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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도시 다양성·복잡성 살릴 모빌리티 실험 필요해”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세종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 총괄계획가)

 

2000년대 초반, 도시학자들은 철학적 문제에 매달렸다. 과연 미래에도 지금처럼 도시가 존재할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교통과 개인 이동통신이 충분히 보급되면 굳이 비싼 비용을 들여 힘들게 모여 살 필요가 없으니 도시가 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물론 당시 결론은 ‘그래도 도시는 사라지지 않는다’였고, 실제로 도시는 여전히 건재하다. 사람들은 전화를 걸어 만날 약속을 잡았고, 만남에 대한 욕구는 줄어들지 않았다. 모여 살고픈 수요도 사라지지 않았다.


20년 뒤, 세계는 다시 한 번 비슷한 물음에 직면했다. 이번에는 기후위기가 계기다. 도시가 탄소 배출의 주범 중 하나로 꼽혔다. 이에 전기차와 수소차 등 화석연료를 쓰지 않는 새로운 모빌리티가 등장했다. 정보기술(IT)은 더욱 발전했고, 인공지능(AI)이 등장하며 자율주행과 공유서비스가 화두가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범유행 이후 비대면 문화까지 빠르게 정착했다. 도시의 공간구조가 변화하고, 극단적으로는 도시의 해체까지 상상해 볼 수 있는 상황이다. 과연 도시는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을까.


2018년부터 세종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 총괄계획가로 활동하며 누구보다 도시의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해 온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는 “도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히 답한다. 모여서 영향을 받고 창조적 기회를 증가시키는 등 ‘인류 최고의 발명품’ 도시만이 갖고 있는 장점이 여전한 만큼 계속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부 국가를 제외하곤 세계적으로 도시화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은 지역이 아직 많다는 점도 그의 예측에 힘을 싣는다.


다만 이전과 같은 대도시가 도시의 미래는 아니다. 정 교수는 “에너지를 과도하게 쓰고 기후위기·재해에 취약하며 자연을 파괴하고, 묻지마 범죄가 발생하며 무엇보다 시민이 행복하지 않은 현재의 도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작지만 시민이 행복한 도시가 지역에서 여럿 공생하는 방식으로 재편되는 게 미래 도시의 큰 흐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교수는 이를 위한 중대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시민의 행복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모빌리티와 공간 설계 개념을 도입한 세종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 마스터플랜을 완성했다. 2021년 현재 공사가 진행중이며 2024년 입주가 시작될 예정이다. 건설 이후에도 10년이고 20년이고 시범도시를 가꾸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는 그를 대전 유성구 자택에서 만났다.

 

Q. 2000년대 초반 논쟁으로 인터뷰를 시작하려 한다. 정보통신과 교통의 발달이 도시를 없앨까라는 논쟁이 당시 있었다. 모빌리티와 통신이 더욱 발달한 지금 다시 같은 물음을 던져볼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도시는 미래에도 여전히 존재할까.


모여서 영향을 받고 배우며 창조성을 늘려가는 도시의 장점이 여전한 만큼 지속될 것이라고 본다. 흔히 도시를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하지 않나. 더구나 한국과 북미, 유럽, 일본 등 일부를 제외하곤 여전히 도시화는 충분치 않다. 따라서 전 지구적으로 보면 도시화도 계속 진전될 것이다. 다만 현재의 대도시는 에너지 소비가 많고 재난에 취약하며 불행하고 범죄가 많다. 지속 가능하지 않다. 앞으론 대도시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야 할 거다. 작은 도시가 주는 행복감을 유지하면서 이런 도시가 지역에 여럿 공생하도록 하는 게 앞으로 도시가 가야 할 큰 흐름이 될 것이다.

