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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황우석을 믿었는가

믿음이 오류에 빠질 때

사람은 자기가 믿고 있는 신념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그 신념이 자기 자신과 깊이 관련되어 있을 때 더욱 그렇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도 사람은 머릿속, 마음 속에서 ‘일관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가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가 들어오면 기꺼이 그 정보를 받아들이지만, 일치하지 않는 정보가 들어오면 거부하거나 원래 생각에 일치되는 방향으로 왜곡해 해석한다.

예를 들어 보자. 자기가 원래 착하다고 믿었던 사람이 착한 일을 하면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나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착한 일을 하면 ‘무슨 꿍꿍이 속이 있을까’하고 의심하며 착한 일 했다는 사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너무나 훌륭한 과학자라고 확신했던 황우석 박사가 어떤 과오를 저질렀다는, 원래 생각과 너무나도 불일치하는 정보를 받았을 때, 사람들의 첫 반응은 “그럴 리가 없어.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그의 과오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 정보원을 깎아내린다.
 

황우석 박사가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최종 발표 후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있다.


불치병을 부정하는 마음

황우석 파동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불치병을 선고 받았을 때와 비슷하다. 자신의 건강에 확신을 갖고 있던 사람이 “당신은 암에 걸렸습니다”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첫 반응으로 “그럴 리가 없어. 오진일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즉 ‘부정’이라고 하는 자기방어 기제와 유사하다. 다음 반응은 다른 정보원을 통해 자기가 원래 가졌던 정보가 사실일 거라는 믿음의 근거를 찾아 모은다. 사람들이 처음에 MBC의 보도보다 YTN의 보도를 더 신뢰했던 것이 바로 이런 이유다. 마침내 처음 정보가 사실임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이 되면 자신의인지구조전체를바꿔버린다. “ 정말나쁜사람이군!” 또는 “난 이제 절망이다”라는 식으로 바뀐인지구조의 일관성을 또 찾아나간다.

첫인상의 강렬한 효과도 인지적 일관성을 희망하는 인간의 욕구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황우석 박사와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첫사랑처럼 한순간에 반한 아름다운 첫인상이었다.처음 예쁘게 본 사람은 계속 예쁘게 보이며 단점이 눈에 띄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처음에 밉게 본 사람은 계속 밉게 보여 장점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처음에 들어온 정보는빈디스켓에 저장되는 정보와같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사전 정보가 담겨 있는 상태에서는 이후에 들어오는 정보가 사전 정보에 맞춰 왜곡된다.

중간고사를 잘 보고 기말고사를 망친 학생은 선생 님이 생각할 때 “잘 하는 학생인데 기말고사 때 무슨 일이 있었나보군”하고 추론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중간고사를 못 보고 기말고사를 잘 본 학생은 선생님이 “웬 일이야? 혹시 기말고사 때 컨닝했나?”하고 의심을 할 가능성이 있다.

페스팅어라는 유명한 사회심리학자가 쓴 ‘예언이 실현되지 않았을때’라는 책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와 있다.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1992년 10월의 휴거설과 유사한 이야기였다. 예정된 시간이 지나도 예언이 실현되지 않자, 그 예언을 굳게 믿었던 사람들은 인지부조화를 느껴 더 열렬히 포교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중의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후회하기 시작했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휴거일이 잘못 계산되었다고 합리화하며 언젠가 정말로 올 휴거에 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들이 그렇게까지 믿었던 예언이 실현되지 않을 경우 자신의 생각과 현실 간에 괴리가 너무 커져 조화를 상실하게 되기 때문에, 예언을 부정하기보다는 행동을 자신의 믿음에 맞추게 된다. 따라서 예언이 틀릴 리가 없다고 더욱 굳게 믿으며 신념과 일관되는 포교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더욱 강하게 유지한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려는 동조 현상도 인간의 판단에 영향을 준다. 사회심리학자 애쉬는 너무나 명백한 과제조차 다른 사람들이 모두 틀린 답을 이야기하면 틀린 답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 쪽으로 동조하는 답을 내놓는다는 실험결과를 보여 줬다.

화면에 선분 A, B, C의길이를 각각 달리 그려놓고, 옆에 B의 길이와 같은 기준선을 나란히 그려 놓는다. 그런 다음 기준선과 길이가 같은 선이 A, B, C 중 어떤 것인지를 참가자들에게 묻는다. 실험참가자들 5명 중 1명만이 진짜 피험자였으며, 나머지 네 명은 실험 공모자로서 미리 A라는 답을 하도록 이야기해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는 진짜 피험자를 네 번째 혹은 다섯 번째로 응답하게 한다.

이 경우 명백히 B가 답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 하는 대로 A라고 응답한다. 그리고 ‘내가 어제 잠을 덜 잤더니 눈이 좀 침침한가보군’하며 오히려 타인에게 동조한 자신의 응답을 합리화할 수 있는 이유를 자연스럽게 찾아낸다. 이번 황우석 파동에서 한쪽으로 여론이 쏠릴 때 반대 여론이 잘 드러나지 않은 것이 이런 이유다.
 

암을 선고받으면 처음에는 이를 부인하며 반대되는 정보를 찾아나선다. 사진은 미국의 의학 드라마 '하우스'의 한 장면.


무서운 집단동조

동조 현상은 자기가 주관적으로 지각하는 타인의 의견에 따라가는 것인데, 실제 타인의 의견이 어떤지와 무관하게 타인의 의견을‘잘못’지각하고 그렇게 잘못 지각한 의견에 동조하는 경우도 생긴다. 집단극화 현상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보통 때보다 집단 정체감이 더 뚜렷해지는 상황이 되면 사람들은 자기 집단의 규범을 실제보다 더 극단적인 쪽으로 잘못 지각한다. 그렇게 잘못 지각된 집단 규범 쪽으로 자신의 의견을 맞춘다.

