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 색소가 없는데도 파란색을 띠는 나비가 있다. 주인공은 중남미 아마존 밀림에 사는 몰포나비. 몰포나비 날개엔 색소가 없기 때문에 날개를 잘게 부수면 흰색 가루만 남는다.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양승만 교수는 “몰포 나비 날개의 색은 색소가 아니라 빛과 공기층이 합작해 만든 작품”이라고 말했다. 색을 내는데 항상 색소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자연에서 얻은 영감
나비의 날개를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나노미터(nm, 1nm=${10}^{-9}$m) 두께의 얇은 막이 여러층(광결정) 겹쳐있다. 공기를 통과한 빛이 몰포나비 날개 표면의 구조에 닿으면 일부는 반사되고 일부는 통과한다. 이때 통과한 빛은 그 다음 층에서 일부는 반사되고 나머지는 지나간다. 이 과정이 수차례 반복된다.
몰포나비 날개 표면의 막 두께는 64nm고 그 사이의 공간은 127nm다. 날개의 정면에서 빛이 들어오면 파장이 450nm인 파란빛이 보강간섭 된다. 빛은 파동이기 때문에 위상이 같은 빛이 만날 때 진폭이 커지는 보강간섭이 일어나 눈에 보인다. 몰포나비의 경우 빨간색빛과 초록색빛은 반사되면서 상쇄간섭이 일어난다. 이렇게 나타난 색이 구조색이다.
구조색은 구조에 따라 색이 바뀐다. 만일 몰포나비의 얇은 막 사이 간격을 넓히거나 좁히면 빛의 경로가 바뀌어 반사돼 보강간섭을 일으키는 파장도 바뀐다.
양 교수는 ‘자연의 기발한 발명품’인 나비의 날개 구조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자연을 그대로 모방해 재생산하는 방법도 과학발전의 밑거름”이라고 말했다. 이에 양 교수는 몰포 나비 날개구조를 재현해냈다. 작은 입자와 큰 입자를 머리카락 굵기의 정도인 50㎛(마이크로미터, 1㎛=${10}^{-6}$m) 크기의 물방울에 가둔 뒤 물을 증발시키면 입자가 스스로 규칙적인 구조로 쌓여 다이아몬드 격자구조로 광결정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논문은 2006년 2월 ‘네이처’에 실렸다.
빛을 주무르는 과학자
얇은 막 사이의 공기층 두께에 따라 보강간섭이 일어나는 빛의 파장이 달라진다면, 막 사이 간격은 그대로 하고 그 사이에 공기와 굴절률이 다른 액체를 흘려보내도 물체의 색이 바뀔 것이다. 양 교수팀은 물체를 구성하는 나노 두께의 막 사이에 액체를 흘려 물체의 색을 바꾸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액체만 잘 고르면 빛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말이다.
광결정으로 된 광학소자는 막 사이 공기층 두께가 고정돼 한 종류 빛만 반사하지만 액체를 사용하면 소자 막의 광결정을 바꾸지 않고도 다양한 색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물과 염화칼슘(CaCl2)을 섞어 막 사이로 흘리면 굴절률이 바뀌어 빛이 보강간섭 되는 양상이 달라진다. 순수한 물은 굴절률이 1.33 정도지만 염화칼슘을 첨가해 농도를 5몰(M)로 맞춘 염화칼슘 수용액은 굴절률이 1.44로 커진다. 광결정을 물로 채웠을 때 붉은색이던 물체가 염화칼슘 수용액으로 바꿔 채우면 초록색으로 바뀌는 이유다.
빛의 간섭을 이용해 물체의 색을 손쉽게 바꾸는 기술은 차세대 디스플레이에 적용할 수 있다. 화면 뒤에 빛을 공급하는 광원이 있는 디스플레이는 에너지 소모가 많다. 그런데 광결정을 이용하면, 외부 광원 없이도 광결정만으로 광원 역할을 할 수 있다. 광결정이 햇빛이나 실내조명을 이용해 빛을 내기 때문이다. 오늘도 양 교수팀은 자연의 발명품인 광결정을 화려하게 변신시키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