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바뀌는 시기는 학창시절에서 가장 초조한 때다. 과연 어느 학교에 가게 될지, 너무 멀지는 않을지, 분위기는 어떨지, 너무 강압적이지는 않을지, 선생님들은 잘 가르쳐 줄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마음이 두근거린다. 이때 초미의 관심사가 바로 남녀공학에 가느냐 단성학교(남학교 또는 여학교)에 가느냐다. 학생들은 이성친구와 함께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이유로 남녀공학을 바라기도 하고 반대로 학부모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걱정하기도 한다. 실제로 남녀공학과 단성학교가 공부에 영향을 끼칠까.
3흔히 남녀공학에 다니면 이성에 신경을 쓰느라 학업에 소홀하게 된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럴 법하다. 주변에 이성이 있으면 아무래도 자꾸 눈이 가고 자기 외모도 더 가꾸게 되지 않겠는가. 하물며 사춘기인 십대 시절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선입견처럼 정말 남녀공학에 다니면 성적이 떨어질까. 2011년 12월 강창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개최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와 대학수학능력시험 평가 자료 활용 분석 심포지엄’에서 ‘단성(單性)학교 교육의 성적 효과’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남학교나 여학교가 남녀공학에 비해 학생의 학업 성적에 끼치는 영향을 분석한 내용이었다.
강 교수는 서울시내 고등학교의 1995~199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을 분석했다. 자료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요소는 무작위성이다. 1990년대에는 평준화 정책을 강하게 실시했기 때문에 학생은 배정을 받는 대로 학교에 가야 했다. 학교의 종류가 성적에 영향을 끼치는 효과를 추측하는 데 유리하다. 평준화 제도에 대한 보완책을 도입한 2000년대 이후 자료는 이런 무작위성이 줄어들어 분석에서 뺐다.
남녀공학이 성적 떨어져
조사 결과 단성학교는 성적 향상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그 효과는 남학생에게 더 컸다. 남학생의 경우 남녀공학에 비해 남학교를 다닐 때 영어와 수학 성적이 약 1% 높았다. 남녀공학에서 80점을 받았다면, 남학교에서는 80.8점을 받는다는 소리다. 국어는 0.24%였다. 여학생은 남학생보다 효과가 작았다. 남녀공학에 비해 여학교를 다닐 때 영어 성적은 0.5% 높았고, 국어는 0.28%였다. 수학 성적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단성학교에 다닐 때 성적 향상 효과가 가장 큰 집단은 중상위권 남학생이었고, 하위권 학생에게는 거의 영향이 없었다. 남학생에게는 수학 성적 향상 효과가 컸지만, 여학생은 효과가 거의 없어 남녀 차이가 가장 두드러졌다. 국어는 남녀 모두 비슷한 수준으로 성적이 좋아졌다. 하지만 이런 결과가 나온 원인은 확실하지 않다. 강 교수는 “남학생이 여학생의 존재로 인해 더 산만해진다는 등의 가설을 세울 수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남녀공학이 단성학교에 비해 성적이 떨어진다는 선입관은 사실로 보인다. 지난 6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2012학년도 수능 성적분석결과발표집에 따르면 언어 영역과 외국어 영역의 점수는 여학교가 가장 높았으며, 수리 영역은 남학교가 가장 높았다. 남녀공학은 모든 영역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2011학년도에 비해 단성학교와 남녀공학의 점수 차이는 더 커졌다.
남녀공학의 성적 부진이 계속되자 학부모나 학생 사이에서 남녀공학을 기피하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 2011년 대구시교육청은 한국교육개발원에 ‘남녀공학고의 단성고 전환 타당성 분석’을 의뢰해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일부 학부모나 남녀공학고가 성적 하락을 이유로 단성고로 전환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교육청 담당자에게 보고서를 요청하자 “지역 사회에 민감한 문제라 아직 공개할 수 없다”고 거절해 결과를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보고서 역시 남녀공학고의 성적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인문계 고등학교 중 남녀공학은 절반이 넘는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남녀공학을 늘리겠다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어 앞으로 비율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남녀공학을 늘리는 이유는 뭘까. 남녀의 자연스러운 교류를 통한 인성 교육과 평등한 성역할 교육이 남녀공학의 장점이다. 이 또한 학생들이 배워야 할 중요한 요소다. 교육의 목적이 대입수학능력시험을 잘 치르는 것만은 아니다.
