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산어보’는 전남 신안 흑산도로 유배 온 실학자 정약전(설경구 분)과 섬 청년 창대(변요한 분)의 만남을 다룬다. 정약전이 창대의 도움을 받아 국내 최초의 해양생물학 서적을 완성하는 과정이 섬과 바다를 배경으로 수묵화처럼 펼쳐진다.
생물로 먹어도, 삭혀도 별미인 홍어
정약전과 창대의 만남은 홍어로 시작된다. 극중 어부로 살아가는 창대는 커다란 홍어를 잡아 싼값으로 가거댁(이정은 분)에게 넘기고 가거댁은 홍어를 손질해 정약전에게 내놓는다. 유배지에 막 도착한 정약전은 홍어를 안주 삼아 탁주(막걸리)를 들이키며 잠시나마 현실의 고통을 잊는다. 삭힌 홍어회를 탁주와 함께 먹는 것을 홍탁이라 하고, 홍탁에 돼지 편육과 잘 익은 배추김치를 곁들이면 그 유명한 홍어 삼합이 된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정약전이 먹는 홍어회는 삭힌 홍어가 아니라 생물 홍어를 사용했다. 정약전은 책에서 “나주 가까운 고을에 사는 사람들은 홍어를 삭혀 먹는 것을 좋아하니 지역에 따라 음식을 먹는 기호가 다름을 알 수 있다”고 적었다. 당시 흑산도에서는 영화에서처럼 생물 홍어를 즐겨 먹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삭힌 홍어가 찹쌀떡을 씹는 듯한 식감에 코에서 불이 날 것 같은 자극적인 맛이라면, 생물 홍어는 달큰한 맛과 홍어과 어류 특유의 쫄깃한 식감이 어울려 고급스러운 풍미를 낸다.
연골어류인 홍어는 몸의 뼈대가 모두 연골로 돼 있어 생선 가시라고 부를 만한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코’라고도 불리는 주둥이 끝 부분은 특히 연골이 부드러워 미식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부위다. 여기에 산지에서만 구할 수 있는 홍어애(홍어의 간)를 참기름장에 찍어 먹으면 더 이상의 호사는 없다. 당시 홍어는 술기운을 다스리는 데 좋다고 알려져 있었다. 섬 사람들과 격의 없이 어울렸던 정약전의 술상에는 항상 생물 홍어가 오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정약전은 해양생물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부를 해 내부 구조까지 정확히 묘사하는 정밀함을 보였다. 홍어에 대해서도 ‘암놈이 새끼를 낳는 산도 입구는 상어와 마찬가지로 바깥에서 볼 때는 하나지만 몸속으로 들어가면 세 갈래로 갈라진다. 이 중 가운데 것은 창자로 연결되고, 양쪽 가의 것은 태보를 형성한다. 태보 위에는 알 같은 것이 붙어 있는데, 알이 없어지면서 태가 형성되고 새끼가 만들어진다. 태보 하나당 네다섯 마리씩의 새끼가 생겨난다’라고 썼다.
다만 정약전의 분석에는 한 가지 중대한 오류가 있다. 홍어는 새끼를 낳지 않는다. 홍어과 어류는 모두 알을 낳는 난생이다. 정약전은 홍어가 아니라 다른 가오리류(색가오리과 어류들은 알이 몸 속에서 부화해 새끼를 낳는 난태생이다)를 해부하고 이를 홍어의 내부 구조로 착각한 것 같다. 어부들 중에서도 홍어가 새끼를 낳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물고기가 새끼를 낳는다는 사실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던 나머지 이런 착각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싶다.
가난한 선비들을 살찌게 한 청어
영화에서 정약전만큼이나 중요한 등장인물이 물고기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춘 섬 청년 창대다. 창대는 바다 생물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제공하며 정약전의 저술을 도운 실존 인물이다. 실제로 정약전은 책의 서문에서 그의 도움을 받아 저술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창대가 얼마나 뛰어난 자연과학적 재능을 가졌는지 보여주는 장면이 영화에 등장한다. 정약전이 국내 각 지역에서 잡히는 청어에 대해 질문하자, 창대는 영남 지역 청어의 척추뼈 수가 74개인데 반해 호남 지역 청어의 척추뼈 수는 53개라는 점을 지적한다.