 

Q. 코로나19라는 감염병 유행까지 겹쳤다. 이동은 감염 확산 위험을 높일 수 있다. 도시는 사라지지 않아도 이동은 줄어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줄지 않을 거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이동에 대한 필요와 요구는 늘어난다. 마차, 자동차가 등장하며 이동 능력도 증가했다. 21세기에도 마찬가지 추세가 이어지리라 본다. 다만 증가 추세는 꺾일 것이다. 비트(bit)의 세계(온라인)와 아톰(원자)의 세계(오프라인)가 점점 일치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비트의 세계에서 아톰 세계의 모든 일을 대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나마 과거에는 대체 불가능한 상황이 존재했다. 책은 온라인으로 주문해도 사인을 받으려 저자를 만나는 식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메타버스가 등장하면서 그마저도 줄어들었다. 이제는 프랑스 파리를 뒷골목까지 정교하게 재현한 메타버스를 이용해 여행도 하고 프랑스 혁명 과정을 교육받는다. 굳이 갈 필요가 줄었다. 이 때문에 이동 자체는 늘지만 완만하게 늘 거라고 한 거다.

 

Q. 미래 모빌리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는 자율주행이다. 자율주행이 보편화되면 이동 시간에 휴식을 취하거나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굳이 대도시에 살려는 사람이 줄지 않을까. 도시 공간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일단 아무리 자율주행 시대가 된다고 해도 이동 자체가 즐거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그 시간에 쉬는 게 더 좋지 굳이 멀리 살면서 이동을 할까. 이미 한국은 출퇴근시간이 매우 긴 나라다. 이동 시간을 늘리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주목할 사람은 자율주행차를 이용해 이동 시간을 개인 시간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시루 같은 공간을 이어폰 하나에 의지해 견디고 있다. 이들에게는 사실 자율주행이 큰 의미가 없다. 이들을 출퇴근의 고통에서 꺼내줄 방법은 그 시간 자체를 줄여주는 것이다. 지금처럼 주거용지, 상업용지 등을 분리해 직장과 주거지가 멀리 떨어진 도시가 아니라 이들이 뒤섞여 가까운 곳에 함께 위치하는 직주근접이 해답이다. 이를 통해 대중교통 이용시간을 줄이고, 대신 가까워진 거리를 자전거나 킥보드 등 개인용 모빌리티(PM)를 저가에 활용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는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도 반드시 실현해야 하는 방안이다.

 

Q. 어떻게? 직장이 밀집한 도심은 땅값이 비싸다.


주거지를 직장이 있는 곳으로 옮기는 게 아니다. 기업이 주거지로 옮기는 거다. 이를 위해선 기업과 도시 또는 지역이 협력하면서 새로운 도시 문화를 만들어 가는 변화가 필요하다. 오래된 지역이나 도시에 기업이 가면서 공원을 조성해 달라고 요청하거나 지역의 노포를 보존하도록 도시와 협의하는 식이다.

 

Q. 기존에도 직주근접 논의는 많았지만 현실화는 어려웠다.


지역에 따라 용도를 지정하는 용도지역제가 기본으로 운영돼 왔다. 이들 지역 사이를 대중교통이 연결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도시를 만들고 운영하고 관리하던 사람에게만 편리한 방식이다. 또는 땅값을 높이는 데에 유리하거나.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방식이 기후변화를 완화하거나 시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지속가능하고 시민의 행복을 높이려면 용도혼합을 통해 직주근접을 실현해야 한다.

 

직주근접과 함께 다양한 모빌리티를 도입한다는 발상이 흥미롭다. 세종 스마트시티 시범도시에서는 특정 구간에 아예 차량이 진입하지 못하는 차 없는 도시를 제안했다.


시범도시 공간은 서울 여의도 정도 크기다. 이 정도는 차량을 진입하지 않게 하고 다른 다양한 모빌리티로 이동하게 시도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초기에는 이것을 과격한 주장이라고 보는 사람이 있어서 핵심 지역을 남기고 나머지는 차량이 소통하는 식으로 변경했다. 영역이 좀 줄었지만, 근본적인 혁신성이 줄어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차 없는 도시를 만든다는 건 절대 ‘불편하게 살라’는 뜻이 아니다. ‘차가 없어도 불편하지 않은 도시를 만들겠다’는 선언을 하는 거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차 없는 도시를 표방한 도시, 차량 외 다른 모빌리티가 대중화된 도시가 이미 유럽에 여럿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 덴마크 코펜하겐 등 자동차 진입을 막겠다고 선언한 도시가 많다. 코펜하겐은 전체 이동량 중 자전거 이동이 절반을 넘는다. 자동차 신호등과 자전거 신호등 수가 비슷하게 배치돼 있을 정도다. 