문제는 남녀공학이나 단성학교가 학생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연구가 부족해 학자들 사이에서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생이 교육을 받아 성장하는 데는 개인의 능력, 교사의 능력, 가정 환경 등 수많은 요소가 관여하기 때문이다. 영향을 평가하려면 학교 학생의 성별을 제외한 모든 요소를 통제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남녀의 뇌는 다르다?
최근 미국의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남녀공학과 단성학교에 대한 논쟁을 게재했다. 먼저 2011년 9월 23일자에 미국 남녀공학교육위원회가 ‘단성 교육은 유사과학’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이 달린 글을 기고했다.
미국에서는 1972년 제정된 교육개정법 4장에 의거해 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단성학교는 여기서 제외되지만, 남녀공학 학교에서 남녀를 나눠서 수업하는 행위는 사실상 금지였다. 그런데 2006년 정부가 이 규정을 재해석하면서 남녀공학 학교에서도 제한된 조건 아래 남녀를 나눠서 수업할 수 있게 됐다.
이들은 남녀분반 수업이 남녀를 섞어서 수업하는 것에 비해 더 나은 결과가 나온다는 주장에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에도 남녀의 뇌 구조가 달라서 다른 방식으로 교육해야 한다는 이론이 교사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그런 이론이 ‘유사과학’, 즉 사이비라고 주장했다.
리제 엘리엇 미국 로잘린드프랭클린 의과학대 교수는 2011년 8월에 학술지 ‘성역할’에 게재한 논문에서 학부모들이 잘못된 주장에 이끌려 단성학교를 선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남학생과 여학생의 뇌에서 교육 과정을 다르게 해야 할 정도의 차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엘리엇 교수는 “단성학교 옹호자들은 성인 남녀의 뇌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바탕으로 남학생과 여학생의 차이를 주장하는데, 어른의 뇌
와 어린 학생의 뇌가 똑같이 작용한다는 가정이 틀렸다”며 “어른의 뇌신경 반응은 타고난 게 아니라 성장기에 누린 교육과 사회적인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다.
이 논문에서 반박하고 있는 중요한 사례를 하나 들어 보자. 단성학교 옹호자들은 소녀가 소년보다 뇌량(뇌의 좌반구와 우반구를 잇는 신경다발)이 크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소녀는 좌반구와 우반구의 교류가 활발해 멀티태스킹에 능하고, 소년은 배운 것을 분류하는 능력이 좋아 집중을 더 잘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 대중에게도 남녀의 뇌 구조 차이로 잘 알려져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주장이 나온 지 100년이 넘었음에도, 아직 뇌신경학자들은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어린이와 성인을 막론하고 남녀의 뇌량이나 뇌 활동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초기의 연구 하나를 언론매체가 계속 인용하면서 남녀의 뇌 구조에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 널리 퍼진 것이다. 엘리엇 교수는 “해부학적 또는 생리학적 특성에 따라 학생을 분리해서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교육의 기본적인 목적에 거스르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성역할이나 성차별에 대한 교육도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다. 미국남녀공학교육위원회는 단성 교육을 시키면 성 단절 효과가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남녀공학 학교에서도 같은 성끼리 모이고 다른 성에 대한 편견이 생기는 현상이 있는데, 단성학교에서는 더 심하게 나타난다는 이론이다. 교사의 지도 아래서 남자와 여자가 함께 공부하거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는 것도 단성학교의 큰 단점이다.
