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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이 vs. 백신 재설계

[엣지 사이언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막기 위한 백신 접종이 국내에서도 시작됐다. 한국 정부는 2월 26일 요양병원 종사자 등을 시작으로 백신 접종을 올해 안에 최대한 마무리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현재의 백신만으로는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비관적인 의견도 있다. 바이러스의 생존전략이자 최대 무기, 변이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이후 모든 전문가가 입을 모아 백신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감염병의 종결 요건 중 하나인 집단면역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백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에서였다.


그렇게 지난해 12월 임상시험 중인 백신이 긴급사용 허가를 받으며 영국과 미국을 필두로 접종이 시작됐다. 전문가들은 백신 개발에 5~1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으나, 처음 코로나19 발병 사례가 보고된 지 약 1년 만에, 백신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1년도 채 걸리지 않아 백신이 나왔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화이자와 모더나의 백신에 대해 긴급사용을 승인했고, 2월 15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긴급사용 승인하면서 현재까지 3종의 백신이 주요국가에 유통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에서 개발한 백신도 일부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다.

 

변이 바이러스 백신 효능 떨어뜨리나

 

하지만 동시에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다양한 변이가 발견되면서 바이러스의 반격도 시작됐다. 현재 전 세계에 가장 위협적인 변이로는 B.1.1.7, B.1.351, B.1.1.28.1 등 세 종이 꼽힌다. 각각 처음 발견된 국가에 따라 영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발 변이로도 불린다. 이들 변이 바이러스는 국내에서도 감염 사례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세 종의 변이는 발생 시기와 유행 지역은 다르지만,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항원인 스파이크 단백질에 변이가 생긴 점은 같다. 특히 세 종 모두 스파이크 단백질의 501번째 아미노산 염기가 아스파라긴(N)에서 티로신(Y)으로 바뀌었다. 해당 부위는 스파이크 단백질의 말단 부위로 바이러스가 숙주에 침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전문가들은 기존보다 더 높은 전파력을 가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으며 실제 역학 연구를 통해 일부 확인된 상태다.


바이러스의 변이는 전파력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기준으로 설계된 백신은 변이 바이러스에 대해 효능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백신은 바이러스가 인체에 감염되기 전에 바이러스의 항원(또는 항원을 만들 수 있는 유전정보)을 넣어 몸의 면역체계가 한발 앞서 항체를 만들도록 한다. 이런 항체 가운데 바이러스 독성을 제거할 수 있는 항체를 중화항체라고 한다. 만약 변이 바이러스의 항원 구조가 일부 변했다면 백신이 만든 중화항체의 중화 능력도 감소할 수 있다. 

 


신의철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중화항체는 바이러스에서 인체 침투에 핵심 역할을 하는 좁은 부위를 인식한다”며 “항원의 일부 염기서열 변화만으로도 인식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워싱턴대와 텍사스대 등 공동연구팀은 기존 개발된 백신과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신’ 3월 4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코로나19 완치자와 화이자 백신을 접종받은 사람, 시험용 백신을 접종받은 동물이 각각 만들어낸 항체가 세 종의 변이 바이러스를 중화하는 데 필요한 양을 계산했다.


그 결과 영국발 변이의 경우 기존 중화항체 수준으로도 충분히 중화될 수 있었지만, 남아공과 브라질발 변이의 경우 3.5~10배 많은 항체가 있어야 중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변이에 대해서 기존 백신의 효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doi: 10.1038/s41591-021-01294-w 같은 달 8일 ‘네이처’에 공개된 미국 컬럼비아대 의대 연구팀의 논문 역시 영국발 변이는 화이자와 모더나의 백신과 항체치료가 잘 듣지만, 남아공 변이는 항체치료가 잘 듣지 않는다고 밝혔다. 완치자 혈장을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로 효능이 떨어져서 변이가 없는 바이러스에 비해 9~12배 많은 항체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doi: 10.1038/s41586-021-03398-2

 

핵심 부위 교체하는 백신 재설계로 변이 대항

 

연구자들은 변이에 맞서기 위해 기존 백신 시스템을 이용하되, 항원의 변이에 따라 항원 부위를 바꾸는 ‘백신 재설계(Redesign)’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모더나와 화이자는 전달체(벡터)에 넣은 스파이크 단백질의 전령RNA(mRNA)를 인간 세포 내부로 침투시켜 체내에서 항원을 만들도록 하는 mRNA 백신을 개발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항원의 mRNA를 기반으로 만든 상보적DNA(cDNA)를 바이러스 벡터인 아데노바이러스에 넣어 체내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중국과 러시아에서는 바이러스 자체를 불활성화해 접종하는 불활성화 백신을 개발했다.

 

 

이 가운데 백신 재설계를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방식은 mRNA 백신과 바이러스 벡터 백신이다. 이들 백신은 바이러스의 유전정보를 인체 내부에 효율적으로 침투시키고 많은 양의 항원을 만들어내게 유도하는 플랫폼 기술을 갖추고 있다. 현재 접종되는 mRNA 백신과 바이러스 벡터 백신의 안전성과 효능이 어느 정도 증명된 만큼 mRNA나 cDNA 등 핵산만 새로이 합성하면 백신 재설계가 가능하다.


송대섭 고려대 약학과 교수는 “핵산을 기반으로 한 백신은 바이러스 자체를 다루지 않고 필요한 염기서열을 합성하는 만큼 빠르고 안전하게 재설계가 가능하다”며 “이미 변이 바이러스의 유전정보 분석이 끝나있는 만큼 이를 토대로 제작하면 바로 인체 적용시험이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이미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불활성화하는 방안이 마련된 만큼 불활성화 백신도 재설계가 가능하다. 이 경우에는 실제 바이러스를 배양해 백신을 제작하므로 변이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방법만 개발된다면 백신을 생산할 수 있다. 1월 25일 중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 관계자는 관영 글로벌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미 개발된 불활성화 백신을 재설계하는 데 2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중국 외에도 화이자와 백신을 공동개발한 독일의 바이오엔테크가 백신 재설계 가능성을 언급했고, 2월 22일 FDA는 재설계 백신 허가에 필요한 임상시험을 축소해도 좋다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물론 안전한 접종을 위해서는 전임상시험과 소규모, 단기 임상시험 등 절차를 거쳐야 한다. 재설계 백신 이외에 변이 바이러스의 항원과 기존 백신을 혼합해 다양한 항원에 반응하는 다가 백신을 개발하는 논의도 진행 중이다(위 박스).


모더나는 백신 재설계와 함께 기존 백신의 항체 생성량을 늘리는 방안도 연구할 계획이다. 1월 25일 모더나는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영국, 남아공발 변이에 대한 백신의 자체 효능 평가 결과를 발표하며 mRNA 백신이 변이에 특화된 백신 개발에 적합하고 항체 생성을 늘리는 부스터 접종(Booster shot)에도 알맞은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doi: 10.1101/2021.01.25.427948


2월 24일 모더나는 남아공발 변이에 적합하도록 재설계된 임상시험용 백신을 미국국립보건원(NIH)에 보냈으며 접종 횟수를 2회에서 3회로 늘리는 부스터 접종 임상시험도 함께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송 교수는 “현시점에서는 기존 백신을 활용해 변이 바이러스와 대적할 방안을 찾고, 장기적으로는 재설계를 통해 기존 백신과 혼합하는 다가 백신을 사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21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이병철 기자 기자
  • 이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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