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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과 무빙워크 중 전자 궤도를 닮은 것은?

보어의 양파 모델

전철역에 서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갈등한다. 계단으로 걸어 올라갈 것인지,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을지. 만약 이 둘 옆에 무빙워크가 있다면 어떨까? 아마도 많은 경우 무빙워크를 선택하지 않을까.

가만히 서 있어도 걷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무빙워크는 계단보다 편하다. 또 직접 걸어도 에스컬레이터보다 에너지가 덜 든다. 무거운 짐을 담은 카트가 이동하는데 쉽기 때문에 무빙워크는 대형마트의 필수 시설이 됐다. 이렇게 계단, 에스컬레이터, 무빙워크는 사람들에게 편리한 정도로 다가간다. 그런데 화학자들은 계단과 무빙워크의 다른 측면에 주목한다. 이제 화학자들이 계단과 무빙워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살펴보자.

불연속적인 계단, 연속적인 무빙워크

나란히 놓인 계단과 무빙워크를 두 사람이 각각 타고 오르다가 무빙워크가 갑자기 멈추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이때 무빙워크가 고장으로 멈춘 높이는‘5번째 계단’처럼 어떤 정수로 표현하기 힘들다. 무빙워크는 연속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반면 계단을 걸어서 올라갈 때는 3번째, 4번째 계단처럼 불연속적인 높이로 표현한다. 3.3 또는 3.7 같은 계단 높이는 없다.

$E= m·g·h$(m은 공의 질량, g는 중력가속도로 $9.8m/{s}^{2}$)로 표현하는 위치에너지를 생각해보자. 무빙워크로 올라갈 때는 높이(h)가 연속적이기 때문에 위치에너지도 연속적인 값을 갖는다. 하지만 계단으로 올라갈 때는 높이(h)가 불연속이기 때문에 위치에너지도 불연속 값을 갖는다. 양자역학의 불연속성 개념이 계단에서 나타난다.

공을 무빙워크와 계단에서 굴리는 경우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무빙워크에서 공을 굴릴 때 공의 시작 높이와 마지막 도착 높이는 연속적인 숫자로 표현할 수 있다. 즉 공의 위치에너지를 연속적인 값으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위치에너지 차이는 공의 처음 높이와 마지막 높이의 차이에 비례하는 연속적인 값이다. 위치에너지의 차이가 공의 운동에너지로 변환되기 때문에 운동에너지도 연속적인 값을 갖는다.

무빙워크와 달리 계단에서는 불연속성 개념을 도입해야한다. 예를 들어 5번째 계단에서 굴러간 공이 1번째 계단에 있을 경우, 위치에너지 차이는 4계단에 비례하는 값이다. 따라서 계단에서 공의 운동에너지는 계단 개수의 배수로 표현할 수 있는 불연속적인 값을 갖는다.

불연속성 개념은 원자 구조를 이해하는 데도 기여했다. 보어는 불연속적인 계단이 원자 내부에 존재한다는 것을 가정해 원자 구조를 설명했다. 그는 러더퍼드가 말한 것처럼 전자가 원자핵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닌다고 생각하지 않고 전자와 원자핵 간의 거리는 계단같이 불연속적으로 정해져 있어서 전자는 어떤 규칙에 따라 정해진 궤도를 따라서만 움직일 수 있다고 가정했다.

계단에서 공이 굴러내려 갈 경우 불연속적인 위치에너지 차이는 불연속적인 값을 갖는 운동에너지로 변환한다. 이때 공의 운동에너지는 속도와 직접 관련 있다(운동에너지 = $(1/2)·m·{v}^{2}$). 따라서 공의 속도도 계단 높이에 따라 특정한 값만 가진다.

빛 에너지는 파장에 따라 변하며 특정 파장에서의 에너지는 $h·c/λ$(또는 $h·ν$)로 표시한다 ($c/λ$는 진동수(ν)이고, c는 빛의 속도이다. h는 플랑크 상수로 값은 $6.63 X {10}^{-34} J·s$이다).

만약 원자 내부에서 전자가 불연속적이면서 특정한 에너지 상태로만 존재한다면 발머가 발견했듯이 수소 방출스펙트럼은 불연속적일 것이다. 전자가 높은 에너지 상태에서 낮은 에너지 상태로 떨어졌을 때 빛의 형태로(일반적으로 말하면 전자기파) 에너지가 나오는데 에너지 상태가 불연속적이면 당연히 나오는 빛 에너지 또한 불연속적이기 때문이다. 불연속적인 값을 갖는 공의 위치에너지가 불연속적인 값을 가지는 운동에너지로 변환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E = h·c/λ$의 식에 따르면 불연속적인 빛 에너지는 불연속적인 파장으로 나타난다. 즉 특정 파장의 선스펙트럼만 관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것 같지만 이것은 보어의 가정이었다. 보어의 첫 번째 가정은‘전자가 높은 에너지 상태에서 낮은 에너지 상태로 떨어졌을 때 빛의 형태로 에너지가 나온다’였다!

러더퍼드는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태양계의 행성처럼 돌고 있다’는 행성 모델(planetary model)을 제안했다. 보어는 이 모델을 보완해‘전자는 원자핵을 중심으로 불연속적으로 정해진 거리를 두고 원형 운동을 한다’는 두 번째 가정을 만들었다(이 공로로 보어는 1922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보어 모델의 핵심은 ‘불연속성’에 있는데, 계단에서 굴러가는 공처럼 원형 운동을 하는 전자의 궤도 반지름이 불연속적이고 전자의 에너지도 불연속적이라는 것이다.
 

