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Anthropocene)’는 ‘인류(anthropos)’와 ‘시대(cene)’의 합성어로, 인류가 지구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 시점을 나타내기 위해 도입한 지질 시대의 이름이다. 인류세를 지질 시대로 정의하려면 인류세가 새로운 지질 시대임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표준 지층인 ‘국제표준층서구역(GSSP)’이 필요하다. 7월 11일 캐나다의 크로포드 호수가 GSSP로 정해졌다.
GSSP를 선정하는 인류세실무연구단은 2022년 말부터 호수와 해안가 퇴적층, 빙하 코어, 토탄 습지, 산호초 등 세계 12곳의 GSSP 후보를 정해 이중 한 곳을 고르는 투표를 진행했다. 그 결과, 올해 4월 세 번째 투표에서 크로포드 호수가 60%가 넘는 득표율로 최종 선정됐다. 호수 바닥의 퇴적층이 끊기지 않고 쌓여있어 지질학적 기록이 잘 보존돼있을 뿐만 아니라, 핵실험의 증거인 플루토늄 동위원소나 화석연료 사용의 흔적인 구상 탄소입자 같은 인간 활동의 증거 또한 명확히 나타났기 때문이다.
최종 후보지 공개를 앞둔 6월 28일, 대전 KAIST에서 열린 제7회 동아시아환경사학회(EAEH 2023) 참석차 방한한 인류세실무연구단의 사무국장 사이먼 터너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선임연구원을 인터뷰했다.
Q. 투표가 세 차례나 진행된 이유가 궁금하다.
“인류세 국제표준층서구역은 인류세실무연구단을 구성하는 34명 중 21명의 투표를 통해 정해졌다. 크로포드 호수는 매 투표마다 12곳의 후보지 가운데 가장 많은 표를 받았지만 과반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4월 투표에서는 두 명의 위원이 마지막에 마음을 바꿔 크로포드 호수에 투표하면서 극적으로 최종 후보지에 선정됐다. 또 다시 투표를 해야 했다면 최종 선정에 최소 두 달은 더 걸렸을 것이다.”
Q. 크로포드 호수가 인류세 표준 지층으로 정해진 이유는?
“호수 바닥의 퇴적물이 매년 나이테처럼 정확하게 쌓여있어 층서학 자료로써의 가치가 높았고, 핵폭발로 생성된 플루토늄 동위원소의 기록도 매우 잘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비료 등 다른 인류 활동의 기록이 잘 나타나있기도 했다.”
Q. 다른 후보 지역들은 왜 떨어졌나.
“2등을 한 중국의 시하이롱완 호수처럼 각각의 후보 지역들은 모두 개성있고 훌륭한 퇴적층을 가졌다. 그러나 인류세의 증거가 크로포드 호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났다. 남극 팔머 빙하코어의 경우, 인류 활동 흔적인 중금속이 타 지역에 비해 적었다. 폴란드의 토탄 습지는 퇴적층이 분해돼 매해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
Q. 마침내 표준 지층이 정해졌을 때 소감은?
“인류세실무연구단의 사무국장으로서, 처음으로 투표 결과를 알게 됐다. 이 역사적인 결과를 아는 사람이 지구 전체를 통틀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좀 더 오래 즐기고 싶어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매우 이기적인 결정이었다. (웃음)”
Q. 인류세에 대한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이 높다.
“나도 그런 점이 놀랍고 신기하다. 층서학위원회에서는 인류세가 아닌 다른 지질 시대를 정하는 작업도 꾸준히 해왔다. 예를 들어 2008년에는 홀로세가 정해졌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많은 관심을 받지 않았다. 인류세의 정식 등록 여부는 오는 2024년 부산에서 열리는 제37차 세계지질과학총회(IGC)에서 최종 결정된다. 역사적인 순간일 것이다.”
Q. 인류세가 등록된 이후의 계획은?
“인류세실무연구단은 인류세가 정해지면 소명을 다하고 해체된다. 그러나 인류세 연구는 이제 시작이라, 어떻게 연구와 논의를 이어나갈 것인지에 관한 고민이 있다. 예를 들어, 인류세는 지역에 따라 시작되거나 나타나는 양상이 조금씩 다르다. 이런 맥락에 관해 앞으로 연구가 더 필요하다.”
용어 설명
홀로세 :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는 약 1만년 전을 기준으로 현재까지의 지질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