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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몰린 남성의 생식능력

정자수 줄고 고환암는다

사춘기가 되면 성기의 발육이 촉진되고 2차 성징이 나타나며 성욕을 느끼게 마련이다. 고환이나 난소와 같은 성선(性腺)에서 성호르몬이 혈액 속으로 왕성하게 분비되기 때문이다.

태아와 성호르몬

남성호르몬은 통틀어 안드로겐이라 부르는데, 대부분이 고환에서 분비되는 테스토스테론이다. 사춘기에 남자의 근육이 발달하고 거웃이 배꼽 위로까지 번지는 것은 테스토스테론이 작용한 결과이다. 난소에서 생성되는 두 종류의 여성호르몬은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다. 주로 자궁에 작용하는 프로게스테론은 자궁내막을 증식시켜 수정란이 착상하기 쉬운 상태로 만든다. 에스트로겐은 유방의 팽대나 몸매의 형성 등 2차 성징을 발현시킨다.

성호르몬은 인간의 생애 중에서 사춘기 무렵에 가장 많이 분비되지만 자궁 안의 태아기부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태아의 성별은 성염색체의 조합에 의해 결정된다. 체세포가 가진 23쌍의 염색체 중에서 한쌍이 성염색체이다. 남자는 X와 Y를 한 개씩, 여자는 X를 두 개 갖고 있다. 따라서 X염색체를 가진 정자가 난자와 수정하면 그 수정란은 XX라는 조합으로 여자가 되지만 Y염색체를 가진 정자가 난자와 만나면 XY의 조합으로 남자가 된다. 이와 같이 정자 쪽에 성의 결정권이 있지만 성기를 포함한 남녀의 분화는 성호르몬이 주도권을 행사한다. 왜냐하면 정자의 Y염색체는 태아의 성선이 고환으로 분화되도록 지시하는 것을 끝으로 남성으로의 발육 과정에서 손을 떼기 때문이다.

고환은 정자를 생산하는 기관이다. 태아의 출생 전에는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고환에서 남성호르몬이 분비되어 태아의 신체를 완전한 남성형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테스토스테론은 음경이나 음낭 따위의 성기를 발육시킨다. 바꾸어 말해서 고환에서 호르몬이 제 때 분비되지 않으면 태아의 성기는 제대로 발육할 수 없다.

한편 여성의 경우에는 성선의 구조가 난소로 분화된다. 난소에서 분비되는 에스트로겐에 의해 음핵이나 음순이 나타나면서 태아는 완전한 여성형으로 발육하게 된다. 요컨대 인간의 성은 수정 순간에는 성염색체에 의해 결정되지만 분화단계에서 안드로겐의 영향을 받은 것은 남성으로 성장해가고 그렇지 않은 것은 여성으로 발육해간다.
 

성호르몬은 성기를 비롯한 남녀의 분화를 주도한다. 사진 왼쪽은 22주된 여자 아이, 오른쪽은 남자 고환의 모습이다.


호르몬 교란물질

이러한 맥락에서 만일 성호르몬을 흉내내는 화학물질이 임산부의 체내에 들어간다면 그 결과는 실로 엄청난 것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진짜 호르몬 대신에 유사 호르몬 물질이 태아의 세포에게 그릇된 유전정보의 지시를 따르게 하여 태아의 정상적인 성장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전문가들은 이러한 화학물질을 호르몬 교란물질(endocrine disruptor)이라 부른다.

호르몬 교란물질은 두 종류로 구분된다. 하나는 디디티(DDT) 따위의 살충제이고, 다른 하나는 다이옥신이나 다염소화 비페닐(PCB)처럼 플라스틱이나 종이와 같은 생활필수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원료로 쓰이거나 또는 부산물로 생기는 산업용 제품이다.

50종이 넘는 것으로 확인된 호르몬 교란물질은 대부분이 유기염소화합물이다. 유기염소는 독성이 강할뿐 아니라 잘 분해되지 않기 때문에 지구 전역에 걸쳐 공기, 바다, 토양 등 어느 곳에나 스며 있다. 특히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통해 물고기나 새는 물론이고 인체의 지방조직에까지 높은 농도로 축적되어 있다. 예컨대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미드웨이 군도의 신천옹(信天翁)에서부터 북극해에 사는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물과 바람에 의해 옮겨진 DDT, 다이옥신, PCB로 오염되어 있다. 말하자면 지구상에 살아있는 모든 동물이 식수와 먹거리에 의해 유기염소 물질을 몸 속에 지니게 된 것이다.

유기염소는 에스트로겐을 흉내내기 때문에 모체가 유기염소에 노출되면 태아가 성인으로 자라나는 과정에서 생식기능의 발달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다. 야생동물의 경우 유기염소에 의해 극도로 오염된 지역에서 성적으로 비정상적인 사례가 잇따라 보고되었다.

