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풍선이 하늘 위로 떠올라 약 20km 상공, 성층권에 닿는다. 풍선 아래에서는 탄산칼슘 가루가 뿜어져 나오며 강력한 햇빛이 지표면에 닿기 전 반사한다. 6월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시행할 예정이던 지구공학(Geoengineering) 실험, 스코펙스(SCoPEx)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기후변화를 극복할 창의적인 방법으로 꼽히던 스코펙스는 시행을 두 달여 앞둔 4월 돌연 연기를 선언했다. 지구의 미래를 건 실험은 무슨 이유로 연기된 것일까.
지구의 기후시스템에 인위적인 조작을 가해 기후를 조절하는 연구 분야가 있다. ‘지구공학’이다. 1960년대 미국에서 처음 제안돼 60여 년 동안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안돼 왔다.
지구공학 기술은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된다. 지구로 들어오는 햇빛을 줄이는 ‘태양 복사 관리(SRM)’와 온실가스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이산화탄소 제거(CDR)’다. 스코펙스는 태양 복사 관리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이외에도 태양과 지구 사이에 거대한 반사판을 설치하는 방법 등이 제안되고 있다. 이산화탄소 제거 기술은 탄소포집·이용·저장(CCUS)과 광합성 생물 등을 이용한다.
스코펙스는 미국 하버드대팀이 기획한 지구공학 실험이다. 태양 복사 관리를 위해 성층권에 탄산칼슘(CaCO3) 등 미세입자를 뿌려 햇빛을 반사한다.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지 알아볼 실험으로 관심을 모았다. 6월로 예정됐던 실험은 이 실험을 하기 전 플랫폼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비행이었다.
하지만 지구공학 실험 자체를 둘러싼 논란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하버드대 연구팀은 스코펙스 자문위원회의 의견을 들어 실험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스코펙스 자문위원회는 “사회적 논의를 마칠 때까지 실험을 미뤄야 한다”며 “최대 2022년까지 미룰 수 있다”고 말했다.
미지의 기후시스템 부작용은 누구 몫
가장 큰 쟁점은 스코펙스 실험으로 나타날 부작용에 관한 연구가 아직 충분치 않는 점이다. 미국 럿거스대가 이끄는 지구공학 모형 상호비교 프로젝트(GeoMIP)에서는 다양한 기후시스템 모델을 결합해 CDR 기술이 지구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고 있다. 하지만 스코펙스와 같은 SRM의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부족하다. 기후모델이 아직 복잡한 기후과정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점도 한계다.
변영화 국립기상과학원 미래기반연구부 팀장은 “한국의 K-ACE를 포함해 전 세계 약 15개 국가가 기후모델을 연구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기후를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며 “전체적인 기후 변화는 일정 수준 예측하더라도 각 지역과 개별 사회에 미치는 영향까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지구공학 실험에 앞서 보다 정확하고 다양한 기후시스템 모델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물론 현재 기후시스템 모델만으로도 어느 정도 수준의 부작용은 예상할 수 있다. 기후학자들이 예상하는 스코펙스의 부작용 중 하나는 열대 몬순 기후의 교란이다. 민승기 포스텍 환경공학부 교수는 “몬순 기후 교란은 햇빛 차단으로 비열이 다른 육지와 바다에 온도 차이가 생길 경우 발생한다”며 “그렇게 되면 구름이 생기고 강수량이 변화해 해당 지역에 이상 기후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실제로 이런 부작용이 일어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개발도상국이 입는다. 민 교수는 “몬순 기후대에 속하는 국가 대부분은 기후변화의 원인인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해오지 않았다”며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실험의 피해를 오히려 이들 국가에서 받는다는 사실은 기후 정의의 측면에서 문제가 많다”라고 말했다.
스코펙스도 비슷한 우려를 낳는다. 애초 스코펙스는 미국 애리조나 투손에서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일정에 차질이 생기며 스웨덴 이스레인지우주센터에서 발사하는 계획으로 변경됐다. 이에 따라 실험으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 실험을 주도한 미국이 아닌 스웨덴 일대 유럽지역이나 주변 아시아, 아프리카까지 미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스코펙스가 취소되기 두 달 전인 2월에는 이스레인지우주센터 인근에 사는 원주민의 단체인 사미 의회가 스코펙스 자문위원회에 서한을 보냈다. 사미 의회는 스코펙스가 기상과 생태계에 재앙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이미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고통을 받는 바 있다. 실제 이들의 서한은 스코펙스가 취소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정일웅 강릉원주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는 “스코펙스를 둘러싼 논쟁 중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 바로 실험 기획자와 부작용 피해자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선량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는 실험이니만큼 시행 이전 철저한 기반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꾸준한 노력 없이는 더 큰 위기 올지도
스코펙스 실험을 지속해야 할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는 비판도 있다. 지구공학 연구가 지속해서 시행되기에는 너무 큰 비용이 필요하다. 태양 복사 관리는 단기간에 지구 온도를 낮출 수 있지만,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십~수백 년 동안 지속해서 미세입자를 뿌려야 한다. 여기에는 매년 약 200억 달러(약 22조 4000억 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 기간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실험을 중단했을 때다. 오랜 기간 태양 복사에너지를 줄여 회복한 지구 기온이 급격히 다시 올라갈 것으로 추정된다.
정 교수는 “이미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SRM이 중단되면 그간 낮췄던 지구 기온이 순식간에 다시 상승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라며 “꾸준한 온도상승도 큰 문제지만 급격한 기후변화는 생태계에 더 치명적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공학 실험이 시도된 것이 스코펙스가 처음은 아니다. 2010년 영국 브리스톨대를 비롯한 네 개 대학 연구팀은 성층권에 물방울 입자를 흩뿌려 햇빛을 반사하는 스파이스(SPICE)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과학자들은 스파이스 프로젝트를 두고 스코펙스와 마찬가지로 ‘예측하지 못한 부작용은 없는가’ ‘인간의 기후시스템에 대한 개입이 윤리적으로 옳은가’ 등을 주제로 논쟁을 펼쳤다.
하지만 스파이스 프로젝트가 취소된 결정적인 이유는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 일부가 해당 기술과 유사한 내용으로 특허를 등록해서였다. 전 지구적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이 누군가의 이윤 추구를 위해 사용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주장이 당시 과학계에 대두됐다.
지구공학 실험은 수많은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부 기후학자들에게는 관심 연구주제 중 하나다. 이들은 이미 기후변화가 임계점(tipping point)을 넘어섰으며, 온실가스 감축만으로는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없다고 우려하며 지구공학이 직접적이고 강력한 대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스코펙스 자문위원회는 사회적 논의를 거쳐 실험 진행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듣고 기술적, 윤리적,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하겠다는 의사다.
스코펙스 중단 사태는 과학기술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과학만능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던졌다. 인류는 화석연료 고갈을 막기 위해 원자력 기술로 발전소를 지었고, 생태계 보호를 위해 플라스틱을 비롯한 다양한 화학물질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많은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는 듯 싶었지만, 이들은 종종 더 큰 부작용으로 되돌아왔다. 민 교수는 “지구는 단 하나뿐인 만큼 지구공학 실험에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며 “지금은 온실가스 감축에 더 큰 노력을 기울이고, 지구공학 기술에 대해서는 꾸준한 연구와 검증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