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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1년에 단 하루 ‘야행성 태양’이 뜬다

과학으로 밝힌 ‘밝은 밤’ 미스터리

어느 깜깜한 밤, 가로등도 없는 시골 길을 상상해 보자. 갑자기 동이 트는 것처럼 지평선에서 희끄무레한 빛이 솟더니, 곧 신문의 글자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주변이 밝아졌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신비한 현상이 실재한다. ‘밝은 밤’ 현상은 2000년 전부터 관찰됐지만, 지금까지 납득할만한 과학적인 설명은 없었다.


밝은 밤 현상은 밤 하늘이 갑자기 대낮처럼 환하게 밝아지는 현상이다. 이에 대한 기록은 고대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박물학자이자 정치인이었던 대 플리니우스(23~79년)는 이렇게 적었다. “야간에 하늘에서 빛이 솟아 나오는 ‘야행성 태양’ 현상은 가이우스 카이킬리우스와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기원전 113년)의 시대에 관찰됐다. 그리고 수많은 다른 시기에도, 낮처럼 환한 밤들이 있었다.”

“전기가 사라진 밤 거리…갑자기 발 밑 자갈이 보였다”

수 세기 동안 이런 현상이 지속됐다. 1783년 프랑스 마코네 헤란성의 교구목사 로베르조트는 물리학저널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6월 첫 날부터 7월 첫 날까지, 그러니까 태음월(보름달이 뜬 날부터 다음 보름달이 뜰 때까지의 기간)이 끝나고 달이 빛을 내지 않는 다음 주기가 시작될 때, 보름달이 떴을 때와 거의 비슷한 정도로 밝은 밤을 경험했다. 그 빛은 지평선 전체의 원형을 따라 매우 또렷하게 보였고, 천구의 모든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일본에 서구 문물을 전파한 미국 매튜 페리 제독의 ‘검은 배’ 중 하나인 호위함 ‘미시시피’ 호에는 미국의 성직자 조지 존스가 타고 있었다. 1855년 3월 22일 일본 요코하마에 내린 그는 5개월 전인 1854년 10월 16일 항해 중 ‘수평선을 따라 늘어선 희끄무레한 빛’을 봤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 강렬한 빛 줄기는 곧바로 북쪽 방향으로 자라나기 시작했고 페가수스 별자리 밑에서 절정을 이뤘다.

1세기가 훨씬 더 지나 프랑스 북부 비호플레 지방에 살던 토우처라는 인물은 1908년 6월 30일 밤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20시에 인공 조명이 없는 거리에서 사물을 아주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 석탄 부족으로 전기가 사라진 거리엔 완전한 어둠이 내린 터였기 때문에 그와 같은 밝기는 내 관심을 끌었다. 22시 30분에는 좀 더 완전하게 볼 수 있었다. 지평선을 밝히는 별이 가득한 하늘은 매우 맑았고, 달빛은 없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세세하게 눈에 들어왔다. 정원에서 우리는 아무런 문제 없이 모든 사물을 인식할 수 있었다. 지름이 10~15mm인 자갈들이 어두운 땅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수 세기 동안 남겨진 이 기록들에는 일관성이 있다. 이런 현상이 실재한다는 얘기다. 오늘날 밝은 밤 현상은 중위도 지역에서 주로 발생한다고 알려졌다. 앞서 언급한 기록들이 남겨진 유럽 지방을 포함해, 일본과 한국에서도 밝은 밤 현상이 일어난다(한국에 밝은 밤 현상을 관찰한 기록이 남아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우주에서 본 지구 둘레의 대기광을 묘사한 그림.

과연 밝은 밤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밝은 밤 현상에 대해 지금까지 제시된 과학적 가설로 유성이 있다. 그러나 유성의 밝기는 유지되는 시간 간격이 너무 짧아 지상의 관찰자가 알아채기 어렵다. 밤하늘이 환해질 수 있는 다른 가능성은 오로라인데, 밝은 밤의 원인일 확률은 거의 없다. 밝은 밤은 주로 중위도에서 나타나는 반면 오로라는 극지방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은 가능성은 ‘대기광’이다. 대기광은 행성의 대기에서 나오는 빛으로, 태양 자외선으로 인해 산소 분자가 산소 원자로 분해됐다가 다시 결합하는 과정에서 방출되는 빛이다.

대기광은 110여 년 전 처음 발견됐다. 1909년, 네덜란드의 과학자 람베르투스 인테마는 ‘하늘의 밝기와 총량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썼다. 그는 각 별에서 온 빛을 모두 더한 것보다 하늘에서 오는 빛의 총량이 더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유일하게 가능한 설명은, 별이 아닌 하늘 어딘가에서 추가로 빛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 빛에 ‘지구광’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이 바로 대기광이다.

대기광을 관찰하는 데 일생을 바친 영국의 레일리 경은 1929년 어느 날 밝은 밤을 경험했는데, 이 때 대기광의 강도가 네 배 증가해 있었다. 레일리 경은 분광기를 사용해 빛을 관찰했고, 오로라 때문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오로라에 항상 존재하는 보라색 빛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밝은 밤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기록이다).