공학이 오히려 남녀 차별한다
몇 달 뒤인 올해 1월 ‘사이언스’에는 미국남녀공학교육위원회의 기고문에 반박하는 단성학교 지지자들의 글이 실렸다. 이들은 오히려 남녀공학이 전통적인 성역할을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흔히 남성의 학문이라고 여기는 수학과 과학에 여학생이 관심을 잃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근거는 이렇다. 원래 수학과 과학은 남학생이 더 잘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교사는 수업을 진행할 때 여학생보다 남학생에게 더 신경을 쓰고 격려하게 된다. 그런 분위기에서는 남자 못지 않게 수학과 과학에 관심이 많은 여학생이 적극적으로 질문하거나 참여하기 어렵고, 결국 흥미를 잃고 만다. 여학생만 따로 모아서 가르친다면 성별에 따른 이런 편견 없이 수업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교사의 성별도 단성학교를 지지하는 근거가 된다. 남학교에는 남자 교사가, 여학교에는 여자 교사가 상대적으로 많다. 그런데 여학생은 여성 교사에게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원인은 불확실하지만, 여성 교사가 많을수록 여학생의 성취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단성학교를 지지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또 있다. 앞서 언급한 강창희 교수의 연구처럼 성적만 놓고 보면 단성학교의 우세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수학은 남녀의 차이가 없지만, 읽기 능력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꾸준하게 여학생이 앞서고 있다. 남녀의 차이가 점점 커지자 보완책으로 남학교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미국남녀공학교육위원회는 2005년 미국 교육부가 만든 보고서를 근거로 들었다. 이 보고서에서 미 교육부는 “과거 보고서를 점검한 결과 단성학교의 효과가 분명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단성학교의 학업성취도가 높게 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단성학교에 지망하는 학생의 원래 성적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학교를 무작위로 배정하지 않는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201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분석 결과’다. 단성학교가 남녀공학보다 점수가 높다. 2011학년도에 비해 모든 영역에서 여학교와 남녀공학의 차이가 벌어졌다. 남학교와 남녀공학의 차이는 언어와 수리(가) 영역에서 더 커졌다.]
성적은 단성학교… 하지만 그게 다일까
평준화가 많이 퍼진 우리나라는 남녀공학과 단성학교의 영향을 연구하는 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박현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팀은 서울의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남녀공학과 단성학교 사이에 4년제 대학 입학률이 어떻게 다른지 조사했다. 이 연구 결과는 올해 1월에 다른 단성학교 지지자들의 기고문과 함께 ‘사이언스’에 근거로 실렸다. 단성학교는 남녀공학에 비해 수능 점수와 4년제 대학 입학률이 높았다. 학생 대 교사 비율, 무상급식비율, 공립학교냐 사립학교냐의 차이를 고려해도 효과는 여전했다. 박교수는 “이 결과가 결정적인 결론을 내려준다거나 일반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단성학교의 학업성취도가 더 뛰어나다는 또 하나의 근거가 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남녀공학에서 남녀의 내신성적 차이도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녀공학에서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내신성적을 더 잘 받는다는 결과가 꾸준히 나왔다. 2008년 울산시교육청의 조사에 다르면 1~5등급에 속하는 비율이 남학생은 52%인 반면 여학생은 67%였다. 수학 1등급 비율만 남학생이 높았을 뿐, 대부분 여학생이 강세였다.
그래서 아들을 둔 학부모는 내신에 불리한 남녀공학에 보내기를 꺼리거나 남학생과 여학생의 내신을 따로 산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남학생이 단성학교에서 이익을 더 많이 본다는 강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학부모들의 생각에도 일리가 있다. 물론 그렇게 하면 여학생을 역차별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단성학교가 남녀공학보다 더 낫다는 결론을 내리기는 이르다. 학교를 다니는 목적이 단순히 좋은 성적과 대학교 입학만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며, 성적 이외의 장점에 대해서는 아직 학자들 사이에서도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입에 목을 매는 현 세태와는 다르겠지만, 성적보다도 남녀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꼭 필요한 사회성을 갖추는 게 더 좋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어딜 가든 자기 할 일만 충실히 하면 된다”는 어른들의 말을 곱씹어보게 된다.