 

Q. 차 없는 도시라고 하면 차가 꼭 필요한 사람이 배제되지 않나. 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이 차량을 필요로 한다.


차 없는 도시라고 차가 전혀 사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혼자 걸을 수 없는 사람, 긴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 등 차량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은 분명히 있다. 다만 자동차가 모빌리티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자동차 중심 사고를 깨자는 것이다. 자동차는 숱한 모빌리티 가운데 하나, ‘n 분의 1’ 역할만 하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자동차 외에 대안이 별로 없는 시대였다. 서울을 보라. 걷기가 힘들다. 지루하고 쉴 곳도 없고 그늘도 부족하다. 하지만 걷지 않으려면 차를 타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 자동차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전동킥보드, 자전거, 차폐형 소형 PM 등 다양한 대안이 있다면 달라진다.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빌리티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지금은 자동차에게만 유리한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인 만큼 이를 제한해야 다른 모빌리티에도 발전의 기회가 생긴다. 차 없는 세종 스마트시티가 그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다. 개인은 다양한 탈것을 통해 자동차 없이도 생활하는 법을 체험할 수 있고, 기업은 다양한 서비스와 신기술을 세종에서 시험해 보고 다른 도시에 확장할 기회를 얻을 것이다.
도시, 모빌리티와 관련해 특별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또 무엇이 있을까.


다양성이다. 도시가 지속하려면 다양성이 정말 중요하다. 도시는 지진, 홍수, 블랙아웃 등 재난에 취약하다. 특정 기술에 의존한다면 자칫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2003년 미국에서 전력망에 문제가 생기면서 동북부 도시 전체가 일주일간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블랙아웃) 적이 있었다. 만약 온라인에 의존하는 사회였다면? 지옥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감염병 시대를 거친 교훈이 ‘모든 걸 온라인으로 대신하자’가 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고 본다. 다양한 재난에 대처할 여력을 갖춘 도시가 좋은 도시다. 물리학적으로 말하자면 ‘복잡계’로서의 도시다. 생명은 살아남기 위해 자체의 복잡성을 늘리면서 복잡하게 바뀌는 환경을 감당한다. 도시를 설계할 때에도 이런 접근이 필요하다.

 

Q. 다양성과 복잡성을 도시계획에 어떻게 현실화시킬 수 있나.

 

사람의 이동을 데이터로 관찰해보면 복잡한 가운데 또 꽤 분명한 패턴이 보인다. 날씨나 계절, 특정 이벤트 여부 등에 따라 예측이 가능한 수준이다. 여기에 AI를 결합하면 더 신축적으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동이 몰릴 때를 예측해 더 많은 버스가 운행하도록 할 수 있다. 평소 개인 차량처럼 이용하던 자율주행차도 이때엔 우버처럼 대중교통에 가깝게 활용한다. 이렇게 도시가 역동적인 상황을 완충하며 신축적으로 운영돼야 시민의 만족도도 높아지고 탄소 배출도 줄일 수 있다. 


도시는 현재 모든 사양이 피크(정점)에 맞춰져 있다. 에너지도 가장 많이 소비하는 피크타임을 감당하기 위해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이런 도시에서는 에너지 전환도 어렵다. 남는 시간대의 에너지를 다른 데 쓰도록 유도하고 피크타임 전력 사용을 줄이면 보상을 주는 등 여러 대안을 통해 도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시민이 행복하게 해야 한다. 모빌리티도 비슷하다.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운영하면서도 시민을 행복하게 하는 데 기술이 적용돼야 하고, 서비스도 개발돼야 한다.

2021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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