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생명력은 때로는 눈부시고, 때로는 처절하다. 야생은 겨우내 움츠려 있던 생명력으로 가득 차지만, 그 안에서도 생명력을 위협받는 존재는 있게 마련이다. 생태계 상위 포식자인 중형 맹금류 황조롱이도 그중 하나다. 최근 서식지가 줄어들며 아파트 단지에서 둥지를 트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새끼의 안전이 위협받는 사례로 자주 발견되고 있다.
인공둥지로 다시 안식처 얻은 황조롱이
4월 번식기에 황조롱이 부부는 아파트 단지 사이를 날며 둥지 틀 자리를 물색한다. 요즘에는 둥지 틀 만한 절벽이나 산림을 도통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황조롱이는 도심의 가로수나 에어컨 실외기, 베란다 화단, 건물 옥상을 보금자리로 택한다.
부부는 둥지가 완성되면 4~6개의 알을 낳는다. 30일간 새끼를 품고, 또 30일간 교대로 사냥과 경계를 반복하며 태어난 새끼를 돌본다. 약 60일. 황조롱이가 도심에서 새끼를 위해 버텨야 하는 시간이다.
도시에서 이들은 쉽게 위기에 노출된다. 황조롱이의 소음이나 배설물을 불편하게 여긴 사람들은 둥지를 강제로 제거한다. 부부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새끼를 미아라 오인해 데려가는 경우도 있다.
2018년 6월, 신고를 받고 한 아파트 단지에 출동했다. 가로수를 베어내다가 황조롱이 둥지가 추락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땅으로 떨어진 새끼 두 마리는 신체에 큰 이상이 없었고 어미는 근처 나무에서 추락한 새끼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런 경우 야생동물구조센터에 데려가기보다 현장 방생을 택한다. 특히 황조롱이는 새끼에 관한 신고가 많은 종이라 현장 방생하는 경우가 많다. 외상이 없다면 사람보단 어미의 보살핌이 새끼가 잘 자라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시간 싸움이다. 날씨가 따뜻해도 새끼들이 어미 없이 밤을 보내는 것은 위험하기에, 해가 지기 전에 새끼를 다시 어미에게 돌려보내야 했다. 추락한 둥지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인공 둥지를 만들어야 했다. 인공 둥지는 비바람을 막고 물이 빠질 수 있어야 한다. 이 날은 준비해 간 플라스틱 바구니 둥지를 설치했다. 합판을 사용해 제작하는 경우도 있다.
근처에서 적당한 나무를 찾아 인공 둥지를 설치했다. 둥지 안에 새끼를 옮겼고 어미가 금세 오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메추리 고기를 몇 점 넣어뒀다. 어미가 다시 새끼를 찾아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발에 커다란 먹잇감을 들고 주변을 배회할 뿐, 둥지를 바로 찾아가진 않았다. 둥지의 높이가 달라진 탓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일단 자리를 피하기로 했다.
며칠 뒤 현장을 다시 찾았을 때 다행히 새끼 황조롱이들은 어미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적절한 조치로 자연의 새로운 구성원을 지켰다.
경이로운 비행실력도 구조물 앞엔 무용지물
황조롱이는 들판에서 쥐나 참새 같은 소형동물을 사냥한다. 정지비행(hovering)을 하며 주변을 물색하다가 급강하해 사냥감을 잡는다. 사냥감 앞에선 경이로운 비행실력을 뽐내지만 사람이 세운 인공 구조물 앞에선 맥을 못 춘다. 특히 유리와 가느다란 전선은 비행 중인 황조롱이가 피하기에 너무 어려운 대상이다.
20-123 황조롱이도 가는 전선을 피하지 못했다. 전선과 충돌하면서 우측 상완골(사람으로 치면 팔뚝)이 골절됐다. 날개가 처지고 비행 능력을 잃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피부가 찢어지진 않았고 활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상완골과 조각난 뼈 조각을 핀으로 고정하고 2주 동안 소독과 관리를 하며 뼈가 붙기를 기다렸다.
2주 뒤,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오랫동안 포대로 압박한 탓에 날개의 인대와 근육이 굳어 날개가 온전히 펴지지 않았다. 야생동물도 사람과 비슷하다. 이런 경우엔 물리치료가 필요하다. 마사지와 스트레칭, 온열 치료, 그리고 휴식을 번갈아 하며 재활을 진행했다. 그 결과 구조된 지 두 달 만에 다시 하늘을 날 수 있었다.
끈끈이에 오도가도 못한 황조롱이
쥐나 벌레를 잡기 위한 끈끈이 역시 야생동물의 목숨을 위협한다. 제비, 박새, 등줄쥐, 족제비, 하늘다람쥐, 유혈목이 등 종을 가리지 않는다. 황조롱이도 예외가 아니다. 끈끈이에 뿌려 둔 볍씨가 참새를 불러들이고 옴짝달싹 못하는 참새를 본 황조롱이는 먹잇감을 향해 고민없이 내달린다. 결국 참새와 황조롱이 모두 끈끈이에 갇힌다.
끈끈이에 붙은 황조롱이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 절대 탈출할 수 없다. 발버둥치면서 끈끈이가 몸에 더 붙고, 골절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게 서서히 죽어간다.
운이 좋게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오더라도 끈끈이에 붙어 있는 시간이 길수록 살 가능성은 줄어든다. 제거할 수 없을 정도로 끈끈이가 붙은 데다가 먹이를 먹지 못해 체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졌기 때문이다. 동물의 크기가 작을수록 골든타임은 더 짧아진다. 참새는 반나절도 버티지 못한다.
다행히 골든타임 전에 도착한 개체는 일단 끈끈이를 제거한다. 깃 일부가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2~3일에 걸쳐 조금씩 제거한다. 개체가 스스로 깃을 손질해 제거할 수 있는 양은 억지로 제거하지 않는다. 끈끈이를 모두 제거하고 날개깃과 체력이 정상 상태로 돌아오면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동물의 수를 조절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끈끈이는 작은 동물들을 무차별적으로 위협한다. 끈끈이 대신 포획틀을 이용하는 등 무분별한 희생을 줄이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