 생명체는 상상할 수도 없고 존재할 수도 없다.

다이아몬드의 30%는 인조합성품

이러한 탄소원는 지구 뿐 아니라 태양별 유성 항성들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우주에 분포돼 있다. 순수하게 탄소로만 이루어진 화합물로는 흑연과 다이아몬드를 들 수 있다. 같은 탄소로 구성된 물질이지만 흑연은 경도(硬度)가 낮은 화합물이고 다이아몬드는 가장 경도가 높은 물질이다. 이러한 경도의 차이는 이들 물질의 탄소원자사이의 결합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다이아몬드의 구조를 살펴보면 정사면체 중앙에 위치한 탄소원자가 정사면체의 각 꼭지점에서 위치하는 네개의 인접 탄소원자와 3차원적으로 결합, 입체구조를 갖는다. 이러한 완전한 정사면체의 입방성 때문에 자연계에 존재하는 재료들중 가장 경도가 높다. 한편 흑연의 경우는 한개의 탄소원자가 세개의 인접한 탄소들과 결합, 벌집구조를 갖는 육각형의 고리로 이뤄진 2차원의 판상 결정구조를 갖는다. 같은 평면에 위치한 탄소사이의 결합은 강하나 위아래로 배열된 이들 판상구조 사이에는 반 데르 바알스(van der Waals) 인력으로만 연결된 아주 약한 결합 형태를 갖는다. 이러한 판상구조사이의 약한 결합력 대문에 이 판들이 잘 미끄러지므로 흑연을 연필심이나 연마제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천연 다이아몬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미국의 아칸소주 등에서 채광되는 킴벌라이트라는 광물에서 또는 희망봉 앞의 해저에서도 발견된다. 또 다이아몬드가 운석에서 아주 작은 크기로 발견되기도 한다. 연마재난 기계가공에 다이아몬드가 사용되는데 현재 공업용으로 쓰이는 다이아몬드의 30% 정도는 인조합성된 것들이다.
 

다이아몬드의 구조. 정사면체 중앙에 위치한 탄소원자가 정사면체의 각 꼭지점에 위치하는 네개의 인접 탄소원자와 3차원적으로 결합해 있다.
 

천문학자들의 개가

흑연 다이아몬드에 이은 제3의 탄소화합물의 제조에 성공한 과학자들은 엉뚱하게도 천문학자들이었다. 이들은 1970년도 중반에 전파천문학적 관찰결과로부터 은하계에 탄소로 이뤄진 화합물이 있음을 확인하고 이 화합물의 구조를 알아내기 위한 실험들을 해왔다.

1984년 미국 뉴저지의 엑슨(Exxon)석유회사의 연구소에서 흑연을 레이저광으로 증기화할 때 탄소수가 30에서 1백90에 이르는 탄소원자의 뭉텅이인 탄소클러스터(cluster)가 형성된다는 결과를 접하고 이 탄소클러스터가 그들이 찾던 은하계물질이 아닌가 하여 연구에 착수했다.

엑슨연구소의 결과를 재현하기 위해 실험하던 텍사스의 라이스대학 스몰리교수와 영국 서섹스대학의 크로토교수로 이뤄진 공동연구팀은 탄소클러스터중 탄소가 60개로 구성된 클러스터가 유난히 안정함을 발견했다. 이때까지의 실험은 질량분석기 안에서 수행됐으므로 생성된 물질의 양이 극히 적었다. 구조확인을 위한 양에도 절대적으로 못미치는 양이었다. 그들은 이 탄소 60개로 이뤄진 화합물의 구조를 생각해낸 뒤 1985년 '네이처'(Nature)지에 축구공모양의 구형(球形)을 제안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화합물이 속이 빈 구형의 분자구조라는데 대해 많은 과학자들은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믿기에는 너무도 완벽한 구형의 구조였다. 다른 구조규명을 위한 실험에 이용할만한 양의 시료가 없었기 때문에 학자들은 여러가지 가상적인 이론연구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1990년 후반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볼프강 크랫쉐머와 미국 애리조나대학의 도널드 호프만교수가 흑연봉을 전기방전해 얻은 검댕에서, 이론적으로 계산됐던 구형의 탄소화합물에서 발견될 수 있는 적외선 스펙트럼을 검출해냈다. 또 검댕에 벤젠을 첨가하면 붉은색이 우러나는 것을 발견했다. 곧이어 이 붉은 용액을 크로마토그래피(chromatography)로 분리해 얻은 성분이 완전히 축구공과 같은 벅민스터풀러렌(buckminster fullerene)임이 증명했다. 그후 그들이 제안한 방법을 이용, 전세계의 많은 실험실에서 각자의 실험에 사용할 만큼의 풀러렌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C}_{60}$의 색깔은 그 형태에 의해 좌우된다. 검댕에 벤젠을 첨가하면 붉은 색이 우러나는 것을 발견하면서 풀러렌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벤젠의 발견과 견줄만 해

새로운 발견된 ${C}_{60}$은 라이스대학의 스몰리교수 연구진에 의해 벅민스터플러렌이라 명명됐다. 이 이름은 원형구조 건축물 설계의 대가인 벅민스터 풀러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이 긴 이름 외에도 간단히 풀러렌(fullerene) 벅키블(buckyball) ${C}_{60}$ 등으로 불린다. 이 화합물은 20개의 6각형 탄소고리와 12개의 5각형 탄소고리가 연결된 완전한 구형의 분자다. 그 모양이 6각형과 5각형의 가죽으로 만든 축구공과 완전히 같다. 화학자들에게 알려진 분자들중 이러한 완전한 구형의 화합물은 이것이 처음이다. 탄소로만 구성된 구형화합물에는 ${C}_{60}$ 뿐만 아니라 ${C}_{70}$ ${C}_{74}$ ${C}_{78}$ ${C}_{80}$ 등을 포함, 6백개 정도의 풀러렌이 있다.

