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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집 키워 돌아온 종이접기의 물리학

엣지 사이언스

종이접기라고 하면 고사리손으로 색종이 구겨가며 만들던 추억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힘과 크기를 키운 종이접기는 그렇게 귀엽기만 한 존재가 아닙니다. 1t(톤) 무게를 버티는 변신 바퀴부터 재난 상황에 보금자리가 돼 줄 집채만 한 대피소까지, 색종이 접던 시절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과학이 그 안에 숨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어서 종이 한 장 들고 오세요. 접고 붙이면 과학이 됩니다.

 

“꽤 복잡한 도안이라 처음부터 ‘물 폭탄 종이접기’를 잘 접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대영 미국 하버드대 존 폴슨 공학 및 응용과학과 연구원의 걱정 섞인 조언을 들을 땐 ‘그래도 어떻게든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손재주는 자신 있었습니다. 매달 쓰는 막내기자의 과학실험실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낯선 과학실험도 곧잘 해내는 편이죠. 게다가 만들려는 ‘물 폭탄 종이접기’는 독특한 형태의 원기둥을 종이접기로 만든 것. 어려워 봐야 종이접기일 거라고 내심 생각했습니다. 종이접기, 귀엽잖아요.


하지만 전문가의 말은 역시 틀리지 않았습니다. 종이접기도 종이접기 나름이었습니다. 도안이 복잡한 데다 종이도 크고 두꺼운 것을 쓰니 종이접기로 만드는 데 40분이 꼬박 걸렸습니다. 구슬땀을 흘리며 크기를 줄였어야 했나 후회했죠.

 

1t 무게 견디는 변신 바퀴에 도전하다


발단은 논문 한 편과 첨부된 영상

한 편이었습니다. 성인 남성을 태운 자동차가 달리는데,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로 진입하자 갑자기 자동차 바퀴가 얇아지며 지름이 두 배 가까이 커진 것입니다. 영화 ‘트랜스포머’의 한 장면이 연상되는 이 바퀴의 정체는 조규진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팀이 지난 4월 7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발표한 ‘변신 바퀴’입니다. 지면이 울퉁불퉁해지면 바퀴의 지름을 키워 덜컹거리지 않고 달릴 수 있습니다. doi: 10.1126/scirobotics.abe0201
흥미로운 것은 바퀴의 형태와 크기를 바꾼 기술입니다. 바퀴의 구조가 기묘하게 변하면서 지름이 커졌습니다. 종이접기 기술이었습니다.


큰 하중을 버텨야 하는 바퀴의 지름을 바꾸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입니다. 언뜻 바퀴 축을 중심으로 바큇살 방향으로 지름을 늘리도록 힘을 가하면 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뜻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지면과 수직인 방향으로 지름을 변형하는 힘이 가해지는데, 이 방향과 차체의 하중이 가해지는 방향이 평행해 바퀴 모양을 안정적으로 변형하기 어렵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던 연구팀이 찾은 구조가 물 폭탄 종이접기 구조입니다. 물 폭탄 종이접기는 다 접고 나면 모서리가 복잡하게 결합한 원기둥 형태가 됩니다. 원기둥 윗면과 아랫면에 누르는 힘을 가해 지름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지름을 늘리기 위해 바퀴 중심에서 바큇살 방향으로 힘을 가하는 대신, 바퀴 양옆을 눌러 지름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지름을 변형하는 힘의 방향과 하중이 가해지는 방향이 수직이라 변형 과정이 안정적이죠. 뿐만 아니라, 물 폭탄 종이접기 구조를 적용한 바퀴는 자신의 무게 50배 이상 하중을 견디면서 지름을 1.7배 키울 수 있습니다.


종이접기가 발휘하는 ‘괴력’에 매료된 기자는 이 구조를 직접 제작하기로 했습니다. 기왕 접는 거, 연구팀이 개발한 바퀴만큼 크게 만들겠다며 가로 120cm, 세로 40cm의 두꺼운 종이를 마련했습니다. 다 접고 난 바퀴는 지름 15cm, 높이 30cm 정도 크기의 원기둥 모양이 됩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몰랐죠. 이 일이 그렇게까지 고생으로 이어질 줄은.