예를 들어, 평소에는 어떤 사안에 대한 의견 차이가 그리 크지 않던 두 집단이 스포츠 경기나 선거 상황에서 대립 상황이 벌어지면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구성원들의 의견이나 규범을 실제보다 더 극단적인 쪽으로 지각한다. 이것은 상대 집단의 존재에서 오는 대조 효과 때문이기도 하다. 두 집단 모두에서 이렇게 동조가 일어나면두집단 간에 양극화가 발생한다.영호남의 지역감정이 선거 때 더 극화돼 일어나는현상, 고·연전 시기에 고려대와 연세대의 학풍 차이가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상 등이 그 예다.

동조 현상은 인터넷에서 더 극단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군중 속에 섞여 있을 때 자신의 정체가 잘 드러나지 않아 더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의 익명성도 이와 비슷하다. 현실속에서는 억눌려 있던 생각과 행동들이 익명의 탈을 쓰고 자유롭게 분출된다. 이로 인해 인터넷에서는 더 감정적이고 극단적인 의견들이 표현되고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은 다양한 의견에 열려 있는 공간인데도 사람들은 자신의생각을 지지해 주는 의견만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선다.그러면서 원래 가졌던 생각이 더욱 강화된다. 이번 황우석 파동에서 드러난 인터넷 여론의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첫인상이 좋으면 모든 것을 좋게 보고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사진은 드라마 '백만장자와 결혼하기'의 한 장면


집단사고의 함정

믿음의 오류나 판단의 오류를 가져오게 되는 또하나의 원인은 집단사고다. 집단사고란 미국 예일대의 재니스 교수가 제안한 개념이다. 아주 응집력 높은 집단의 구성원들이 은연중 만장일치의 압력을 느껴 외부 정보를 차단한 채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보자. 1960년 쿠바 공산혁명이 성공한 후 카스트로가 집권하여 반미정책을 펴자, 미국은 당연히 카스트로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때 케네디정부가 선거에 이겨 자신감에 차 있던 상태에서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져, 피그만 침공이라는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 1961년에 실행된 피그만 침공작전은 완전히 실패해 침공군 대부분이 현장에서 사살되거나 체포됐다. 이 사례는 미국 정부가 내린 역대손에 꼽는 비합리적 결정 중의 하나로 기록됐다. 사이비 종교 집단의 집단 자살 결정과 같은 사례들도 집단사고에 의한 판단의 오류에 속한다.

집단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집단 토론의 분위기가 개방적이어야 한다. 한 사람의 반대의견이라도 존중하는 분위기, 리더가 먼저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 외부의 신선하고 이질적인 의견에기꺼이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케네디 집권 당시 내각은 자신감에 가득차 외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내부에서는 만장일치의 압력이 은연중 작용해 반대 의견을 개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에 더해 케네디 대통령의 리더십은 자신의 의견을 먼저 이야기하고 내각의동의를 차례로 구하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연히 모든 가능성을 타진해 본 뒤에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시간제한 내에 만장일치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자신감있는 비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통제력이 실제보다 더 강한 것으로 쉽게 착각한다. 어떤 군대에서 소대장이 자기 소대원들을 엄격히 훈련하지 않아 성과가 나빠졌을 경우, 소대장은 ‘내가 소대원들을 풀어놨더니 형편없군. 이제부턴 쥐어짜야겠어’라고 생각하며 그 다음에는 더 심하게 훈련시킨다. 그래서 다음에 더 좋은성과가 나오면, 이번에는 ‘역시 내가 소대원들을 쥐어짰더니 효과가 있군’하며 좋은 결과가 자기의 통제 때문이라고 믿는다. 결과가 나쁘든 좋든 자기가 통제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라크전에 죽은 미군이 묻힌 묘지. 이라크전을 결정한 미국 부시 행정부 역시 집단사고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중매체를 의심하자

그밖에도 사람들의 믿음과 판단에 오류를 가져오는 요인들이 많다. 사람들은 대체로 정확하지만 추상적인 통계정보보다 부정확하더라도 생생한 사례정보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A회사의 자동차가 B회사의 자동차보다 사고율이 30%나 더 낮다는 통계정보보다는 “옆집 아저씨가 A회사 자동차를 몰다가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했대”라는 생생한 사례정보 하나가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끝으로, TV나 신문과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는 지나치게 일반화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모 신문에서 “강남에 사는 주부 A모씨는 하루에 100만원 이상을 명품 구입에 쓴다”는 기사를 내보냈다고 하자.

그 기사를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남에 사는 모든(또는 대부분의) 주부’, 최소한 상당한 비율의 강남 주부가 사치스러운 소비를 하는 것으로 과일반화해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은 미디어가 특정 사례에 해당되는 것만 뉴스로 만들기보다 상당히 널리 퍼져 있는 사실을 뉴스로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두 집단에 속한 어떤 인물들 간의 개인적인 갈등을 보도해도 미디어를 통해 이를 접하는 일반 사람들은 두 집단의 갈등의 골이 아주 깊은 것으로 과장해 지각한다. 그러기에 미디어의 보도에는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과거 황우석 박사의 연구가 진위와 관계없이 과대포장되고 이를 대중이 추종한 것은 대중매체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며, 지금도 이 사건은 여전히 다른 사건에 비해 유독 과도하게 보도되는 경향이 있다.

사람은 불완전하다. 사람의 믿음이나 판단은 더욱 불완전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지나칠 정도로 과신한다. 믿음의 오류, 판단의 오류가 인간 원리에서 예외가 아니라 거의 규칙에 가깝다는사실을 안다면 사람들은 훨씬 더 겸손하게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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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나은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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