지난 몇 년간 전세계 과학자들의 흥미를 집중시킨 대표적인 사건은 1988년의 상온핵융합과 1987년의 고온초전도체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이 발견됐을 때와같은 흥분이 지금 세계의 물리학 화학 재료공학분야의 과학자들 사이에서 감돌고 있다. 이 관심의 대상이 제3의 탄소화합물 ${C}_{60}$과 이와 유사한 구조를 갖는 풀러렌이다.

화학자들은 이 새로운 화합물을 19세기의 벤젠의 발견과 견줄만 하다고 말하고 있다. 벤젠은 고리형으로 결합된 여섯개의 탄소와 각 탄소에 하나씩 결합한 여섯개의 수소로 이뤄진 화합물인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대하는 가정용 페인트 향료 의약품 등을 망라하는 무수한 새로운 물질들의 기본골격을 이루고 있다. 이제 20세기 말 새로이 발견된 ${C}_{60}$, 즉 풀러렌의 60개 또는 그 이상의 탄소를 반응시킬 경우, 벤젠을 능가하는 무한한 화합물을 유도해낼 수 있다.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UCLA의 도널드 크램박사는 "풀러렌으로 부터 전혀 새로운 화학이 탄생할 것이다"라고 예언하고 있다.

${C}_{60}$은 그 구조에 있어서도 지금까지 화학자들이 다루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 60개의 탄소가 그물형으로 이뤄진 속이 빈 구형의 화합물을 대할 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속에 어떤 입자를 넣거나 목걸이같이 연결하는 것이다. 이미 과학자들은 구(球)의 빈 공간에 전자가 6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아울러 구의 표면에 실과 같이 긴 분자를 접합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전자가 들어있는 구를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배터리로 사용하는 연구가 현재 진행되고 있다.

1980년 중반에 질량분석기라는 장치를 이용, 그 존재를 밝혀낸 이후 1990년에는 사람의 손으로 만지고 육안으로 관찰할만한 양의 풀러렌이 얻어졌다. 그후 여러가지 희한한 추측과 실험결과들이 연이어 발표됐다. 이들 중 몇가지의 예를 보면 초전도 고분자 촉매 비선형 광학성질 컴퓨터기억소자 로켓연료 무금속유기물자석 등에 관한 제안 및 연구결과다. 특히 알칼리금속이 ${C}_{60}$ 결정격자 사이에 들어갈 경우 초전도체 성질을 갖는다는 것이 밝혀졌는데, 이는 지금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초전도현상의 이론적 규명을 시도하는 물리학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또 반지름이 3.5 옹스트롬(Å) 밖에 안되는 완전 구형의 화합물은 완벽한 윤활제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새로이 과학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더하고 있는 ${C}_{60}$ 연구의 대중화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아직까지 ${C}_{60}$의 값이 너무 비싸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C}_{60}$에 관심을 가져오던 한 연구팀이 ${C}_{60}$ 관련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이러한 고가의 출발물질을 외국에서 사오기 보다는 자체적으로 제조하기로 하고 1991년 후반기에 연구에 착수했다. 이들은 기존의 연구소가 보유한 기자재를 이용, 문헌에 나온 방법대로 제조공정을 짜서 ${C}_{60}$을 얻어냈다. 지금까지 문헌에 발표된 ${C}_{60}$의 제조방법은 이렇다. 1백 토르(torr) 정도 헬륨가스를 주입한 진공용기 내에서 흑연봉을 방전시켜 얻은 검은 가루를 뜨거운 벤젠으로 추출한 뒤 이 추출액을 다시 크로마토그래피라는 방법으로 분리해 ${C}_{60}$을 얻었다. 그런데 이 방법은 검댕 회수를 위해 진공상자를 가동시켜야 하고, 전력공급장치의 한계 이상으로 방전량을 늘릴 수 없어 연구자들이 요구하는 다량의 값싼 ${C}_{60}$을 얻기에는 미흡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연구팀은 다량의 ${C}_{60}$을 얻기 위하여는 고온하에서 기화할 때 얻어지는 탄소검댕을 짧은 시간에 많이 추출해내야 한다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고주파 유도플라스마 발생장치를 이용하기로 했다. 이 장치에 흑연봉이 아닌 흑연분말을 아르곤가스와 함께 불어 넣어 1만℃ 정도로 뜨거운 플라스마 내에서 생성되는 검댕을 추출해냈다. 바로 이 검댕에서부터(용매추출 크로마토그래피 분리 등을 통해) ${C}_{60}$ 및 풀러렌을 얻는데 성공했다. 이들이 사용한 방법은 탄소봉을 전기방전으로 태워서 검댕을 얻는 종래의 방법에 비해 장점이 많다. 특히 연속조업에 따른 대량생산체계로 발전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지금 단계에서는 ${C}_{60}$이 어떻게 우리의 실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 가능성과 전망은 과학자들의 창조적인 발상과 이를 이루기 위한 노력여하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탄소원자의 뭉텅이인 탄소클러스터. 최근에는 각종 클러스터에 대해 활발히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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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소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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