미국 플로리다주는 가죽을 얻기 위해 수백만달러를 투입하여 호수에서 악어를 사육했는데, 60% 이상이 비정상적으로 작은 음경을 달고 있었다. 영국의 오염된 강물에 사는 물고기 수컷들은 오로지 암컷의 알에서만 발견되는 단백질을 만들어냈다. 캐나다 퀘백주의 강에 사는 흰돌고래 수컷은 고환과 함께 자궁과 난소를 갖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재갈매기들이 암수가 짝을 짓는 대신에 암컷끼리 알을 낳는 둥지가 발견되었다. 우리나라 낙동강 하구의 괭이갈매기는 거의 번식력을 상실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환경오염이 동물의 생식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과 관계를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학자들은 화학물질과 비정상적인 생식능력의 관계를 확인하는 실험을 시도했다. 예컨대 모태 안에 있는 거북과 악어에게 PCB를 주입시키자 수컷이 암컷으로 바뀌었다. 갈매기 태아의 수컷을 DDT에 노출시키자 난소 조직이 발육되었다. 어미 뱃속에 있는 쥐에게 소량의 다이옥신을 넣어주자 정자의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음경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짝짓기 행동이 암컷을 닮아갔다.

물론 이러한 동물실험으로 유기염소가 성호르몬을 흉내내서 태아의 성장을 방해하는 메커니즘이 밝혀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가지 중요한 사실이 밝혀졌는데, 그것은 호르몬 교란물질이 인간을 포함한 동물에게 안겨줄 수 있는 재앙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조짐이다.

음경이 유난히 작아져

호르몬 교란이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유기염소가 인체의 호르몬처럼 기능이 강력하지 않기 때문에 야생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호르몬 교란물질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사람에 대해 동물처럼 실험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유기염소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입증하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 1979년 대만에서 주부들이 PCB에 오염된 사실을 모르고 식용유를 섭취한 사건을 말한다. 이러한 여자들로부터 태어난 아이들을 대상으로 1985년부터 1992년 사이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아이들이 정신적 및 육체적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음이 드러났다. 예컨대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플로리다의 악어들처럼 음경이 유난히 작았다. 어떤 아이는 지능지수가 평균치보다 낮게 나왔다.

호르몬 교란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것은 합성에스트로겐(DES)이다. DES는 여성호르몬을 합성한 정제이다. 의사들은 에스트로겐의 분비가 정상적이지 못하면 유산이나 조산의 위험이 높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임산부에게 DES를 처방했다. DES를 복용하면 크고 힘센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임산부의 건강을 증진하는 비타민인 것처럼 문제가 전혀 없는 산모에게까지 추천하기에 이르렀다. 1945년부터 1971년까지 DES를 사용한 임산부는 5백만명에 달한다. DES는 임산부 이외의 환자에게도 만병통치약처럼 권장되었다. 출산 후 모유 생산량의 조절, 폐경 이후 나타나는 안면의 홍조 처리, 여드름이나 전립선암의 치료에 사용된 것이다. 심지어 농부들은 병아리나 송아지의 발육을 촉진하는데 사용했다.

그러나 DES가 호르몬 교란물질로 밝혀짐에 따라 DES의 신화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모태에서 DES에 노출된 여자들은 성인이 되어서 조산과 자궁외 임신의 확률이 높았으며 폐경기 이후에 유방암에 걸리기 쉬운 것으로 나타났다. 남자의 경우 출생 전에 에스트로겐에 노출되면 생식기의 기형 발생률이 높아지거나 50대 후반쯤에 전립선이 팽대될 가능성이 많다. 전립선이 비대해지면 요도와 방광을 압박하므로 배뇨할 때 통증을 느끼기 십상이다.

DES는 공교롭게도 DDT가 발명된 1938년에 첫 선을 보였다. DES를 합성한 사람은 기사 칭호를 받았으며 DDT를 만든 스위스의 파울 뮬러는 1948년 노벨상을 받았다.
 

남성 생식기관. 음낭에 싸인 고환에서 정자가 만들어지는 한편 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된다.


정자수 반으로 줄어

호르몬 교란물질로 오염된 지역에서 야생동물의 생식능력이 저하되고 있음이 확인됨에 따라 과학자들은 인간 역시 예외일 수 없다는 전제 하에 연구에 착수했다. 1992년 9월 발간된 ‘영국의학저널’에는 덴마크의 닐스 스카케벡 박사가 지난 반세기 동안 남성의 정자 수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는 논문을 발표해서 충격을 던졌다. 스카케벡은 북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21개 국가에서 1938년 이후 태어난 1만5천명의 남자를 대상으로 정자의 수와 질을 연구한 61개의 문헌을 수집하여 검토한 결과, 정자 수가 1940년에는 정액 1mL당 평균 1억1천3백만마리였으나 50년이 지난 1990년에는 6천6백만마리로 45% 줄어들었음을 밝혀냈다.

뒤이어 발표된 다른 연구 결과 역시 남성의 정자 숫자가 감소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1945년에 태어나서 서른살 된 남자와 1962년생으로 서른살 된 남자의 정자 수를 비교했는데, 1975년에 서른살인 남자의 정자는 정액 1mL당 평균 1억2백만개였으나 1992년에 서른살인 남자는 평균 5천1백만개 밖에 되지 않아 17년 사이에 50% 감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1996년 2월에는 ‘영국의학저널’에 1970년 이후 태어난 남자는 1959년 이전에 태어난 남자보다 정자 수가 25% 줄어들었다는 영국 연구진의 보고서가 게재되었다.

