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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첫 인공수정란 합성, 배아 연구 윤리 규정 바꾸다

엣지 사이언스

3월 17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는 두 편의 논문이 나란히 실렸다. 미국과 호주 두 연구팀이 착상 직전의 수정란인 배반포와 유사한 구조체(Blastoids·배반포 유사체)를 실험실에서 각각 만들어냈다는 내용이었다. 쉽게 말하면 인공수정란을 합성한 것이다. 그동안 수정란을 이용해 인간의 초기 발생 과정을 연구하는 데에는 많은 기술적, 윤리적 제약이 따랐다. 학계는 이번 연구로 인간의 초기 발생 과정을 보다 쉽게 연구할 가능성이 열렸다며 환영했다. 생명윤리학계 역시 5월 말, 배아 연구를 위한 윤리 가이드라인을 완화했다.

 

연구실에서 만든 배반포 유사체


배반포는 포유류의 초기 발생 과정에서 난할이 끝난 상태를 말한다. 난자가 정자에 들어와 수정란이 만들어지면 체세포 분열을 통해 세포가 2의 제곱수로 분열한다. 수정 뒤 약 4일이 지나면 16~32세포기에 이른다. 이때 세포는 마치 뽕나무 열매(상실)처럼 모이게 된다. 이를 상실배라고 한다. 상실배는 가운데에 빈 공간이 생기면서 아래쪽에 속세포덩이(inner cell mass·내세포집단)를 가지는 배반포를 형성한다. 속세포덩이는 수정 뒤 태아가 되기 전까지의 조직을 의미하는 ‘배아’를 형성하는 부위다. 배반포 상태에서 수정란은 빠르게 분열하면서 200~300개의 세포로 늘어난다.


수정란이 자궁에 도착해 착상되는 것도 이 시기다. 체외 수정을 할 때는 수정란을 5일간 체외에서 배양해 배반포 형태로 만든 뒤 자궁에 착상시켜주는 방식을 사용한다. 배반포에서는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는데 모든 신체구조로 변화할 수 있는 다능성(pluripotency)을 가지고 있어, 많은 연구자들이 여기서 줄기세포를 추출해 사용한다.


준 우 미국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 병원 교수팀은 인간 만능줄기세포를 어그리웰 판(aggrewell plate)이라는 3차원 배양접시에 넣고 두 단계에 걸쳐 배양해 배반포 유사체를 만들었다. 연구팀은 2019년, 생쥐 만능줄기세포를 대리모 암컷 생쥐에게 이식하면 배반포 구조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doi: 10.1016/j.cell.2019.09.029 이번 연구에서는 이 현상을 인간에게 적용해 체세포를 리프로그래밍하거나 실제 배반포에서 얻은 만능줄기세포로 배반포 유사체를 만들었다. doi: 10.1038/s41586-021-03356-y


이들이 만든 배반포 유사체는 실제 배반포와 유전자 발현 패턴이 비슷했고, 줄기세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또 실제 수정란이 착상하는 것처럼 시험관 벽면에 부착시킬 수도 있었다.


연구팀은 배반포 유사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다양한 효소를 처리해 변화를 살폈다. 그 결과 인간의 배반포에서 발현되는 단백질 인산화 효소(PKC)가 배반포의 빈 공간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 교수는 논문에서 “아직 인간 발생의 많은 부분들이 베일에 싸여 있다”며 “배반포 유사체는 이를 연구하는 데 널리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호주 모나시대 연구팀은 피부세포를 변형하는 과정을 연구하다가 이들이 배반포 형태를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간의 피부조직을 구성하는 섬유아세포를 다시 줄기세포로 리프로그래밍하는 과정을 3차원 세포외기질 구조에서 진행했다. 그 결과 약 6~18%의 확률로 마치 배반포처럼 내부에 분화능을 가진 세포 덩어리 구조가 만들어졌음을 확인했다. 바깥쪽을 싸고 있는 세포는 세포영양막(trophoblast·배반포의 외형을 만드는 세포)과 유사했다. 배반포와 같은 구조다. 연구팀은 이 배반포 유사체를 ‘아이블라스토이드(iBlastoid)’라고 이름 붙였다. 폴로 교수는 논문에서 “놀라운 점은 세포들이 스스로 조직을 구성한다는 것”이라며 “마치 서로 소통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doi: 10.1038/s41586-021-03372-y

 