‘사서 고생’은 바퀴 제작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만든 바퀴를 들고 6월 10일 서울 관악구에 있는 조 교수의 연구실로 향했습니다. 직접 하중 실험을 해보지 않고는 못 견딜 것 같아서였습니다. 김재경 연구원이 실험에 함께했습니다. 인장 시험기 위에 물체를 올려놓고 장치를 가동하면 위에서 판이 내려와 물체를 지그시 눌러 최대 하중을 측정합니다. 기자가 고생 끝에 만든 바퀴가 인장 시험기에서 30초 만에 납작해지는 걸 보니 눈에서 땀이 나더군요….


기자가 사용한 종이는 편집실에서 사용하는 평범한 두꺼운 종이로, 한 장을 수직으로 세웠을 때 0.02N의 하중을 버팁니다. 위에 무게가 약 2g인 물체를 올려 놓으면 휘거나 접힌다는 뜻입니다. 이 종이로 물 폭탄 종이접기 구조의 바퀴를 만들었더니 최대 56.8N의 하중을 견디게 됐습니다. 약 5.8kg의 물체를 올려놓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종이를 접은 것만으로 최대 하중이 3000배 가까이 커졌습니다. 지름이 커지도록 구조를 변형하면 최대하중은 이보다 작아집니다.


논문의 1저자인 이 연구원은 “높은 하중을 버틸 수 있는 비밀은 물 폭탄 종이접기 구조의 L자형 모서리에 있다”고 설명했습니다(80쪽 박스 기사 참고). 마치 바큇살처럼 복잡하게 연결된 모서리가 하중을 효율적으로 분산한다는 겁니다. 이 연구원은 “종이를 접으면 단면 2차 모멘트가 커져 쉽게 구부러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단면 2차 모멘트는 소재에 힘을 가했을 때, 그 소재가 얼마나 변형에 잘 저항하는지를 나타낸 척도입니다. 


종이접기 구조의 특징은 똑같은 재료를 써도 구조 변형만으로 훨씬 큰 하중을 견딜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연구팀은 항공기용 알루미늄판과 타이어 보강재용 천을 사용해 진짜 자동차에 사용할 바퀴를 만들었습니다(아무렴 종이로 만든 바퀴를 진짜 자동차에 달 순 없겠죠). 알루미늄판을 잘라 물 폭탄 종이접기 구조에서 면에 해당하는 부분을 만들고, 이 조각들을 도안에 따라 천 위에 붙였습니다. 자유자재로 구조를 바꾸는 종이접기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튼튼하죠. 여기에 내부 뼈대를 추가해 바퀴 구조가 충격에 쉽게 변하지 않도록 개선했습니다. 바퀴 위엔 지면과 마찰력을 높이고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폴리우레탄 패드를 붙였습니다. 


이렇게 만든 바퀴는 지름 46cm, 폭 48cm에서 지름 80cm, 폭 22cm로 형태를 바꿀 수 있습니다. 형태가 바뀌는 중에도 10kN(킬로뉴턴·1kN은 1000N), 그러니까 1t(톤) 가까운 하중을 버틸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소재와 제작공정을 개선해 더 가볍고 튼튼한 바퀴를 만들 계획입니다. 자동차, 행성 탐사 로버 등에 활용할 수 있죠. 

 

 

대(大)자로 뻗어도 넉넉한 대형 종이접기 집


하버드대 강당 바닥에 흰 플라스틱판 더미가 놓여있습니다. 펌프를 연결해 공기를 주입하자 납작했던 플라스틱판이 펼쳐져 성인 남성이 고개를 숙이지 않고도 드나들 크기의 집이 됐습니다. 높이 2.5m, 가로·세로 2.6m의 큰 구조물은 기둥도 없이 안정적으로 형태를 유지합니다. 카티아 베르톨디 미국 하버드대 존 폴슨 공학 및 응용과학과 교수팀은 이같이 바람을 주입해 부풀릴 수 있는 대형 종이접기 구조물을 개발해 4월 21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습니다. doi: 10.1038/s41586-021-03407-4


놀이공원이나 행사장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공기주입 미끄럼틀은 2차원 평면이었다가 3차원 거대 구조물로 바뀌는 구조물의 예입니다. 평소엔 적은 공간을 차지하지만, 필요할 때엔 튼튼한 구조물로 변해 널리 활용됩니다. 