대기의 파동들이 중첩되면서 대기광이 강해진다

필자(고든 셰퍼드 교수)는 캐나다 매니토바 주 허드슨 만 기슭의 처칠 지역에서 오로라 연구를 위해 로켓을 발사하면서 과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필자의 목표는 대기광을 위성으로 측정해 고고도의 풍속을 계산해 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30여 년 전 필자는 프랑스 연구팀과 공동으로 WINDII(Wind Imaging Interferometer)라는 장비를 개발했다. 빛의 간섭무늬를 확인하는 장치인 광각 마이컬슨 간섭계(빛살을 두 갈래로 갈라 검출기에 도달할 때 신호의 세기에 따라 상쇄·보강간섭 여부를 확인하는 원리)였다. WINDII는 낮과 밤 동안 중간권(고도 100km)~열권(고도 250km)에서의 바람, 온도, 그리고 대기광의 세기를 잰다. 1991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UARS(Upper Atmosphere Research Satellite) 위성에 실려 발사됐고, 이후 2003년까지 지구 대기권의 사진 2000만 장을 수집했다.

임무가 종료된 당시에 WINDII의 대기광 수직분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대기광의 강도는 위치와 장소, 날짜에 따라 변동이 몹시 심했다. 예상치 못했던 흥미로운 현상이었지만, 왜 그런지 과학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몇 년 뒤, 우리와 공동 연구를 한 프랑스 연구팀의 미셸 헐스 연구원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했다. 이처럼 변동이 심한 대기광이 2000년 이상 미스터리로만 남아 있는 밝은 밤 현상의 원인일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이 대화는 필자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최근 필자의 연구팀은 WINDII가 수집한 다양한 파동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지구 대기에 존재하는 대기조석(대기권의 지구 규모의 주기적 진동)이나 대기중량파(고고도 대기에 잔물결을 일으키는 파동) 같은 다양한 파동이 종횡 방향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 파동은 대부분 낮은 고도의 대류권에서 생성돼 성층권과 중간권, 때론 열권까지 전파됐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공기가 희박해지면서 대기압이 낮아져, 에너지 보존 법칙에 따라 이들 파동의 진폭은 증가했다. 서로 다른 파동들은 동일한 위도를 따라 이동했고, 때로는 서로 통과하기도 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했다! 특정 지역에서 파동이 중첩됐던 것. 이 때 파동의 진폭이 급증했다. 각 파동은 일정한 양의 빛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파동이 겹쳐지면 전체적으로 빛도 증가한다. 그 결과, 대기광의 강도가 수 배로 강해지면서 눈에 보일 정도가 됐던 것이다(doi:10.1002/2017GL074014).


전 지구에서 밝은 밤이 일어날 확률은 3.5%

흥미로운 것은 일평생 매일 밤 하늘을 관찰한 레일리 경도, 밝은 밤을 단 한 번 봤다는 점이다. 그만큼 드문 현상이다. 이를 정확히 알기 위해 우리 연구팀은 WINDII의 대기광 데이터도 분석했다. 육안으로 밝은 밤을 감지하려면 대기광의 강도가 최소 200R(레일리, 1R은 1cm2 면적에서 매초 100만 개의 광자가 나올 때의 밝기)는 돼야 한다. 평소 밤의 대기광 강도는 30R 정도다. 1992년과 1996년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두 해의 전체 데이터의 약 7%가 밝은 밤에 해당했다.

인공위성에 WINDII 장비를 설치한 모습. 인공위성 오른쪽 끝에 있는 V자 모양의 구조물이 바로 WINDII다.

아마도 지상에서는 위성이 측정한 것보다 훨씬 적은 빈도로 밝은 밤이 나타났을 것이다. 대기광을 지상에서 보려면 하늘이 맑고 달빛이 없어야 하는 데다, 7%라는 수치는 전체 지구에서 계산한 값이기 때문에 특정 장소에 밝은 밤이 나타날 확률은 1년에 단 하루 정도로 낮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은 밤이 지금보다 자주 기록된 건, 과거엔 인공 조명이 없었고 따라서 달이 뜨지 않은 밤에는 온 세상
이 깜깜했던 덕분이다.

앞으로는 밝은 밤이 더 자주 나타날 확률이 크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극단적인 날씨가 자주 나타나면, 상층 대기의 역학을 복잡하게 하는 강한 대기 파동이 그만큼 자주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또, 대기의 다양한 파동이 특정 위치에 자주 정렬해 밝은 밤을 더 자주 유도할 수도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미 너무 많은 빛공해 때문에 도시 사람들은 여전히 밝은 밤을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랄까.


고든 셰퍼드(Gordon Shepherd)_gordon@yorku.ca
캐나다 요크대 명예 연구교수. 요크대 지구및우주과학연구센터 소장을 역임했고, 우주에서 지구의 상층 대기를 관찰하는 광학적 방법에 관한 연구를 했다. 미국 지구물리학회와 캐나다 왕립학회 회원이다. 2003년 캐나다우주국의 존
H.샤프먼 어워즈, 2014년 스코스텝 뛰어난 과학자상, 2016년 코스파 윌리엄 노드버그 메달 등을 수상했다. 

조영민_
 youngmin.joshua.cho@gmail.com
충남대에서 석사학위를, 캐나다 요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10년부터 요크대에서 연구원(RA)으로 재직하고 있다. 1999~2000년에는 극지연구소 세종과학기지에서 현장연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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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캐나다 요크대 고든 셰퍼드 교수, 조영민 연구원
  • 기타

    [번역·에디터] 우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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