배반포 유사체도 생명체인가, 14일論


이번 연구결과에 대해 우 교수는 “배반포 발달 체외생물학 모델을 확보한다면 인간 배아를 사용하지 않고 발생 과정을 연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줄기세포 연구는 매우 제한적으로 진행된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체외수정으로 생성된 배아 중 임신 목적으로 이용하고 남은 배아만을 연구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런 배아를 ‘잔여 배아’라고 한다. 잔여 배아는 확보하기도 어렵고 윤리 논란도 일으킬 수 있다. 배반포 유사체는 이런 논란을 피할 수 있다. 백수진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정책연구부장은 “연구 목적으로 인간 배아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 논란이 있다”며 “배반포 유사체를 이용하면 이런 논란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이들이 만든 배반포 유사체는 법률상 인간 배아로 분류되지 않는다. 인간 배아를 연구할 때 생명윤리학계에서 통용되는 기준인 ‘14일론’을 준수할 의무가 없다. 14일론은 2000년대 초반 국제줄기세포학회(ISSCR)가 정한 생명윤리 가이드라인으로 배아 연구를 수정 후 14일 이내까지만 허용한다. 수정 후 14일이 지나면 원시선(뇌와 척수가 분리되는 원시 신경관 윤곽)이 생기는데 이를 생명의 징표로 삼은 결정이었다.


현재까지는 수정란을 5일 이상 배양하는 게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다. 수정된 뒤부터 따지면 약 10일 남짓으로, 어차피 수정 후 14일 이내까지만 연구가 가능하다는 가이드라인을 위반할 수가 없었다.

연장된 배아 연구 기간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 같은 가이드라인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번에 두 연구팀은 배반포 유사체가 형성되고 4일 뒤 관찰을 종료했다. 수정된 후 약 10~11일이 지난 시점에서 연구를 중단한 것이다. 배반포 유사체는 법률상 인간 배아가 아닌 만큼 14일론을 준수할 의무가 없지만, 윤리적 논란을 의식해 선제적으로 중단했다. 


두 연구에서 만든 배반포 유사체는 아직 온전하지 못해 실제 인간의 배아와 똑같이 발달할 수 있는 잠재력은 없는 것으로 평가됐지만, 실험을 종료할 때까지 배반포 유사체가 살아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좀 더 긴 시간 연구가 가능한 상태였다. 보다 완전한 배반포 유사체가 탄생하는 것도 시간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기술적으로 인간 배아와 똑같이 발달할 수 있는 배반포 유사체를 만들 수 있게 되고, 인공자궁을 개발하는 연구가 빠르게 진척되면서 인공 배아 분야에 새로운 생명윤리 기준을 제정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ISSCR은 2019년부터 이 문제를 논의한 끝에 지난 5월 26일, 14개국 과학자와 윤리학자, 법학자 등의 검토를 거쳐 기존의 14일론의 완화 필요성을 포함한 새로운 국제 윤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유전자 편집, 미토콘드리아 대체 등을 포함해 일부 실험에서 전문가의 검토와 각국의 생명윤리 지침에 따라 인간 배아를 실험실에서 배양하는 기간을 14일 이상으로 완화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ISSCR 가이드라인 태스크포스 의장인 로빈 러벌-배지 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 그룹 리더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고를 통해 “이번 기준 완화로 인간 배아가 14~28일 사이에 어떻게 발달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며 “유산이나 불임, 착상 직후 발달 장애를 이해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배아 실험은 각국의 법률과 정책을 준수하며 관련 기관의 감독 하에 진행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이번 가이드라인 완화가 당장 연구 현장에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불러일으키진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 부장은 “특히 한국을 포함해 연구목적 배아 생성 자체가 금지된 나라에서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적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게다가 14일 이후 배아의 발생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인공자궁이 먼저 개발돼야 하는 등 기술적으로도 해결할 문제가 산적해 있어 이번 가이드라인 완화가 바로 어떤 구체적인 변화를 가져올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가이드라인 완화는 생명윤리가 기술의 발전 상황을 반영해 변천해 간 또 하나의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생명윤리계는 때로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규제를 완화하기도 했고, 때로는 새로운 기술이 제기한 문제를 반영해 규제를 강화하거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의료계는 뉘른베르크 강령을 발표해 비윤리적인 인체 실험을 처음 규제했다.

 

1964년 세계의사회는 헬싱키 선언을 통해 임상시험에 대한 윤리적 기반을 마련했다. 1990년대에는 배아줄기세포, 유전자 치료 등 새로운 생명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윤리적 논쟁의 범주가 확대됐다. 최근에는 생명과학에 엔지니어링,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다양한 기술이 접목되면서 새로운 쟁점이 생겨나고 있다. 백 부장은 “기술 발전으로 할 수 있는 연구가 다양해지고 있다”며 “생명윤리는 이런 상황에서 연구자가 어떤 연구를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 방향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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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애 기자
  • 디자인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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