물고기는 같은 종이더라도 지역에 따라 조금씩 형질의 차이를 보인다. 이를 계군(stock)이라고 한다. 독일의 생물학자 프리드리히 하인케는 물고기가 가지고 있는 여러 형질 중에서 척추뼈의 수로 계군을 나누는 방법을 처음 시도한 사람이다. 그는 1875~1892년에 잡힌 청어의 척추뼈 수가 지역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수산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런데 서양 학계와 교류가 없던 섬 청년 창대가 이에 앞서 계군의 의미를 파악한 것이다.
청어의 별칭은 ‘비웃’이다. 각종 사물의 명칭을 고증한 책 ‘명물기략(1870년)’에서는 ‘청어가 값이 싸고 맛이 있어 서울의 가난한 선비들이 즐겨 먹으므로 선비들을 살찌게 하는 물고기라고 해서 비유어(肥儒魚)라 쓰게 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비웃 또한 여기서 파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청어는 그만큼 많이 잡히고 일반 대중들에게 친숙한 물고기였던 것이다.
청어는 잔뼈와 기름기가 많아 회나 탕보다는 구워 먹는 것이 제격인데 뼈째로 씹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정약전도 청어가 국이나 포, 구이로 좋다며 맛을 칭찬하고 있다. 요즘에는 겨울철 차가운 해풍에 꾸덕하게 말려 먹는 과메기가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지금은 꽁치로 만든 과메기가 주류지만 원래는 청어를 말려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청어 과메기는 꽁치 과메기에 비해 살이 두툼하고 육즙이 풍부하다. 특유의 비린맛 때문에 처음 먹는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낄 수 있지만 윤기가 흐르는 과메기를 결대로 찢어 고추, 마늘, 쪽파와 함께 김, 미역 같은 해조류나 알배추 같은 채소에 싸 먹으면 별미가 된다.
상어를 삼키는 돗돔
십여 년 전 ‘밥상 위에 오른 물고기’를 연재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매달 기사로 실어야 할 물고기를 고르는 일이었다. 제철 생선이어야 하고 일반 밥상에 오를 만큼 대중적인 물고기를 찾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때문에 이번에는 밥상 위에 ‘올리고 싶은’ 물고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영화 속 정약전은 창대에게 “내가 아는 지식이랑 너의 물고기 지식이랑 바꾸자”라며 지식 교환을 제안한다. 고심 끝에 창대가 이를 받아들이자 정약전은 여러 차례에 걸쳐 돗돔이라고 불리는 물고기를 잡아올 것을 재촉한다. 그리고 어느 날 창대는 실제로 자신의 몸집만큼 거대한 물고기 돗돔을 등에 지고 나타난다.
돗돔은 자산어보(현산어보) 첫머리에 ‘대면(큰 민어)’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사실 돗돔은 민어 종류가 아니라 반딧불게르치과에 속하는 전혀 다른 종류의 물고기지만 정약전의 묘사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한참이나 벗어난다.
“큰 놈은 길이가 2m 남짓 된다. 허리통도 굵어서 몇 아름이나 된다. 음력 6~7월경 상어를 잡는 사람들이 낚시를 물 밑바닥까지 늘어뜨린다. 상어는 낚시에 걸리면 거꾸로 매달린 자세가 된다. 이때 대면은 낚시에 걸린 상어를 잡아먹으려고 달려든다. 그러나 대면이 상어를 물면 오히려 상어의 등지느러미에 나 있는 송곳 같은 가시에 내장을 찔려 거꾸로 낚시에 걸린 꼴이 되고 만다. 낚시를 들어 올리면 상어와 함께 올라오는데…,”
실제로 해외 유튜브 채널을 검색하다 보면 돗돔과 유사한 물고기가 낚시에 걸린 상어를 공격하는 장면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일이 한반도 바다에서도 일어났다는 사실이 놀랍다.