정자 수는 물론이고 건강하고 활동적인 정자의 구성비율이 하강하고 있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의사들은 고환암과 정류고환의 급격한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고환은 태아기에 뱃속에 위치해 있다가 임신 9개월쯤 되면 음낭으로 내려온다. 아기가 태어난 뒤 고환이 음낭 안에 있지 않고 내려오는 길목에 머물러 있는 것을 정류고환이라 한다. 정류고환이 되면 정자 형성 기능에 장애가 생긴다.

인간의 정자 수가 줄어들고 고환암이 늘어나는 것은 남성의 생식능력에 빨간불이 켜졌음을 웅변으로 말해준다. 그러나 그 원인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스트레스와 흡연이 남성 불임을 부추기는 것으로 짐작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1996년 초에 미국의 테오 콜본 박사가 두 명의 다른 저자와 함께 펴낸 ‘우리의 도둑맞은 미래’에서 정자 수의 감소를 유발한 주범으로 에스트로겐을 흉내낸 화학물질을 지목하고 나섬에 따라 세계의 저널리즘이 법석을 떨었다. 콜본은 호르몬 교란이론으로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으며 제2의 레이첼 카슨으로 대접받았다. 카슨은 1962년에 펴낸 ‘침묵의 봄’에서 DDT 등 살충제 남용이 결국 생태계의 파괴를 초래하여 봄이 와도 종달새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없는 재앙이 닥쳐오고 있음을 경고한 녹색운동의 중심 인물이다.

콜본은 호르몬 교란이론을 뒷받침하는 충격적인 사례를 설득력있게 제시하면서 “이러한 화학물질이 우리의 미래를 바꾸어 놓을 것이다”라고 절규했다. 카슨이 화학살충제에 의한 새들의 멸종을 걱정했다면 콜본은 미래의 우리 자식들이 사라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카슨과 콜본은 둘다 여성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인류의 생식능력이 호르몬 교란물질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는 콜본의 주장에 대해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유기염소와 같은 화학물질에 모든 탓을 돌리는 접근방법은 잘못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호르몬을 흉내내는 물질이 자연에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좋은 보기는 1940년대에 호주에서 발생한 양들의 대규모 불임 사태이다. 그 원인은 양들이 에스트로겐을 흉내내는 화학물질을 다량으로 생성한 클로버를 뜯어먹었기 때문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1996년 7월 ‘유럽 과학 및 환경포럼’(ESEF)은 인간의 음식물 안에서 자연 발생하는 화학물질의 에스트로겐 효과가 유기염소의 에스트로겐 효과를 능가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인류가 수백만년 동안 천연의 에스트로겐을 극복하는 능력을 진화시켜 왔기 때문에 호르몬 교란물질을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또한 천연의 것이건 사람이 만든 것이건 화학물질을 정자 수 감소의 유일한 원인으로 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스트레스와 지구의 온난화가 정자 감소 요인으로 지목되었다. 오늘날 남자들은 사무실이건 자동차이건 실내에 오래 앉아 있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생활습관은 고환의 온도를 상승시켜 정자 생산능력을 저하시킨다. 꼭 끼는 내의 역시 원인이 된다. 1996년 발표된 네덜란드 연구진의 보고서에 따르면, 하루 24시간씩 6개월간 꼭 맞는 하의를 입은 남자와 헐렁한 속옷을 입은 남자에 대해 정자의 수를 비교해본 결과 전자가 훨씬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어쨌든 호르몬 교란이론을 둘러싼 논쟁은 쉽사리 판가름날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논쟁의 양쪽에 있는 사람들은 한 가지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 호르몬 교란이론이 맞건 안맞건 간에 남자의 정자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기정사실이기 때문에 그 이유를 서둘러 밝혀 해결책을 찾아내야 된다는 것이다.

정자의 숫자가 정액 1mL당 2천만마리 이하로 떨어지면 대부분의 남자는 불임이 된다. 요컨대 스카케벡 박사의 자료에 따르면 1세기 안에 남자가 생식능력을 상실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설령 그 자료에 오차가 있다손치더라도 남성의 종말은 시간문제에 불과할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의 후손들에게 들이닥칠 저주를 막아내기 위해 오늘을 사는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 해답을 찾는 일은 아마도 여러분의 몫인 것 같다.

성선(sexual gland)

생식기관 중에서 정자나 난자를 만드는 기관 또는 조직. 생물의 발생이 진행되면서 남성은 고화, 여성은 난소로 분화된다.

신청옹(信天翁, Diomedea albatrus)

바다에서 생활하는 몸길이 91cm의 커다란 새. 몸의 대부분이 흰색이며 부리는 핑크색이다. 날개를 좌우로 뻗어 나는 모습이 웅대해 보인다.
 

1997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인식 과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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