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네요. 밤이 되니까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날마다 저를 괴롭히는 올빼미 기질이 또 발동하는 모양입니다. 다행히도 내일부터 주말입니다. 마음 놓고 ‘불금’을 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불금에 빠질 수 없는 야식도 꼭 챙겨서 돌아가야겠습니다.
『한 밤의 야식은 칼로리가 0kcal이란다.
말도 안되지만 그만큼 야식이 매력적이라는 말이다.』
사실 야식을 먹는 것이 머리로는 썩 내키지 않습니다. 뭐, 다들잘 알지 않습니까.
야식이 건강에 좋을 리 없다는 것을요. 하지만 이성과 감성은 다른 법, 오늘도 밤을 달리는 올빼미족의 좌우명을 떠올리며 배달 전화번호를 누릅니다. 무슨 좌우명이냐고요? 왜 이러세요, 아마추어 같이. ‘밤 12시 치킨은 칼로리가 0kcal!’
하루 열량의 25% 넘어야 야식
금요일의 미덕은 ‘칼퇴’입니다. 퇴근과 동시에 불금을 즐기기 위한 다양한 경로가 만들어지지요. 저녁을 가볍게 먹고 ‘삼겹살에 소주 한 잔’하러 가는 사람도 있고, 그대로 집에 달려가 밀린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치맥’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요. 취향에 따라 족발에 막걸리라든가, 불타는 금요일을 즐길만한 음식은 많습니다. 주로 육류가 그 주인공이지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동안 우리나라 국민 1인당 44kg의 육류를 먹었다고 합니다.
돼지고기 소비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닭고기랍니다.
육류를 이용한 요리에도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아침부터 고기를 먹는 경우는 드물테니 저녁이나 밤에 먹는 것이라고 봐야겠지요. 그것도 현대인이 아주 사랑하고 즐기는 ‘야식’이라는 형태로 말이지
요. 돼지고기와 닭고기라는 말을 듣는 순간 바로 떠오르는 메뉴가 있는 것은 비단 저만이 아닐 겁니다.
흔히 밤에 먹는 음식을 야식이라고 생각하는데 야식의 정의는 따로 있습니다. 오후 7시나 8시 30분 이후에 1일 총 섭취 열량의 25~50%이상 음식물을 섭취하는 행위를 말하지요.
아, 숫자가 애매한 것은 사람마다 야식의 정의를 다르게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마저도 해외에서 정의를 내린 것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정리가 안됐거든요. 사람은 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저만해도 해가 진 지금 글을 쓰고 있거든요. 어쩌겠어요, 해가 져야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낮에는 멍하게 있다가 밤에 정신이 들고, 일하려고 머리를 쓰다보면 당분이 부족해져 출출해지고, 밤에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고….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런 것 아니겠어요?


치킨
1인 1닭이 미덕인 현대 사회. 누구나 닭 한 마리쯤은 혼자 해치우지 않나요? 더운 여름 밤에 맥주와 치킨은 ‘아~주’ 중요한 야식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치킨은 종교다!’ 치킨 메뉴판을 냉장고에 붙여두는 것은 당연하잖아요. 그런데 이 치킨이 참 여러 가지로 머리를 아프게 한답니다.
치킨의 열량은 굉장합니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기름에 튀긴 후라이드 치킨은 100g당 평균 299kcal를 자랑합니다. 한 마리당 평균 열량은 2126kcal랍니다. 1일 권장 영양섭취 기준이 대략 2000kcal 전후라고 하면 1인 1닭을 하루동안 먹어야 하겠네요.
피자
치킨과 함께 야식의 양대 산맥은 피자랍니다. 치킨이 종교라고 부르짖는 사람들은 피자를 이단이라고 매도하곤 합니다만, 피자는 피자 나름대로의 매력이있지요. 저도 소싯적에는 라지 사이즈 피자 한 판을 여동생과 둘이 해치운 전적이 있거든요.
그렇다면 피자는 착한 야식일까요? 피자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열량이 천차만별이라 수치로 비교하긴 좀 어렵습니다. 기본적인 도우와 토마토 소스, 토핑으로 올라가는 갖은 채소는 열량이 크게 높지는 않지만 변수는 바로 ‘치즈’입니다. 끊길 듯 말듯 주욱 늘어지는 모짜렐라 치즈는 피자의 가장 중요한 재료죠. 게다가 요즘에는 도우의 테두리에 온갖 치즈와 고구마 같은 토핑을 넣습니다. 피자에 들어가는 치즈 종류도 다양해 졌고요. 라지 사이즈 한 조각을 기준으로 둔다면 피자의 열량은 대략 450kcal 전후로 나타난답니다. 한 조각이 한 끼 분량이네요. 맙소사.