돗돔은 거대한 덩치에 걸맞게 기가 막힌 맛을 가진 어종으로 유명하다. 연한 복숭아빛을 띤 두툼한 살집은 담백한 데다 비린내도 거의 나지 않아 회나 구이감으로 최상급이다. 돗돔은 국내에서 1년에 몇 마리 잡히지 않을 만큼 희귀한 어종이다. 가까운 시일 내 필자의 밥상 위에 돗돔이 오르는 날은 없을 듯하다.
2021 달라진 밥상 위의 물고기
오늘날 우리가 바라보는 바다는 정약전의 바다와는 다르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자산어보 편찬 200주년을 기념해 2012년 여름과 가을, 그리고 2013년 겨울과 봄 전남 신안 흑산도 주변 해역에서 출현하는 해양생물을 분석한 책 ‘21세기 자산어보’를 2014년 발간했다.
연구에 참여한 ‘21세기 정약전’들은 현대 과학기술을 활용해 흑산도 주변 해역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미국해양대기청(NOAA)의 해양관측위성과 현장 조사 자료를 이용해 한반도 근해 해양 환경을 알아내고 현미경으로 흑산도 해역의 플랑크톤 종을 분류했다. 정약전이 살펴볼 수 없었던 바닷속 깊은 곳의 해양생물도 수중촬영과 저층 트롤어구 조사로 세상에 드러났다. 정약전이 그랬던 것처럼 흑산도 어민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발견한 해양생물들을 자산어보에 수록된 생물상과 비교한 결과, 자산어보에는 수록되지 않았던 26종의 어류를 발견했다. 이 가운데 당멸치, 일지말락쏠치, 샛돔, 독가시치를 비롯한 16종은 열대 및 아열대 지역에 서식하던 어류였다. 연구팀은 이들 어류가 흑산도 주변 해역에서 새롭게 출현한 이유로 기후변화를 지목했다.
한반도 주변 해역 해양생태계도 달라지고 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과 해양환경공단(KOEM) 등 공동연구팀은 지난해 10월 ‘해양과학 및 공학 저널’ 특별호에서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 사이에 소라(Turbo sazae)의 서식지 북방 한계가 남해안에서 동해안 울진 부근까지 최대 342km 북상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관측된 여름철 수온 22℃ 등온선과 겨울철 수온 12℃ 등온선의 위치가 점차 고위도로 옮겨갔다며, 고위도의 해역이 점차 따뜻해지자 소라 서식 분포도 함께 변했다고 설명했다. doi: 10.3390/jmse8100782
비슷한 경향이 밥상 위 단골손님인 고등어와 명태 등의 어획량 변화에도 드러난다. 통계청이 2018년 발표한 ‘기후(수온)변화에 따른 주요 어종 어획량 변화’에 따르면 1990년 이후 연근해 해역에서 고등어류, 멸치, 살오징어 등 난류성 어종의 어획량이 증가하고, 명태, 꽁치, 도루묵 등 한류성 어종은 감소했다. 한반도 해역의 표층 수온은 50년(1968~2017년)간 약 1.1℃ 상승했다.
기후변화 외에도 다양한 인간 활동이 바다의 모습을 바꿨다. 윤석현 국립수산과학원 기후변화연구과 연구사는 “명태의 경우 서식지의 남방 한계선이 한반도에 걸쳐있기 때문에 개체군의 분포 위치에 따라 어획량이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며 “남획 등 다양한 요인이 어획량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설명했다. 윤 연구사는 “아열대성 어류들이 최근 한반도 해역에서 발견되는 사례 역시 기후변화 외에 우연한 개체 유입 등 다양한 원인이 있기에 총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양식도 밥상 위 물고기의 판도를 바꾸는 요인 중 하나다. 2024년에는 강원도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연어 양식 단지를 지어 대서양 연어를 양식할 예정이다. 지난해 5월 국립수산과학원은 대문어 알을 부화시킨 뒤 99일까지 길러내는 데 성공했다. 또 높은 수온에서도 잘 자라는 김 품종을 개발해 시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