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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형 아이템, 게임계 황금알 낳는 거위

엣지 사이언스

인기 게임인 ‘메이플스토리’와 ‘리니지M’ 등이 연달아 ‘확률형 아이템’에서 비롯된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게임의 아이템이 왜 사회 문제로까지 비화됐는지, 그 속엔 어떤 배경이 있는지 게임 전문가를 통해 진단해 봤다

 

부분 유료(Free to Play) 게임. 글자 그대로 게임은 무료로 즐길 수 있되, 추가 서비스를 즐기기 위해서는 돈을 지급해야 하는 게임 운영 방식이다. 여기서 추가 서비스란 게임 내에서 지급되는 재화나 아이템이 될 수도 있고, 성장을 빠르게 하거나 게임 콘텐츠를 제한 횟수보다 많이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도 있다.


20년 전 처음 도입된 부분 유료는 이제 온라인 게임의 표준이 됐다. 4월 현재 한국에서 PC와 모바일 인기 순위 10위(게임트릭스, 게볼루션 기준)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게임 중 90%가 부분 유료 방식을 택하고 있을 정도다. ‘프리스타일2’ 등 다수의 온라인 게임을 기획하고 현재 게임기획, 게임밸런스와 시뮬레이션 등을 연구하고 있는 김정선 청강문화산업대 게임콘텐츠스쿨 교수는 “부분 유료는 희소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수익 모델”이라고 말했다. 

 

확률형 아이템=희소성


희소성은 비단 게임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도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요소다. 게임에서는 아이템 이름에 ‘유니크’ ‘전설’ ‘에픽’ 등의 수식을 붙이고, 희귀한 정도에 따라 등급별로 분류한다. 유저는 희귀한 아이템을 소장함으로써 자기만족뿐만 아니라, 다른 유저와 비교해 우월감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아이템의 희소가치가 높을수록 커뮤니티 내에서 영향력을 크게 행사할 수 있다. 이는 다른 유저로 하여금 그 아이템을 가져야겠다는 동기를 유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희소성은 유료 상품을 구매하는 가장 큰 심리적 요인이다. 김 교수는 “과거 다른 운영 방식의 게임에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희소성 높은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지만, 부분 유료 게임에서는 시간 대신 돈을 투자해 획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확률형 아이템은 부분 유료 게임의 꽃이다. 희소성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확률형 아이템에는 하나의 상자에 희소성이 높은 아이템과 낮은 아이템이 한데 섞여 있다. 유저는 그중 하나를 무작위로 뽑을 수 있는데, 희소성이 높은 아이템일수록 획득할 확률은 낮아진다. 하지만 운이 좋으면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도 희소성 높은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유저들은 다량의 확률형 아이템을 소비한다.


부분 유료를 채택한 게임에서 유료 상품 설계는 전체 게임 콘텐츠를 정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김 교수는 “게임 내에서 즐길 수 있는 모든 콘텐츠를 정리한 뒤, 그중 게임을 플레이해서 달성할 부분과 유료 상품을 구매해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을 구분한다”고 말했다.


유료 상품을 구매해야 하는 부분이 전체 게임 중 얼마나 차지할지는 각 게임사의 운영 기조에 따라 다르다.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 유료 상품으로 즐기는 부분을 늘릴 수 있지만, 과도할 경우 유저들의 불만이 커진다. 부분 유료 게임을 즐기는 대부분의 유저는 유료 상품을 구매하지 않거나 1만 원 미만의 소액만 쓰기 때문이다. 게임사에 수익을 안겨주는 고(高)과금의 유저는 5% 남짓의 소수 유저다. 게임 업계에서는 이들을 고래(whale)라고 부르기도 한다.

 

 

모든 행동이 데이터로 남는 게임


확률형 아이템을 포함한 유료 상품은 대부분 경험칙에 의해 설계된다. 김 교수는 “새로운 유료 상품은 게임 내 평균 레벨, 콘텐츠 소모율, 재화 상태 등의 간단한 데이터도 참고하지만, 주로 지금까지 자사 또는 다른 회사에서 잘 팔린 상품이 무엇인지 살펴보거나 유저 대상의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디자인한다”고 말했다.