아침엔 식욕이 없고, 밤에 야식을 찾으면서, 잠을 못 자는 행동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증세를 ‘야식 증후군’이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알버트 스툰커드 미국 펜실베니아대 교수가 1955년에 정의 했습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호르몬 불균형으로 야식을 찾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제가 밤이면 치킨을 떠올리는 것이 단순하게 기분 탓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야식 경향이 나타나는 가장 큰 이유는 스트레스입니다. 일단 스트레스를 받으면 정신을 말짱하게 만들면서 지방을 축적하게 하는 혈청 코티솔이 분비되거든요. 혈청 코티솔이 분비되면 잠을 유도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과 식욕을 낮추는 렙틴이 억제되지요. 밤이 될수록 정신이 멀쩡해지고, 저녁을 먹은 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뭔가 먹을 것’을 찾게 되는 것이 호르몬 작용 때문이지요.
라면
싸고, 간편하고. 설거지가 조금 귀찮긴 하지만 딱 10분만 투자하면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라면. 다음 날 아침에 잔뜩 부은 얼굴이 덤으로 따라오지만 한밤의 각김밥’같은 각종 요리를 만들어내는 달인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라면의 열량은 대략 500kcal. 생각보다는 안 높습니다. 저는 한 800kcal 쯤 될 줄 알았거든요. 물론 탄수화물에 편중되었으면서, 나트륨 함량이 많아 다양한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야식은 아닙니다. 뭐, 항간에서는 기름에 튀긴 면발을 한번 삶아 물을 버린 뒤, 라면 스프를 넣고 끓이면 100~150kcal가 줄어든다고 하는데요, 제가 직접 해봤더니 별로 권장할 만한 맛은 못되더라고요.

착한 야식을 찾아라
그렇다고 야식을 포기하기는 어렵죠. 야식은 이미 너무도 깊이 들어왔습니다. 하루 종일 스트레스 받은 몸이 맛있는 음식을 찾는 것이 잘못인가요? 나에게 스스로 상을 내리는 것도 못하게 하다니! 이럴 순 없습니다. 게다가 거의 매일 야식을 찾는 게 아니라면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기진 않습니다. 2006년 한림대 연구팀이 야식경향과 건강 위험 요인과의 관계를 조사했어요. 20~30대의 젊은 사람이 야식을 많이 먹지만, 야식 경향이 비만이나 고지혈증, 고혈당 같은 대사지표와 큰 연관을 보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연구진은 야식을 찾는 연령이 20~30대의 비교적 젊은 사람이어서 야식으로 인한 증상이 나타날 정도로 오랫동안 야식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어요.
그러나 장기적으로 본다면? 글쎄요, 우리가 흔히 먹는 야식 메뉴를 생각해 보면 그다지 건강한 식단은 아닌 것 같아요. 건강에 안좋다는 고지방, 고염분, 고당분의 삼 박자를 모두 갖췄지요. 몸에는 야채와 과일이 좋겠지만 그게 어디 야식인가요? 거기에 지방을 축적하게 한다는 혈청 코티솔까지 생각한다면 야식이 두려워집니다. 하지만 올빼미처럼 밤에 노는 전 야식을 포기할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운이 빠집니다. 이 기사를 마무리할 수 있을지조차 장담 못하겠어요. 눈앞의 즐거움이냐, 먹은 뒤 후회냐. 그 사이에서 계속 갈등하게 됩니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은 됩니다. ‘야식’이라고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는 적어도 하루 섭취 열량의 25%를 넘어야 한다니, 그보다 적게 먹으면 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매일 야식을 먹는 것도 아니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하루쯤 건강식에서 벗어나 일탈하는 것은 ‘정신’ 건강상 좋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야식은 뭐가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