계단과 무빙워크에서의 위치에너지 차


보어의 양파모델

보어는 원자 안에서 전자가 운동하는 궤도 반지름과 이때의 불연속적인 에너지를 간단한 계산으로 얻었다.

반지름(${r}_{n}$) = (${n}^{2}/Z$)·${a}_{0}$
(여기서 n은 1, 2, 3, ...의 정수이고, a0는 보어반지름 상수로 0.529Å이다, 1Å=10-10m)

에너지(En) = $-{R}_{H}·h·c·({Z}^{2}/{n}^{2})$
(RH는 리드버그상수로 109677.57 ${cm}^{-1}$이다)

n이 무한대(∞)로 가면 전자는 원자핵에서 멀어져 무한대로 가고, 에너지는 음수의 값에서 0으로 접근한다. 이때 가장 안정한 상태인 n이 1인 경우를 전자의 바닥상태(ground state)라고 하고, 2 이상의 n인 상태를 들뜬상태(excited state)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보어의 모델은 원자의 중심에 원자핵이있고 주위에 전자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돌고 있는 모델로 양파와 비슷하다.

보어의 원자 모델을 이용하면 발머의 수소원자 선스펙트럼을 멋지게 설명할 수 있다. 들뜬상태의(높은 에너지의) 전자가 n이 2인 상태로 내려오면서 빛을 낼 때(발머의 수소 선스펙트럼) 식은 다음과 같다.

방출된 빛 에너지
= 처음 높은 상태의 에너지($-{R}_{H}·h·c (1/{n}^{2})$)
- n이 2인 상태의 에너지(-${R}_{H}·h·c (1/{2}^{2})$)

=${R}_{H}·h·c (1/{2}^{2}-1/{n}^{2})$

발머가 실험으로 도출한 식이 보어의 모델을 이용해 수학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보어의 원자 모델을 이용한 수소원자 선스펙트럼^수소에서 에너지가 높은 상태의 전자가 n=1인 바닥상태로 떨어지면 라이먼의 선스펙트럼이 얻어지고, n=2인 들뜬상태로 떨어지면 발머의 선스펙트럼이 얻어진다.


계단과 양파 모델의 차이

불연속성이 공통점인 계단과 원자의 양파 모델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원자핵에서 전자의 거리는 ${n}^{2}$에 비례한다. 계단 하나의 높이는 일정하기 때문에 계단의 높이는 계단 하나 높이의 배수로 표현할 수 있지만, 원자핵에서 전자까지의 거리는 1, 4, 9, 16, 25…처럼 올라갈수록 상대적으로 멀어진다.

원자핵에서 전자까지 거리가 ${n}^{2}$에 비례해 커지기 때문에 원자내부 전자 에너지는 ${n}^{2}$에 반비례한다. 간단히 말해 가장 낮은 에너지(바닥 상태의 에너지, n=1)를 -1이라고 한다면, 그 바로 위의 에너지(n=2)는 -(1/4)이고 그 다음은 -(1/9)이다. 이렇게 - (1/16), -(1/25), -(1/36)로 계속 진행하면, 결국 전자의 에너지는 0이 된다.

따라서 발머의 수소 선스펙트럼에서는 일정한 거리를 가지고 규칙적으로 선이 나타나지 않고 특정 파장을 향해 계속 가까이 가는 선들이 나타난다. 그 특정 파장은 당연히 ${R}_{H}·(1/{2}^{2} - 1/{∞}^{2}$)의 역수인 $4/{R}_{H}$ 일 것이다.

발머가 발견한 가시광선 영역의 선스펙트럼뿐만 아니라 전자의 마지막 에너지가 어디냐에 따라 다양한 영역에서 불연속적인 선스펙트럼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전자가 n이 1인 상태로 내려올 경우에는 n이 2인 상태로 내려올 경우보다 방출되는 빛 에너지가 크고, 선스펙트럼은 가시광선 영역보다 에너지가 큰 자외선(UV) 영역에서 나타난다.

무지개색 나노입자

한 종류의 물질에서 여러 가지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원자핵에서 전자까지의 거리에 따라 방출되는 빛의 파장이 다른 까닭은 높은 상태와 낮은 상태의 에너지 차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물질의 높은 상태의 에너지와 낮은 상태의 에너지를 조절할 수 있다면 그 물질에서 방출되는 빛의 파장(즉 물질의 색)을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나노 과학이 발전하면서 이 같은 일이 가능해졌다. 반도체 물질을 나노 크기로 줄이면 한 종류의 반도체가 다양한 색깔을 나타내도록 만들 수 있다. 즉 반도체 나노입자는 크기에 따라 전자가 이동할 수 있는 에너지 차이가 달라진다. 예를 들면 카드뮴(Cd)과 셀렌(Se)으로 이뤄진 나노 크기의 구형 반도체 물질(카드뮴셀레나이드(CdSe) 나노입자)의 지름을 바꾸면, 흡수하는 빛의 파장과 방출하는 빛의 파장을 바꿀 수 있다. 즉 흡수와 방출하는 빛의 파장에 따라서 물질의 색깔이 결정되기 때문에 무지개 색깔의 카드뮴셀레나이드 나노입자를 만들 수 있다(사진).
 

무지개 색깔의 카드뮴셀레나이이드 나노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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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최인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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