유료로 판매되는 확률형 아이템은 아이템의 가치와 획득 확률에 따라 대략적인 가격이 산정될 수 있다. 예를 들어 10만 원, 5만 원 1만 원의 가치가 있는 아이템의 획득 확률이 각 10%, 40%, 50%라고 하면 기본적인 가격을 3만 5000원으로 설정할 수 있다. 물론 최종 가격은 다른 게임 내외 요소들까지 반영해 결정된다. 이 과정에서 판매율이 높은 상품 시스템(뽑기 방식) 하나를 잘 개발하면, 그 안의 콘텐츠(내용물)만 조금씩 바꿔가며 여러 종류의 확률형 아이템을 출시할 수 있다.


최근에는 데이터 사이언스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유료 상품 설계가 더 정교해지고 있다. 양성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차세대콘텐츠연구본부 책임연구원은 “게임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데이터로 남아서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양이 가장 풍부한 분야”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형 게임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유료 상품을 설계할 때 게임 내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가령 유저가 몇 시에 접속해 몇 시간 동안 게임을 했는지는 물론, 캐릭터가 접속한 뒤 상점에 몇 회 들렀고, 어떤 것을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최종적으로 무엇을 구매했는지, 또 전투를 할 때는 어떤 순간에 몇 초를 망설였고, 얼마나 오래 타격했는지까지 모든 부분이 소상히 남아있다. 이처럼 게임 등의 소프트웨어가 실행되는 동안 발생하는 데이터를 로그데이터라 한다.

 

 

AI로 요인 분석부터 대안 제시까지… 결정은 게임사 몫


최근에는 게임 데이터 분석에 인공지능(AI)도 가세했다. 양 책임연구원은 2017년 로그데이터에 기계학습(머신러닝)을 적용해, 게임 운영 시나리오를 최적화할 수 있는 플랫폼 ‘GM2’를 개발했다. GM2로 예측할 수 있는 건 크게 두 가지다. 유저들이 언제 무엇을 살지에 대한 구매예측과 어떤 요인으로 인해 언제 게임을 관둘지에 대한 이탈예측이다.


예측은 로그데이터를 이용해 유저들의 선호도와 경향을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양 책임연구원은 “로그데이터에 따라 비슷한 특성을 갖는 유저끼리 분류하고, 각 분류마다 어떤 특징이 있는지 분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접속 유지 시간이나 결제 금액에 따라 유저를 분류하고, 집단마다 각각 시간당 유료 상점에 몇 번 들르는지, 다른 유저와 대화하는 데 몇 분을 할애하는지, 또 성장하는 데는 몇 분을 쓰는지 등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유저가 특정 행동을 더 많이 하게 하는 요인도 찾아낼 수 있다. 기계학습의 입력값인 로그데이터 수치를 일부 바꿔보며, 어떤 입력값이 변화했을 때 결괏값이 큰 폭으로 바뀌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만약 사냥 횟수가 유료 상품을 구매하는 횟수에 큰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분석되면, 이를 토대로 사냥을 장려하거나 억제해 유료 상품 구매를 유도할 수도 있다.


양 책임연구원은 “GM2는 게임 활성화와 수익 증대를 위한 여러 방법을 제시해주긴 하지만, 종종 게임사 입장에서 손해가 크거나, 반대로 유저들이 반발할 만한 방안도 포함하기 때문에 최종적인 판단은 게임사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 플랫폼은 현재 4개의 게임사에서 7개의 게임에 적용하고 있으며, 게임 외에도 온라인 쇼핑몰 등 3개 기업에서 사용 중이다.


GM2에 이어 지난해에는 GM3도 개발됐다. 양 책임연구원은 “GM2에서는 로그데이터로 유저들을 분석하고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했다면, GM3는 가상의 캐릭터(에이전트)를 생성해 직접 게임 내에서 활동하며 더 능동적으로 게임 내 변화를 분석 및 예측하고, 유저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상호작용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GM3 활용 방법 중 하나는 게임 베타 테스트에 적용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대다수의 게임이 정식 출시 전에 유저들을 모아 테스트를 실시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모된다”며 “에이전트를 투입해 출시 전의 게임을 테스트해서 버그를 잡아내거나, 유료 상품 개발을 위한 자료로 사용한다면 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최근 게임업계에서 여러 논란이 불거지며 게임사도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문제를 더 크게 인식하고 있다”며 “현재 벌어진 문제들은 기술보다도 게임사에서 유저들과 얼마나 적극적으로, 또 서로 만족할 수 있는 방식으로 소통하냐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2021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서동준 기자 기자
  • 디자인

    이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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