하지만 미끄럼틀에 구멍이 나 바람이 빠지면 쉽게 붕괴한다는 단점이 있죠. 비슷한 예로 텐트도 있습니다. 2차원 평면이던 구조를 지지대가 받쳐 3차원으로 바꾸는데, 지지대가 없으면 무용지물이 됩니다.


하버드대 연구팀은 어린이가 처음 종이접기를 배울 때 흔히 접던 ‘삼각주머니 종이접기’ 구조를 발전시켜 기체나 액체를 주입해 한 번에 부풀릴 수 있는 거대 구조물을 만들었습니다. 아치 구조부터 이글루처럼 생긴 대피소까지 형태도 다양합니다. 


종이를 접어 붙이기만 하면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니, 다시 만들기와 실험 본능이 꿈틀 깨어납니다. 지체할 새 없이 바로 만들어봤습니다. 연구팀은 4mm 두께의 얇은 플라스틱 판을 사용했습니다. 가로 약 1.2m, 세로 약 2.4m인 플라스틱 판 열다섯 장에 도면을 인쇄하고, 이걸 잘라 투명테이프로 붙였죠. 과학동아 편집실에는 특별한 인쇄기가 있습니다. 가로 43cm 두꺼운 종이를 넣으면 세로 길이가 어떻든 모두 출력해주는 든든한 녀석입니다. 이걸 활용하면 가로 43cm, 세로 86cm 도면을 인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쇄한 15장의 도면을 자르고 붙이니 연구팀이 만든 집의 3분의 1 크기 종이 집이 완성됐습니다. 몸을 잘 웅크리면 집에 쏙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얇은 종이로 만든 거대한 구조라 쉽게 무너질 것 같았지만, 집은 굳건히 서 있습니다. 조금 비좁지만 든든하군요!


납작한 평면상태와 입체 구조를 오가는 종이접기 구조물은 삼각형을 여러 개 이어붙여 만들었습니다. 연구팀은 종이접기가 형태를 바꿔도 삼각형이 서로 잘 맞물리도록 기하학적으로 계산했죠. 논문의 1저자인 데이비드 멜란콘 미국 하버드대 존 폴슨 공학 및 응용과학과 연구원은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종이접기의 장점은 2차원 종이로 어떤 모양이든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며 “삼각형을 잘 조합하면 형태가 쉽게 바뀌면서도 안정적인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연구팀이 만든 종이접기 집은 접었을 때 가로 1m, 세로 2m, 높이 0.25m에서 다 펼쳤을 때 높이 2.5m, 가로·세로 2.6m까지 커져 다양한 재난 상황에서 유용하게 활약할 전망입니다.

 

●땅속 진주 찾아 
오늘도 종이를 접는다

편집실에 앉아 거대한 종이 도면과 씨름하고 있으니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그건 뭐 하는 거예요?” “왜 하는 거예요?”라며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릴 적 색종이를 접어 만들던 종이접기가 수m 단위로 커진 광경은 생소합니다. 그러니 종이접기를 진지하게 연구하려는 시도가 처음 시도됐을 땐 다들 얼마나 낯설어했을까요.
조 교수는 “처음 종이접기 연구를 시작한 2009년에는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며 “오히려 2011년 들어서 외국의 저명한 학자들부터 종이접기 연구의 가치를 알아주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조 교수는 “아이디어에 믿음을 갖고 가시적 성과가 바로 나오지 않더라도 꾸준히 시도했다”며 “이번 종이접기 변신 바퀴도 2011년부터 10년간 연구해온 끝에 얻은 성과”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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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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