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영국 런던 경찰청은 학생과 대학에게 논문 공유 사이트 ‘사이허브(Sci-Hub)’를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런던 경찰청은 사이허브를 불법 사이트로 규정하며 “대학 직원과 학생들에게 피싱 e메일을 보내 로그인 계정을 얻는 등 악의적인 수단을 사용한다”고 알렸다.
2015년에는 과학 학술출판사 ‘엘스비어’가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미국에서 사이허브를 최초로 고소했고 결국 뉴욕 연방지방법원은 사이허브가 엘스비어에게 1500만 달러(약 167억 원)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2017년 미국화학회(ACS) 역시 버지니아주 동부 연방지방법원에 사이허브를 고소했고, 지방법원은 사이허브가 ACS에게 480만 달러(약 53억 원)를 지불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사이허브는 두 판결에서 모두 패소했으나, 미국 사법 관할권이 없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배상금을 지불하지는 않았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영국, 오스트리아에서도 비슷한 소송이 이어졌다. 지난해 12월에는 인도에서도 사이허브를 저작권 침해로 고소했다. 사이허브 설립자, 알렉산드라 엘비키얀이 이를 사이허브 트위터 계정에 올리자 인도 과학자들이 많은 우려를 표했다. 결국 지난 1월 8일 사이허브의 트위터 계정은 중지됐다.
올해 출범 10년째를 맞은 사이허브를 둘러싼 논란이 전 세계적으로 뜨겁다. 사이허브는 돈을 지불해야 열람이 가능한 유료 논문을 무료로 공유하는 사이트다. 2011년 카자흐스탄의 프리랜서 프로그래머 알렉산드라 엘바키얀이 만들었다. 현재 8550만 건의 논문을 제공하고 있다. 엘바키얀이 어떻게 논문을 무료로 제공하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사이허브에는 상반된 평가가 공존한다. 유료 논문을 무단 공유하는 행위는 현행법상 명백히 불법이며, 불법적인 수단은 근본적인 문제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부정적 평가가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과학 논문이 학문의 진보를 위해 자유롭게 공유되지 못하는 현실을 사이허브가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과학 연구를 하고 싶어도 논문 구독 비용을 지불하지 못했던 연구자들에게 희망이 됐다는 평가를 내리는 사람도 있다. 사이허브의 설립자 알렉산드라 엘바키얀과의 e메일 인터뷰를 통해 사이허브를 둘러싼 논란을 되돌아봤다. 그가 과학계와 상업적 학술출판계에 던진 문제의식도 되짚어봤다.
오픈 액세스와 함께 출현한 사이허브
“음악이나 책, 영화 등을 무료로 공유하는 사이트들은 금지되거나 일부는 완전히 파괴됐습니다. 하지만 사이허브는 여전히 운영되고 있습니다. 다루는 대상(논문)의 독특한 저작권 구조 때문입니다.”
엘바키얀은 사이허브가 다른 공유사이트들과 달리 10년째 건재할 수 있는 배경에 과학 논문 특유의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과학 논문의 저자는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할 때 저작권을 학술지에 양도하게 돼 있다. 책이나 음악, 영화 등 다른 저작물의 저작권이 원저작자에게 있는 것과 크게 다르다. 엘바키얀은 많은 연구자들이 여기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본다. 그는 “논문을 무료로 공유하는 사이허브가 지금까지도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전통적인 과학 논문 저작권 구조에 문제가 있음을 증명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과학과 지식의 공유를 막는 어떤 법도 있을 수 없다”며 “이것이 사이허브를 만든 이유”라고 강조했다. 과학 지식은 공유를 통해 발전한다. 세계과학자연맹이 1948년 제정해 공포한 ‘과학자 헌장’에도 명시돼 있다. 제1항인 과학자의 책임에는 과학자는 지식이 선용되도록 전력을 다해야 하며 과학적 성과를 완벽히 공표하고 인종과 민족, 분야를 초월해 다른 연구자와 교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연구가 이뤄낸 성과는 이를 뒷받침하는 좋은 사례다. 신종 바이러스의 게놈 정보를 발빠르게 공유해 바이러스의 변이를 추적하고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는 데 공헌했다. 심사 전 논문 저장소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와 ‘메드아카이브(medRxiv)’, 바이러스 정보공유 기구 ‘지사이드(GISAID)’ 등의 공유 저장소를 중심으로 빠르게 정보 교류가 이뤄졌다. 엘스비어도 코로나19 관련 연구는 무료로 공개하는 서비스를 열었다.
엘바키얀은 사이허브가 2000년대 태동한 오픈 액세스 운동과 맥락이 같다고 강조했다. 오픈 액세스 운동은 2002년 부다페스트 선언을 통해 공식적으로 발표됐으며 인터넷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학술지 논문에 접근 가능한 상태를 추구한다. 영국의 하원과학기술위원회의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998년에서 2003년 사이 학술지의 평균 가격은 58%까지 증가했다. 이는 당시 물가 상승률 11%보다 5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이런 학술지의 횡포에 맞서 나온 것이 오픈 액세스 운동이다. 그는 “이후 오픈 액세스 저널이 나왔지만 여전히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대형 학술지가 존재한다”며 “사이허브는 오픈 액세스 운동과 함께 출현했고 (과학 출판계)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이허브가 과학 지식 공유의 장이 되길 바랐다. 그는 “일부 나라에서는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ISP) 단계에서 차단됐지만 여전히 사이허브는 많은 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다”며 “한국에서도 지난해 논문 다운로드 횟수가 그 이전해보다 30만 회가량 느는 등 사용 횟수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인공지능(AI) 엔진으로 사이허브가 갖고 있는 논문 8550만 편을 분석하는 도구를 만들어 진실에 접근하는 과학을 위한 운동을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연구자들이 사이허브를 필요보단 편의성 때문에 이용한다고 비판한다. 2016년 사이언스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이허브 다운로드 횟수 가운데 4분의 1은 OECD 회원국에서 이뤄졌다. 논문을 가장 많이 다운 받은 국가에는 미국(5위)도 포함돼 있었다. 논문 접근이 쉽지 않은 개발도상국이 다수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른 결과였다. 엘바키얀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그는 “사이허브의 사용이 보편화되며 목표 대상이었던 논문 접근이 어려운 연구자 말고도 다양한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 뜻”이라며 “일각에서는 (사이허브 때문에) 논문 이용에 대한 어려움이 부각되지 않아 오픈 액세스 운동이 약화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과학 학술지의 상업화는 여전하고 지원을 받지 못하는 연구자들에게는 사이허브라는 대안이 필요하다”며 “오픈 액세스 운동에 주목할 수 있도록 조만간 사이허브 사이트에 이에 관한 정보를 추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어쨌거나 사이허브는 세계에 많은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한다”며 “사이허브에 사람을 살리는 정보와 인류를 이끄는 지식이 담겨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진실”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